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애 대담 : 주례 7천번 선 한글학자
한갑수(韓甲洙)씨 <한글학회 이사>
황영애(黃英愛) 대담(對談) [ 선데이서울 68년 10/13 제1권 제4호 ]
첫번 25년 전 여고교사 때
그 제자 지금은 쉰 할머니
- 몇 년 동안에 주례 7천번의 기록을 세우셨어요?
『내가 32세에 첫 주례를 섰으니까, 꼭 25년입니다. 그때는 여학교 선생이었는데 졸업생인 내 제자가 결혼을 한다고 주례를 부탁해서 서울 삼판동에 있는 예배당 같은 목조 건물에서 처음으로 주례를 섰죠.「이사진」이란 그 제자는 벌써 나이가 쉰이 되어 대학을 졸업한 아들 딸들이 여럿이에요』
- 지금이야 주례계의「챔피언」이니까 노련하시겠지만 처음에는 좀 떨리셨죠?
『예,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자고 준비를 했는데도 떨리더군요. 그러나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종로 예식장에서 그러는데 예식장에 가장 빈번히 주례를 하러 드나드는 사람은 이갑성, 조동식, 황성수, 한갑수… 이렇게 네 사람인데 그 중에도 내가 제일 많이 드나든다는 거예요』
5, 10월엔 보통 40번 넘어
- 이제 결혼「시즌」이 왔으니 또 맹활약을 하셔야겠군요. 이 예식장에서 저 예식장으로…. 대개 한 달에 몇 번이나 주례를 서세요?
『5월, 10월 같은 달은 한 달에 보통 40번을 합니다.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대통일에는 하루에도 세 번, 네 번씩 주례를 서는 날도 있어요. 방송국에 가랴, 주례를 서랴,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보면 아무 일 못하고 하루가 넘어갑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 한선생님이 주례로선 자격 만점이시니까 그런 즐거운 수난을 겪으시잖아요?
『자격이라야 내가 결혼한지 오래됐고 3남 1녀를 두고 있으니까 남이 보기에 다복하다면 다복하다고 할 수 있죠』
- 결혼하신 지는 몇 년이나 되셨어요?
『35년 됐습니다. 우리는 3남 1녀를 아주 일찍 낳았어요. 내 아내가 나하고 결혼한 것이 18세 땐데 그때부터 아기를 낳기 시작해서 29세에 단산을 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내 아내는 나이에 비해 퍽 젊고 건강해요. 모두들 10년은 젊게 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여자가 미와 건강을 오래 유지하는 비결은 아기를 일찍 낳아 버리는 거예요. 내 아내는 3남 1녀를 낳았지만 열두 번 소파수술을 했어요』
- 어머나….
나는 모체 건강유지란 미명 아래서도 열두 번씩이나 살인(소파수술)을 감행하다니 끔찍하지 않느냐고 묻고 싶었으나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다음 물음으로 옮겼다.
이기붕씨 대신 선 적엔
헌병, 형사 배치해 놓고
- 수천 번 주례를 서시는 동안 겪으신 일들이 많으실 텐데요. 몇 가지「에피소드」만 공개해 주세요.
『글쎄 하도 많아서… 우선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내가 이기붕씨의 비서실장을 하던 때의 얘긴데 이기붕씨가 대한부인회의 간부 양모씨의 주례를 맡았어요. 그런데 내일이 결혼 날이라면 오늘 이상한 정보가 들어오는 거예요. 신랑이 어떤 여자와 관계를 가졌었는데 그 여자가 신랑의 아기를 배어 가지고 결혼식장에 한바탕 소란을 벌인다는 겁니다. 결혼식도 결혼식이지만 주례의 입장은 어떻게 됩니까?』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이기붕씨가 날더러 주례를 대신 서라고 하면서 그날 결혼식장에는 헌병 10명과 사복 형사 10명을 배치해 놨죠. 이상한 사람만 나타나면 그냥 입을 틀어막고 차에 실어가라는 겁니다. 그래 놓고 내가 주례를 서는데 어떻게 조마조마한지… 결국 식이 끝나도록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만 그때의 결혼식이 잊혀지지 않는군요』
신문 3면의 단골 기사거리를 한갑수씨 자신도 겪을 뻔했으니 아슬아슬하기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인회 간부에게 장가를 든 그「뻔뻔스러운」신랑은 철통 같은 보호를 받고 그에게 짓밟힌 약한 여자는 끝내 분도 한 번 풀어보지 못하고 그늘에서 울기만 했으려니, 하고 생각하니 공연한 의분심이 솟구친다. 그런 사실을 안 다음에는 주례 서기를 거절해야 옳지 않았을까?
