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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
성경 본문 : 요엘서 2장28절-32절, 사도행전19장1절-7절
설교 자 : 박 한서 목사 <2021년 1월 23일 주일 오후>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얼마 전 한국의 지성이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이어령> 씨의 딸 <이 민아>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목사가 되기 전 <이 민아> 씨는
<미국> <로스쿨>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 주 검사로 임용되었습니다.
1989년부터는 <LA> 지역 부장 검사로 이 시대의
성공한 여성의 대표적인 <한국>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성공적인
삶의 속내를 보면 많은 고통이 따랐었습니다.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간 이후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그 후 <암>이 발생하였으며
눈이 실명하는 위기까지 처했습니다.
게다가 둘째 아이가 유치원 무렵부터
<자폐증> 증세를 나타내며 장애를 보였고,
첫 아이는 느닷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 그는 1992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 민아>씨는 어느 날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였습니다.
그 동안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 말씀이 갑자기 커지면서
예수님의 얼굴이 그녀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지금까지 그를 괴롭혔던 모든 좌절과 절망과
슬픔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이혼한 슬픔, <암>과 잃어가는 시력으로 인한 좌절,
맏아들은 죽고 둘째 아들마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슬픔도 사라지고
고통도 사라지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도
사라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고, <한국>의 지성을 자청하며
누가 전도를 해도 듣지 않던 아버지까지 전도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이렇게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바울>이 <갈라디아>, <부르기아> 지방을 거쳐
<에베소>에 왔을 때 이미 많은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학자인 <아볼로>를 통해 전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질문할 때
그들은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여
방언도하고, 예언도 했다는 말씀이 신약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두 본문을 중심으로 “왜 성령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령과 관계없는 육체는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1) 성령과 관계없다는 말은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6장3절 말씀에
3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육체의 일에만
몰두하여 사는 모습을 보시면서 탄식하셨습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은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 주지 않겠다고 하는 말로
이것은 큰 저주입니다.
만복의 근원이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 축복인데,
반대로 하나님이 “내가 너와 함께 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것 보다 큰 저주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무엘서>에 보면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육신의 소욕을 따라
죄 가운데 살다 징계로 이웃의 <불레셋>이란 나라의
침공을 받아 전쟁 중에 법궤도 빼앗기고, 두 아들이
전사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엘리> 제사장이 충격을 받고 죽었습니다.
그 때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하다가
죽으면서 <이가봇>이라고 했습니다.
<이가봇>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면 <이가봇>이 됩니다.
2) 하나님의 영이 없거나 떠나면 육체가 됩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저희가 육체가 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창세기> 6장2절 이하에 보면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그랬습니다.
여기서 아내를 삼는 기준이 신앙이나 사람 됨됨이나
인격적인 내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육체의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자녀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를 삼고,
남편을 삼고, 며느리를 삼고, 사위를 삼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좇아 살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고 육체대로 살아감으로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지 않겠다하신 것이요,
내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않겠다하신 것입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고민을 많이 합니다.
왜냐하면 회사에 이력서를 내도
실력이나 경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외모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외모가 받쳐주지 않으면 취직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형외과를 갑니다. 코 고치는 데 얼마, 턱 고치는 데 얼마,
이런 식으로 해서 고쳐서야 취직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시대에 만연된 모습인데, 사실은
<창세기> 6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외모지상 주의가 되어 S라인, V라인 몸매를 만드는
열풍이 일어나는 현상이 외형적인 것,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 지금의 이 시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육체를 좇는 자들의 결국은 진노와 심판과 멸망입니다.
구약 본문 <요엘서>2장 31절에
31절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했습니다.
여기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은 심판의 날을 가리킵니다.
<노아> 시대에 하나님을 떠나 육체의 일만을 좇았던 사람들을
홍수로 심판하셨습니다. 성적으로 타락하여 육체의 일만 좇았던
<소돔>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육체를 좇는 자들이 받을 심판을 이미 보여주신
하나님은 마지막 심판의 날 이처럼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인생들을 심판하시리라는 경고의 말씀을 본문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요엘서>2장 30절 말씀에
30절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간혹 외신을 통해 들어오는
지진과 해일의 아비귀환을 목격 합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그 모습에서
<소돔> <고모라>의 멸망을 연상케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육체가 되어 불의를 즐겨 행하는 자들과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요한계시록>16장1절 말씀에
1절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했습니다.
한 대접, 한 대접 쏟아질 때마다
엄청난 재앙들이 쏟아지는 일들이
일어나게 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을 따라 살기를 좋아하는
이 세대를 본받지 아니하고 <노아>와 그 가정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2. 성령은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1) 성령은 거듭나 새 사람이 되게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깨닫게 하고, 믿게 하며, 죄인임을 알게 하고,
회개하게 하며, 죄를 버리도록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 하는 자가 되게 하며, 믿음이
자라도록 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충성하는 자가 되게 합니다.
