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9호] 명 제작사의 이유있는 흥행 2003-09-12
:: [418호] 여성영화인끼리 모인 까닭은 2003-09-06
:: [417호] 관계의 비즈니스에도 도덕이 필요하다 2003-08-27
:: [416호] 예고편의 속사정 2003-08-23
:: [415호] 매니저로 사는 길 2003-08-12
:: [414호] 박중훈씨가 콩알만하다구요? 2003-08-07
:: [413호] 스타도 영화쟁이구나! 2003-07-31
:: [412호] 잘되면 영화 덕,안 되면 홍보 탓? 2003-07-24
:: [411호] 연출부와 제작자 2003-07-16
:: [410호] 첫인사 2003
명 제작사의 이유있는 흥행 [2003-09-12]
현재 문광부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영화사가 1천여개를 넘는다고 한다. 이름만 걸쳐놓은 영화사가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영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사실인가보다. 하지만 1년에 제작되는 60편 내외의 작품 수를 생각하면 이 많은 영화사의 숫자는 허수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영화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공식 회원사는 40여개 안팎에 불과하다. 이중에서도 90년대 이후 한국영화의 발전에 중요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되는 작품을 제작한 영화사를 꼽으라면, 열 손가락으로 셈을 해야 될지 모른다. 그만큼 좋은 영화 한편 혹은 흥행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바람난 가족>의 성공이 남다른 이유와 가슴 뿌듯한 감동을 가져다주는 것은 한국 영화계의 자랑거리인 ‘명필름’이 뒤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난 가족>이 제작되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많은 얘기들을 주위에서 들었다. 흔히 영화인들의 술자리에서 오고가는 작품에 대한 뒷얘기들은 일상의 소일거리에 지나지 않지만, <바람난 가족>의 경우는 나에게 특별한 관심을 둘 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나 이은 감독을 만나서 직접 얘기를 들은 바는 없다. 다만 나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이유들이다. 제작 초기에 김혜수 캐스팅을 둘러싼 해프닝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제작자에게 엄청난 타격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웬만한 내공이 없는 제작자라면, 그 작품을 계속 끌어가지 못한다. 나중에 문소리가 캐스팅되었을 때, 그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가히 짐작된다. 그 이후에 우연히 문소리와 자리를 같이 한 적이 있었다. <바람난 가족>을 선택한 문소리에게 진심으로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문소리 역시 자신이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임상수 감독과 무엇보다 제작사인 ‘명필름’에 대한 신뢰가 있었음을 숨기지 않았다.
캐스팅이 마무리된 이후에도 이 작품은 순탄한 제작과정을 거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은 프로덕션 내부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결정적으로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했던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명필름’이 제작하고 임상수 감독이 연출하는데 투자자들이 투자를 기피한다는 것은 언뜻 납득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투자 분위기를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게 없다. 조금이라도 흥행전선에 부담이 있다고 판단하면, 제작자 감독의 크레딧에 관계없이 투자를 꺼린다. 투자의 보증수표라고 여겼던 스타 캐스팅의 조건도 이제는 옛말이 돼버렸다. 오로지 작품 자체가 이른바 상업성이 있어야만 한다. ‘명필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바람난 가족>의 제작을 밀어붙였다. 뒤에 영진위 관계자로부터 얘기를 들은 바, 이 작품 때문에 ‘명필름’에서 10억원의 대출을 받아갔다고 했다. 2년 안에 갚아야 되는 대출금으로 영화를 제작한다는 것은 자칫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일 수 있다. 제작자의 자기확신과 책임감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제작방식이라고 생각된다.
‘명필름’이 개봉을 얼마 앞두고 인터넷 펀딩을 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지나친 마케팅 전략이라며 비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이 작품에 대한 자기확신과 책임을 전제한 마케팅 전략이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에 따라 회사가 엄청난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제작방식과 마케팅은 누구라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이것은 ‘명필름’만의 내공과 마케팅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결과는 모두에게 성공적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흥행의 결과만 놓고 판단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쉬운 일이다. 이는 영화사의 운명과 작품의 운명을 같이한 ‘명필름’의 큰 원칙이 있었고, 시작부터 지금까지 일구어온 전 과정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고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바람난 가족>의 바람이 예사롭지 않은 것이다.
일전에 싸이더스 대표 차승재 선배를 만난 적이 있다. <살인의 추억>이 성공하기까지 24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앞으로 이런 영화를 만나기 위해 또다시 24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힘들고 두렵다고 했다. 제작자 모두의 자기성취에는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나는 아직 한참 뒤에 있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앞선 이런 선배들이 있어서 자랑스럽다. 그리고 꿈과 비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하다. 한편의 영화에 흥행과 생존을 무릅쓰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못내 싫지만, ‘명필름’과 같은 명가(名家)의 제작사가 옆에 있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힘이고 보람이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여성영화인끼리 모인 까닭은 [2003-09-06]
지난 6월부터 여성영화인모임은 여성영화인 재교육사업의 일환으로 회원 특강을 주최하고 있다. 며칠 전엔 영화마케팅에 대한 특강이 있었다. 마케팅에 대한 이론적 강의와 사례분석을 주제로 서강대 경영학과의 정재학 교수와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강사로 나와 ‘21세기 마케팅 패러다임과 영화마케팅’, ‘영화 < YMCA야구단 >(사진) 마케팅 결과 분석‘에 대해 강의했다.
