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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받는 성도들 3:1~5
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2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3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4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5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는 사람 3:6~9
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9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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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해 육체로 마치려는 갈라디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성령을 주신 것은 그들이 율법을 행해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듯이,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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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받는 성도들 3:1~5
성도에게 인생길은 믿음의 경주입니다. 바울은 ‘어리석다’는 말을 두 번 반복하며 갈라디아 성도들을 책망합니다(1, 3절).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었건만, 그들이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되어 율법의 행위를 통한 의를 추구하려 했기 때문입니다.믿음의 여정은 율법을 지키는 행위나 육체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는 죽고 자신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밝히 알고도 율법에 의지하는 삶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믿음을 떠나 율법으로 돌아가는 것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어리석다고 책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령으로 시작했으나 육체로 마치지 않도록 내가 주의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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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는 사람 3:6~9
바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율법이 아닌 믿음의 삶을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셔서 그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또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창 12:1~3; 15:7). 믿음의 여정을 시작한 아브라함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의로움으로 여겨 주셨습니다(창 15:6).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복은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이방인에게도 흘러갑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모든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히 성취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은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다고 했나요?
믿음의 여정에서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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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물에 속지 마세요
퇴근해서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장모님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가족사진 무료 촬영 이벤트에 당첨되어 기뻐하시더라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장모님이 잘 알아보셨을 거라는 생각에 별걱정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고는 주말에 가족사진을 찍기로 약속했습니다. 약속한 날 사진관에 찾아가 기분 좋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사진관 직원이 몇 가지 종류의 액자를 보여 주었습니다. 무료 사진을 받기 위해 세트당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이 넘는 액자들을 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족들 표정을 보니 사진을 안 받고 그냥 가기엔 아쉬워하는 듯 보여서, 얼떨결에 액자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우리처럼 속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유대주의자들이 바로 이런 식으로 성도들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값없이 선물로 주신 구원의 은혜를 변질시켰습니다.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구원을, 비싼 대가를 치러야만 받는 것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믿음으로 받는 것이 구원인데 여러 가지 조건을 내세우며 성도들을 옭아맸습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지 못하게 한 그들은, 한마디로 사기꾼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인간적 노력이나 율법적 기준이 들어갈 틈은 없습니다.
복음에 거짓을 보태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신앙에 기쁨이 있기를 / 조성헌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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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갈라디아서 3장 3절
바울은 성령과 육체를 대조합니다.'성령으로'는 하나님이 은혜로 행하신 일을 강조하고, '육체로'는 사람의 행위와 노력을 강조합니다. 죄인이 하나님 자녀 되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살아가는 방식도 '성령으로'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시작된 신앙을 저버리고, 육체(자기 행위)를 의지하지 않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시작해서 성령으로 마치는, 하나님 은혜에 기반해 살아갑니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은혜로 매일의 삶을 산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제리 브리지스
오늘의 기도
주님! 믿음으로 구원받고 성령을 받았음에도, 여전히 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서려는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행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주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함을 명심하게 하소서. 하나님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하소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우리들에게 성령이 임하게 하여 주시고, 놀라운 은혜와 복을 더하여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르게 깨닫고, 복음의 참된 의미들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른 이들에게 바르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성령을 주시고, 우리 가운데 놀라운 기적을 행하여 주신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매순간 주님을 의지하면서 믿음의 삶을 살아가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해 주셨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이 되게 하자
갈라디아서 3:1~9 십자가 복음과 성령 체험
바울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오늘 본문에는 성령을 받는 것, 능력을 행하는 것,
또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모든 이방 민족이 아브라함과 같이 복 받는 것도 믿음이라 말씀하신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는니라.(갈2:1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2:20)
바울은 사람이 구원을 얻고 거듭나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눈 앞에 밝히 보이는데도 성도를 요란케하고(1:7),
다른 복음을 전하고(1:8~9), 거짓 형제에게(2:4), 성도를 종 삼으려는 자(2:4)
성도를 꾀는자(3:1)에 넘어감을 안타까워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1)
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몇가지 질문을 한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행위로냐? 율법으로냐?
대답은 갈2:16절에 있다.
두번째 성령을 받은 것은 행위로냐? 믿음으로냐? 묻는다(2)
세번째 성령의 능력 행함은 율법의 행위에서냐? 믿음에서냐?(5)라고 묻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 성령을 받는 것,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것
모두가 다 율법의 행위에 있지않고 믿음에 있다.
그럼 믿음은 무엇이냐?
믿음이란? 간절히 바라는 것들의 실체이며 아직은 보지 않았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다.(히11:1)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 대한 실예가 있다.
1.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정하셨다.(6)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겨 주셨다는 말씀이다.
2.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아브라함의 아들인줄 알찌어다(7) 하신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아들이 된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본토친척 아비집을 떠나라 했을 때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는자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이다.
