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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으로 읽을 책으로 故 안드레 군더 프랑크 교수의 《리오리엔트》를 골랐다.
별 기대하지 않고 선택했는데, 뜻밖에 월척을 낚은 기분이다.
현대사회를 보통 '자본주의'라고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타도해야 할 적으로 규정했고, 폴라니는 근대이전에는 시장 자본주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란 모든 것이 상품이 되는 시대. 시장체제 안에서 화폐를 매개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체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떨까...
과거에는 자본주의가 없었을까?
아직 공부가 미진해 확답은 못한다. 하지만, 내가 본 산발적인 기록만 봐도 조선시대 노동시장은 존재했고, 더 오래전인 고구려 때에도 시장에 거란 군사 2만 명을 상인으로 위장시켜 지나가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상인 2만 명이 한꺼번에 모인 시장은 지금도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그리고 돈이라는 존재는 고대부터 최고였다. 주몽이 연타발의 재력이 없었다면 고구려를 건국할 수 있었을까? 왕건의 집안의 부와 각 재력가의 연합이 없었다면 고려를 세울 수 있었을까?
관직도 살 수 있었고, 인간도 사고팔았다. 고대부터 세계적으로 무역이 성행했고 중요지점에는 거대한 시장이 있었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근대에 생긴 것도 존재하는 것도 아닌 허구에 불과한 것이다.
(이 책을 봐도 그런 내용이 나온다.)
서양 오랑캐를 좋아라하는 정신질환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여 쓰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생산양식의 허구성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만, 생략하고 이 책에 관해서 쓰겠다.
예전부터 과연 세계사를 전체적으로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어떤 지역 어떤 지역의 역사가 아닌 세계를 한꺼번에 묶어서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했다.
이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책은 없었다.
물론 세계사 연구의 석학인 윌리엄 맥닐 교수의 《세계의 역사1,2》가 있으나,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았다.
저자는 글로벌한 관점에서 세계 (경제)사를 보자고 했다. 글로벌한 관점. 내가 바랐던 관점이었다.
이 책을 덮은 지금은 '이것이 진정한 거시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진정한 거시사를 위한 한 걸을 내디뎠을 뿐이다.
안타까운 것은 저자께서 이후 진전된 이야기를 하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유럽 중심주의. 유럽 예외주의.
중국사, 아니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조금만 관심을 두고 공부한 사람이라면 유럽 중심주의라는 말은 서양 오랑캐들의 이데올로기가 칠해진 개소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
19세기 이전 세계의 중심은 넓게는 동아시아였고, 좁게는 중국이었다.
단지 200년 전에 세력이 역전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역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재역전 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1400년-1800년까지의 세계 경제사를 다룬다.
아프리카, 유럽, 러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오스만제국, 페르시아, 중국, 일본으로 나누어 이야기 한다. 15세기부터 18세기 중반까지의 세계 경제의 중심은 아시아였고, 그중에서 중국이 최대강국이었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유럽의 얼치기 사가들은 중국이 그 많은 은화를 받고도 성장을 하지 못했고, 단지 집에 모셔두기만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 한다.
하지만, 아시아는 15세기~18세기 중반까지 꾸준히 성장하였다.
여러 가지 근거가 많이 등장하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고전학파의 화폐수량설이라는 것이 있다.
'MV=PY'라는 공식이다. M은 화폐량이고 V는 화폐의 회전율, P는 물가, Y는 생산량이다.
이것을 P로 정리하면, P=MV/Y가 된다.
화폐량이 많아지면 물가는 상승하게 된다.
유럽이 아메리카 지역에 식민지를 만들고 대량의 은이 들어왔다.
17세기 유럽의 (아메리카에서 가지고 온)은 생산량은 세계 은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나머지 20%는 일본이 생산한 것이라고 한다.
유럽으로 들어온 은의 40%는 중국으로 유입되었다.
갑작스러운 은의 유입으로 탓에 M이 폭발적으로 늘어 17세기 유럽에는 심각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도, 오스만제국, 명나라의 물가는 유럽과 비교하면 안정적이었다고 한다.
P=MV/Y에서 M이 증가한 만큼 Y(생산량)이 증가하면 P(물가)는 상승하지 않는다.
