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 중구 문화동 한밭도서관. 묵직한 책가방을 맨 학생이나 입사시험을 준비하는 직장인들만 북적일 것 같은 곳에 희끗희끗한 백발의 노인들의 발길이 아침부터 간간이 이어진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도서관 2층에 지난 4월부터 설치돼 운영되고 있는 노인자료실 '청록실'. 60세 이상 노인들만을 대상으로 각종 책이나 잡지, 신문 등을 제공하고 인터넷 검색이나 DVD. 비디오 시청 등을 이용하며 여가를 보낼 수 있도록 해 하루에도 수십 명의 노인들이 찾아오는 사랑채 역할을 톡톡이 하고 있다. | ◈이재횡씨. |
|
지난 4월부터 청록실의 관리를 맡고 있는 자원봉사자 이재횡 씨(71. 대전시 중구 문화동)는 지난 95년부터 한밭도서관과 인연을 맺어 온 터주대감으로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인사가 되었다. 한밭도서관 측에서 제공한 자원봉사 유니폼인 풀빛 양복 재킷이 썩 어울릴 만큼 말끔한 피부와 단정한 헤어스타일, 미소를 머금은 모습이 70대 노인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젊고 활기차다. "내가 뭐 이야기 거리가 될까. 그냥 우리 청록실이나 널리 알려줘요. 몰라서 못 오는 노인들도 올 수 있게요" 충남도청 감사과, 사회과 등을 거쳐 도의회 사무처 전문위원직을 끝으로 36년 공직생활을 접은 이씨는 지난 95년 정년퇴임 이후 한밭도서관에 나오기 시작했다. 갈 곳이 없어 남아돌던 시간들을 일본어와 영어공부에 투자했고 한밭도서관은 좋은 공부방이 되어주었다. 이참에 아내와 단둘이 살던 집도 도서관 코앞인 한밭우성아파트로 옮기고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도서관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공직생활 중에 일본과 동남아 등지에 출장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어요. 평소 늘 후회로 남았었는데 도서관 나와서 공부하다보니 내가 앞으로 평생 신세질 곳은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게 '복지'라는 생각도 들고요. 지금은 직장생활 하듯 아침에 출근해 저녁에 퇴근해요" 7-8년째 영어공부를 하다보니 슬슬 재미가 붙어 최근에는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의 원문자서전을 읽고 있는 이씨는 그 덕분에 지난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영어통역 자원봉사로도 활동할 수 있었다. 95년부터 한밭도서관 자원봉사를 맡으면서 이씨는 주로 3층과 4층 수천 명 학생들이 이용하는 열람실 질서와 정숙유지를 지도했다. 그러다 보니 노인 전용 공부방에 대한 필요성도 자연스럽게 느끼게 됐다. | ◈한밭도서관 노인자료실 '청록실'은 실버세대를 위한 독서문화공간으로 안락한 독서분위기와 각종 문화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
|
"같은 열람실에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있다보니 애로사항이 많습디다. 노인들 특성상 기침소리도 나고 졸음이 와 엎드려 자기도 하고 잘 안들리니 큰 소리로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젊은 사람들에게는 방해가 되잖아요. 서로서로 좋지 않고요. 노인전용공부방을 건의했는데 마침 관장님께서 청록실을 구상하고 계시데요. 마음이 통했죠. 이렇게 마련된 청록실이 지난 4월 문을 열자 60세 이상 노인들의 발길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인근 문화동부터 멀리는 대덕구 신탄진에 이르기까지 책과 사전을 싸들고 모여드는 노인들로 늘 활기차다. "이곳에는 교장, 공무원 출신 노인들이 많지만 컴퓨터나 DVD에는 전혀 문외한인 경우가 많고 비디오나 오디오 조작이 서툴기도 합니다. 서로 도와서 이용법을 익히고 재미가 붙어 하루도 빼먹지 않고 나오죠. 지금 나오는 분들 중에는 처음부터 계속해서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한번 왔던 사람들은 다시 오고요. " 이씨는 아침이면 인근 산에 올랐다 오전 9시에 청록실 문을 열고 청소를 마친 뒤 차 한잔을 나누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씨와 함께 청록실을 관리하는 이용운(78)씨와 함께 오후 6시 문을 닫을 때까지 소임을 다한다. "항상 바빠요. 책보고, DVD랑 영화도 보고, 도서관에서 하는 각종 문화강좌 틈틈이 찾아가 듣고 청록실 관리도 해야하고요. 정신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니까 늘 즐겁죠. 부담없고요" 젊은이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보이는 그이지만 2개월 전에는 대장암으로 인한 대수술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식사조절을 제외하고는 거뜬한 몸으로 예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얼굴에서는 병치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한 혈색과 표정이 솟아나온다. "도서관에 나와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이 젊어지는 거죠. 