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종주 9구간(산줄기 163일째)
일 자 : 2003년 4월 23일
구 간 : 아화고개 ~ 관산 ~ 어림산 ~ 시티재
날 씨 : 비
도상거리 : 24.2km
아화고개(4번국도) - 5 - 관산(△393.5m) - 5.9 - 한무당재 (909번도로)- 2.8 - 남사봉(468m) - 1.5 - 마치재(927번도로) - 1.6 - 어림산(△510.4m) - 7.4 - 시티재(28번국도)
산행시간 : 8시간 25분(휴식시간 포함)
비야 너는 왜 나를 울려...
창가를 스치는 빗소리가 잠을 깨운다. 예정보다 1시간 미루다가 식당에 내려간다. 주룩주룩 빗방울 소리가 을씨년스럽다. 저 비를 다 맞아야 하나, 말을 잊은 체 고개를 숙인 특공대원들, 허기지지 않으려고 그저 먹는다. 우의에다 스패츠까지, 그리고 디지털카메라, 녹음기는 비닐로 싸고 또 못 믿어 다시 한번 확인하다.

06시 50분 아화리고갯 마루, 어제 봐두었던 공사장 돌더미가 들머리가 된다. 미끄러운 절개지를 가까스로 올라 왼쪽으로 장송 숲으로 들어선다. 비 내리는 정맥길, 안개가 자욱하다. 솔잎 가득한 정맥길, 발바닥에 닿는 감촉은 그런 대로 좋다.
송전탑 건설현장이 온통 산을 파헤쳐 버렸다. 그래서 정맥이 울고 있나 보다. 좌측 아래로 공장 지대인지 만불사의 부속건물인지 안개로 분간이 안 된다. 철조망을 끼고 완만한 오름길이다. 특공대의 첨병 겸 선임하사 나선배님 한마디 “백두대간은 인간의 큰 꿈이고, 정맥은 인간이 정확하게 살아가기 위한 삶의 길잡이...”
07시 14분 한차례 가파르게 참나무숲길로 밋밋한 봉에 오른다. 이 곳이 만불산, 비까지 짊어진 특공대의 모습에서 진정한 삶을 찾으려는 참모습을 보는 듯하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을 것 같다.
6분 뒤 미끄러지듯이 내려서서 비포장길을 가로지른다. 왼쪽으로 올라서는 콘크리트포장길을 외면하고 능선에 올라서니 키 작은 잡목으로 복원된 산불지역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내 콘크리트길과 합쳐지는 정맥길이다. 그리고 잠시 후 능선분기점인 양계장 삼거리에서 노란색의 물탱크를 확인하면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우리의 첨병은...
잠시 내려서다 만나는 사료탱크, 이제 콘크리트포장길을 버려야할 시간이다. 오른쪽으로 임도를 따르다가 안부에서 잠깐 임도를 벗어나지만 한동안 임도를 걸어야 한다. 비 내리는 정맥의 숲은 고즈넉하다. 나뭇잎을 스치는 빗방울 소리, 산새의 지저귐, 넓은 공터에서 여덟 기의 묘지도 만날 수 있다. 오름길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고도를 높이기 시작한다.
08시 밋밋한 봉에 올랐다가 5분 뒤 안부에 내려선다. 어제 내내 특공대를 부르던 관산은 가까이 다가서도록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시 봉을 하나 더 넘고서야 관산으로 오르는 코가 닿을 듯한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된다. 정맥의 꽃들이 울고 있다. 덩달아 산새들도 울고있다. 나도 울고 있다. 비야 너는 왜 나를 울려 놓고 달랠 줄을 모르나...
08시 24분 묘지를 만나고 조금 더 올라선 곳이 커다란 묘지가 자리잡고 있는 관산이다. 무덤 속에 숨어있는 삼각점이 눈길을 끈다. 영천시 북안면과 경주시 서면 사이에 솟은 높이 393.5m의 관산은 갓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리 비가 온다해도 순간을 남겨야지, “자! 출발합시다.” 그리고 6분 뒤 정맥은 능선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급경사에 내리막길 시작된다. 비에 젖은 비탈길은 자칫 실수라도 해서 미끄러지기라도 하며 그대로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질 듯한 수직에 가까운 길이다. “ 조심 조심” 한없이 떨어지다가 길이 누그러지면서 뒤돌아보는 관산은 잠시 모습을 드려내지만 그 것도 잠시일 뿐...