‘시나리오 독해법’이란 주제로 진행된 육상효 감독의 첫 번째 강의나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의 ‘영화제작의 정공법’에 관한 두 번째 강의 등, 앞선 두번의 강의와 마찬가지로 이날 강의도 영화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특히나 유익했던 시간이었다. 이날 참석치 못한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의에서도 언급됐듯이 이론이 배제된 실제란 ‘동물적인 감각’에 의존하기 쉽다. 이론과 실제가 병행하는 것만큼 이상적인 것은 없는 듯하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일하면서 ‘이런 것들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라는 제안사항이 있다면 그에 걸맞은 강사와 강의 내용을 마련할 것이다.
사실 이번 특강은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영화인들에게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여 실용적으로 활용하기를 바라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행사를 진행하면서 정회원보다는 준회원, 비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보며 정회원들의 좀더 활발한 참여와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여성영화인모임’이란 영화일에 종사하는 뜻있는 여성들의 모임이다. 몇년 전 부산영화제 기간 중 영화인회의에서 발간하는 잡지 에서 여성영화인 간담회를 가졌었는데, 여성영화인들을 위한 모임의 필요성에 대하여 의견이 모아졌고, 그때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여자들만 모여서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말 그대로 여성영화인모임일 뿐이지 딴 뜻은 없다. ‘남녀차별’에 대한 개탄을 부르짖는 여성운동의 일환도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일을 하는 데 있어서 여자라고 해서 특별한 불이익을 당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우리가 영화계에서 차별받았기 때문에 여자들의 목소리를 내자는 뜻으로 결성하게 된 것이 아니다. 이 모임 구성원들은 일에서의 성과란 남녀의 구분없이 자기 능력에 따른 것이란 공통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영화인은 분야별로 소수 인원들이 있기에 아직 개척하지 않은 분야들이 많이 있다. 사실, 지금까지 한국 영화사에서 여성의 존재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현장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존재해왔고 또 최근에는 그 수나 분야도 크게 늘었다. 현재 영화에 종사하는 여성 인력이 500∼600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여성 인력이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 분야에 골고루 분포시키는 일을 여성영화인모임에서 했으면 하는 것이다.
여성영화인모임은 앞으로 영화인이 될 여성후배들을 위해서 만든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일하는 여성영화인모임의 운영위원들은 아무런 배경이나 정보없이 토대를 일군 사람들이다. 우리는 단지 모두가 씨를 뿌리고 싹을 틔울 터전을 일구어놓는 일밖에 하지 못했다. 나머지는 앞으로 일해나갈 사람들의 몫이다. 우리는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거름지게를 짊어질 생각이다.
영화인, 그중에 여성영화인이 되기 위한 자격조건에 대해 간혹 묻는 후배들이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말해준다. 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가짐이고, 어떠한 분야이든 간에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불이익보다는 스스로 여성임을 염두에 두고 몸을 사리는 일이 많을지 모른다. 나는 여성들이 영화계 곳곳에서 일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발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에서 여성영화인으로서 일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게 되길 바란다. 나 스스로도 항상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일하겠다.
참! 여성영화인모임을 위한 적극적인 격려와 협조, 후원은 남녀구분 없이 가능하다. 생각이 있으신 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채윤희/ 올댓시네마 대표
관계의 비즈니스에도 도덕이 필요하다 [2003-08-27]
이른바 영화판 사람들의 전통적인 정서는 비즈니스적이라기보다 인간적인 관계의 소통을 더 중요시해왔다. 우리가 인간적이라 함은 언제나 모순된 두 얼굴의 양면성이 있다. 서로의 관계가 일이 잘될 때는 ‘인간적인’ 정서의 소통이 일종의 시너지를 생산하지만, 일이 잘 안 되고 뒤틀리기 시작하는 어느 지점부터는 ‘악마적인’ 인간의 전혀 다른 얼굴로 돌변해버린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한 시시비비보다는 서로에 대한 배신의 감정 때문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급기야 ‘인간적인’ 소통의 단절이 이루어지고, 법리적인 이해관계의 치열한 싸움으로 내닫게 된다. 합리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소중하다고 자부해왔던 인간에 대한 믿음은 참혹하게 무너지고 만다.
최근 들어 제작자와 투자자간의 소송 시비가 심심찮게 생기고 있다. 어느 편에서 얘기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소송은 인간 자체의 부조리 때문에 생겨난 필연적으로 있어야 할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영화판에서 소송이 낯선 이유는 인간적인 정서의 전통 때문이다. ‘영화쟁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영화를 한다는 자체가 비즈니스라기보다 하나의 예술행위로 전제하기 때문이다. 한편의 영화가 제작되면서 이루어지는 계약 행위는 100여건이 훨씬 넘는다. 갑과 을의 수많은 관계가 형성되지만, 계약의 내용에 의해 100% 일이 진행되는 것을 누구도 잘 믿지 않는다. 으레 그러려니 하는 관습에 의해 진행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의 엄격한 논리와 잣대로 일일이 들여다보면, 말이 안 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한편의 영화는 끝까지 완성되어 성공하거나 실패한다. 이것은 그 자체의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며, 하나의 논리로 꿸 수 없지만 반복적으로 생산되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문화’라고 본다.
