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희 의원실의 직원들이 자그마한 할매 국밥집의 코딱지만한 방에 모여앉아 나 오상식의 드림팀 합류를 축하해줬다. 그래서 이제 드디어 오 보좌관, 박 보좌관, 남 비서관, 조용희 비서, 그리고 나 오 상식까지 완벽한 독수리 5형제가 된 거다! 하하하!
사실 독수리 5형제란 게 피 한 방울 안 섞인 독수리, 매, 백조, 부엉이, 참새의 탈을 쓴 혼성 특공대가 아니던가! 우리가 딱 그렇다.
늙은 수리부엉이 같은 오 보좌관, 백조라고 하기엔 우아함이 덜 하지만 그래도 안경 벗었을 땐 봐줄만 한 박수영 보좌관, 매라고 하기엔 덩치가 너무 크지만 그래도 눈매만큼은 작고 예리한 구석이 있는 남문철 비서관, 거기다 조잘조잘 귀엽지만 가끔 따끔한 일침을 가하는 막내둥이 조용희 비서, 그리고 나...나야 물론 독수리지! 5형제의 리더! 외모만 딱 봐도 내가 주인공감이니 이론의 여지가 없는 거다!
“슈파슈파슈파슈파 우렁찬 엔진소리 독수리 5형제~ 쳐부수자 알렉터 우주의 악마들 불새가 되어서 싸우는 우리 형제 태양이 빛나는 지구를 지켜라 정의의 특공대 독수리 5형제~~”
술 취해 기분도 좋은 마당에 머릿속으로 독수리 5형제를 우리 드림팀에 맞춰 그려보니 어찌나 재미나던지 노래를 불러대며 킥킥킥 헤죽헤죽 좋아라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번쩍~! 하며 내 뒤통수가 얼얼하고 눈앞에 별이 반짝이는 거다. 놀라서 정신을 차리고 돌아보니 우리 할매였다. 험한 눈으로 나를 째려보시며 한마디 하신다.
“미친 놈..니가 다섯 살 이가, 으이? 슈파슈파슈파~..” “우씨...할매...내가 간만에 취직해서 인정도 받고....오늘 기분 좋은 날인데...안 그래요?”
하며 다른 사람들을 보며 구원 요청을 했지만 모두들 먼 산 본다.
“그라다가 또 짤린다이. 안 그렇소, 오씨-.”
허걱~. 아니, 오 보좌관님을 보고 오씨라는 우리 할매! 할매가 그러면 진짜 내가 짤린다~~~. 난 난감해하며 오 보좌관과 할매를 번갈아 보는데 두 사람은 서로 허허 껄껄 거리며 사이가 좋다. 도대체 둘이 뭐야?
“이 노무 새끼, 말 안 듣고 게으름 피아 싸믄 마 바로 내인데 보내소. 내가 정신 번쩍 들구로 패줄 텐께네.”
그런 소리를 하시고는 우리 할매 서비스라며 수육을 한 접시 푸짐하게 내놓고는 다시 나에게 한마디 하고 나가신다.
“니는 쪼매만 묵어라. 오씨, 야 말 안 들으면 확 굶기이소. ”
우리 할매가 저러실 줄은 몰랐다. 내가 한 끼만 굶어도 걱정해 주셔야 할 분이 어떻게 저런 말을...! 오늘 신문에 나온 나의 활약상을 아셨다면 저러진 않으셨을 거다.
난 억울해하며 그 동안 몸보신도 잘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잘 먹어야지 싶어 할매가 놓고 간 수육을 쌈장 발라 상추에 싸서는 한 입 가득 입에 넣어 우물거렸다. 그런데 먹다가 눈이 마주친 박 수영 보좌관이 술을 권하며 말했다.
“오 상식 씨, 오늘 이 자리에 장의원님께서 함께 하지는 못하셨지만 장의원님께서 전해달래요. 오늘부터 오 상식 씨 수습 딱지 떼고 오 비서로 임명되었어요.” “예?”
난 수육을 꿀꺽 삼키고 다시 물었다. 그러자 오 보좌관이 말을 받았다.
“어제 철거민촌에서 장 의원님이 오 비서라고 하셨지?” “예..”
사실 그랬다. 긴박한 순간에 평소처럼 오상식 씨-, 이렇게 부르지 않고 오비서-라고 직함으로 불러주셔서 내게 심리적으로 힘이 되었던 건 사실이었다. 난 그래서 인정받지 못한 수습이 아닌, 비서다운 모습을 보였던 건지도 모른다.
“장 의원님께서 선물이라고 주셨어.”
상자를 열어보니, 명함이었다. <장윤희 의원 비서 오상식>이라는 글씨가 박힌! 순간 울컥 감동이 밀려왔다.
‘우씨, 사나이는 나를 인정해주는 주군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친다더니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다들 한마디 하라며 분위기를 띄우기에 나는 울컥하는 감동을 겨우 삼키며 얘기했다.
“사실 어제 제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게 무척 기분 좋은 거란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더 열심히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요. 하지만 명심할 것은 그런 마음에서 출발하더라도 그 마음을 유지하는 게 그렇게 쉬운 건 아니니까...우리가 함께, 드림팀이 되어 최선을 다해보자는 거지! 드림팀을 위하여!” “드림팀을 위하여!”
