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에 고향을 떠나 나의 서식지가 된 인천 십정동은 당시 완전 달동네였다.
부평역에서 동암역 사이를 지름길인 산길로 걸어다니기도 했는데 그 길목에 고아원 하나가 있었다. 장애인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이 그들이 불쌍하다기보다 내가 더 불쌍하다는 거였다.
이유는 돈이 없어 학교를 못 가는 나에 비해 그들은 나라에서 고등학교 마칠 때까지 보살펴준다는 것 때문이었다.
핏덩이 나 때문에 재혼도 못하고 홀로 늙은 어머니한테는 너무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 내 마음은 그랬다.
차라리 나를 버려 고아원에 맡겨졌다면 너희들처럼 고등학교까지는 다닐 수 있었을 텐데,,
개차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자 외삼촌은 늘 성화였다고 한다.
새끼고 뭐고 간에 창창한 젊은 인생 생각해서 하루라도 빨리 재혼하라는 거였다. 실제 중매도 들어왔다는데 어머니가 거절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다른 새에게 대신 기르게 한다는 탁란에 대해 알고부터 이 현상을 오랜 기간 가슴에 담고 살았다.
뻐꾸기는 자기가 알을 품지 않고 남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그 새로 하여금 새끼를 키우게 하는 대표적인 새다.
이것을 알을 맡긴다는 뜻으로 탁란이라 한다. 자기 새끼를 남에게 키우게 하는 이 해괴한 방식인 탁란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작가들도 문학으로 옮겼다.
나의 성장 배경과 합쳐져 내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뻐꾸기 알을 대신 품어 주는 새를 숙주새라고 하는데 뻐꾸기는 아무 둥지에나 알을 낳지 않고 자기 알을 품어줄 만한 상대를 찾는다.
뻐꾸기의 숙주새는 딱새, 개개비와 함께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많다. 뻐꾸기는 보통 뱁새라고 불리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탁란이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어서 눈치를 챈 새가 뻐꾸기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조류 연구가에 따르면 제비가 사람과 가까운 인가 주변에 둥지를 트는 이유도 뻐꾸기의 탁란을 막기 위해서라고 한다.
뱁새가 뻐꾸기 알을 품어 부화한 뻐꾸기 새끼 또한 살아남도록 진화가 되었다.
먼저 부화한 새끼는 남은 뱁새 알을 모조리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리고 어미의 돌봄을 독점하는데 생존을 위한 이 본능적인 행위 또한 놀랍지 않은가.
숙주새는 자기 자식을 잃음과 동시에 천적의 새끼를 정성껏 기르는 이중의 타격을 받는 셈이다.
그럼에도 뱁새는 뻐꾸기 새끼를 자식으로 알고 정성껏 먹이를 구해다 먹인다. 새끼가 성장할수록 어미와 자식의 덩치는 현격한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뱁새가 자기들 크기에 맞게 지은 둥지는 금방 좁아져서 뻐꾸기 새끼는 둥지 주변에서 생활한다.
이때부터 뱁새는 더욱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가 자식의 왕성한 식욕을 충족시킨다. 덕분에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몇 배 크기로 폭풍 성장한다.
남의 새끼를 키웠는데도 자식이 독립할 때가 되었음을 뱁새는 안다.
"아! 이제는 내 새끼가 훨훨 날 때가 되었구나. 위험하니 멀리 가지 말라고 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것이 마지막 먹이 같구나.
그래, 너를 키우는 동안 행복했단다. 잘 가라 내 새끼,, "
뻐꾸기는 비교적 친숙한 새여서 나도 어릴 때부터 그 울음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지금은 잘 볼 수 없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뻐꾸기 시계도 하나씩은 안방이나 거실 벽에 걸려 있었다.
탁란에 대한 연구는 그동안 수없이 이루어졌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뻐꾸기가 인간에게 말해주지를 않으니 왜 탁란을 하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그저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추정할 뿐이다.
자연은 인간이 개입하지만 않으면 수만 년을 유지해온 생태계를 알아서 잘 지탱한다.
뻐꾸기도 뱁새도 그렇게 자연에 순응하면서 나름 종족을 보존해왔다. 얌체 같은 뻐꾸기도 미련한 뱁새도 그저 인간의 시각에서 본 것뿐이다.
자연은 이런 것도 자연스럽게 받아 들인다. 그래야 건강하다.
첫댓글 뻐꾸기 새끼가 뱁새알을 밀어내는 천륜을 배반하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리며
문학의 냄새가 나는 탁란 이야기를
단숨에 잼나게 읽었습니다!
인간 사회에서는
그러한 얌체족은 멸시를 받는 반면,
자연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니
자연에서 삶을 배웁니다~ㅎ
누구에게 배우지 않고도 알에서 나오자마자
주변을 말끔히 정리하고 어미의 돌봄을 독차지하는 새끼의 본능은 얄밉기에 앞서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인생도 그렇지만 자연의 이치는 우주 같습니다.