사실 지금 영화판은 관습의 전근대성을 탈피하고, 전문화된 산업의 영역으로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단일 영화사로 매출 1천억원을 넘는 시대가 왔다. 더이상 ‘영화판’이라고 불리는 것도 옛말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와 관련한 전문 법률서비스를 하는 변호사와 법무법인이 생겨났고, 웬만한 큰 계약에는 변호사가 참여한다. 그럼에도 제도가 먼저 생기고 인간이 뒤따르는 법은 없다. 제도는 항상 한발 뒤에서 따라온다. 그것은 ‘문화’라고 하는 인간의 의식이 함께 공유되어야만 제도는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영화판의 전근대성을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화계 안팎의 ‘문화’가 바뀌고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아직은 변화의 과도기에 있다. 영화쟁이로서의 인간적인 정서의 문화가 비즈니스로서의 전문화된 산업의 문화로 바뀌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일반적으로 갑과 을의 계약 행위가 있다면, 갑은 대개 기득권자다. 제작자와 투자자의 계약에서 당연히 투자자가 갑이다. 서로의 관계를 좋게 이야기하면 사업 파트너이지만, 사실은 제작자는 투자자에 종속된 하청업자다. 투자자가 어떤 영화에 투자를 하는 행위는 말이 투자이지 일반적으로 상품을 사는 것과 동일하다. 즉, 세금계산서를 발행하여 제작비를 미리 받고, 그 작품이 완성되면 납품을 하는 것이다. 다른 상품과 차이가 있다면, 만들어진 물품이 아니라 만들어질 물품의 가격을 미리 상정하여 사는 행위 때문이다. 그래서 선금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행위가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투자자에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예술 행위’로서의 정서를 요구하기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다. 영화는 예술이기 이전에 상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작자에게 영화는 상품이기 이전에 예술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투자자가 살 수 있는 상품을 만들기 위해 어떤 작품을 개발하지만, 그 개발의 행위와 내용은 창작과 예술이기 때문이다.
제작자와 투자자간에 분쟁이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서로의 입장과 행위의 다름을 이해하거나 존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장과 동기는 다르지만, 공생해야만 하는 관계라면 서로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상도덕이다. 투자자가 어떤 상품을 사겠다고 해놓고 사지 않으면 그것은 사기이며, 제작자가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받은 돈으로 다른 데 썼다면 그것은 도둑질이나 다름없다. 투자자는 생존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하는 제작자의 창작을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지 말고 존중하기를 바라며, 제작자는 투자자의 돈을 자기 돈처럼 소중하게 쓸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제는 인간적인 정서에 호소하는 시대는 지났다. 철저히 비즈니스 마인드로 접근해야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돈이 아니라 도덕성이다. 관계의 비즈니스에서 도덕이 전제될 때, 한국영화의 미래와 전망이 있을 것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
예고편의 속사정 [2003-08-23]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면 따라서 만들어지는 예고편.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관객에게 영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그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예고편이다. 특히 영화에 대한 많은 정보 중에서도 예고편을 보고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이 많아졌으니 확실한 마케팅 수단임이 틀림없다. 더구나 요즘에는 극장들이 멀티플렉스화 되다보니 예고편만도 200∼300개 정도의 프린트가 필요하다.
예고편은 관객의 눈길을 끌기 위해 관객이 좋아할 만한 코드를 집약해서 만든다. 간혹 예고편만 보고 영화를 선택했다가 실패했다느니, 본영화와 너무 다르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극장에 가서 본영화가 상영되기 전에나 다른 영화들의 예고편을 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볼 수 있고 휴대폰의 모바일 서비스로도 볼 수 있다. 영화에는 전체 관람가도 있고 18세 이상 관람가도 있다. 청소년용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정 장면 하나 때문에 성인영화로 등급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이유로 그 장면을 포기하고 등급을 낮추기도 한다. 하지만 예고편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본영화의 심의보다 더 까다롭다.
예고편이란 한마디로 본영화의 하이라이트 버전이다보니 야한 영화는 좀더 야하게 공포영화는 더욱 무섭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영화의 인지도를 높이고 한명의 관객이라도 더 영화를 보러 오게 만들기 위해 한번이라도 더 예고편을 틀고 싶은 것이 극장이나 영화 관계자들의 심정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 어김없이 나오는 예고편.
말 그대로 예고없이 찾아오는 예고편 때문에 가끔 극장에서 벌어지는 안타까운 풍경이 있다. 특히 방학 시즌에는 아이들을 위한 영화나 가족영화가 많이 상영되어 아이들끼리 혹은 온 가족이 함께 영화를 보러 오기도 한다.
