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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카드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자 이번에는 백색 법의를 입은 상당히 젊은 사내가 앞으로 나선다.
마르카드와는 달리 준수한 외모에 마른 체형의 사내이다.
그러나 함성의 크기는 마르카드에 뒤떨어지지 않을 만큼 크다.
그는 환호하는 도전자들에게 예의를 갖추어 인사한다.
“저는 카이온 마법 기사단 ‘헤리븐 기사단’소속의 마법사, ‘리키 퓨’라고 합니다. 이번에 큰 뜻을 품은
여러분들의 실력을 직접 볼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백색 법의를 입은 사내의 이름은 퓨. 그는 투드의 큰형이다.
현재 그의 나이는 21세, 역대 카이온의 수많은 마법사 중에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헤리븐 기사단의 기사단장이 된 엘리트중의 엘리트이다.
“야, 투드! 너희 형이다.”
“...... 별로 안반가워.”
투드는 순백색 법의를 입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찬사 받는 자신의 형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는 자신의 형이 카이온 제 1의 엘리트라는 사실을 별로 기뻐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눈초리를 아는지 모르는지 퓨는 자신이 할 일만을 한다.
그는 마르카드처럼 우렁찬 소리를 낼 자신이 없기에 자신의 입 앞에 보이지 않은 소리 증폭기를 만들어낸다.
그 마법은 그의 목소리를 모두가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럼 이번 전체적인 시험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시험은 어디까지나 기사단 시험,
당연히 이전까지의 시험과 마찬가지로 총 3번의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각 시험은 합격제로 행해집니다.
즉, 제 1시험을 통과해야지만 제 2시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합격 통보는 각 시험이 끝난 후 3일 이내에 해드리며
통보를 받은 후 합격여부에 따라 처신을 하면 됩니다. 그럼 각 시험에 대한 설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퓨의 목소리는 따뜻한 볕에 내놓아 뽀송하게 마른 솜이불처럼 푸근하기만 하다.
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에 열화와 같은 환호도 약간 줄어든다.
투드만이 아니꼬운 표정을 지을 뿐이다.
“제 1시험은 이론, 필기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필기시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각 시험관분들께서 해주실 것이니
그때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 2시험은 실전 시험입니다. 이 시험에서는 간단한 대련을 하게 됩니다.
정해지는 상대와의 자유 대련으로 한명 한명의 실력을 평가하게 됩니다. 물론 승패와 상관없이 실력을 확인하게 되니
승패에 집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퓨가 설명하는 기사단 시험은 이제까지의 기사단 시험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험의 내용이 각 기사단 마다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전체적인 흐름은 모두 같다.
제 1시험 이론 뒤에 제 2시험 실전은 카이온 기사단 시험이 시작된 이래 단 한 번도 어겨지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제 3시험은 팀으로 ‘어떤 수행’을 하게 됩니다. 그 수행은 3시험에 남은 사람들만 하게 되며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 역시 1, 2시험을 통과한 사람에 한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궁전의 대 정원은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때까지의 제 3시험은 제 2시험의 연장이었다.
제 2시험이 개인전이라면 제 3시험은 팀전인 것이다.
팀으로 대련을 해왔던 제 3시험이 아무도 알지 못할 ‘어떤 수행’으로 바뀐 것이다.
술렁이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기사단 시험 기간은 이론시험 3일, 실전 대련 시험 10일, 그리고 제 3시험 1일로 총 20일 동안 시험을 치르게 됩니다.”
다시 한 번 술렁이기 시작한다.
시험이 변경된 것보다도 훨씬 충격(?)적인 일이 벌어진 것이다.
보통 카이온 기사단 시험의 기간은 석 달에서 넉 달 사이.
그런데 이번 시험은 고작 20일로 끝나는 것이다.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시험기간에 도전자들은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20일? 고작 20일이라고? 말도 안 돼... 이번에는 훨씬 많은 사람이 지원했어.”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갑작스러운 단축이 도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
실전 시험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기사단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실전으로는 어림도 없다.
전력을 다해야 하기에 그만큼의 시간도 필요한 것이다.
여태껏 제 2시험이 행해지기 전에 자신의 대전 상대를 알 수 있다.
상대의 특징, 전술 등을 미리 알아내는 것도 기사단 시험의 숨겨진 요소이다.
때문에 궁전 안에 머무는 동안, 정확히 말하면 제 2시험이 시작되기 전까지
자신의 상대를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퓨의 설명대로라면 이번부터는 제 1시험이 끝난 후 3일 뒤에 바로 제 2시험을 시작하게 된다.
3일 뒤에 합격 통보를 하고 바로 시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당연히 자신의 상대를 알 리 없다.
‘아싸!’
이러한 룰을 반가워하는 사람은 유일무이하게 세이지뿐이다.
적어도 석 달을 궁전에서 썩어야 한다는(?) 생각에 크나큰 절망감에 빠져 있었던
그녀는 주위의 시선은 무시하고 해맑게 웃기 시작한다.
‘뭔지는 몰라도 다행이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물론 시험이 끝나면 다시 무시무시하고 야비(?)한 스승의 집으로 가야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만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그녀는 처음부터 기사단 시험에 관심이 없었다.
