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장면
마16:13-20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제가 2003년쯤에 보문제일교회에서 학생들과 청년부 37명으로 구성된 10일 정도의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당시 선교여행을 준비하면서 규칙 중의 하나가, 현지 음식을 먹고, 현지인들의 집에서 자는 것이었습니다. 북스마트라 메단 남쪽에 있는 거대한 토바호수가 있습니다. 호수 안에 제주도만한 섬이 있으니 정말 큰섬인데, 섬 주변의 정글속 마을에 있는 교회와 성도들을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일차적으로 일단 장거리였습니다. 한번 이동하는데, 기본 4시간 이상을 이동합니다. 그리고 더위가 대단했고, 덥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니 후덥지근하기가 말도 못합니다. 또 저녁이 되면 민가에서 잠을 자는데, 침대는 고사하고 거의 바닥에서 자는데 너무 추웠습니다. 자다보면, 제 이불은 아이들이 다 가져갔더라구요. 이런 상황에서 현지 교회 교인들이 주는 현지 음식을 먹으니, 입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위생상태도 한국과는 매우 달랐습니다. 아이들이 엄청 고생을 했죠. 매일 아이들 손 따주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의 하나가 될 정도되니, 추위와 허기, 장거리 이동으로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7일쯤 되었을 때에, 인도네시아 감리교 신학교인 반델바루 신학교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의 선교사님이 저희들이 불쌍해 보였던지, 집에 있던 김치와 돼지고기를 총동원해서 끓여주셨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7일간을 그렇게 자는 것과 먹는 것의 고생 속에 있다가 맡는 김치국 냄새. 먹기도 전에 김치국의 냄새가 거의 환장할 지경이었고요,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 가는데, 다들 환호성을 지르며 먹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갑자기 40명 가까운 인원을 위해 만든 김치찌개라 국한그릇에 김치는 몇 조각없었고 고기 한두점 찾기가 힘들었던 음식이었습니다. 그저 국물맛에 먹었죠. 평상시 같으면 절대 안먹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날의 김치찌개는 인생최고의 음식이었습니다.
우리 삶에 그럴 때가 있습니다.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라, 별감흥도, 의미도 느끼지 못했는데, 어떤 상황이 더해지면 정말 특별해진다는 것입니다. 이 순간을 명장면이라고 이름지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를 준비하면서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우리의 이 예배가 누군가에는 인생 최고의 명장면이 되게 하옵소서.
매일 들던 닭울음 소리가,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는, 베드로에게 인생 최고의 회개의 시간이었고, 최고의 명장면이 되었습니다. 오늘 매일 드리던 예배, 찬양이 아니라, 여기 계시 분들 중에 누군가는, 말씀이 심령을 파고들고, 찬양의 가사가 심령을 파고들어, 회개로, 은혜로, 성령 충만함으로 인생 최고의 예배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성경에서도 유명하기로 손꼽히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갔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자신을 누구라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답을 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예수님께서 너무나도 기뻐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칭찬과 축복이 베드로 위에 쏟아져 내렸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다른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분명 대단한 것은 알겠는데, 이렇게까지 하실 이유가 있을까? 요즘 말로 오버아냐 했습니다.
그런데 분문을 다시 읽고 살펴보니, 분명 이유가 있더군요. 그 단서가 빌립보 가이샤라라는 지명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는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헐몬산 남쪽 경치 좋은 산자락에 있습니다. 헐몬 산자락은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강수량이 많은데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산이 그것을 흡수했다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샘처럼 솟아난다고 합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고 풍부한 물이 쏟아져 나와 바니아스 폭포를 만들고 요단강으로 흘러가는데, 여기서 흐르는 물이 이스라엘 상수원 50%를 공급한다고 합니다.
경치 좋고, 물 많고, 날씨도 좋습니다. 좋은 것이 많다보면 모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니, 교회가 적을 때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조금 성장하면,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분란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되더군요. 이곳이 그랬습니다. 좋은 환경에 많은 사람이 모이고, 세상 것들이 모이고, 인간의 욕망이 모이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이곳에만 무려 4개의 우상신전이 있었습니다.