얼마 전 한 극장에서 애니메이션영화를 보러왔던 어린 아이들이 본영화 상영 전에 나온 공포영화 예고편 때문에 울면서 소란을 피워 부모들을 난감하게 했다고 한다. 또 어느 학부모는 야한 영화의 예고편 때문에 민망함을 감출 수 없어 영사실까지 찾아가 항의하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극장에서야 심의까지 다 받은 예고편이니까 어떻게 상영해도 문제가 없겠지만 좀더 다양한 관객층을 헤아리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다수에만 신경 쓰고 나이에는 신경을 안 쓰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고편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이야 없겠지만 좋든 싫든 어쩔 수 없이 접하게 되는 예고편.
일년 중 방학 시즌만이라도 아이들이랑 함께 맘놓고 스크린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배려가 절실하다. 다음 방학 때는 극장 관계자들의 세심한 마음 씀씀이를 기대해본다.
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
매니저로 사는 길 [2003-08-12]
“제가 양치기 소년이지만, 이번만은 다릅니다. 꼭 한번 믿어보세요. 정말 죽이는 연기자입니다. 아직 제대로 못 보여줘서 그런데요. 한번 써보면 압니다. 얘를 5년 동안 데리고 있어서 누구보다 잘 아는데….” 영화사 한켠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흔한 풍경이다. 한편의 영화에 캐스팅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다양하다. 이미 스타로 자리를 굳힌 캐스팅의 경우와 아닌 경우가 일반적으로 구분되지만, 매니저가 감독이나 제작자를 만나서 지난한 싸움을 해야 하는 과정은 필수다. 한번의 만남에서 캐스팅이 결정되는 일은 거의 없다. 최소한 몇 개월의 수십번 반복되는 탐색전을 거친 뒤에야 결판이 난다. 충무로에서 통용되는 캐스팅의 또 다른 언어는 속칭 ‘자빠뜨린다’로 표현한다. 배우나 감독이든 제작자나 투자자든 누구의 입장에서건 상대방을 설득해서 승복시켜야 한다는 의미다.
매니저가 초짜 신인을 스타 연기자로 일구어내는 과정은 길고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인생역경의 드라마다. 매니저들이 흔히 술자리에서 푸념을 늘어놓을 때, “내가 말이야 라면 한끼도 못 먹으면서…”로 시작되는 인생 넋두리가 있다. 1년에 신발을 몇 켤레 갈아치웠는지의 숫자에 따라 성공여부가 판가름난다는 속설도 매니저들 세계의 한 단면이다. 속칭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한다는 말이다. 현재는 스타 배우를 거느리고 있는 최고의 매니저이지만 한때 매일같이 배우를 데리고 영화사로 출근했다는 일화는 충무로의 전설이다. 이처럼 한명의 배우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뒤안길에는 항상 훌륭한 매니저가 동행하고 있었다.
보편적으로 인생의 만남이 그러하듯, 동고동락을 함께해온 매니저와 배우가 평생의 약속을 지켜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끝까지 함께 가보자고 시작했지만, 스타가 된 그 배우는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린다. 돈이 이유든 어떤 유혹이 이유든 스타가 되면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시련을 또다시 겪어야만 한다. 한동안 고통의 눈물을 삼키고, 정신을 차린 이후에야 자신을 한번 돌아본다. 내가 이 짓을 계속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결국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예정된 그 길을 다시 시작한다. 오랫동안 함께 가는 매니저와 배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이런 수순을 밟는다. 자신을 한없이 어리석다고 탓해보지만, 어느 지점에 다다르서 초월하게 된다.
얼마 전 최근 가장 잘 나간다고 하는 모 매니저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말이 생일파티지 생일을 핑계한 가까운 지인들의 조촐한 술자리였다. 술판이 어느 정도 무르익자 속에 있는 말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날의 주인공인 매니저가 벌떡 일어섰다. “여기 매니저인 사람만 다 일어나보세요. 우리끼리만 건배 한번 합시다.” 그가 건배 제의를 하면서 큰소리로 선창을 했다. “배우들은 모두 다 xx다.” 모두들 박수를 치면서 환호성을 질렀다. 비록 술판의 객기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의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젖어 있었다. 흐릿한 조명에 비친 그의 눈물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그 자리에 함께한 매니저들의 회한은 하나같이 술잔에 녹아들고 있었다.
철따라 스포츠지 1면을 장식하는 단골 기사 메뉴가 있다. 연예계 대부 모씨와 톱스타 모양이 어쩌고 어쨌다는 스캔들 기사다. 실제로 큰 스캔들인 경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한 토막 단신 기삿거리도 안 되는 한편의 추리소설에 불과하다. 연예계 대부라고 일컫는 그들은 사실 연예계와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일반 사람들은 대개 그들을 매니저와 결부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라 일컬어지는 그런 매니저는 단언하건대 없다. 만약 그런 매니저가 있다면, 그는 영화계의 일원이 아니라 연예계를 기웃거리는 불량 변방인에 불과하다.