즉, 당시 인도, 오스만제국, 명나라 등은 유럽에서 들어온 은을 충분히 소화해 낼 정도의 경제규모가 컸다.
18세기 중반까지 세계경제의 중심은 아시아였다. 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 유럽이 치고 올라온다.
왜 유럽일까. 라는 생각을 안 해본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유럽의 얼치기 학자들은 당연히 그 원인을 유럽의 내재적 힘으로 평가한다.
이에 대해 프랑크 교수는 엘빈의 '고차적인 균형의 함정'을 인용한다.
이 이야기가 맞다 아니다를 떠나서 이런 측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에 놀랐다.
『엘빈도 유명한 "고차적인 균형의 함정"론을 개진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말을 인용한다. 그는 생산·무역·제도·기술 모든 면에서 너무나 유리한 상황과 전제조건을 가지고 있던 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원인을 설명한다. 엘빈의 테제에 담긴 본질은 중국은 그때까지 풍부한 인간노동과 부족한 토지 그리고 다른 자원의 토대 위에서 수세기에 걸쳐 발전시킨 농업,운송,제조업 기술을 가지고 "갈 수 있는 데까지 갔다는 것이다. …(생략)… 엘빈은 제도의 실패로 인해 발전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오리혀 반대로 제도 등에 입각한 생산, 자원이용, 인구의 급속한 성장으로 노동력을 제외한 모든 자원이 희소해졌던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원의 부족은 점점 심각해졌다. 목재가 부족해서 집을 못 짓고 배를 못 만들고 기계도 제작하지 못하는 지역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연료도 … 옷감도 … 경작을 위한 가축도 모자랐다. … 금속도 공급이 달렸다. 구리의 부족이 특히 심각했으며 … 철과 은도 턱없이 모자랐다. 무엇보다도 비옥한 농경지가 부족했다. 새로 개간되는 경작지의 토질은 급격히 떨어졌다. 이런 자원부족의 주요 원인은 물론 기술이 상대적으로 정체된 상황에서 인구가 지속적으로 성장한 데 있었다. … 그것들은 모두 18세기 말이 될 때가지 뚜렷하게 수확체감점에 도달했다.'
하지만 엘빈은 바로 이와 똑같은 발전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초래했다고 논한다.
'발명을 통한 돈벌이를 갈수록 어렵게 만들었다. 농업의 잉여생산력이 떨어지고 1인당 소득과 수요가 감소하고 노동의 가격은 점점 싸지는 반면 자원과 자본은 갈수록 비싸지는 상황에서 … 농민과 상인이 택할 수 있는 합리적 전략은 노동을 절약하는 기계 쪽이 아니라 자원과 고정자본을 절약하는 방향으로 기울었다. … 일시적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기계를 고안하는 것보다 저렴한 운송수단을 이용하여 발빠르게 대처하는 것이 더욱 확실하고 안전한 대책이었다. 고차원적인 균형의 함정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467-468쪽)』
간단하게 말해서 당시 아시아의 경제는 끝까지 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 때문에 저임금으로도 생산력은 충분했다. 풍부한 노동력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 필요성을 저하했다고 한다. 즉, 인구성장이 오히려 기술발전을 가로막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콘드라티예프의 파동을 세계 경제에 대입하여 1450-1750년까지 확장국면(A국면), 1750부터 수축국면(B국면)으로 나누었는데 1750년 기점으로 아시아의 경제는 수축국면으로 접어들어 오스만제국, 무굴제국, 청제국은 한꺼번에 쇠락했다고 한다.
반면에 유럽(특히 영국)은 노동력이 풍부하지 못해 고임금이었고, 세계 경제의 수축 국면때문에 아메리카에서 들오어던 은의 유입량도 줄어들었고, 특히 영국은 면직물 분야에서 아시아에 시장에서 경쟁 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신기술이 절박했다는 분석이다.
이 책은 완전하지 못하다.
아마 서양에서는 프랑크 교수만큼의 시각을 가지고 나올 인물은 없을 것이다.
이것이 더욱 나를 안타깝게 만든다.
