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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기고] '증거인멸 우려'는 결코 핵심이 아니다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12년 전 이맘때 나는 후보매수혐의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구속됐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나중에 1심, 2심, 3심 재판부는 공히, 내게 적용된 후보매수 혐의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후보매수혐의에 의한 구속결정이 오판으로 판명났다는 뜻이다.
물론 영장심사법관은 후보매수혐의가 그럴듯하게 소명되었고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내줬을 것이다. 지금도 법관 본인은 유무죄 본안판결을 한 게 아니고 구속요건 충족여부만 판단했을 뿐이라서 오판한 게 아니라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에도 영장심사법관이 200쪽도 넘는 검찰조서에 깨알같이 기재된 내 말을 믿었더라면 구속영장을 내주지 않고 불구속재판을 받게 했을 것이다.
당시 법관이 200쪽 넘게 거침없이 피력된 내 말을 믿지 않은 이유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및 언론의 받아쓰기가 2주일 넘게 계속되며 내게 부정적인 여론몰이가 성공한 탓이 크다. 판사도 시민의 일원으로서 처음부터 언론보도를 접하며 검찰 시나리오에 물들 수밖에 없었고 우리측이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으나 검찰시나리오가 그럴듯한데다 이미 여론도 내게 부정적이기 때문에 여러 모로 검찰 손을 들어주는 게 심리적으로도 편했을 것 같다
아무튼 법관이 유무죄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 잘못된 구속결정을 내린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개인적, 사회적 피해로 이어졌다. 이미 2주 넘게 검찰의 피의사실 기획배급과 언론의 대서특필이 계속된 탓에 여론이 등을 돌린 상황에서 법관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나는 본안재판도 받기 전에 완전히 후보매수범으로 낙인찍혔다. 재판과정도 뒤틀렸다. 내게 들씌워진 후보매수 시나리오가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는 데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사후매수죄의 가벌성 유무를 꼼꼼히 파고드는 게 불가능했다. 당연히 재판결과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도 서울교육과 개혁진보진영에 회복할 수 없는 충격과 혼란을 줬다. 나는 아직까지도 그 오판의 여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와 같은 경험에 기초해서 26일 이재명 대표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법관에게 몇 가지 원칙을 상기시키며 반드시 유념해줄 것을 간곡히 당부하고자 한다.
더불어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 박찬대 공동위원장이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심사에 대한 대책위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3.9.25. 연합뉴스
하명표적수사의 끝판왕 사건 아닌가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안이 이재명 대표를 '확정적 범죄자'라고 못박은 윤석열 대통령의 예단에 따라 진행된 하명표적수사의 끝판왕 사례라는 점이다. 본래 검찰은 대장동 사안 수사로 시작했으나 그것으로 이 대표를 엮는 게 여의치 않자 인디언 기우제식 먼지털이 별건수사를 무려 1년 반 가까이 계속한 끝에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 이르렀다는 경위도 잊어서는 안 된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끊임없이 흘리며 이 대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덧칠해왔다는 사실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재명 대표가 자신에게 들씌워진 모든 혐의가 무리한 예단과 추정으로 꿰어맞춘 가짜혐의라며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당연히 방어권 보장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더욱이 이재명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1624만 표를 얻고 지금까지도 가장 유력한 차기주자로 꼽히는 과반수 제1야당의 당대표이다. 이런 이 대표가 구속될 경우의 정치적 파급효과는 가히 핵폭탄급이다. 한마디로 이 대표 구속여부 재판은 그 파급효과가 이 대표 본인과 지지자, 민주당은 물론이고 윤석열 정권과 국민들에게 두루두루 미친다는 점에서 철두철미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이런 사안일수록 원칙에 충실한 것 외에 왕도가 없다.
유창훈 판사에게 묻는다. 지난 대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진 야당 대표는 모든 혐의를 정치공작으로 규탄하며 부인한다. 검찰은 그동안 공언해온 대장동 사건도 아닌 별건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더욱이 1년 반이나 전방위적으로 파서 모든 증거를 확보했다고 자신만만해 한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야당대표의 인신까지 구속하며 방어권을 제약하고 정치판을 뒤흔드는 게 민주주의와 헌법원칙에 부합할까, 아니면 불구속재판 원칙에 충실하게 영장청구를 기각하고 검찰권의 남용에 제동을 거는 것이 부합할까. 나는 유 판사가 이 근본질문부터 답해야 한다고 믿는다.
반면 많은 평론가들은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지가 제1판단기준이 될 것이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문한다. 검찰이 제기한 범죄혐의들이 중대하고 이 대표의 도주 우려가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므로 증거인멸 우려가 있는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다. 검찰은 1년 반도 넘는 저인망식 수사를 통해 모든 유죄증거를 확보했다고 큰소리친다. 그렇다면 누가 무슨 재주로 증거인멸을 한단 말인가. 만약 이 대표 측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서 불리한 진술을 한 핵심증인들의 진술번복을 이끌어낼까 염려된다고 가정해보자. 검찰에 따르면 이미 유죄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것 아닌가. 게다가 법원이 바보인가. 증언 번복에 대해서는 그 신빙성 여부를 판단하면 그만이고 오히려 부정적인 심증을 형성할 가능성이 높다. 검찰 역시 이 대표에게 위증교사혐의를 추가하면 된다.