많은 매니저들이 자신의 직업을 떳떳하게 내세우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사회적 편견의 눈총 때문이다. 내가 아는 매니저는 새로운 배우가 탄생하기까지의 뒤안길에서 치열하게 동고동락하는 진정한 영화인들이다. 이른바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들의 땀과 노력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며, 여느 스탭과 마찬가지로 촬영현장을 24시간 지킨다. 물론 때로는 스타를 앞세워 자신의 이권을 챙기는 양아치라 치부되는 매니저도 있긴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매니저들은 배우 한번 키워보겠다고 불철주야 뛰어다니는 사람들이며,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많은 연기자들이 한국영화의 큰 밑거름이 되는 것이다. 매니저는 단순히 배우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 역시 진정한 영화인이다.
이승재/ LJ필름 대표
박중훈씨가 콩알만하다구요? [2003-08-07]
한국영화 홍보를 하다보면 자연 여러 배우들을 상대하게 된다. 그중에는 연기도 잘하고 인간성도 좋은 배우가 있다. 홍보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인간성 좋은 배우의 기준은 자기가 출연한 영화의 홍보를 열심히 해주는 배우다. 내가 생각하기에 박중훈이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박중훈이라는 배우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지 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1989년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작품으로 박중훈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명세 감독의 두 번째 연출 작품이었던 <나의 사랑,나의 신부>는 작품적으로도 그렇지만 박중훈, 최진실이라는 배우가 출연해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었다. 물론, 박중훈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할 것도 없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배우였고 최진실은 막 인기가 치솟은 상태여서 그 효과를 극대화하자는 의도에서 홍보 초점을 최진실에게 두었었다. 신문, 방송은 물론이고 포스터, 신문광고 등 모든 작업을 최진실 위주로 진행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 상대역인 박중훈이 소홀하게 다루어졌다.
영화 개봉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박중훈이 갑자기 회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채 이사님, 나는 콩알만해요.”
신문광고에 최진실 얼굴은 크게 실리고 정작 남자주인공인 본인은 얼굴이 조그맣게 나온 걸 본 모양이다. 박중훈은 그때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어서,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는데 자신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아 섭섭하다는 것이었다. 근거있는 불평이었지만 원래의 홍보방향도 그렇거니와 방향수정을 하기에도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무척 미안한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박중훈이 나를 만나기만 하면 어느 자리에서건 “콩알만해요. 콩알만해요”라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박중훈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는 언제 기회가 되면 이 한을 풀어줘야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러다가 <세이 예스>로 다시 박중훈과 만나게 되었다. 박중훈의 연기변신이라는 초점에서 마케팅 방향은 박중훈을 전면에 내세웠고 포스터에는 박중훈의 얼굴이 한마디로 ‘대문짝’만하게 쓰여서 만들어졌다. 굳이 그런 건 아니지만 ‘콩알’이란 말에 내심 신경이 쓰이기도 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세이 예스>는 관객에게 외면당하고 말았다. 자신의 얼굴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가 흥행에 실패했으니 적잖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영화가 잘되지 않은 게 어디 포스터 때문이겠냐마는 그래도 난 이래저래 박중훈에게 연달아 상처를 준 셈이 되었다.
마치 내가 미안한 마음에 사탕발림이라도 하는 듯 들릴지 모르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내가 생각하는 박중훈은 천상 배우이다. 재능도 있고 또한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줄 알기 때문이다. 대부분 박중훈을 90년대 한국영화의 ‘코미디’ 열풍을 일으킨 주인공으로만 기억할지 모른다. 하지만 박중훈은 코미디뿐만 아니라 <깜보> <그들도 우리처럼> <우묵배미의 사랑> <게임의 법칙>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해 탁월한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이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세이 예스>에서도 박중훈은 놀라운 연기 변신을 보여줬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통해서는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한국 영화계에 박중훈이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요즘 박중훈은 퓨전역사코미디 <황산벌>이라는 영화에서 ‘계백장군’ 역을 맡아 열심히 촬영 중에 있다. 스크린에서 박중훈 같은 좋은 배우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올 가을 우리를 기쁘게 할 박중훈표 코미디를 기대해본다.
“중훈씨, 내가 하는 말 다 진심이에요. 미안하다고 이러는 거 아닌 거 알죠? 그리고 이제 콩알만하다는 얘긴 그만하시죠.”
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
스타도 영화쟁이구나! [2003-07-31]
배우의 인생은 한 개인의 삶을 넘어서는 또 다른 인생이 있다. 배우도 생존과 자기성취를 위한 하나의 직업에 불과할 수 있지만, 스크린에 투영되는 배우의 인생은 자신의 것이 아닌 대중의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울고 즐기는 대중의 감동은 배우의 인생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서 출발한다. 대중이 열광하는 배우에 대한 사랑의 시선에는 그들의 삶과 스크린의 인생을 하나로 보고 싶은 욕구와 판타지가 있다. 단순히 인기만 있는 것이라면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뭐 그리 궁금할까 싶다. ‘스타’라는 딱지가 존경의 마음으로 우러러는 것이지만, 때로는 경멸과 야유로 돌변하는 사슬인 것은 스타의 인생을 자신의 우상으로 영원히 간직하고픈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훌륭한 배우는 우리 모두의 자산이자 자랑거리이다.
