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회(統一敎會)의 신앙관(信仰觀)과
기독교회(基督敎會)의 신앙관(信仰觀)의 차이점(差異點)
<신천성경p827> 통일교회(統一敎會)의 신앙관(信仰觀)은 지금(只今)까지의 신앙관(信仰觀)과는 다릅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과 성경(聖經)을 중심삼고, 즉 구주(救主)라는 명사(名辭)를 중심삼고 막연(漠然)하게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父母)라는 명사(名辭)를 중심삼고 하나님과 부자(父子)의 관계(關係)를 갖추어서 자녀(子女의 입장(立場)에서 믿고 있습니다. 부모(父母)와 자녀(子女)의 관계(關係)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因緣)을 가지고 있습니다. 날 때도 그렇고, 살면서도 그렇고, 죽을 때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모(父母)를 떠나가지고는 생활(生活)할 수도 없고 활동(活動)할 수도 없습니다. 우주사적(宇宙史的)인 중심(中心)인 그 부모(父母)는 부모(父母) 자신(自身)만의 인연(因緣)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삼은 절대적(絶對的)인 인연(因緣)을 갖고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하나님과 그 부모(父母)가 일치(一致)된 자리에 연결(連結)되지 않고는 책임(責任)을 완수(完遂)할 수 없고 목적(目的)을 달성(達成)할 수 없습니다. 제일(第一) 중요(重要)한 것은 하나님과 부모(父母)와 내가 언제든지 일치(一致)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828> 본래(本來) 인간(人間)은 영(靈), 육(肉)을 통(通)하여서만이 완전(完全)한 인간(人間)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영적부모(靈的父母)의 자리에만 계시면 영적구원(靈的救援)밖에, 반(半)쪽의 구원(救援)밖에 할 수 없는 입장(立場)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반(半)쪽 구원(救援), 즉 육적구원(肉的救援)을 해주기 위해서 재림주님(再臨主任)이 이 땅에 오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재림주님(再臨主任)이 예수님을 믿다간 영인(靈人)들과 전세계(全世界)에 널려져 있는 기독교인(基督敎人)들을 하나로 통일(統一)시켜 하나님 앞에 바침으로써 제3(第三)이스라엘의 출발(出發)을 볼 수 있습니다. 영적(靈的)인 제2(第二)이스라엘 민족(民族)이 되기 위해서는 세례(洗禮)를 통(通)해야 했지만 앞으로 오시는 주님(主任)을 중심(中心)삼고 제3(第三)이스라엘이 되기 위해서는 축복(祝福)의 문(門)을 통(通)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829>예수님이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혔기 때문에 육신(肉身)을 가진 참부모(眞父母)는 실현(實現)되지 않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혈통(血統)은 세워졌지만, 영육(靈肉)을 함께한 참부모(眞父母)의 현현(顯現)은 실현(實現)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계(靈界)에만 한정(限定)되어 있고 영적구원(靈的救援)만 이루어 온 것이며, 육적구원(肉的救援), 즉 육신(肉身)의 속죄(贖罪)는 실현(實現)되지 않은 것입니다.
결국(結局) 오늘날까지 기독교(基督敎)에는 영적(靈的)인 아버지와 영적(靈的)인 어머니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부모(眞父母)가 오시면 우리는 모두 그분에 의(依)해 영육(靈肉)이 함께 다시 태어나기 위한 조건적(條件的), 혹은 상징적(象徵的)으로 어머니의 태내(胎內)에 들어갔다가 새로운 생명(生命)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한 노정(路程)을 더듬으면서 걷고 있습니다.
<신천성경p830> 영적(靈的)인 기준(基準)과 육적(肉的)인 기준(基準) 중(中)에 어느 것이 보다 중요(重要)한 것이냐? 육적(肉的)인 기준(基準)을 중심(中心)삼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肉)은 영(靈)을 위하여, 영(靈)은 육(肉)을 위하여 존재(存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世上)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과 같은 입장(立場)에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영육(靈肉)이 합(合)한 실체(實體)를 갖추어 보다 보람있는 자리에서 출발(出發)해야 됩니다. 이것이 통일이념(統一理念)을 가진 여러분이 가야 할 길인데도 불구(不久)하고 육신(肉身)을 중심삼고 먹고사는 것이 중요(重要)하다고 생각(生角)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부(全部) 조건(條件)에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신천성경p825> 신앙(信仰) 길은 무엇이냐? 보이는 세계(世界)에서 느끼는 감각(感覺)보다도 보이지 않는 세계(世界)에서 더 강(强)한 감각(感覺)을 느끼게 된다면 그 사람은 절대(絶對) 지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외적(外的)인 세상(世上)의 일은 전부(全部) 보이는 것을 따라 움직이지만, 신앙(信仰) 길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追求)하기 때문에 그 목적(目的)이 막연(漠然)하게 될 때는 힘(力)이 안 나는 것입니다. 통일교회(統一敎會)의 사람들은 무엇을 신앙생활(信仰生活)의 목표(目標)로 해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부모(父母)의 심정(心情)을 지니고 종(從)의 몸을 쓰고 십자가(十字架)의 길을 가는 것을 목표(目標)로 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종(從)의 몸이라는 말도 과분(過分)한 말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殺人者)의 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蕩減)하기 위한 길을 가야 됩니다. 예수님은 죄(罪)없이도 그 길을 갔는데, 아버지를 죽인 죄인(罪人)인 우리는 백(百)번 천(千)번이라도 이 길을 가야 됩니다. 말로써 맺어지는 부자(父子)의 관계(關係)는 필요(必要)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힘(力)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을 위하고, 뼈 살이 녹아나는 고통(苦痛) 속에서도 참고 승리(勝利)하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과 부자관계(父子關係)를 회복(回復)할 수 있습니다.