“그럼 지금부터 기사단 시험 제 1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퓨는 그대로 뒤돌아 도전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웅성거림은 멈추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만 생기고 있다.
지금까지 기사단 시험이 시작되기 전에 항상 황제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황제도 나오지 않았다.
내심 황제의 얼굴을 보고 싶었던 사람들은 당혹스럽기만 하다.
“이봐... 그렇게 차갑게 말하면 내가 무안해지잖아.”
처음 도전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던 마르카드가 무안한 미소를 짓는다.
그의 목소리와 위용은 어느 때 보다도 더욱 빛났다.
그가 그런 화려한 기사단 시험 선포를 한 직후 찬물을 끼얹은 것이기에 그로서도 약간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하지만 퓨는 냉담하게 그를 쳐다본다.
“어디까지나 기사단 시험입니다. 화려하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에요.”
퓨는 그의 외모만큼이나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는 분명 예의 바른 청년이지만 그의 말투만은 한겨울에 부는 바람처럼 차갑기만 하다.
“하하하. 난 그런 너의 차가운 점이 마음에 들어.”
마르카드는 호탕하게 웃는다.
그의 웃음소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우렁차기만 하다.
“그만 가시죠. 기사단 시험을 하루빨리 시행해야 하니...”
퓨는 그가 웃든 말든 아무 상관도 하지 않고 자신의 갈 길을 가기 시작한다.
그의 뒤를 따라 나머지 시험관들도 일어선다.
그들은 모두 정원의 웅성거림을 뒤로한 체 그들이 있었던 탑에서 빠져나간다.
자리에는 마르카드와 크루만이 앉아있다.
“...... 그래. 어떻게 생각하나?”
“...... 좋은 의도는 아닌 듯합니다.”
크루와 마르카드는 예전부터 잘 알던 사이.
크루의 스승쯤 되는 사람이 바로 마르카드이다.
크루가 월광 기사단에 갓 입단했을 때의 기사단장이 바로 마르카드였다.
“자네가 말했던 ‘음모’... 아직은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나도 주의하도록 하겠네.”
“......”
크루가 궁전에 들어와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마르카드이다.
그는 기사들 중에서 정치적 힘이 가장 큰 사내이다.
그의 사람됨을 알고 있는 크루이기에 그가 자신의 말을 진실 되게 들어줄 것이라고 믿었다.
일단 그 믿음은 빗나가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말게. 감히 누가 그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아직 황제폐하께서 계신데...”
“......”
마르카드는 크루를 위로하려 애쓰지만 크루는 묵묵부답일 뿐이다.
뭔가 심오한 생각을 하는 중인 모양이다.
그가 지금 생각하는 제 1의 문제는 세이지에 관한 것이다.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아, 그리고 자네가 요전에 말했던 신전 말이네. 지금은 출입금지가 되었다네.
현재로는 황제폐하라 해도 그곳에는 들어가지 못하는 실정이라네.”
“...... 그건 무슨 이유입니까?”
크루는 특유의 무서운 눈초리로 마르카드를 쳐다본다.
그것이 물론 마르카드에 대한 분노는 전혀 아니다.
그것은 카이온의 실질적인 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가들에 대한 분노이다.
하직 직접적으로 그들과 대면하지는 않았지만 만나면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그건 시험과는 별 상관없으니 진정하도록 하게. 요즘 그 신전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하더군...
그곳에 들어가는 신관마다 목숨을 잃고 있지. 자네가 무슨 이유로 그런 것을 물어본지는 잘 모르겠지만...
포기하는 게 좋을 거야.”
일단 자신이 우려한 일과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서 다행이지만,
더욱 안 좋은 소식이 크루의 심장을 찔러온다.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프리온 신전으로 들어가는 신관마다 모두 비명횡사를 한 것이다.
그 이후로 프리온 신전은 한동안 폐쇄되어 있는 상태이다.
‘엘르오씨가 그런 걸 모를 리가 없다. 분명 무언가 아는 게 있으시겠지. 하지만...’
하늘이 무심하게도 크루에게 또다시 심각한 고민이 찾아온다.
자신이 어떻게든 제 2시험 세이지를 감독해야만 한다는 사명감과
그녀를 감독하게 되어 그녀를 합격시킬 것인지 떨어뜨릴 것인지를 결정해야하는 것이
그를 무섭게 짓누르고 있다.
이번 통합 기사단 시험에서 풍기는 의혹과 마르카드가 얘기한 프리온 신전의 일을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그녀를 기사단 시험에서 떨어뜨리고 싶은 것이 그의 심정이다.
그런 한편 엘르오가 그녀에게 준 과제가 무엇인지도 궁금하고 그 과제의 중요성 또한 어렴풋이 느끼기에
어떻게든 합격시켜야 한다는 생각 또한 들기 시작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의 심정을 잘 대변하듯 그는 지금 그답지 않게 온 몸에 힘이 들어가 있다.
기껏해야 20일. 오래 고민할 시간은 그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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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요즘 일이 있어서 소설 쓸 시간이 부족하군요.
요즘 몸도 별로 안 좋아서...
앞으로 드문드문 올릴지도 모르겠지만 매일 올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by. LuckySun
첫댓글 세이지도 크루도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부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노력하겠습니다.
작가님 감기라도 걸리신건가요?
감기기운도 조금 있나보네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