스타 배우가 한 사람 만들어지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고통이 숨어 있다. 배우들의 개런티가 갈수록 높아만 간다는 질타의 목소리가 있지만, 이것은 배우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과 함께 생존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스타들의 높은 개런티가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 자신의 욕심으로만 치부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최근에 작품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몫을 기꺼이 희생하거나 양보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대선배인 안성기가 이미 여러 차례 보여준 미덕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자랑스러움이다. 추상미는 박경희 감독의 <미소>가 저예산이라는 이유로 노개런티로 출연했다고 한다. 장동건이 <해안선>에 출연하면서 보여준 아름다운 선택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모든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우정출연을 하는 것은 오래된 미덕이다. 감독에 대한 우정이든 동료 배우나 제작자에 대한 우정이든 모두 아름다운 것이다.
얼마 전 김지훈 감독의 데뷔작인 <목포는 항구다>가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시작했다. 조재현과 차인표가 두 주인공이다. 우여곡절이라 함은 모든 영화가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필연적으로 겪는 운명(?)적인 과정이지만, <목포는 항구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2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조재현과 차인표를 어렵사리 캐스팅했다. 꿈에 부풀어 크랭크인을 향해 달려가던 중 암초에 부딪혔다. 마지막 순간에 투자계약이 무산되고 말았다. 한달 두달 시간은 흘러가지만, 대안은 쉽게 마련되지 않았다. 이쯤되면 이 영화는 엎어지고 고생하던 스탭들은 뿔뿔이 흩어지는 운명에 놓이는 것이 대개의 수순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피가 거꾸로 솟는 사람이 감독이다. 배우와 스탭들을 호령하다가 이제는 더이상 만나기도 민망하고, 어디 몰래 처박혀서 술로 때우기 십상이다. 이때 가장 가까이서 감독을 위로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격려와 용기를 준 사람이 조재현과 차인표였다고 한다.
조재현과 차인표의 아름다운 만남과 미덕을 굳이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런 행동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를 영화쟁이들은 잘 알기 때문이다. 스타배우가 되면 주위에서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스타를 쟁탈하기 위한 생존경쟁과 정글의 법칙이 엄존하는 현실이다. 그래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비록 본인이 선택했더라도 작품의 제작환경이 어려워지면, 무던히 기다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조재현은 극중 권투장면을 위해 변함없이 도장을 찾아 연습에 매달렸고, 틈만 나면 감독을 만나 밥과 소주를 나누었다. 차인표는 자신이 일부분이라도 투자자를 찾아보겠다고 사람들을 만났다. 영화계 내부에서 차인표 하면 정통 신사로 통한다. 남에 대한 배려가 깍듯하고, 어떨 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다. 한번은 당신이 망가지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더니, “저도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되네요!” 진지하게 웃음 지을 뿐이다. 007 영화의 캐스팅 제안을 거절한 차인표를 우리 모두는 자랑스럽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번 작품의 경우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 자신이 조심스레 제작자를 찾았다. 혹시 자기 때문에 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본인은 괜찮으니 다른 배우를 캐스팅 해도 된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란다. 세상에! 배우로서의 자존심을 이렇게까지 굽힐 수 있을까.
조재현과 차인표의 아름다운 미덕이 이 영화의 큰 밑거름이 되어서 좋은 영화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또한 우리는 대중의 사랑과 가슴속에 영원히 간직될 훌륭한 스타들을 계속 가지고 싶다. 배우의 멋진 인생은 우리의 꿈이며 판타지이기 때문에!
잘되면 영화 덕,안 되면 홍보 탓? [2003-07-24]
◈ 홍보마케팅을 의뢰하는 클라이언트와의 만남 | 우리 회사가 마케팅한 작품을 묻기에 제목들을 쭉 나열했다. 갑자기 그 클라이언트 왈,
“어, 나 그 영화 사기당해서 봤는데!”
웬 사기? 그 다음 말이 더 걸작이다.
“우리 영화도 그렇게 사기를 쳐서라도 흥행이 잘되게 해주세요.”/ “네?”
이거 사람을 완전히 사기꾼으로 모시네.
◈ 친구들과 모임 |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영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 친구 왈,
“그 영화 완전히 속아서 봤어. 야한 줄 알고 봤다가 두 시간 동안 졸다 나왔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날 난 완전히 사기꾼으로 몰렸다.
한쪽은 속아서 영화를 본다고 울상이고 한쪽은 제대로 속이지 않는다고 울상이고. 이럴 땐 차라리 내가 울고 싶은 심정이다.
간혹 거리를 지나가다, 지하철을 기다리다 사람들이 영화에 대해서 하는 얘기들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마치 관객을 속여서 영화를 보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기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영화의 단점은 감추고 장점만을 두드러지게 포장할 뿐이다.
