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5. 9. 14. 일요일.
아내는 '성당 다녀올 게요'라고 말한 뒤 아파트 현관문을 밀고 바깥으로 나갔다.
나는 아무런 믿음, 신앙, 종교도 없기에 '집 지키미'가 되어서 아파트 내 방에서 머문다.
2.
나는 충남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保寧郡 熊川面 九龍里 花望)에서 1949년 1월 21일 쌍둥이로 태어났다.
(1995년 보령군과 대천시가 통합하여 보령시가 되었음.)
구룡리 화망마을은 동서남북 야트막한 야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산골이며, 지대가 다소 높운 곳에 위치한다. 화망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 신작로(新作路)는 1928년 일제식민시대에 냈다고 하며, 지금은 지방도로 606으로 불리운다.
마을 앞 도로가 오르락 내리락하는 산길이기에 인근 마을사람들은 신작로를 따라서 웅천면 대창리에 있는 기차 역전, 면사무소와 5일 장터에 오고 갔다. 멀리는 관당리 무창포 갯바다, 독산리 갯바다, 죽청리, 더 멀리는 남포면 용두리 갯사람들이 산길로 낸 신작로를 따라 걸어서 다녔다. 가깝게는 십리, 이십리, 더 멀게는 수십리나 되는 길을 조금이라도 덜 걸으려면 야트막한 산길을 에둘러서 오르락 내리락해야 했다.
'꽃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닌 '곶뿌래'의 한자 지명 화망(花望)은 우리말로는 '고뿌래, 곱뿌래' 등으로도 알려졌다. 화망마을의 동쪽 앞산 '화락산(花落山)의 꽃을 바라본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1751년 영조 27년에 지은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는 한국 풍수지리학의 원전이다. 택리지(擇里志) 복거총론(卜居總論) 산수(山水) 계거(溪居)에 이런 기록이 있다.
'이밖에도 충청도 보령(保寧)의 청라동(菁蘿洞), 홍주(洪州)의 광천(廣川), 해미(海美)의 무릉동(武陵洞), 남포(藍捕)의 화계(花溪)에는 모두 여러 대를 이어 사는 부유한 집들이 많다. 또 여러 읍과 이웃하였고, 뱃길이 편리하여 한양과 가까운 까닭에 한양 사대부 집은 모두 이곳을 통하여 재화를 운반하는 이점이 있다. 비록 깊은 산과 큰 골짜기는 없으나 바다 모퉁이에 궁벽한 지역이므로 난리가 당초에 들지 않아 복지(福地)라 일컫는다.'
택리지에 나오는 남포 화계(藍捕 花溪)는 보령군 웅천면 구룡리 화망(保寧郡 熊川面 九龍里 花望)이며, 화계(花溪)는 곧 화망이다.
내가 기억하는 1950년대 ~ 1970년대 초 상황이다. 웅천면 새장터인 대창리로 가려면 서부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구룡리, 죽청리, 관당리, 남포면 용두리(용머리) 등 지역으로 걸어 나와서 대천리(구장터)를 지나서 대창리로 들어가야 했다. 고부랑거리는 길목, 지방도로 갈래길 곳곳마다 작은 선술집, 주막집이 으레껏 있었다.
그 당시에는 자동차(트럭)은 별로 없었고, 시내버스도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주민들은 걸어서 다녔으며, 짐이 많으면 지게로 져서 날랐으며, 더 많으면 소가 이끄는 구루마(달구지)에 짐을 실어서 운반하던 답답한 시절이었다. 특히나 먼길을 나서는 남포면 용두리(용머리) 사람들은 새로 낸 신작로(新作路)보다는 걷는 길이가 짧은 화망마을 뒷산 신안재(新安재)을 넘나드는 산길을 택해서 걸어다니기도 했다
새장터인 대창리 웅천역, 면사무소 등으로 오가는 사람들(장꾼들)은 곳곳에 있는 마을 어귀의 주막집에서 쉬면서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쌀보리밥으로 주린 배를 채우곤 했다. 또한 동네 청장년들은 밤중에 주막집에 모여 호롱불 등잔 아래에서 화투 등을 치면서 긴긴 밤을 보냈다.
선술집 주막집 주변에는 서낭당(城隍堂)이 있었다. 서낭당에는 성황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당집(堂집)이 있어서 무당/무녀가 세운 깃대에는 울그락 불그락거리는 깃발이 바람에 펄럭거렸다. 당산나무 아래에 제물(떡 과일 엿 막걸리 등)을 조금 차려놓고는 두 손바닥을 비비며, 고개 숙여 굽신거리며, 고수레*를 하며 고사(告祀) 지내는 사람도 이따금 있었다.
구룡리 화망마을 1반과 죽청리의 경계선이 맞닿은 서낭당 당산터. 당산나무(느티나무) 아래에 차려놓은 고사(告祀) 제물을 이따끔 보았다. 당산(堂山)은 화망마을 경주최씨네 선산(先山, 산지기네 집터, 밭 등이 있었음)이 시작되는 화망 1반 잿배기 바로 아래 신작로(新作路) 곁에 있었다. 지방도로 606 확장공사로 서낭댕이 일대가 많이 철거되고 지형변질되었으나 서낭당 흔적이 2025년 지금도 조금이나마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서낭댕이 선술집(주막집)은 수십 년전에 없어졌지만 당산(堂山)만큼은 잘 보존되어 후대에도 오래토록 전래되었으면 싶다.
성황당(城隍堂) : 성황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집. '서낭당, 서낭댕이' 등으로도 말함
- 서낭댕이 고개, 무녀(巫女), 무남/박수(남자 무당), 대신(大神), 무자(巫子), 사무(師巫), 여무(女巫 ), 암무당, 당산나무, 용궁, 성황당(城隍堂), 선인왕검당(先人王儉堂), 서낭신, 부군당( 府君堂), 서낭당 마고할매, 산당/산신당(山神堂) 등의 무속 용어가 있음
당산(堂山) : 마을이나 토지의 수호신이 있다고 여겨지는 마을 근처의 산이나 언덕
당집(堂집) : 신을 모셔 놓고 받들어 위하는 집
고수레 : 들이나 산에서 음식을 먹을 때나 무당이 굿을 할 때 귀신에게 먼저 바친다는 뜻으로 음식을 조금 떼어 던지는 일
선술집 : 술청 앞에 서서 간단히 술을 마시게 되어 있는 술집
주막집酒幕 : 시골 길가에서 밥과 술 따위를 팔고 나그네에게 잠자리도 제공하는 집
목롯집(木壚-) : 널빤지로 좁고 길게 만든 상을 차려놓고 술을 파는 집
목로주점(木壚酒店) : 널빤지로 좁고 길게 만든 상을 차려놓고 술을 파는 집
2025. 9. 14. 일요일. 글 씀.
나중에 보탠다.
쉬자.
돌탑(돌무더기)과 장승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용서해 주실 것이다.
사진에 마우스를 대고 누르면 사진이 크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