하지만, 서양의 유럽중심주의의 허구에 대해서 벗겨 내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고 이후 아시아학자들이 뒤를 이어 이 업적을 발전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2009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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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제 말한 책에서도 콘트라티에프 까지 언급된 건 아니었는데 역시 과도한 인구성장으로 지나치게 싸진 노동력에 주 원인을 찾고 있었어. 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4권에 면화 생산과 유통 및 소비에 관한 부분을 보면 영국의 1,2차 인클로져와 비교했을 때 재밌는 차이가 꽤 있더라고. 결국은 노동 가격 문제로 인해서 자본을 기술 혁신으로 유도할 수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어제 전화에서 내가 하려던 얘기가 그거였어.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에 콘트라티에프 까지 언급되긴 좀 그런거 같네. 주기가 시대에 따라 어느 정도 진폭을 가졌는지 분석하는 건 따지고 보면 사후적 해석이나 다름없는거 같고.. 외부요인 개입도 따져야...
자본주의의 개념을 처음 사용한 것은 사회주의자들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노동자가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하는 시기로 보았을때 근대로 보아도 괜찮은거 같습니다 유럽의 내제적인 힘을 얼치기라고 하셨는데 ㅎㅎ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갔을때 서양의 진귀한 것들이 많다고 하였으며 그것이 하루아침에 되었을까요? 서양에 왜 갈릴레오,뉴턴같은 대 과학자들이 출현할까요 다소 안타까운 것은 유럽의 르네상스 같은 조선세종의 시기가 하나의 보편적 현상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지 못한것과 유럽처럼 경쟁이 없는것이 아쉽군요
종속이론의 창시자라고도 하는 고 프랑크 교수의 저서군요. 제 3세계에 대한 분석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자이니, 이 책 역시 읽어보진 않았지만 상당한 수준이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종속이론의 적실성에 대해 워낙 말들이 많고 개인적으로도 실망한 부분이 없지 않아 제가 이 책을 읽게 될 땐 상당히 비판적으로 읽게 될 듯 합니다. 그리고 프랑크 교수가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한 줄은 몰랐네요. 이정기님이 잘 설명하셨는데, 제가 강정인 교수의 논리를 빌어 조금 보충하자면,
서구중심주의 = 유럽예외주의 + 오리엔탈리즘 으로 구성된다고 말합니다. 전자는 유럽이 자신을 보는 관점이고, 후자는 유럽이 아시아(넓게는 '비유럽권' 전체)를 보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오직 '유럽 만' 이 역사적 진보단계를 모두 밟아 가면서 진화해 왔다고 보면서, 아시아(비유럽권)는 그러한 단계를 모두 밟지 못하였으며 또한 유럽이 오래 전에 잃어버린 신비함을 갖고 있다고 간주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위 글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고차원적 균형의 함정' 이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논의인가 하는 점입니다. 서유럽 국가와 중국, 인도와 같은 인구 대국을 비교하면 그럴 듯하나, 영국, 프랑스와 일본, 그리고 특히 '한국' 을 비교할 때에도 인구 논의가 여전히 유효한지(18세기 후반 기준 영국 1천2백만, 프랑스 2천7백만, 일본 3천만 정도라고 합니다. 조선도 1천5백만~2천만은 되었겠지요)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프랑크 교수의 저서를 논평한 어떤 단편논문을 수업 때 읽어보았는데,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은 꽤 흥미로운 점이었습니다. 세계체제론에서 18세기 유럽 이전에, 적어도 13세기 원나라나 혹은 더 이전으로 보려는 시도를 하였다고 하더군요. 아시아 중심의 세계질서에 유럽이 뒤늦게 참여해서 자기네 중심으로 바꿔놓았다... 이런 주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자세한 것은 집에서 해당 논문을 다시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이 분의 주장이 몇가지 측면에서 너무 앞서간 점이 있는 것 같아서, 전부 받아들이기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도 고대 동아시아에 자본주의 내지 그와 유사한 형태로의 발전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막연히 갖고 있었는데, 이정기님도 그렇게 생각하셨군요. ^^; 앞으로 이런 점들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을듯 합니다.
몇 헥타르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17세기 영국은 토지 X 헥타르당 인구밀도가 1.1명 프랑스도 1.2명, 이에 반해 중국은 3.5명, 무굴제국과 오스만제국도 그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