다음엔 더 신비로운 생태 이야기를 쓰게 될지도,,
넘 기대는 마시구요.ㅎ
몇배로 큰 새끼를 먹이는 모습을 보니 위협 적이네요!
속지 않는 방법을 터득 했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자기보다 훨씬 큰 새끼를 보고도 어미는 위협적이라 생각하지 않고
아주 사랑스런 눈빛으로 모이를 먹여주는 것이 신기합니다.
뱁새와 뻐꾸기의 머리 싸움에서 늘 뱁새가 속는 것은 아니랍니다.
아마도 반반이 아닐까 싶네요.ㅎ
낳은자식
키울능력 안되서 유기한 부모도 있는데
남의 둥지서도 낳게하고 키우는것처럼
우리도 낳아만주면
나라에서라도 키워주면 좋겠다 싶어요
출산율은 떨어지는데
유아유기사건보며 안타까움에 새 이야기에서
그 생각이 듭니다
정아님 댓글 보니 육아에 대한 생각이 저도 드네요.
예전엔 둘도 많다면서 그렇게 낳지 말라고 말리는데도 4명, 6명 부지런히 낳았는데
제발 한 명이라도 낳았으면 해도 도무지 먹히지가 않으니 세상이 참 많이 변했습니다.
저출산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이니 모쪼록 아이 키우는 환경이 좋아져서 아이 낳고 싶은 시대가 되기를 바래봅니다.ㅎ
티비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통하여 뻐꾸기의 탁란과 뱁새가 물어다 주는 먹이로 자라는 성장 과정을 흥미롭게 신기하게 바라본 저입니다.
참으로 신비한 자연의 섭리이지요.
작년엔 뻐꾸기 한 쌍이 날아가다가 내 사는 아파트 발코니 유리창에 부딪쳐 정신을 잃고 주차장 바닥에 떨어지더니
한참 뒤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날라 가더군요.
번식(알 날) 시기가 되면 암놈은 숫놈을 부르느라 연신 '뻐꾹, 뻐꾹' 하면서 울더군요.
저도 생태를 다룬 다큐 영화를 볼 때마다 자연의 위대한 섭리에 감탄하곤 하지요.
뻐꾸기가 우는 것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사랑이 고파서 운다는 말이 맞군요.^^
민순님이 평소 생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압니다.
늘 주변에 눈길을 주며 생태 환경을 위한 삶이 일상인 착한 민순님과
이런 글로 공감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ㅎ
자기 새끼는 자기가 키워야 하는 법칙을 어겼기 때문에 뻐꾸기 미워요~
그래요.
얌체 같은 뻐꾸기 정말 미워요.^^
뻐꾸기 탁란이 생태계의 한 일부이기도 하니 잠깐 미워했다가 마음 푸셨으면 합니다.ㅎ
어려웠던 환경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반듯한 현덕님의
지금의 모습은 훌륭한 어머님의 희생이
있었기때문일거에요
새들도 낳은정 기른정 신비한 동물들도 사람들과 다를바 없네요
뻐꾸기 시계는 저희집 에도 있었는데
그 시대 국룰 이였나봐요 ㅎ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제 어미가 특별히 다른 어머니보다 훌륭해서가 아니라
저의 정체성을 길러 주었고 어릴 적 어머니의 따뜻한 품과 때론 따끔하게 꾸중도 하셨던 그 깊은 사랑을 무얼로 표현하겠는지요.
가끔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저를 금방 후회하게 만드는 것도 어머니의 사랑 때문입니다.
리즈향 님의 뻐꾸기 시계 추억에 저도 미소 짓습니다.ㅎ
"차라리 날 버리고
고아원에 맡겨 더 라면..."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어머니를 원망하는
말도 안 되는
그때 그 시절의
아픔은
님에게만 있겠어요
지난날의 참기 힘든 질곡의 삶은
님만 그러하겠냐고요
아
기분 전환하여
소주 잔 기울일 수 있는 날을
기대하면서
성모동산에
능소화가 활짝
피었네요
홑샘 선배님의 따끔한 충고가 진짜 따끔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맨날 그랬던 것은 아니고 가끔 그랬답니다.
술잔은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부딪히는 맛도 정을 쌓는 길이라고 보네요.
여름 가기 전에 능소화를 혼자만 보지 마시고 함께 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ㅎ
표정도 밝고 얘기도 재밌게 잘하고
글까지 잘쓰는 애처가 유현덕님!!!
가난했던 과거가 현재의 글감으로
효자노릇을 톡톡히 하는군요
유현덕님 이야기는
TV문학관을 보는듯한 삶의 이야기예요
맞아요.
지영님 말씀처럼 제가 조금이나마 문학적 감수성이 있다면 그건 순전히 어머니 때문입니다.
나무하러 가서 잠시 쉴 때 근처에 핀 진달래를 보더니 어머니가 그러더라구요.