예수님 만나고 새 사람이 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세례에 관한 지식을 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세례 <요한>의 물세례만 아는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새로운 세례 곧 성령의 세례이고 불세례가 있음을 증거 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이 <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성령을 받은 자들이 신비한
은혜 체험을 하게 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변화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울>도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주님을 만났고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을 핍박하던 삶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전파하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삶의 목적이 바뀌었습니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시키는
귀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게 하는 삶으로 변화시키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이유입니다.
2) 그러므로 성령 주심의 약속은 놀라운 은총입니다.
오늘 <요엘서> 2장 28절 말씀에 보니까
28절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겠다고 했습니다.
파격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선포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까지 세상의 아름다움을 흠모하여
하나님의 원하시는 삶을 살지 않고 육체대로 살아감을 보시고
내 영을 부어주지 않겠다하시고,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다하셨는데
<요엘> 선지자를 통해서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겠다고 하시니
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의 사랑입니까?
일시적인 성령의 부으심이 아니라 과거의 먼 역사 속에서의
저주까지 풀어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축복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줄 믿습니다.
특별히 영적 <이스라엘>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 축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남종과 여종에게 일반 평민만도 아니고 노예들에게까지
그것도 남자 노예나 여자 노예나 구별하지 않고, 모든 언어,
인종, 계층,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부어주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경우에도 차별이 없다는 말입니다.
3) 다만 성령을 받고자 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자 해도
받을 제세를 갖추고 받아드리지 아니하면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중동> 지방의 어떤 나라에서는 왕비를 선택한 후
3년 동안 왕과 같은 침실에 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왕비의 행실을 관찰한다고 합니다.
이 3년이란 왕비가 과연 일국의 어머니로서
합당한 자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기간입니다.
그리고 또 왕비로서 합당한 그릇이 되도록 만드는 기간입니다.
이 삼 년의 기간이 지난 후에 일국의 어머니로서 충분한 행실을
가지고 있고 왕비로서의 그릇이 된다고 판단될 때에야 비로소
왕의 침실에 들여 온전한 연합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 왕비는 왕의 영광을 똑같이 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을 부어 우주적이고도 놀라운
그의 영광을 나누어주시려고 할 때 우리들에게 그릇을 예비
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구약 본문 <요엘서>2장29절 말씀에
29절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28절이나 29절이나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 때에”, “그 후에”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금식하며 예배를 회복하며 회개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삶을 돌이킬 때에
그런 말씀입니다.
분명한 전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으로 회복되어 질 때에
거룩한 자녀로서의 그 모습을 회복할 그 때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주리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마음을 가지고 성령 충만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에게
부어 주십니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 따르는 무리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은 500여명 가운데 그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기다렸던 120 문도들에게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한 은혜가 임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당부를 듣고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은
그 은혜를 받지 못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말씀에 보면
성령 충만한 <베드로>가 복음을 증거 할 때에
듣는 무리들이 마음에 찔려 가슴을 치며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
<사도행전>2장38절-39절 말씀에
38절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그 때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3천이나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 받을 자세를 갖추어 약속하신
성령을 사모하여 받고 성령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3.성령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1) 성령이 임하면 영적 자유 함과 내적 평안함을 얻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3장17절 말씀에
17절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2장15절-17절 말씀에
15절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16절 그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17절 공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했습니다.
예수를 모르고 성령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에게는 4가지의 불안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이요,
둘째는 인생들에게 날마다 다가오는
죄책감에 대한 불안이요,
셋째는 자기존재의 의미상실에 대한 불안이요,
넷째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스스로 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삶의 현장에서 수시로 다가오는
이러한 불안을 극복하고 그로부터 자유 함을
얻기 위해서 수많은 노력을 하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나 전술한 4가지 불안 중
어느 한가지에서도 자유 함을 얻지 못합니다.
이러한 것에서 자유 함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해 보지만 노력한 보람도 없이 무너지고,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고 괴로움만 더해 갑니다.
그래서 이 괴로움과 번민을 벗어나고자
결국 자기 자신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세상 것에 취해버리는 방법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고자 합니다. 술, 담배, 약품, 돈과 같은
육신적 것뿐만 아니라 지식추구, 명예추구, 헛된 종교추구 등의
정신적 것에 빠져 위안을 얻고자 하지만 채워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부터 성령이 부어질 때 광야와 같은
심령도 아름다운 밭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수많은 열매 맺는 무수한 나무가 있는
울창한 삼림과 같은 심령이 된다고
<이사야서> 32장 말씀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아름다운 밭이 될 때 그 심령은 의롭다고
칭함을 받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영적 자유 함과
내적 평안함을 소유하게 됩니다.