신랑 신부 이름 바꾸기도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주례를 서다 보니 신랑 신부 얼굴을 모르는 것은 예사라 예식장 사무실에서 간혹 실수로 신랑 신부 이름을 잘못 적어 놓으면 내가 이름을 틀리게 부를 때가 있어요. 신랑 아무개 군이여! 하고 부르다 보면 어쩐지 이상하단 말예요』
『그래서 작은 소리로 신랑에게 당신 이름이요? 하고 묻지 않습니까. 아니라고 대답한단 말예요. 그럴 때는 등에 진땀이 부쩍부쩍 나죠. 또 예물교환을 할 차롄데 예물이 없단 말예요. 신부의 아버지가 그것을 호주머니에 넣고 선물과 부조금 들어온 것을 감시하느라고 식장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어요. 결혼식보다 선물에 더 관심이 많은 겁니다. 그래도 이건 나은 편이에요. 예물을 아주 집에다 놓고 오는 사람도 있었어요. 장롱 깊숙이 감추어 둔 거죠. 자, 당장 예물을 교환할 텐데 어떻게 하겠어요. 하는 수없이 손님 중의 아무나 반지 낀 것을 뽑아 오게 하고 만년필도 하나 가져오게 해서 식을 치릅니다』
만삭(滿朔)신부가 졸도하자
의자에 얌전히 앉아서
- 흥분해서 서두르다 보면 실수하는 일도 많을 거에요.
『아, 그리고 이런 일도 있었어요. 신부가 식을 하는 도중 갑자기 졸도를 했는데 마침 앞줄에 앉았던 사람이 어찌나 재빠르게 날아와서 착 받아 안지 않아요. 그대로 넘어졌더라면 뇌진탕을 일으켜서 죽었을 지도 모를 텐데 다행히 받아줘서…』
- 몸이 아프던 모양이죠?
『신부가 만삭이었어요』
- 속도 위반이었군요! 그래서 식은 중도에서 그쳤나요?
『아니죠. 앞에 사람이 받아주자 신부가 곧 정신을 차려서 미안하다고 그럽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을 시켜서 의자를 가져오게 하고 신부는 그 의자에 앉힌 채로 식을 마쳤죠. 그때 아주 몹시 놀랐어요』
조혼(早婚)하고 일찍 단산(斷産)해야
- 주례 박사이신 한선생님의 결혼관을 듣고 싶군요.
『외국에서는 차차 조혼의 경향이 늘어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만혼들을 하고 있어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결혼은 빨리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여자가 늙지 않고 건강과 미를 오래 간직할 수 있으니까요』
- 그래도 환경이나 여건이 갖추어져야….
『그야 물론이지만 가능한 한 빨리 하는 게 좋다는 얘깁니다』
- 행복의 문을 연 신랑 신부가 행복을 가꾸어 나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있어야 할까요?
『초대 전화기 제작회사의 사장 이름이「벨」입니다. 이 사람 부부가 아침 저녁으로 반드시 주고받는 말은「소리, 달링! 소리, 스위트·허트!」예요. 주는 것이 많고 받는 것이 적다고 불평하지 말고 언제나 뉘우치는 마음,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