영어공부하면서 어린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활동하면 마음이 젊어지고요. 봉사도 하면서 제 공부도 하고 건강도 찾고 보람도 느끼고요. 일거양득이예요." 영어공부를 위해 조성한 그룹스터디가 이씨에게는 또하나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알기 쉽고 이해 쉽고 통하기 쉬운 영어 공부를 하면서 우리나라말은 전혀 쓰지 않고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며 젊은이들의 생각도 엿볼 수 있고 새로운 신세대 문화도 접할 수 있어 좋다는 거였다. "생각보다 노인들도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노인이 도서관에 오면 '늙은이가 뭐하러 여기에 오나'하는 시선이 많았는데 지금은 방문 수가 굉장히 많아졌습니다. 노인대상 '청록실'뿐만 아니라 일부러 열람실에 올라가 어린 학생들 공부하는 틈에 끼어 공부하는 노인들도 많아요." <안규상 한밭도서관장의 '청록실' 소개> 푸르름, 젊음, 활력이 연상되는 靑綠이란 단어! 이 단어에 어울리는 공간이 되기를 희망하며 올해 4월 우리 도서관에 실버세대를 위해 마련된 독서문화 공간이 '靑綠室'입니다. 청록실은 실버세대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안락한 독서분위기와 문화정보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개실하였습니다. 본관 2층에 마련된 청록실로 들어가보면 우선 아늑한 공간에 건강과 교양, 생활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일반도서가 배열되어 있고 빠르게 발전하는 정보화시대에 걸맞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도록 각종 간행물 자료(신문, 주간지, 월간지)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젊은 사람에게 뒤질세라 마련된 인터넷 코너, 재미로움과 함께 마음의 여유를 얻을 수 있는 영상물, 음반 등의 시청각자료가 있습니다. 이런 문화, 정보이용 외에 청록실은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이 여유로운 삶의 지혜를 나누는 정보 나눔의 장으로도 자리잡아 가고 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남녀노소, 전시민을 위한 균형잡힌 도서관 서비스가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실버세대 어른들께서 도서관 청록실에서 활기차고 푸른 제2의 인생설계를 위한 새로운 정보, 삶의 지혜를 구해보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
| 슬하에 1남(벤처기업 운영), 1녀(한국외국어대 영어전임강사)를 두고 있는 이씨는 자녀들을 서울로 떠나보내고 아내와 단촐하게 살고 있다. 아내 역시 오랜 공직생활을 접고 지금은 사회봉사활동을 벌여나가고 있다. 열정적이고 늘 탐구하는 모습의 아버지를 자랑스러워 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이씨는 "굳이 아이들에게 지시하기보다는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교육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녀에 대한 애정은 이제 초등학생인 손자 손녀들에게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 추석에 모인 조카들 하는 말이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별로 안 난다'는 거예요. 시골에서 소 여물 주고 군불때는 모습만 떠올리더라고요.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배움은 없었지만 농토를 개척하고 농업으로 고생하신 흔적이 많습니다. 나도 죽으면 내 손자에게 선친이 어떻게 살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앞으로 꿈이 있다면 영문 이력서 한번 써보는 겁니다. 아이들이 보고 아는 할아버지 할머니 외에도 내가 활동했던 모습들을 남겨주고 싶고요. 건강이 허락한다면 조금씩 준비를 해 놓으려고요. 10년 쯤 뒤에 아이들 영어실력이 능숙해지면 읽을 수 있을까요. 허허허" 10월 2일 노인의 날, 끊임없는 그의 열정이 눈부시다. 이재횡 씨 연락처/ 011-9975-1757, ejahong@hanmail.net 한밭도서관 청록실/ 042)580-4217 오전 9시-오후 6시 문의/열람과 042)580-4239 경유버스/ 113, 115, 116, 223, 310, 310-1, 320, 321, 813 | |
첫댓글 한밭도서관이 그렿게 발전되고 이재횡씨 같은분이 계시다는것이 자랑스럽고, 내고향문화가 자랑 스럽다. 이재 안산에 사는 나에게도 한밭도서관 청록실같은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내집 근거리에 한참 도서관이 건축중이다.
정일영 아우님! 유익하고 재미있는 자료를 올려줌에 늘 감사하고 있다오.
정아우님, 언제나 유익한 좋은 자료, 우리 37회에게 좋은 영양주사를 놓아주고 있음에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