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어원과 정의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많은 낱말들이 일본식 번역어이듯이, ‘종교’ 역시도 서양 ‘religion'의 일본 번역어이다.
현재 ‘종교’라는 말은 불교ㆍ기독교ㆍ유교 등의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유(類)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明治)시대에 서양의 ‘religion’의 번역어로 쓰이게 되면서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종교는 ‘부처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의미하는 불교용어다. 북송의 영명선사 연수가 쓴『종경록(宗鏡錄)』(100권)에 “종교지지”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종(宗)은 부처가 직접 설법해 놓은 것이고, 교(敎)는 이것을 알기 쉽게 강해한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서양의 ‘religion’을 번역할 때 동양에는 이에 해당하는 용어가 없었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이 ‘릴리전’을 불가에서 쓴 ‘종교’라는 엉뚱한 말로 처음 번역하였던 것이다. 본래 ‘릴리전(religion)’의 어원은 라틴어의 ‘religio’로 ‘재결합’이라는 뜻이다. 즉 죄를 지은 인간이 쫓겨났다가 다시 돌아와 신과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의 릴리전이 본래 앞에서와 같은 뜻을 가진 불교의 종교로 번역된 것이다. (『증산도 道典』(耕世版),「대원출판사」, 1994, 19쪽.)
또한, 라틴어 ‘religio’는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외경의 감정과 그것을 표현하는 의례 등의 행위를 의미한다. 고대 유럽에서는 기독교권의 성립과 함께 敎義와 儀禮의 체계를 갖춘 종교집단을 가리키는 개념이 되고, 중세에는 비세속적인 수도원 생활까지도 이 개념으로 불러왔다고 한다. 우리는 몇몇 집단 신앙 형태를 이 ‘종교’라는 이름하에 규정을 짓고 있지만, 그러나 동아시아의 道敎나 儒敎에 대한 종교성의 논쟁이 계속되고 있고, 철학이라고까지 표현하는 佛敎가 이에 알맞는가 하는 의문도 남아 있으며, 원시신앙이라고 부르는 여러 신앙형태가 이러한 종교의 범주에 속하는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남아 있어서 위의 설명이 모든 것을 다 충족시켜 주지는 못하리라고 본다. 다만 ‘宗敎’가 佛敎ㆍ기독교ㆍ이슬람교ㆍ儒敎ㆍ유태교ㆍ일본의 神道ㆍ인도의 힌두교 등등의 개별 종교들을 총칭하는 類개념으로 사용될 때에만은 그런대로 무리가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동아시아의 道敎ㆍ儒敎ㆍ神道 등을 ‘宗敎’라는 틀 속에 집어넣고 이해를 도출해 내는 것이 편리할 것으로 보인다.
‘삶이 두려워 哲學이 생기고 죽음이 두려워 宗敎가 생겼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말은 그럴 듯 하지만, 인류의 지성사에서 철학과 종교를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 인다. 나아가 문학ㆍ예술ㆍ도덕ㆍ법률 등이 종교성과 분리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도 마찬가지 의문이 인다. 그러나 종교는 공포에 그 시원을 둘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워 宗敎가 생겼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종교를 말할 때의 기본적인 기준은 초월과 신성과 궁극성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의 의미를 신에 대한 예배로 한정하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 종교적인 영역으로부터 전신화적인 단계나 후신화적인 단계가 제거되어 버린다. 전신화적 단계란 아직도 신이 없었던 때이고 후신화적 단계란 이 이상 신이 존재하지 않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샤머니즘은 전자의 극단이고 선불교는 후자의 극단이다. 이 두 단계를 모두 포함해서 종교를 정의하기도 한다. 그렇게 되면 신과의 관계라는 것이 종교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본질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하는 종교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고유한 종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지만 동시에 고유한 종교들이 지닌 결정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세속적인 운동들도 종교 안에 포함시킬 수 있다.연세대학교 종교교육위원회.(『현대인과 기독교』,「연세대학교 출판부」, 1991, 313쪽.)
이러한 견해는 상당한 포괄성을 내보이고 있다. 합리적ㆍ과학적이지 못하다 해서 미신(迷信)으로 치부되는 여러 신앙생활이 종교라는 테두리 속으로 합류될 수 있는 여지가 있기 때문에, 어쩌면, 신앙의 갈등을 꽤나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인식론으로 기능할만도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중동의 사막지역 또는 서구적 종교 인식에 길이 들어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에 반발을 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그쪽의 종교가 지나치게 단언적(斷言的)이고 또 그 신학자들은 종교적인 삶 속에서 어떤 사실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곧 신앙의 역할에 지나치게 많은 강조를 두고 있기때문이다.
‘종교’의 정의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실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합리적ㆍ지성적ㆍ과학적으로 규명한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두 인류학자가 ‘문화’에 대해 내린 정의들에 대해 3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쓴 바 있다. 그때 그들은 그들 나름의 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그 연구를 끝맺었던 일이있었다. 문화의 한 현상인 종교 역시도 그 정의를 내리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 날까지 계속해서 논쟁이 될 소지를 안고 있기도 하다. 그것은 종교가 인류의 생명력과 동일한 생명력을 갖고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또한 鬼와 神의 대항, 공포와 안정의 대비, 어둠과 빛의 상대개념 등의 원초적 이해에 종교의 정의가 환원될 수도 있는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물론 과학적 발견과 진보는 종교를 사멸시키게 될 것이라는 견해도 예상된다. 하지만 종교는 과학적 발견과 진보로부터 독립해 있으며, 우리가 우주의 본질에 관해 무엇을 믿든지 간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 종교는 교리 및 교회ㆍ사찰 등과만 연관되어 온 것이 아니라 종교의 중요성을 느낀 사람들의 사생활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