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6월 25일은 북쪽의 남침으로 민족상잔의 비극인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었지요.
오래전 티브이에서 이산가족을 찾는 방송이나 그 후 금강산으로 이북의 가족방문하는 방송을 볼 때면
저의 가족들은 이산가족들의 부모형제상봉에 함께 눈시울 붉히며 감격하기도 했었지만,
단 한 사람 저의 아버지는 국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하셔서 전사통지도 없이 돌아오시지 못한
큰아버지를 그리워하셨죠. 돌아온 친척의 말로는 병이 나서 오실 수가 없었다고 전해 주더랍니다.
자식들은 알리가 없었지만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할 때면 아버지도 꾸준히 당국에 상봉신청을
했었다고 합니다. 혹시나 살아계시면 형님을 만날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러나 감감무소식이었지요.
그러고 수년 후,
오래전 호주에 이민해서 살고 있는 고종사촌오빠가 골프친구 중에 북한과 교역하는 분이 계시다는 말을 듣고는 아버지께서 돈이 들더라도 알아봐 달라고 하셨고, 그분의 수고로
생존하셔서 개성에서 재혼도 하시고 자녀도 다섯이나 두셨다는 이야길 듣게 됩니다.
그러나 십여 년 전에 형님과 형수님은 돌아가셨고 다섯 자녀들만 개성에서 살고 있다고.
아버지께서는 오빠를 기어이 이북으로 보내셨습니다.
많은 돈(달러)과 필요한 온갖 생필품을 준비하고, 형님(장자)의 자녀들에게 줄 족보와
통일이 되면 찾아올 수 있도록 친척들의 주소와 전번까지 오빠에게 쥐어 보냈습니다.
그러나 가지고 간 많은 돈과 생필품들은 자녀들을 만나기 전에 이미 절반은
그들 감시자들에게 건네야 했더랍니다.
우여곡절 끝에 평양의 호텔에서 북한당국의 감시하에 자녀들을 만났으나,
그들은 김일성과 공산체제를 찬양하기에 바빴으나 한편 이해는 했답니다.
남은 돈과 생필품을 다섯 자녀에게 골고루 나누어 준 후 티브이를 사주겠다고 했더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티브이를 볼 수가 없다는 말을 하더랍니다.
한 만디로 남한출신 그것도 국군이었던 형님과 그 가족의 출신성분은 최하였던 거지요.
그나마 고향이 가까운 개성에 터를 잡으신 형님은 술을 드시면 많이 우셨다고 하더랍니다.
오빠는 족보와 남한친적들의 주소가 적힌 수첩은 주지 않았고 그냥 가지고 오셨지요.
이유는
형님의 자녀들이 생각보다 공산 사상이 깊어 보였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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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김남준)이 국군유해발굴단의 홍보대사로
위촉되는 행사를 하더군요.
그간 국가적 행사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이 불려 갔기에 또 무슨 일로
저 자리 있는지 팬으로서 마뜩잖은 눈으로 봤으나
곧 저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봄날) - RM작사
-중략-
-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조금만 기다리면
며칠 밤만 더 새우면
만나러 갈게 만나러 갈게
데리러 갈게 데리러 갈게
추운 겨울 끝을 지나
다시 봄날이 올 때까지
꽃 피울 때까지
그곳에 좀 더 머물러줘
머물러줘 -
국군유해발군단장의 연설 중
RM이 홍보대사를 맡아야 할 이유를
'봄날'의 가사가 잘 말해 준다면서
BTS의 노래 '봄날'의
마지막 몇 소절을 읽어주며 마치는데,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국군의 유해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의 그 심정을 이 가사만큼 정확하게 표현한 노래가 있을까 싶은 것이
절로 고개가 끄떡여졌지요.
유월은 '호국보은의 달'이라네요.
다시는 이 땅에서 전쟁이 없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평화롭게 통일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고향땅을 다시 밟아보지 못하고 술로 삭히시며 부모형제를 그리워하신
한 번도 뵌 적 없는 큰아버지 지만
지금은 하늘나라에서 두 형제분이 애틋한 상봉을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제주도에 있답니다.
지난밤부터 장마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며칠간 바꾼 폰 패턴이 기억이 나지 않아서 월요일엔 폰을 초기화 해야 하나 했는데
다행히 풀려서 폰으로 출석글을 작성하고 올 리려는데 지기님께서 이미 올리셨네요.
부족하고 존재감 전무한 제가 육 개월 동안 지기님의 엄명으로 출석부를 담당했으나
이젠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어 카페 출석도 그저 훌터보며 댓글조차 달 여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고 무더위에 모두가 건강 해치지 않고 행복한 카페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제주 애월의 석양
첫댓글 이 땅에 '전쟁'이라는 비극은 두 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봄날'이란 노래 가사를 보니
제 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소나무 뜨락
---------------------- 박 민 순
어제는 꿀벌과 나비처럼
꽃길만 거닐었는데
오늘은 눈물고개 넘는
살얼음길
원망하지 말자
세상살이 다 그런 것
눈보라 휘몰아치는
이 칼바람도 곧 지나가리니
그냥 꾹 참고 견디는 한세상
동지섣달 찬바람에도
꿋꿋하게 서 있는
소나무를 닮고 싶다
옛일들은 언제나 그리움을 남기는 법
손 마주 잡고
저 언덕 너머
봄을 향해 가자, 어서 뛰어 가보자.
울
아버지 형제도
이북에 게시는데
안타깝지요
가족의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
남북 전쟁으로 인해서
많은 아픔이 상존을 하고 있지요
많이 슬프네요
뜻깊은 글이네요
그래도 북한에 갈수있는것은 보통사람이 아닌데요,
적십자사 통하여?
돈이고 모두 절반이상은 감시원이 착복하고
부패가 극에 달한
사회가 북한사회,
나도 외삼촌이 전쟁후 올라가서
생사여부가 깜깜무소식,
외 숙모는 할수없이 재가하셨지요
너무도 비통한 민족비극이지요
집집마다 그런 상혼 하나씩은 다
가지고 삽니다 리진님 바쁘시지요 어머님케어 하시랴 본인 일 허랴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카페는 흔적 자주 뵙길 바랍니다 어느 땐가 시간적 여유 있으시면 다시 출석부 명단에 참여해주시길 앙망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울리진님 늘 바쁘게 살아 가시는 분들 중 한 분 이시로군요.
어제 6.25를 맞아 감회가 새로운 분들이 많으셨던 듯 합니다. ^^~
에고 아쉽네요
네~~~
남의 일 같지 않은 글..잘 읽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모두 이북 분들이시라..
제가 어릴 때는 이북 5도민 행사에 자주 따라 갔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그 모임도 규모 면에서 많이 축소되고 있죠.
모두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을 그리며 한잔 술에 푸념하시던 그 분들이..
이제 모두 세상을 떠나 갔어요.
민족의 가장 큰 상처인 한국동란..
그 상처가 아물려면 통일만이 답인 것 같네요.
"스프링 데이"는 원래 세월호에 희생된 분들을 기리며 만든 노래로 알고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국군 유해 발굴의 추모 글로도 어울립니다.
오랜 세월 흘러도피는 진하다는 걸
실감하네요
김정은이가 살아있는 한
통일은 힘들겁니다ㅠ
통일되면 핍박받고 속아살아온 북동포가
김정은이를 살려둘 리가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