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로 박지성(27·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나서기를 잔뜩 기대했건만 허탈하더군요.
그는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에 깜짝 출전시킨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전술적 결단 때문에 벤치에도 앉지 못했습니다. 새벽을 지새며 박지성의 맹활약을 기다렸던 분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충격을 삭여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가장 안타까웠던 이는 박지성 본인이었겠죠.
@IS포토 |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번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내 축구인생 최대의 경기다"는 인터뷰를 살펴보면 박지성이 얼마나 기대하고 있었는 지 알 수 있습니다. 박지성은 경기 당일까지 진짜 자신의 결장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장 소식은 경기 전 코칭스태프에게 들었고, 퍼거슨 감독은 경기가 끝난 후에야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답니다.
이제 모두 지난 일입니다. 박지성은 실망감과 아쉬움을 가슴에 묻고 더 좋은 기회를 위해 다시 뛸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 여름은 그에게 어느 때보다도 소중한 시간일 겁니다. 첼시와의 결승전에서 배제됐던 상황을 되돌아보고 그의 미래를 생각해봤습니다.
▲9년 전과 같은 변칙 기용…희생할 그 누군가가 박지성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의 배제는 어느 정도 예견돼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5일 오후였죠. 맨체스터 캐링턴 연습구장에서 러시아로 떠나기 전 마지막 기자회견 때 퍼거슨 감독은 이례적으로 박지성의 출전을 공언했습니다.
박지성의 결승전 출전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물론 (출전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부분의 경기를 뛰었고 그는 정말 환상적인 선수다. 헌신적이고 훌륭한 축구선수이며 경기장 위에서 매우 지능적이다. 그를 존중하고 많이 기용하는 이유다"고 했습니다. 조금만 깊이 생각했다면 그 때 알아차릴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감독을 막론하고 경기 일주일 전에 선수들의 출전을 자신하는 지도자는 없기 때문입니다.
설령 박지성이 아닌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였다고 해도 "갑작스러운 부상이 있을 수도 있고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때 컨디션을 보고 결정하겠다"는 대답이 일반적이죠. 솔직히 영국, 한국 기자들 모두 퍼거슨 감독의 한 마디에 속고 말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퍼거슨 감독이 가장 속기를 바랐던 사람은 첼시의 아브람 그랜트 감독이었다는 것입니다.
위건 어슬레틱과의 리그 최종전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후부터 퍼거슨 감독은 고심했을 겁니다. 평상시와는 다른, 첼시가 예상하지 못하는, 상대의 허를 찌를 수 있는 깜짝 놀랄만한 카드는 무엇인가? 그는 9년 전 누 캄프에서 열린 바이에른 뮌헨(독일)과의 결승전 때도 그랬습니다.
로이 킨과 폴 스콜스가 경고 누적으로 결장해야했기 때문에 변화는 예상됐지만 그가 내놓은 포메이션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죠. 라이언 긱스를 오른쪽에, 데이비드 베컴을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포진시킨 것입니다. 왼쪽은 브롬퀴스트가 맡았습니다. 퍼거슨의 자서전에 나오는 대목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베컴과 긱스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할 때 두 선수의 장단점이 너무 달라 혼란스러웠다. 미드필드에서 수준높은 패스워크를 중시하는 축구를 지향하는 터라 마음이 흔들렸다. 라이언을 오른쪽에서 뛰게 할 때 그의 돌파력은 바이에른의 왼쪽 수비수인 미카엘 타르나트를 괴롭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대팀은 그 포지션에 베컴이 뛸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에 수비전술상 혼란을 느낄 것으로 예상했다."
퍼거슨 감독은 9년 전과 마찬가지로 측면에 변화를 줬습니다. 하그리브스였죠. 수비형 미드필더이면서 올시즌 중반 이후 개리 네빌의 공백을 대신해서 오른쪽 풀백으로 뛰었던 하그리브스지만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로는 뛰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컨디션이 좋았다고 하니 퍼거슨 감독은 하그리브스가 무척이나 신선한 비장의 무기로 생각했을 겁니다. 분명 첼시는 박지성에 대해 대비했을 것이고, 지도자들은 자그마한 부분을 역이용할 때도 짜릿함을 느끼는가 봅니다.
▲박지성의 현실을 알려준 바로미터
그럼에도 아쉽습니다. 선발이 아니더라도 명단 자체에서 뺀 것은 야속한 일입니다. 분명 퍼거슨 감독도 고심 끝에 박지성을 명단에서 제외했을 겁니다. "선발을 정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앞으로 UEFA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때는 월드컵처럼 후보 선수 명단을 좀 더 늘려주길 바란다"는 그의 인터뷰에서 고심의 흔적이 묻어납니다.
7명의 교체 멤버를 살펴보면 쿠시차크는 당연히 포함돼야할 서브 GK니까 설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오셔와 실베스트르는 퍼디낸드와 비디치를 뒷받침할 중앙 수비요원 뿐 아니라 측면 수비까지 맡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포함시켜야 합니다.
