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유형도 다양한 ‘전근대적 만행’…당신은 어떤 상사입니까
ㆍ검사·경찰·운전기사·경비원·승무원…피해 사례 끊이지 않는 한국 사회
장석호씨(41·가명)는 국내 대기업인 ㄱ중공업 영업부서 차장이다. 그의 조직에선 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구둣발로 정강이뼈를 걷어차는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술자리에서 뒤통수를 가격하거나 발길질을 하는 것도 예사다. 심지어 깨진 맥주병으로 위협하기도 한다. 2000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장씨도 3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대리, 과장으로부터 그 같은 일을 무수히 당했다. 차장이 된 후에도 팀장이나 임원으로부터 수모를 당했다. 만족할 만큼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네 엄마가 너 같은 놈을 낳고 미역국을 드셨냐” 등 부모까지 들먹이며 모욕을 줬다. 장씨는 “1년쯤 지나자 나조차도 폭언과 폭행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라지더라”고 말했다. 늘 겪는 일이다보니 둔감해졌다는 것이다. 상사들 역시 “나도 윗사람들로부터 똑같이 당했다. 그렇게 힘들게 성장해야 성공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부하직원의 성과를 가로채는 일도 다반사다. “2년간 공들인 끝에 11억원짜리 수주프로젝트를 따내 결재를 올렸는데 차장이 결재란에 내 이름을 지우고 자기 이름을 넣어 다시 만들어 오라고 하는 거예요. 성과연봉제인데 액수가 워낙 커 거절했죠. 이후부터 교묘한 괴롭힘이 시작됐어요.” 장씨가 과장 때 겪은 일이다. 차장에게 성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버티다 미운털이 박힌 것이다. 차장의 ‘고문’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됐다. 하루에 끝낼 수 없는 일을 퇴근시간 무렵에 던져주곤 다음날 아침까지 자신의 책상에 올려놓으라거나 접근이 불가능한 고객에게 계약을 따오라는 식이었다. 장씨는 “모든 괴롭힘은 차장과 한통속인 팀장의 묵인하에 이뤄졌다. 내가 차장으로, 이들이 팀장과 상무로 각각 승진한 후에도 만행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5월 발생한 김모 검사(33)의 자살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서울남부지검 초임검사인 김씨가 평소에 상관인 부장검사로부터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여론이 들끓었고 대검찰청은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이 사건은 검찰의 전근대적 상명하복 조직문화의 폐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일이 경찰 내부에서도 발생했다. 지난 5월 경기 광주경찰서 소속 김모 경사(42)는 “전 직속상관으로부터 육체적·정신적 학대를 받아 자살을 결심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 15층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상사의 갑질’은 위계가 뚜렷한 검경 조직만의 ‘특별한’ 얘기가 아니다. 최근 몇년 새 세상에 드러난 ‘상사의 만행’만 해도 부지기수다.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 현대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은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인 폭언과 폭행을 한 것이 알려지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MPK그룹 정우현 회장은 지난 4월 경비원을 폭행했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항소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지난해에는 제자를 2년간 폭행하고 인분을 먹인 모 대학 장모 교수 사건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일반 기업에서도 ‘문제적 상사’ 때문에 괴로워하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 직장인 커뮤니티인 네이버 ‘직장인탐구생활’에 들어가면, 직장인들의 상사에 대한 불평·불만이 실시간으로 올라온다. 홍석환 KT&G 인재개발원장은 “어느 조직에서나 젊은이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가장 큰 이유는 상사와의 관계”라고 말했다. 황당한 지시, 반말 등 무례한 행동, 앞뒤 말이 다르거나 변덕스러운 의사결정, 작은 잘못에도 고성을 지르는 등 과한 꾸짖음, 윗사람에겐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겐 강요하는 행태 등에 실망해 이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장이든, 팀장이든, CEO든 리더에겐 다양한 역할이 주어진다. 의사결정을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한다. 승진이나 보직 변경 등 조직원의 욕구도 충족시켜 줘야 한다. 이 같은 다면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스킬도 갖춰야 한다. 리더십 전문가인 백기복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이런 소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사람이 리더 역할을 수행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김 검사 자살도 부장검사가 스킬 부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외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상사의 갑질 원인은 무엇일까. ‘진성 리더십’의 권위자인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대 교수는 “자존감이 낮거나 자신감이 없거나 자기 정체성이 불명확한 사람일수록 부하를 함부로 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갑질 상사는 부하를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자기 성공의 도구로만 취급한다. 부하가 이를 거부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면 갑질이 시작되는데 문제는 갑질의 전염성”이라고 덧붙였다. 갑질을 당한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다시 갑질을 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윤 교수는 “특히 요즘처럼 L자형 불황이 지속되는 시기엔 갑질 상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어 악순환이 가속화된다”고 말했다.
갑질 상사의 유형도 다양하다. 백기복 교수는 ‘선제타격형’ ‘전광석화형’ ‘견물생심형’ 등으로 구분했다.