홍보는 설득이다. 혹은 유혹이다. 때로는 정보이며 그래, 솔직히 얘기해서 가끔은 속임수다. 거짓말에도 의도적인 것이 있고 속아도 좋을 만한 순진한 것이 있다. 마케팅을 하면서 가끔 사용하는 과장은 거짓이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관객은 자신의 구미에 맞게 상황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 야하고 미스터리하다면 둘 중 한 가지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야한 것에 관심을 가졌다면 온통 그쪽으로만 몰려든다. 야하다는 것만 강조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되면 마케팅을 하는 사람은 야한 미끼를 더 많이 던질 수밖에 없다. 야한 건 더 야하게. 그러니까 사기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고, 관심있는 쪽에 비중을 두는 것뿐이다.
관객을 설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실을 드러내 보여주고 거기에 매력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홍보마케팅은 적극적인 유혹 수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쓸모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기능이다. 제대로 된 홍보 기획자라면 관객이 그 영화를 올바로 이해하도록 도와야 한다. 정확한 자료와 정보를 적절하게 제공하여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하지만 일을 하다보면 간혹 난감할 때가 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는 것보다는 숨기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오락성이 전혀 없는 영화를 엄청난 오락영화로 포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영화가 가지고 있는 예술성을 솔직하게 내보였다는 이유로 애써 기반을 깔아놓은 작업을 포기해야 할 때는 차라리 진짜 사기라도 칠걸, 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다. 흥행이 안 되면 거의 그 책임은 마케팅하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충무로에 전설같이 내려오는 말이 있다. ‘흥행이 잘되면 영화가 좋아서, 흥행이 안 되면 홍보 마케팅을 못해서.’
홍보한 작품마다 관객몰이를 한다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일까? 아니 모든 영화가 흥행이 잘돼서 최소한 손해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솔직히, 사기를 쳐서 관객이 많이 온다면야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사기도 칠 만한 여지가 있어야 치지! 무조건 홍보 탓만 하면 정말 어쩌란 말이냐!
채윤희/ 올 댓 시네마 대표
연출부와 제작자 [2003-07-16]
내가 프로듀서를 하면서 늘 바라는 것이 있다. 작품을 할 때마다 모든 스탭들과 친해지는 것이고, 그들과 다시 다른 작품에서 만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그렇듯 쉽지는 않다. 어떤 이유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기고, 말 못할 오해와 갈등이 빚어지기 일쑤다. 그럼에도 늘 꿈꾼다. 영화인생의 고락을 함께하는 스탭들과 살갑게 만나서 이번에는 좀더 잘해야지. 스탭들 중에서도 특별히 더 기대하고 만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연출부다. 그들은 영화의 맨 처음에서 출발하여 영화가 극장에 걸리기까지 영화사를 들락거리는 최후의 스탭들이다. 어쩌다 준비하던 영화가 엎어지게 되면, 1년 넘게 드나들던 영화사에서 아무런 항변도 못하고 소리없이 사라져야 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다음 영화를 선택하고, 처음부터 그 일을 다시 시작한다. 이유는 한 가지다. 감독이 되어야 한다는 꿈을 운명처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작은 소망 중 하나는 작품을 함께한 연출부가 감독으로 데뷔하는 것이며, 이왕이면 나와 함께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늘 바란다.
올해로 서른두살이 된 감독지망생 조창호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춘천 촌놈이고, 서울예술대학 영화과를 졸업했다. 임순례 감독 <세친구>와 김기덕 감독의 <파란대문> 연출부를 했고, 변혁 감독의 <인터뷰>와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조감독을 거쳤다. 어떻게든 단편영화 한편을 만들고 싶어서 촬영은 마쳤는데, 후반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당연히 돈이 모자라서다. 그리고 목숨을 걸고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두세편의 시나리오를 나에게 가져왔다. 내가 그에게 던진 말은 “야, 조창호! 너 감독되기 싫으냐? 감독이 되고 싶으면, 이런 시나리오는 빨리 휴지통에 버리고 새로 재미있는 시나리오 좀 써봐라!” 그에게는 참으로 냉혹했을 것이다. 격려와 위로는커녕 단칼에 욕만 먹었으니.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그는 어딘가에 처박혀서 시나리오를 쓰고 또 썼을 것이다. 나는 한동안 연락을 잊어버렸고, 언젠가는 나타나리라 기다리며 무심한 시간만을 흘려보냈다.
지난주에 그가 느닷없이 찾아왔다. 그의 얼굴을 본 지 꼭 일년 만인 것 같다. 연출부 출신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는 딱 두 가지다. 술이 고프거나, 보여줄 시나리오가 있거나이다. 그가 술이 고팠으면 수도 없이 찾아왔을 테지만, 오랜만에 온 것은 필히 시나리오 한편을 완성했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예상대로였다. 모 영화사에서 각색을 의뢰받았는데,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어서 감독까지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나의 무슨 얘기라도 듣고 싶어하는 그를 위해 단숨에 시나리오를 읽었다. 그리고 다음날 만나서 밤새도록 술을 펐다. 나는 그에게 처음으로 격려를 해줬다. 영화화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시나리오이며, 이렇게 저렇게 하면 좋은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비록 영화가 완성될 수 있을지는 나중 일이지만, 그는 많이 기뻐했고 나 역시 진심으로 흐뭇했다. 그가 이 작품으로 감독을 데뷔하는 데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면 기꺼이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했다.