<신천성경p826> 선생님(先生任)은 이 길을 처음 나설 때, 우주(宇宙)의 근본(根本)이 무엇일까를 생각(生角)하며 파고들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關係)입니다. 따라서 복귀(復歸)의 근본(根本) 내용(內容)은 부자(父子)의 인연(因緣)입니다. 역사(歷史)는 이 관계(關係)를 복귀(復歸)시켜 놓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복귀역사(復歸歷史)는 본연(本然)의 아버지와 아들딸의 관계(關係)를 회복(回復)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829> 육신(肉身)과 영인체(靈人體)를 중심삼고 볼 때, 보다 더 중요(重要)한 것은 육(肉)이 아니라 영(靈)이라는 것입니다. 육(肉)은 70, 80년(年)의 시간권(時間圈) 내(內)에서 살다가 사라지고 말지만 영(靈)은 시간권(時間圈)을 초월(超越)하고 공간권(空間圈)까지 초월(超越)할 수 있는 권한(權限)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적(歷史的)인 책임(責任)을 깨닫고 책임(責任)을 다하는 것이 인간(人間)의 본의(本意)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육신(肉身)을 중심(中心)삼고 잘 살더라도 결국(結局)은 죽게 됩니다. 어차피 육신(肉身)은 죽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사탄 세계(世界)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바깥세상(世上) 사람들과는 다른 감정(感情)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휼(體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탄이 사랑하는 것을 증오(證悟)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세계(全世界)를 위하여 우리 자신(自身)을 희생(犧牲)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선생님(先生任)을 중심삼고 여러분이 개인(個人), 가정(家庭), 종족(宗族), 민족(民族), 국가(國家), 그리고 세계적(世界的)으로 승리(勝利)하게 되면 우리는 제3(第三)이스라엘, 이스라엘 선민(選民), 또는 영적(靈的)인 이스라엘을 다시 건설(建設)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通)하여 온 인류(人類)를 영육(靈肉) 양면(兩面)으로 구원(救援)하실 수 있습니다.
<말선450-53> 타락(墮落)을 모르는 사람은 하늘나라도 못가요. 구원(救援)받겠다는 얘기도 못한다는 거예요. 타락(墮落)을 모르는 사람이 고장(故障) 나서 병(病)이 났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구원(救援)했다는 말은 영원(永遠)히 있을 수 없어요. 모른다는 거예요.
<말선243-187> 하나님 편에서 구원섭리(救援攝理)를 하실 때, 제일(第一) 먼저 수술(手術)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핏줄입니다. 핏줄을 어떻게 전환(轉換)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또 핏줄을 전환(轉換)해 가지고 그 위에 어떻게 참사랑을 갖다 접붙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신천성경p828> 아담해와의 잘못된 사랑으로 말미암아 타락(墮落)했기 때문에 이것을 탕감복귀(蕩感復歸)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중심삼고 축복(祝福)의 관문(關門)을 통(通)하여 신랑신부(新郞新婦)의 인연(因緣)을 맺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천국(天國)에 못갑니다. 예수님이 이 같은 책임(責任)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이 일을 구세주(救世主)가 다시 나타나 행(行)하지 않고는, 땅 위의 모든 것들의 뿌리를 통(通)하지 않고는 이 땅 위의 엉클어진 것을 수습(修習)할 도리(道理)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에 대(對)한 책임(責任)을 다해야 됩니다.
<신천성경p830> 하나님의 소원(所願)과 인류(人類)의 희망(希望)의 귀착점(歸着占)이 되고, 신앙자(信仰者)가 승리(勝利)할 수 있는 기점(基點)이 되는 하나의 터전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한(恨)의 기원(起源)은 인류(人類)가 거짓 부모(父母)로부터 출발(出發)했기 때문에 참부모(眞父母)의 거룩한 인연(因緣)을 중심삼고 그 앞에 순응(順應)하는 무리(武吏)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로소 천지(天地)가 해방(解放)될 수 있고 천국문(天國門)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참가정(眞家庭)은 참부모(眞父母)가 있어야 하고 참남자(男子)와 참여자(女子), 참부부(夫婦), 참자녀(子女)가 있어야 됩니다. 제일(第一) 중심(中心)이 뭐냐? 개인(個人)의 목적(目的)도 참부모(眞父母)이고, 남자(男子) 여자(女子)의 목적(目的)도 참부모(眞父母)입니다. 참부모(眞父母)가 되어 아들딸을 갖고 가정(家庭)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일교회(統一敎會)는 ‘참부모(眞父母)를 신앙(信仰)하자,’ ‘참부모(眞父母)를 믿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확실(確實)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확실(確實)하지 않으니까 믿는 것입니다. 확실(確實)하면 믿는 자리를 넘어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확실(確實)히 몰랐기 때문에 믿었지만 확실(確實)히 알고 나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왜 태어났는지, 우리 부부(夫婦)가 무엇인지, 자녀(子女)가 무엇인지, 가정(家庭)이 무엇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부모(眞父母)의 가정(家庭)을 믿는 것이 아니고 참부모(眞父母)님의 가정(家庭)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참부모(眞父母)를 안다는 것입니다. 믿는 것이 아닙니다. 참부모(眞父母)를 믿는다고 생각(生角)하지 말고 안다고 생각(生角)해야 됩니다. 그다음에는 참부모(眞父母)와 생활(生活)을 해야 됩니다. 참부모(眞父母)와 같이 살아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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