검찰과 언론의 몰아가기에 넘어가지 말아야
언론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무려 500쪽도 넘는 구속이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고 한다. 검찰측 시나리오는 누가 읽어도 일응 그럴듯할 것이다. 윤석열-한동훈 검찰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1년 반 넘게 달려들어 최대한 의심의 눈으로 엮어놓은 역작이기 때문에 이 대표가 아무리 무고하다고 하소연해도 당장은 대단히 유능하고 정의로운 판사라도 솔깃할 만큼 그럴싸한 스토리라인이 펼쳐질 게 틀림없다.
두툼한 검찰측 시나리오와 소명자료를 받아든 판사 입장에선 범죄혐의가 중대하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소명됐다고 판단되는 순간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내줄 가능성이 없지 않다. 증거인멸 우려가 제일 중요한 판단기준이라는 식의 언론보도도 이런 안이한 판단을 부채질할 수 있다. 명확한 물증 없이 관계자 진술에 의존하는 이번 혐의들의 속성상, 진술번복을 위한 증인압박·회유 가능성이 의심되면 구속해도 무방하지 않겠냐는 암묵적 메시지를 은연중에 확산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파렴치범 사안이라면 이런 판단기준이 일응 타당하겠지만 위에서 언급한 여러 예외적인 특수사정으로 특징지워지는 이 대표 사안에 적용하기에는 너무 단순해서 구체적 타당성이 없다. 이 대표 사안에 고유한 특수한 사정들을 다 외면하고 증거인멸 우려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을 빙자한 극도의 부정의가 아닐 수 없다. 정의로운 결정을 위해서는 사안의 성격과 무게, 파급력에 값하는 종합적인 검토와 고려가 필수적이다. 한마디로 증거인멸 우려를 금과옥조로 삼는 안이한 접근은 이 대표 사안에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접근이다.
이재명 대표 사안에서 검찰은 지난 1년 넘게 모든 주변인물과 관계자들을 압수수색하고 소환조사하며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검찰은 모든 증거를 확보해서 유죄입증을 자신한다. 그동안 투입된 수사인력과 수사기간을 생각해볼 때 안 그러면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와서 굳이 이대표를 구속할 이유가 전혀 없다. 검찰이 더 조사할 내용이 없고 이 대표도 만약 필요했다면 입막음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이미 가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재판과정에서 중요한 증인이 종전 진술을 번복하면 법원이 그 신빙성을 부정하면 그만이다.
반면에 구속해선 안 될 이유는 차고 넘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안에서처럼 유무죄 주장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경우 법관이 검찰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 구속영장을 발부했으나 나중에 재판과정을 통해 무죄로 판명나면 그 후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자신은 구속필요성 유무를 재판했을 뿐 유무죄 본안재판을 한 게 아니라서 오판을 한 건 아니라고 변명할 수 있을까.
이재명 대표 사안에서처럼 검찰의 의도적인 피의사실 흘리기가 장기간 지속된 경우 판사는 구속영장 발부에 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판사가 검찰의 피의사실공표 범죄관행에 눈감고 면죄부를 주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유무죄 일관되게 다투는 중대사안에선 불구속재판 원칙 고수해야
그래서다. 유무죄를 일관되게 다투는 중대사안에선 더더욱 불구속재판 원칙을 고수하고 구속영장을 내줘선 안된다. 이럴 때는 판사의 오판 가능성이 작지 않고 피고인의 변론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구속결정이 초래할 사회적·정치적 파급효과가 워낙 중대해서 나중에 오판으로 판명되면 원상회복과 피해복구가 어려운 사안에서도 같은 이유로 불구속재판 원칙에 더 충실해야 한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검찰은 이재명 대표가 현행범도 아니고 시종일관 무죄를 주장하는데도 불구하고 본래 큰소리치던 대장동 사안도 아닌 별건들로 인신구속 영장까지 청구했다. 이 대표를 잡아넣기 위해 윤석열-한동훈 검찰이 1년 반 넘게 360번도 넘는 압수수색을 자행하며 인디언 기우제식 먼지털이 수사를 해온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다.
만약에 윤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야당 대표에 대한 저인망식 표적수사에 매달려온 검찰이 정치검찰이 아니라면, 또한 이런 표적수사가 정적제거와 야당분열을 위한 수사권 남용이 아니라면 어떤 게 정치검찰이고 어떤 게 수사를 빙자한 정치보복이겠는가.
검찰의 집요한 먼지털이 표적수사 및 계획적인 피의사실 누설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구속영장을 내어주는 판사는 정치검찰의 조폭행태 및 정치사법의 공범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만에 하나 영장실질심사 법관이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인이자 야당 지도자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 남용을 제어하기는커녕 눈감아주고 구속영장을 내준다면 그는 법관이기를 포기하고 정치검찰의 하수인 노릇을 자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요약해보자. 이재명 대표 구속여부 재판에서 판사는 다음과 같은 사실과 원칙에 충실해야한다.
첫째, 불구속재판이 원칙이다. 둘째, 유무죄 주장이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셋째, 검찰은 지난 1년 넘게 막대한 수사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서 이미 모든 유죄증거를 확보했다고 주장한다. 넷째, 훗날 본안재판에서 무죄로 판명되더라도 이번에 구속결정을 할 경우 이 대표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예상된다. 다섯째, 검찰은 지난1년 넘게 먼지털이 수사와 피의사실 공표를 통해 수사권남용과 여론몰이를 일삼았다. 유창훈 판사의 현명한 판단을 촉구한다.
출처 : 이재명 대표 구속 '절대 불가' 이유, 차고 넘친다 < 민들레 광장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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