우리가 봐주지 않았으면 저 꽃은 서운해 했을 거라고,,
이런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 그땐 저도 어머니의 감성을 몰랐답니다.ㅎ
어머님께서도 많이 마음 아프셨겠지요~~~
글을 몇번을 읽었습니다
많이 어려웠던 시절을 살아온 우리들 에겐 비슷한 일들을 겪은 분들이 많을겁니다
용기를 내셔서 아픈 기억을 보여 주셔서 고맙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네요 ~~
예전에는 가난했다는 걸 가능한 숨기고 싶었는데
나이 들고 그 시절을 돌아보니 저를 버티게 한 힘이 가난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때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교차하기도 하네요.
공감해주신 고들빼기 님 고맙습니다.ㅎ
네 오늘도 한수 배웁니다.
그래요. 서로 배움을 주고 받으면 좋은 일이지요.ㅎ
자식을 남의손에 키우지 않으시려는 어머니 마음 헤아려 봅니다
이세상 사연없는 누가 있을까요
어쩌면 어머니는 제가 없었다면 재혼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재혼하라는 외삼촌의 성화에도 제가 눈에 밟혀 차마 어쩔 수가 없었다네요.
제가 인생에 운명이 있다는 걸 믿는 이유이기도 합니다.ㅎ
생생한 사진과 함께 ~
덩치 큰 뻐꾸기 아기
몸집 작은 뱁새 어미.
너무도 ~ 우끼는 얘기입니다
받아먹는 새끼나
어미 모습이 참.
세상에는 ~ 뻐꾸기만한 부모라도. 되었음 하는
뻐꾸기만도 ~~ 못한 사람들이
마음을. 아프게 하네요
저도 예전에 탁란에 대한 글과 다큐를 보고 무지 놀랐답니다.
지금이야 생태계의 일부려니 여기지만 그때는 뻐꾸기가 무척 미웠더랬지요.^^
그럼에도 탁란에서 인생을 배우고 돌아보기도 했네요.
서초님께서 공감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ㅎ
글과는 별개로 언젠가 영국에 계셨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
며칠 전에 찍은 런던아이 사진 한장 올립니다
앗! 헤라님 반갑습니다.
제가 영국에 15년 넘게 살면서 님이 올리신 이 런던 아이를 몇 번 타 본 사람이네요.
뻐꾸기 이야기에서 영국으로 건너 뛰는 게 생뚱맞긴 하지만
그래도 늘 그리운 영국을 소환해 주신 헤라님 감사합니다.ㅎ
글로 알었지만 사진으로 그 양육의 현장을 직접보니 너무 어이없어 집니다 작은 어미가 덩치큰 그것도 남의 새끼를 키우다니 자연의 생존 방법이겠지요 사람 세계도 이런 일 종종있죠 요즘 친자검사 흔하다 보니 별별일이 다 ㅎㅎ
그러니 자식은 어미가 키우는게 맞습니다 아비에게 맡기면 서로가 힘들지요 대개는
예전 고아원은 아이들 초등학교만 졸업시켰어요 60년대 쯤엔 점차 통일벼 밥이나마 굶지 않고 먹기 시작할 때 부터 공부를 성적이 좋은 아이들 골라서 상급학교로 전학시켰지요 현덕님의 글은 늘 아픔이 배여있어요 그것은 곧 우리가 지나온 자취이기 때문이지요 힘들었기에 이쁘게 기억하긴 좀 그렇지요 오늘도 좋은 글 잘읽었습니다.
운선님 다녀가셨군요.
토요일은 자주 산에 가는 날이라서 하산 후 낮술까지 마시고 지금 들어왔습니다.^^
운선님의 정감있는 댓글이 제가 글을 쓰고 싶게 만들기도 하네요.
자식은 어미가 키우는 게 맞다는 말씀 깊이 공갑합니다.
제 어미가 재혼이라도 해서 계부 밑에서 자랐다면 지금의 저는 다른 사람일 수도 있겠지요.
늘 건강하고 평화로운 날들 되시길 바랍니다.ㅎ
유현덕 님은 인간 승리의 주인공 이십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란 사람들 중에는 유현덕님 처럼 반듯한 분들이 계신가 하면,
어떤 일이든지 타인의 탓이다 하며 구부러진 사고를 지니고 있는 사람 들도 있어 곁에서 보기에 많이 안타깝더라구요. ^^~
수피님의 응원에 글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 승리까지는 아니지만 제 어머니가 저를 반듯하게 키워주셨기에 늘 감사한 마음이랍니다.
순수하고 착한 수피님처럼 저도 착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ㅎ
손자가 학교도 쉬고 뉴욕을 10올동안 여행하고왔다
10살짜리 손자가
80가까운 할배에게
쵸코랫을 건낸다
쵸교랫은 내 생명,
뱁새는 손자
할배는 뻐꾸기
할배를 생각하는 손자의 마음이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청솔님은 세상에 나와 이렇게 착한 유전자를 남겼으니 제대로 인생을 사신 셈입니다.
모쪼록 귀여운 손자와 건강한 날들 오래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