폴 스콜스가 90분을 모두 뛸 수 없다는 점에서 안데르손을 포함시키고, 이날 보비 찰튼의 출전 대기록을 넘어서 대망의 759경기째 출전을 앞둔 긱스는 당연히 배려했겠죠. 플레쳐는 측면 뿐 아니라 중앙에서도 활용이 가능한 카드라는 점에서 점수를 더 받았을 겁니다. 결국 나니와 박지성의 문제군요. 퍼거슨 감독은 결국 나니를 선택했습니다. 박지성의 현실입니다.
오른 무릎 수술 후 재활하다 12월 말에야 복귀한 그는 원점에 서있었습니다. 오히려 입단할 때보다 더 많은 경쟁자들과 어깨를 부딪혔습니다. 퍼거슨 감독으로서는 나니의 파괴력에 무게를 실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박지성의 첫 시즌을 기억하는 분들이라면 그 역시 파괴적인 무언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 차례 수술 후 돌아온 박지성은 완벽하게 그 때로 돌아가지는 못했습니다. 스스로도 "만족할만한 경기가 없었다"고 털어놓았죠.
@IS포토 |
▲박지성의 숙제
그렇다고 해서 박지성이 나니에게 밀렸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상황은 단지 결승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앞둔 감독의 선택이었을 뿐이죠. 박지성이 아시아인이라고해서 무시한 것 아니냐는 시각은 좀 무리가 있습니다. 내년 시즌이 되면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질 겁니다.
퍼거슨 감독은 긱스와 스콜스가 내년 시즌 많은 경기를 뛰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더군요. 언젠가 은퇴할 것이고 결국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박지성과 나니의 대결이 본격화되는 것입니다. 물론 퍼거슨 감독은 이들과 경쟁할 새로운 젊은피를 수혈할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지성에게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결승전 당일 55번째 생일을 맞았던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은 기다림과 여유를 강조했습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했던 차감독이지만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부상에다 슬럼프, 독일 언론의 맹공격 그리고 한 때는 감독의 신임을 잃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는 "새벽에 경기를 보고 있자니 20년전 UEFA컵 결승전에서 에스파뇰을 상대로 골을 넣고 우승한 후 생일 파티를 했던 기억이 문득 나더군요. 컵에다 샴페인을 채워 마시면서 축하했었는데. 혹시나 지성이가 좋은 생일 선물을 해줄까 기대했는데 아쉬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선수에게는 경기장에 못나가는 것만큼 허탈한 게 없습니다. 내 경험으로도 아쉬움을 딛고 더 싸우기 위해 노력하면 더 좋은 때가 있더군요. 지성이에게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한다고 꼭 전해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김호 대전시티즌 감독은 이제야말로 자기 색깔을 내야 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새로운 도전 과제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뚫고 들어가는 돌파력과 파워에다, 안정된 패스말고 보다 도전적이고 날카로운 패스를 올 여름동안 팀에서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적응못하고 떠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성이는 이미 적응을 끝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팀을 운영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또 한번 도약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 색깔을 내라는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때로는 카리스마도 필요합니다." 한국 전설들의 조언대로라면 박지성이 올 여름 할 일이 참 많아 보입니다.
▲가을에 강한 박지성이 보고싶다
지난 위건전을 앞두고 박지성을 만났을 때 '가을에 강한 사나이 박지성'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맨유에 입단한 후 8·9·10·11월에만 유독 골이 터지지 않는 까닭이 무엇이냐는 의미였습니다.
그는 "변명은 될 수 없지만∼"이라는 단서를 달더니 "개인적으로 돌이켜본다면 선수들과 프리시즌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상도 겹쳤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맨유에 막 이적해왔을 때는 적응이 필요했고, 독일월드컵을 마친 후 지친 몸으로 팀에 합류한 후 곧바로 부상과 수술로 이어졌습니다. 올시즌을 앞두고도 긴 재활을 해야했죠.
그가 팀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위해서는 선수들과 승부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합니다. 팀의 프리시즌과 함께 하며 자기 자리를 찾아갈 소중한 기회를 잃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난해 11월 올림픽 와일드카드가 논의될 때만해도 박지성은 재활하고 있었습니다.
'부상에서 돌아온다면 와일드카드로 뛴들 어떠랴'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다릅니다. 박지성을 더욱 크게 활용하려면 이번 여름 팀과 함께 놔두면 어떨까요. 베이징올림픽 와일드카드로 뛰면 프리시즌은 물론이고, 시즌 초반을 함께 하지 못합니다. 좀 더 대승적인 판단이 필요할 때입니다.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football&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1949405&date=20080524&page=1
당연히 가야지....
박지성이 다음 시즌 개막전에서부터 활약을 보고싶어요...절대 나니에게 밀리지 않게.
울나라 축협은 너무 박지성에게 희생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