소나무숲길로 오르내림이 시작된다. 솔잎이 비에 젖어 밟히는 촉감이 너무나 부드럽다. 운무에 가려있으니 눈뜬장님이나 진배가 없다. 새털같이 많은 날을 두고 하필 이런 날씨에 그러나 고개를 푹 숙인 체 말없이 걷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9정맥을 기필코 완주하겠다는 마음을 읽는다. 혹시나 후답자들이 정맥을 벗어 날까봐 꼬리에 꼬리를 물고있는 표지리본들, 그 중에 도중 하차를 했지만 잔디밭산악회 낙동정맥 1차 종주대의 흔적도 눈에 띈다. 만남은 좋은 것 좋은 부모,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배우자, 좋은 자녀 그리고 우리의 산줄기를 찾아가는 좋은 산 친구들...
09시 08분 돌무더기가 쌓여있는 옛 고갯길을 가로지른다. 낙동정맥은 다른 정맥과 달리 능선길을 벗어날 때가 많은 것 같다. 능선을 벗어날 때면 늘 확인해 보지만 헤쳐나갈 자신이 없어 우회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 묘지에 묘지, 한차례 긴 내림막길 끝에 다시 옛 고갯길(09:42)을 만난다.
옛 고갯길을 가로지르며 곱게 핀 철쭉군락을 헤쳐가며 오른다. 밭도 통과한다. 역시 철쭉꽃이 아름다운 좁은 봉우리의 능선분기점에서 정맥은 왼쪽이다. 7분 뒤 다시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며 안부에 내려섰다가 긴 오르막길 다시 오르내림...
10시 04분 삼각점(경주 412, 82년 복구)이 있는 364봉에 오른다. 능선분기점인 364봉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뚝 떨어져 안부에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다시 뚝 떨어지다가 콘크리트 계단으로 내려선 곳이 영천시 고경면과 경주시 서면을 가르는 한무당재(10:23)다.
한무당재를 뒤로 다시 계단길로 올라선다. 철쭉군락을 가르며 올라선 봉에서 다기 한차례 내리막길이 가팔라지는 듯하더니 이내 평탄해 진다. 좌측으로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평탄한 참나무숲길엔 낙엽이 수북하다. 좌측으로 차동차의 소음소리를 계속 들으며 걷는다. 돌무더기가 있는 옛 고갯길을 다시 가로지른다. 여기저기 베어놓은 나무들이 거치적거려 걸음이 더디다.
11시 11분 산판길을 따르다가 만나는 콘크리트임도, 임도 바로 아래로 산허리를 잘라 넓게 대지를 조성해 놓았다. 무엇이 들어 설려고 정맥을 이렇게? 미끄러운 진흙길을 통과하고 8분 가량 코가 닿을 듯한 오르막길을 올라 왼쪽으로 다시 참나무숲을 한차례 더 힘겹게 올라선 곳이 남사봉이다.
11시 24분 남사봉을 뒤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제법 여유롭다. 비는 언제나 멈출 것인가? 한동안 경사길로 내려서니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를 따르다가 임도를 버리고 오른쪽으로 낙엽이 수북히 쌓인 참나무숲길로 들어선다. 연이어 봉을 넘어 오른쪽으로 팍 꺾으며 내려선 안부에서 허기를 메꾼다. 비에 젖은 빵을 먹어 본 자만이 진정 정맥의 참 맛을....
11시 55분 10여분의 휴식시간 더 이상 한기를 느껴 지체할 수가 없다. 5분 정도 거리의 봉에 올랐다가 오른쪽으로 자동차의 소음소리가 반가운 고갯마루에 내려선 곳이 영천시 고경면과 경주시 현곡면 경계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이 서있는 927번 도로 마티재다. 남사재로 부르는 팀도 있다.
12시 02분 마치재를 뒤로 걸음을 재촉한다. 진달래밭을 가르며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오름길, 비는 멈추지 않고 내린다. 산 안개 자욱하다. 비에 젖은 무게까지 짊어진 특공대원들, 이익선씨 오후부터는 갠다고 하더니 어떻게 그럴 수가, 투정을 부려본다. 빛 바랜 준과 희의 리본 하나, 오르내림이 이어지다가 안부에서 너덜길로 돌밭봉에 올랐다가 다시 한차례 산딸기 군락을 가르며 오른다.