<황 의성> 씨가 쓴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라는
책의 제목은 찬송가 191장 후렴 가사를 옮겨 놓은 것입니다
그는 지난 2001년 3월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191장의 찬송을 하루에 세 번 내지 다섯 번씩 불렀다고 합니다.
<황 의성> 씨는 소년 시절부터 절도와 폭력, 강도, 강간, 등
닥치는 대로 죄를 저질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도소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1970년 12월, 7개월의 복역 잔류 기간을 앞두고
<안양> 교도소로 이송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새롭게 지정된 감방에 들어가니 고참 들이
고통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난 <황 의성>씨도 육탄전으로 맞섰지만,
그때마다 눅실하게 맞고는 분을 삭일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감방 안에 변기통 옆에서 한 죄수가
그들의 싸움을 보며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그 사람은 눈물도 닦지 않은 채 <황 의성> 씨의 피를 닦고
간호를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때 <황 의성> 씨의 가슴은 마치 불덩이가 날아와서
불을 붙이는 것처럼 뜨거워졌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황 의성> 씨는 착실한 신자 죄수와 친하게 지내면서
그리스도를 영접했고, 성경을 읽으면서 뜨거운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황 의성> 씨가 변화되는 모습을 본 교도소 측에서는
3개월을 앞당겨 출소시켜 주었습니다. 이후 그는
날마다 이 찬송을 불렀습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내게 계시네.”
이렇게 성령은 불씨 중에 가장 위력 있는 불씨라서
한 죄수의 마음을 태우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고,
그로 하여금 영혼 구원 역사에 동참케 했던 것입니다.
2) 비전과 이상을 가지고 소망 중에 전진하는 사람이 됩니다.
본문 <요엘서> 2장28절 말씀에
28절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했습니다.
즉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남녀노소 가림 없이 활기찬 생이 설계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꿈을 잃고 절망에 빠진
모습을 가지고 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꿈과 비전을 주시고
성령을 통해 그 꿈과 비전을 이루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비전을 주셨고, <이삭>에게 비전을 주셨고,
<야곱>에게 비전을 주셨으며, <요셉>에게 비전을 주시고
그 비전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꿈과 비전이 생깁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으로 꿈꾸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연약한 우리일지라도 꿈꾸는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이 마지막 세대에 엄청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놀라운 존재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지만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꿈의 사람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절망적인 무수한 난관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나중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눈앞에 있는 문제들을 보며
낙심하지 않습니다.
어두운 과거에 매달리는 일이 없습니다.
오직 앞의 푯대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주는 마음의 담대함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생명을 잃는 순간을 당해도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습니다.
성경 <잠언> 29장18절 말씀에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18절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
꿈과 이상을 잃어버린 인생은 방탕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으셔서 각자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꿈과 비전을 붙잡고 소망의 불을 일으키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전도와 선교의 능력을 얻게 됩니다.
<요한복음> 20장 21절 말씀에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맡기는 대목이 나옵니다.
21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하시고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맡기시며 곧바로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놀라운 전도와 선교의 사명을 맡기실 때
제자들을 연약한 모습 그대로 보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담대함과 강건함의 근원이 되는 성령을 받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도행전>1장8절 말씀에
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오순절 성렬 강림 이후에
전도와 선교가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이적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8장 말씀에 보면
초대교회의 선택된 7집사중의 한사람인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성에서 굉장한 부흥회를 인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부흥회가 얼마나 놀라웠던지 더러운 귀신이 쫓겨나가고
앉은뱅이와 중풍병자가 치료되고 성 전체에 큰 기쁨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상태로 며칠만 더 부흥회를 인도하면 <사마리아> 성 전체를
복음화 시킬 수 있는 큰 승리의 역사를 이룰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갑자기 주의 사자가 나타나 <사마리아>를 떠나
남으로 향해 <가사>까지 가라고 <빌립>에게 말했습니다.
성경 <사도행전> 8장 26절 말씀에는
이런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26절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렇게 반문할지 모릅니다.
'이것은 마귀의 유혹이 아니냐? 어찌하여 대 승리 길을
눈앞에 두고 쓸쓸한 광야 길로 왜 내려가는가?'
그러나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가는 길에 그는
<에디오피아>의 권세 있는 <내시>를 만나서 그의 준비된
심령에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어 그를 구원시켰습니다.
성령께서는 대 <아프리카> 대륙의 구원을 이루시려고
한사람 <구스인>을 먼저 구원하고자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을 받고 전도의 일군, 선교의 도구로
쓰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 합니다.
사랑하는 행복 가족 여러분 !
우리가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성령과 관계없는 육체는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남녀종들에게 부어 주시마고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은혜를 사모하여 성령 충만을 받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