제작자와 연출부로 만나서 좋은 영화를 만든 경우는 많이 있다. 차승재 대표와 봉준호 감독의 만남이 그러하며, 오기민 대표와 정재은 감독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곧 촬영에 들어가는 <목포는 항구다>의 김지훈 감독과 유인택 대표와의 시작도 그렇게 인연이 맺어졌다. 영화인생에서 행복한 만남이며, 좋은 결실들이다. 물론 지지고 볶고 싸운다. 결국에는 상처투성이로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인생의 추함이 아니라 영화를 위한 고통과 아름다움의 상처들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또다시 만나게 되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다시 고군분투한다. 영화를 만드는 세대들이 많이 바뀌고 있다. 굳이 연출부 경험을 거치지 않고, 단편영화만을 통해서 감독으로 데뷔하는 경우도 많이 생겼다. 어떤 경우든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왕도는 없지만, 제작자가 연출부를 만나서 감독까지 데뷔시킬 수 있다면 더없는 행복일 거라 고 생각한다. 오늘도 촬영현장에서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감독의 꿈을 키워가는 연출부들에게 진심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싶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제작자들의 꿈도 하나라는 것을 꼭 전하고 싶다.
이승재/ LJ 필름 대표
첫인사 [2003-07-10]
<씨네21>에서 원고 제의를 받고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하던 끝에 일단 우리 회사의 탄생 일화부터 쓰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지면을 스쳐간 많은 필자들이 영화를 알고 싶어하는 독자들을 위해 자신들의 분야를 충실히 전달한 것처럼 나 역시 영화마케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이다.
내가 영화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86년 7월, 양전흥업이라는 영화사 기획실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그때만 해도 몇몇 회사를 제외하고는 기획실을 둔 영화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기획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모두 남자였다. 여자는 내가 홍일점이었다. 여자여서 차별받는 것도 싫었지만 특별대우받듯이 화젯거리가 되는 것도 달갑지 않았다. 각자 위치에서 스스로의 실력과 노력으로 정당하게 평가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영화계에서 기획일을 시작한 지 10년쯤 되던 1994년. 영화사업에 뛰어든 삼성은 홍보마케팅을 담당할 별도의 전문집단이 필요하다며 나에게 그 일을 의뢰하고 싶다는 제의를 했다. 언젠가 독립할 거라면 지금이 좋은 기회다 싶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회사를 처음 만들면서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러웠다. 명색이 홍보마케팅사인데 이름 자체에 홍보성이 없으면 누가 믿음직하게 생각하겠는가. 자신들 이름도 제대로 못 짓는 사람들이 카피를 쓰고 홍보물을 만든다면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몇날 며칠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내게 남편이 던진 것은 ‘올 댓 시네마’라는 이름이었다.
‘영화의 모든 것’- 올 댓 시네마.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걱정이다. 정말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줄 능력이 있을까?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할 때마다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부끄러움을 지울 수 없다.
1994년 7월1일.
드디어 충무로에 영화홍보마케팅 전문회사가 입성했다. 이름도 창대하야 ‘ALL THAT CINEMA’.
세상일이 다 그렇겠지만 무언가 시작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두려운 일이다. 직장을 가지고 월급받는 생활을 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사업은 주위의 시선까지 겹쳐 몇배로 힘이 든다. 부푼 포부를 갖고 회사를 차린 지 횟수로 꼭 10년째다. 10년 동안 남자 직원은 단 한 사람뿐이었고, 지금도 ‘올 댓 시네마’의 식구들은 모두 여성이다. ‘일부러 남자는 안 뽑냐’, ‘남자를 역차별한다’, ‘아마조네스군단이다’ 등등 말들이 많다. 하지만 일부러 여자만 뽑은 것은 아니고 필요한 사람을 선택하다보니 여자들만 모였다.
요 몇년 사이에 여성 영화인력이 부쩍 늘었으며 분야별로도 꽤 다양해졌다. 특히 홍보마케팅 분야는 90% 이상이 여성이다. 업무 자체가 섬세하고 감각적인 것을 요구해 여성에게 잘 어울린다고 한다. 유혹적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이 계통에 발을 들여놓고 싶은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홍보마케팅사의 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홍보마케팅 일을 전문적으로 하겠다는 후배들을 만나면 무척 반갑다. 여자라고 특별히 플러스 요인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홍보마케팅은 여자가 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라고 믿고 싶다.
홍보마케팅은 영화의 처음이자 마지막 단계다. 아직 맨송맨송한 새색시의 얼굴에 신부화장을 하는 작업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화장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신부의 모습은 달라 보인다. 물론 알맹이도 중요하지만 포장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화 한편을 멋지게 포장해서 관객에게 선사하는 일. 그 일을 우리는 오늘도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올 댓 시네마’에 애정과 격려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이 지면을 빌려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 늘 고맙습니다. 열심히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