12시 44분 넓은 묘지를 지나 올라선 곳이 좁은 공터의 어림산(御臨山․510.4m)이다. 조선조 왕이 다녀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각점은 뽑혀 뒹굴고 있다. 어림산 정상에서 한국전쟁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경주시 안강 쪽이 훤히 내려다보인다는데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6분간을 머무르며 허기를 면해보려고 배낭을 뒤지지만 도시락은 비우지를 못한다. 수통의 물마저 그대로 남아 어깨만 짓누른다. 능선분기점인 정상에서 왼쪽으로 내려선다. 고도를 낮추기 시작하는 정맥, 경사가 누그러지면서 제법 넓은 길이 열리며 시야에 송전탑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신록의 계곡이 깊어만 보인다. 송전탑을 통과한다. 어림산에서 30분 거리의 안부를 가로지르고 연이어 봉을 넘는다. 송전탑을 통과한다.
13시 25분 능선분기점이다. 왼쪽으로 완만하게 내리막길이 된다. 4분 뒤 다시 능선분기점인데 이번에도 왼쪽으로 꺾으며 간다. 베어놓은 나무들이 거치적거린다. 흙비탈을 내려서니 옛 성황당 터였을 돌무더기가 나타난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에 만나는 잔디가 하나 없는 묘지가 비에 젖고있다.
오르내림 끝에 내려선 안부에는 녹슨 안내판 하나가 비스듬히 쓰러져 있다. 키 작은 잡목들이 꽉 들어차 있어 헤쳐나가기가 고역이다. 여름철 통과하는 정맥꾼들을 상상해 보며 걷는다. 따듯한 방바닥이 그립다. 옛날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로에 묻어둔 고구마가 익기만 기다렸던 그 시절을 아시나요. 군침이 돈다.
13시 59분 철조망이다. 철조망을 끼고 능선마루에 올랐다가 왼쪽으로 내려서다 보니 좌측아래로 고경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미끄러지듯이 내려서니 소로(14:12)가 나타난다. 좌측 굳게 닫친 철조망 안에 연초록 지붕이 보인다. 노간주나무를 스치며 올라선 봉우리에서 왼쪽으로 팍 꺾으며 다시 미끄러지듯이 내려선다.
연이어 봉우리를 넘으면서 좌측으로 고경저수지와 호반 위에 하얀 집, 그림이 너무 좋아 발걸음을 붙잡는다. 힘겹게 봉우리를 넘고 또 다시 넘는다. 그리고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을 헤치며 긴 오름길, 한없이 길게 느껴지는 오름길이다.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더 올라야 한다.
14시 50분 돌탑 있는 봉에 오른다. 호국봉이겠지 했는데 호국봉은 조금 더 올라야 만난 수 있다. 하얀 팻말에 고도 340m를 가리킨다. 한국전쟁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렸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 같다. 널리 알려진 안강․기계전투, 1950년 북한의 8월과 9월, 북괴군이 기계 - 안강 - 경주 - 울산 축선을 따라 부산으로 진출하려고 공세 해 올 때 아군 수도사단을 주축으로 한 제1군단이 북한군 제12사단을 경주 북방에서 완전 섬멸시킴으로서 낙동강 방어전의 최대 위기를 극복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하산하는 일만 남았다. 이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특공대원들,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10분 뒤에 통신탑이 서있는 SK기지국 통과, 그리고 내려선 곳이 시티재다. “이슬비가 오네 이슬비가 내리네 / 그 옛날을 되새기면서 / 이슬비가 오네 부슬부슬 내리네 / 님을 잃은 그 밤과 같이 / 비야 너는 왜 나를 울려 놓고 달랠 줄을 모르나 / 이슬비야 이슬비야 쉬었다가 가는 길에 / 행여 내 님 만나거든 이렇게 못 잊어 부르고 있다고 / 소식이나 전해 주려마”
15시 15분 영천시 고경면과 경주시 안강읍을 지나 포항으로 잇는 28번 국도, 중앙분리대가 설치된 4차선 건너편에는 안강휴게소가 자리잡고 있다. 달리는 운전자들의 보는 눈이 마치 “저 비에 미친놈들..., 그리고 미친×도 끼어있네”, 특공대들 한바탕 웃어본다. 영천시 고경면 청정리에 있는 현대가든에서 오리 세 마리를 저 세상으로 보냈고 현대가든에서 편안한 밤을 보낸다.














첫댓글 이 날은 우중산행 하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많은 공부하고 갑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거리립니다. 감사합니다^^
@수명산 좋은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상쾌한 아침 맞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