이 순종 때문에 믿음의 조상이 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나도 말씀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3. 믿음으로 말미암는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다.(9)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같이 복을 받는 다는 축복의 말씀이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아멘.
짧은 본문가운데 믿음이라는 단어가 7번이나 반복되어 나온다.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
1. 성령을 받는 것 믿음으로 받는다.(2)
2.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 믿음으로 받는다.(5)
3.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6)
4. 이방인도 믿음으로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는다.(8)
믿음 참으로 수지 맞는 장사이다.
주여 나로 믿음의 사람 되게 하옵소서.
오직 믿음으로 살게 하옵소서.
아브라함은 그토록 그들이 따르는 모세보다 더 앞선 믿음의 조상입니다.
율법을 받은 모세와 같이 아브라함도 하나님께서 먼저 그를 찾아오셔서 부르셨습니다.
그들의 어떠한 행위도 아브라함과 모세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 위해 이뤄진 것이 없습니다.
오직 은혜로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광야에서 양을 치고 있는 모세 앞에 떨기나무에 붙은 불로 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모세 모두 그를 택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하셨고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 삼으셨습니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을 택하셨고,
그들의 어떠한 연약함도 압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놀라운 일에 쓰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게 하신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회들을 향해 수천 미터의 타우루스산맥을 넘어 한 명의 은혜받은 자,
바울이 은혜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구원도 믿음도, 성령의 역사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코 율법이 시작도, 관여할 수도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이 시대에까지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서만 우리 가운데 살아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한 행위나 율법적 기준과 상관이 없이
이미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승리하신 결과이며
지금도 그분 안에서 박동하는 심장과 같이 날마다 우리를 새롭게 해주고,
믿는 모든 자들에게 의의 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그 놀라운 초대를 기쁨과 감사로 받고,
의의 용사로 세상 가운데 그 복을 전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절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어리석음과 배반을 질책합니다. 바울이 말과 삶으로 십자가의 예수를 드러냈음에도 거짓 교사들에게 현혹되어 십자가의 의미를 놓치고 있기(2장 21절) 때문입니다. 신앙이 있어도 유혹은 다가옵니다. 방심은 금물입니다. 신앙의 닻을 늘 진리에 두지 않으면 언제든 거짓의 ‘꾐’에 빠져 표류할 수 있습니다.
2~5절 미혹을 받기 전에 갈라디아 성도들은 성령을 따라 신실하게 살았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받은 성령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믿음으로, 은혜로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와서 성령의 역사와 무관한 율법의 행위들을 의지하는 것은 성령이 주는 기쁨과 자유를 버리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진보가 아니라 퇴보입니다.
4절 갈라디아 성도들은 십자가의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삶이 그들이 받은 복음의 진실함을 증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의의 소망(5장 5절)을 좇아 달려가던 길을 멈추거나 돌아선다면, 지금까지 인내하며 달려온 모든 삶이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고난을 인내하는 삶 없이 그럴듯한 경건의 모양이나 내려는 손쉬운 영성의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6,7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예로 아브라함을 제시합니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과 그 약속을 바라고 믿었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할례를 받아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할례 받기 훨씬 이전의 일입니다(로마서 4장 9,10절). 그 신뢰의 믿음이 오늘 내게 있음을 보실 때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 하실 것입니다.
8,9절 아브라함의 복은 쟁취해서 얻거나 대가로 받는 삯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선물입니다. 하지만 그 믿음은 행위가 필요 없는 신념이 아니라 행위를 동반한 ‘신실함’입니다. 할례나 절기나 음식법과 같은 헛된 자랑거리에 기대어 거짓 안전감을 누리기보다는 약속을 향한 신실한 태도로 살아갈 때 약속된 복을 받습니다.
기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여 축복의 종착지가 아니라 전달자가 되게 하소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세상조차 알고 있는 명확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명확한 역사를 버리고 희미한 환상을 따라 갑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3:1)
이런 현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32:6) 이것은 시작은 잘 하였으나 끝이 좋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3:2~3)
그러면 비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눅14:28~30) 끝에 불의가 드러나는 자가 있습니다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네게서 불의가 드러났도다"(겔28:15) 끝에 어리석게 되는 자가 있습니다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렘17:11)
그러나 우리는 끝이 좋은 자가 되기 원합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붙잡은 것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 분명히 끝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히3:14) 우리가 처음 붙잡은 진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갈3:5~7)
우리가 시작할 때에 받은 것을 끝까지 지키면 반드시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게 될 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갈3:8~9) 우리가 시작할 때에 받은 것을 끝까지 붙들면 주께서도 끝까지 견고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전1:8)
그리하면 우리의 나중 영광이 더 큰 자가 될 줄 믿습니다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9)
본문은 두 번째 논증의 시작으로 첫 번째 논증이 바울 자신의 경험에 의한 논증인 데 비해 이번에는 복음을 전해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받은 증거를 바탕으로 한 논증이다.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와 이에 대응하는 믿음에 대한 논의를 성령 받음과 연결하여 말씀하고 있다.