오 보좌관의 선창으로 건배를 하고는 다들 수육 안주와 더불어 즐거운 술판이 무르익어갔다. 그러다 여자들이 제일 싫어한다는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나오자 조용희 비서가 콧등에 주름을 세우며
“에이, 그런 얘기 진짜 재미없더라. 근데 오 비서님은 언제까지 남 비서관님한테 형님이라고 부를 거예요?” “예? 그냥 술 한 잔 한 김에...직함 좀 떼놓고 형 아우 하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하하하! ” 그런데 순간 남 비서관 표정이 어딘지 좀 어색하다. 그때 조용희 비서가 약간은 장난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상하다? 제가 서류 정리하다보니까 오 비서님이 세 살이나 위던데?”
엥? 뭔가 착오가 있는 거겠지. 저 산적같이 생긴 남비서관이 나보다 아래라고? 거의 4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저 얼굴이? 아주 많이 봐줘도 30대 후반은 되어 보이는구만...아님... 내가 들어 보인단 소리?! 아니, 이 ‘절대 동안’인 나를 40대로 본 거야? 그건 말도 안 되지! 기분이 팍 상해서 은근히 볼멘소리로,
“저 나이 별로 안 먹었어요. 서른 막 넘긴 싱싱한 젊은이한테...” “남 비서관님은 스물여덟이거덩요.”
허거덩~. 이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란 말인가! 저 산적 같은 40대 얼굴이 20대라고? 그럼 그 동안 내가 형님~ 형님~ 할 때 왜 가만 있은 겨! 내가 남 비서관을 쓱- 흘겨보자,
“저는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적 없어요.”
하며 남 비서관은 그 작은 눈을 굴리며 박 수영 보좌관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딴청을 부렸다.
“맞아요. 남 비서관은 한 번도 자기 나이를 속이거나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한 적 없었어. 그냥 오비서가 제 멋대로 그렇게 한 거지. 우린 재밌어서 그냥 보고 있었고. 그지?” “네에~. 호호...”
박수영 보좌관이 그렇게 말하자 조용희 비서까지 합류해 킬킬거리며 웃어댔다. 이제 보니 이 인간들이 지들끼리 짜고 날 놀려먹은 거다. 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지금까지...! 약이 바짝 올랐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언젠가는 아주 단체로 후회하게 해 주겠어~~! 결심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ㅜㅜ 이건 억울해서 흘리는 나의 눈물이 아니다. 한때 강쇠로 불리던 스테미너 킹왕짱, 그러나 지금은 나의 꿀단지 민주 씨 때문에 지조를 지키고 있는, 신체 건강한 오 상식의 오줌발일 뿐이다. 정말이다! ㅜㅜ
나는 사무실을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그 많은 순간들과 사무실 내의 왕따 속에서도 꿋꿋하게, 물론 좀 좌충우돌하며, 견뎌온 날들을 떠올리며 무엇보다도 3 살이나 어린 남 비서관에게 형님~ 형님~ 하고 지낸 굴욕적인 순간들을 되씹으며 볼 일을 봤다.
그리고는 비틀거리며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갑자기 나의 꿀단지 민주 씨가 그리웠다. 나는 소방도로의 인도 턱에 걸터앉아 용기를 냈다. 휴대폰을 꺼내 민주 씨에게 전화를 건거다. 내가 이제 정식 비서가 되었다는 소식도 알려주고, 겸사겸사 보고 싶다고 보채고도 싶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여보세요. 이 민주 씨 휴대폰입니다.”
난 민주 씨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기대했다. 근데 왜 동회 놈이 전화를 받냐고~~~~~!
“야, 너 동회지? 임마-. 왜 니가 민주 씨 전화를 받아?” “지금 민주 씨 동호회 사람들이랑 술 한 잔 하는 중이다. 내가 오늘부터 민주 씨 인라인 동호회에 가입하기로 했거든! 너 괜히 민주 씨한테 주접떨려고 전화했지? 민주 씨 시간 아까우니까, 끊는다!”
하고는 확 끊어버리는 동회 놈. 아, 이놈이 정녕 친구란 말이냐! 열이 확 받아 다시 전화를 거는데 전화를 안 받는다. 이 나쁜 놈~! 화가 나 벌떡 일어나는데 순간 휘청한다. 술을 좀 많이 마신 거다. 그러고 보니 지금 회식 중이었지? 정신을 차리려고 머리를 흔들며 할매 국밥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국밥집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순간 나를 멈추게 했다.
“우야든동 그 이야기는 상식이 한테는 비밀이요. 오씨.” “예, 알겠습니다.” “오 보좌관님, 오늘 2 차는 내가 쏠텡게 싸게 일어납시다!”
우리 할매와 오 보좌관의 목소리가 확실한데, 둘이 도대체 무슨 비밀이 있다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 목소리는 우리 삼촌?! 내가 술이 취해 잘못 들었나? 나는 잠시 머뭇거리며 문을 열지 못하고 서 있는데, 문이 열리며 삼촌이 나왔다.
“어, 상식아, 어디 갔다 온 거냐? 싸게 챙겨서 노래방 가자-. 오늘은 이 삼촌이 쏜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나만 빼고 지들끼리만 드림팀 같은 그들의 드림팀과 함께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민주 씨에게 왜 못 갔냐고? 왜긴, 산적 같은 남 비서관이 나를 들쳐 업고 노래방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 보좌관과 할매가 나에게 숨기는 비밀이 무엇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삼촌이라면 말해줄지도 모른다. 입이 좀 싸니깐.
하지만 도망가지 못하고 노래방에 계속 머물게 된 정말 중요한 이유는 박수영 보좌관의 노래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여자가 저렇게 슬프게 노래를 해? 노래를 듣고 있자니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싸아-하게 아프다. 아 도대체 이 감정은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