첫째 신전이 풍요와 살림의 신인 판 신전입니다. 이교숭배의 중심이 된 커다란 동굴에서는 샘이 흘러나옵니다. 기원전 3세기부터 판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 이 동굴 안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공포스런 반인 반염소의 모양을 한 판(Pan)은 종종 플루트를 연주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두번째는 황제 옥타비아누스 신전입니다.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황제가 된 후 스스로 신이 되어, 정복지에 신전을 만들고 자신을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헤롯 가문은 로마에 아첨을 떨기 위해 도시에 옥타비아누스 신전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를 위하여 만든 신전이니, 당시에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겠습니까?
세번째 신전은 동굴에 있던 판 신전을, 더욱 확장된 제단으로 만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4신전은 주님 이후 시대 제우스와 복수의 여신, 레미시스 신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곳,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나왔던 곳은 결코 거룩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찬양이 있던 곳도 아니고, 경건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습니다. 악한 우상들이 모인 곳이요, 세상의 권력과 세상의 욕망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며, 눈만 뜨면 세상의 흐름이 보이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왜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혹자는 이곳에 온천이 있느니 제자들과 쉬러 오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이샤랴 빌립보 진역이 어떤 곳인지를 알고보니, 그렇지도 않아 보입니다. 본문이 있기 전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과의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갈등을 피하여 밀려난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눈앞에 한쪽으로는 거대한 우상숭배의 신전들이 가득했습니다. 더구나 갈릴리 바닷가의 어부들이며 촌놈들인 제자들에게 이곳은 화려하고, 세상의 유혹과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습니다. 한쪽으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지니신 예수님, 먼길 다니시느라 깨죄죄한 예수님이 계셨습니다. 그때에 베드로는 외쳤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베드로의 고백은 단순히 신앙의 고백이 아닙니다. 악한 것과 세상의 유혹이 가득한 환경 속에서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았던 베드로의 고백이었습니다. 세상의 유혹이 눈과 마음을 파고들어도 오직 주님만을 선택하겠다는 베드로의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오직 예수였습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위대했고 예수님의 칭찬으로 가득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를 외쳤던 베드로는 예수님의 칭찬과 축복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입니다.
2025년도를 시작하면서, 생각을 어지럽게 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외부의 상황들이 요동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설교를 준비하는데, 환경이 어떠하던지, 주변이 어떠하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벤츄라교회를 사랑하신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지금이 어떠하던지, 세상이 어떠하던지, 외부환경이 어떠 하던지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오직 예수, 오직 믿음으로 나아가, 오히려 이 때에 명장면을 만들 기회를 허락하셨다라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웃 집에 가서 낫을 빌려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이웃 집에 다녀 온 아들은 울상을 하며 이웃 집에서 ‘낫을 빌려 줄 수 없다’ 고 했다고 전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며칠 후 바로 그 이웃이 낫을 빌리러 왔습니다. 아들은 당연히 빌려 주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하기를 "낫을 빌려 주라"고 하셔서 마지 못해 빌려 주었습니다. 낫을 가지고 이웃이 돌아가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항의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 저 집에서는 우리에게 빌려 주지 않았는데 왜 우리는 빌려 줘야 하나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저 집에서 빌려 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도 빌려 줄 수 없다는 것은 ‘복수’ 란다. 저 집에서는 빌려 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빌려 준다 라고 하면서 미운 마음으로 빌려 주면 이건 ‘증오’ 란다.
그러나 거절당했다는 것을 다 잊어버리고 깨끗한 마음으로 '그가 낫이 필요하다니까 빌려 준다'는 마음으로 빌려 준다면 그것은 ‘긍휼’ 이란다."
그가 어찌하였든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신앙을 지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예배를 지키고, 우리의 믿음을 지키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도 명장면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