성령 받음은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나타나는 증거로 갈라디아 사람들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인데 바울은 그들에게 성령을 어떻게 받았는지 생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는 것임을 상기시키며 결국 구원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얻은 의는 참 복음과 거짓복음을 논하는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다.
약속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는 그 믿음이 하나님께 칭찬을 들었으며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런 아브라함의 믿음은 자손들의 성격도 규정하기 때문에 육신의 혈통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됨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아브라함과 갈라디아의 성도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묶는 중요한 끈이 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단호하게 외친다.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구원의 여정에는 수많은 방해물이 있는데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이라는 암초를 만나게 된다.
저들은 율법의 행위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미혹했는데 우리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온갖 이단과 거짓 교리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동참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누리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의 말씀요약
바울은 성령으로 시작해 육체로 마치려는 갈라디아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이 그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방인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믿음이 있으면 그와 함께 복을 받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어리석은 갈라디아 사람들(3:1~5)
시간이 지난다고 신앙이 저절로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기초가 바로 서지 못하면 신앙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처음에는 바울로부터 바른 복음을 듣고 자유와 기쁨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주의자들 때문에 신앙의 기본이 흔들리자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칠 지경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 세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 죄를 대신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가 아니냐? 하나님 일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냐?”
복음의 기초와 본질에 충실해야 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왜 갈라디아 사람들은 복음에서 벗어나게 되었나요?
- 적용 질문: 내 삶에서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혜로운 믿음의 사람들(3:6~9)
부패한 인간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선행으로
의의 기준에 도달하려 하면 죄의 절망과 저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율법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제사를 잘 드려서가 아니라 자신을 부르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은혜와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도 믿음에 근거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복을 누립니다.
율법은 단지 인간의 무능함과 한계를 깨닫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하는
복음의 보조 역할을 수행할 뿐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아브라함이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의 조상도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사역과 헌신의 기회가 늘어나면서 업적이 쌓일 때, 어떤 자세를 유지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 열심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제 한계를 알고 날마다 주님 앞에 참된 겸손으로 엎드리게 하소서.
오직 은혜로 얻는 구원, 이 복음의 기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소서.
1.영적인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들
신앙생활에 있어서 기본을 바르게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기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의 기본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바르게 살기 어렵고 자기의 소욕을 따라 살아가기가 쉽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을 통하여 바른 진리를 받았습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흔들려 영적인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그들은 믿음의 눈이 아닌 자신들의 논리에 빠져서 눈이 어두워져서 보지 못하게 됩니다. 믿음의 세계는 성령의 안목을 통하여 바라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지력과 경험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영적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매 순간 약함을 인정하고 성령님의 내재하심과 올바른 영적 통찰력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다른 것들에 현혹되지 않기 위하여는 말씀에 입각하여 자신을 점검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묵상하기
영적인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충실하고 있는가?
2.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나의 공로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구원을 받을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얻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미혹 당한 율법은 인간의 연약함을 바르게 인도하는 선생과 같은 역할입니다. 하지만 율법대로 행하여야 구원에 이르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행하는 봉사는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는 순간에 천국시민이 되었습니다. 이후 성도의 삶은 천국시민 된 것이 감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묵상하기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렀음을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3.하나님께서는 동일 하십니다.
성경을 보면서 놀라운 사실은 시간이 흘러도 진리는 일점일획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칭의 사건은 창세기 15장 6절 입니다.
[창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에 나오는 사건으로 성경에서 기록상 가장 처음으로 나오는 이신득의에 대한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상황과 여건에 따라서 어제는 옳았던 것이 오늘은 틀리기도 합니다. 인간의 유한성으로 인하여 모순을 포함하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모순됨이나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것은 오늘 바울이 그대로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온 우주를 한눈에 살펴보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동일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임을 바로 깨닫고 유혹됨이 없어야 합니다.
묵상하기
나는 어떤 경우에도 동일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가?
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유대인들은 온전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는 율법대로 행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거룩하기를 노력하여도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만약 우리의 거룩함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면 이 세상에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 수 있는 유읽한 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능한 것입니다.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았음에도 자신의 구원의 완성이 마치 자신의 신앙행위와 자신의 노력으로도 일정 부분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임을 오늘 바울 사도는 강력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하나님께 헌신 봉사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허락하신 구원의 은혜받음이 감사하여서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 제사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겸손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묵상하기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신앙에 흔들림이 없는가?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인생의 문을 열고 찾아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그 은혜와 성령을 부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 가운데 구원받은 자의 증인으로 바로 서서,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 값비싼 보혈을 기억하고 높이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위에 기름 부어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회복과 치유의 손길을 뻗어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전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