‘선제타격(先制打擊)형’은 우선 때려놓고 보는 상사다. 수년 전 일이지만 대기업 ㄴ사 부사장은 업무차 강릉에 가는 길에 설악산에 들르기로 했다. 3시간이면 된다고 해서 올라갔는데 실제론 5시간이 소요됐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부사장은 담당 과장의 턱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과장은 그 자리에서 졸도했다. 그해 말, 자신에게 맞은 과장이 부장 승진 대상자에 빠져 있자 서류를 다시 만들라고 해 승진시켰다. ㄴ사 직원들 사이에선 한동안 “승진하려면 한대 맞아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전광석화(前狂石化)형’은 광기를 부려 부하직원을 돌처럼 굳게 만드는 상사다. ㄷ사 사장이 그랬다. 다혈질인 그는 어느 날 영업팀장이 형편없는 영업실적을 보고하면서 대책도 내놓지 못하자 꾹꾹 눌렀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결재서류를 내던지고 고성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넋이 나간 영업팀장은 비지땀을 흘리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더니 갑자기 사장실 책꽂이에서 책들을 뺐다 꽂았다 했다. 더 화가 난 사장은 “너 뭐하는 거야”라고 고함치며 물건을 내동댕이쳤다. 영업팀장이 이번엔 손수건을 꺼내 전화기를 박박 닦았다. 순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사장은 비서를 불러 영업팀장을 소파에 앉히고 안정을 취하게 했다. 30분이 지나서야 정신이 돌아온 영업팀장은 자신이 어떤 기행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정보통신기업 ㄹ사의 영업상무는 ‘견물생심(見物生心)형’에 속한다. 부하직원만 보면 화를 내고 욕을 하는 유형. 그가 주재하는 회의는 입에 담기 힘든 욕설로 시작해 욕설로 끝났다. 직원들이 불만을 제기했지만 워낙 실적이 뛰어난 터라 사장도 어쩌지 못했다. 직원들은 연명해 그룹 회장에게 탄원했다. 상무 스스로도 변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전문가의 도움으로 부하직원들에게 “그동안 미안했다. 나도 노력하는데 잘 안된다. 도와달라. 내가 또 화내고 욕하면 회의실을 나가도 좋다”는 e메일을 보냈다. 이후 몇 차례 회의에서 부하직원들이 진짜로 자리를 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야 그의 나쁜 습성은 사라졌다.
리더십 전문가들은 상사들이 가장 유념해야 할 사항으로 ‘성질대로 하지 말라’를 꼽는다. 외국계 기업 ㅁ사의 한 간부는 ‘그놈의 성질 때문에’ 회사를 떠나야 했다. 명문학교 출신으로 엘리트 코스만 밟은 그는 서열상 부하직원인 동기가 근무시간에 컴퓨터 게임을 했다며 자기 방으로 불러 무릎을 꿇게 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노조가 대자보를 써붙이고 정식으로 문제를 삼았다. 그는 1년의 휴직기간을 거친 뒤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부하직원과 상사의 관계는 조어로도 나타난다. 대표적인 게 10여년 전 등장한 ‘멍부·멍게·똑부·똑게’로 구분한 상사의 유형이다.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 멍청하고 게으른 상사, 똑똑하고 부지런한 상사, 똑똑하고 게으른 상사를 일컫는데 여전히 직장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 중 ‘똑게’를 최고 좋은 상사로, ‘멍부’를 최악의 상사로 꼽는다. ‘똑게’는 일의 주요 포인트만 짚어 지시하기 때문에 직원들이 불필요한 업무를 안 해도 된다. 업무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자율성을 보장해줘 직원들은 업무역량 향상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멍부’는 업무의 경중과 완급을 모르고 두서없이 일을 시키기 때문에 죽어라 고생해도 성과가 따르지 않는다. 이런 상사는 대체로 고집이 세서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저돌적으로 일하는 탓에 아랫사람만 힘들다. 몇 해 전에는 ‘SSKK’라는 조어가 관료사회와 직장인 사이에서 유행한 적이 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까라면 까라는 대로’를 콩글리시 약어로 만든 것이다. 이후 ‘낄끼빠빠’라는 말도 유행했다. ‘낄 데 끼고 빠질 때는 빠져라’의 줄임말이다. 가령 회식할 때 2, 3차까지 따라가 분위기 깨지 말고 1차가 끝나면 신용카드만 주고 눈치껏 떠나는 게 좋은 상사라는 뜻이다.
갑질 상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윤정구 교수는 “모든 인간관계의 황금룰은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대해주길 기대하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대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기복 교수는 “부하직원은 상사의 지시가 부당한 갑질로 판단되면 요령껏 거부할 수 있는 독립심이 있어야 하고, 이를 이유로 불이익이 온다면 직원들끼리 연대해 대응하라”고 조언했다.
■상사 때문에 괴롭다는 부하직원들의 푸념과 하소연 - 네이버 ‘직장인탐구생활’ 수다방
“노이로제가 생겼는지 이제 그분이 회사에 오기만 해도 몸이 굳어서 먹은 밥마저 토하고, 소화제 없인 힘드네요. ㅜㅜ”
“2시 약속인데 2시1분에 나타나면 태도 운운하며 개폭하고 1시50분에 나타나면 10분 남았는데 왜 난리냐고 또 개폭.”
“휴일이든 퇴근 후든 개인폰으로 업무 지시하는 상사가 밤 11시에 자느라 휴대폰 못 받았다고 경위서를 쓰라네요.”
“의견 내면 별로야~ 그거 빼~ 하더니 본인 보고자료 만들 때 떡하니 넣어서 자기가 한 것인 양 말하는 거 ○○ 없어요.”
“상사한테 깨진 걸 왜 내게 분풀이를 하는 건지…본인 체면을 더 중시하고 아랫 사람한테는 괜찮다는 마인드, 이거 어쩔 수 없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