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말하지 않은 '삼성 백혈병'의 진짜 이유는?"
삼성 반도체 산재 유가족 "백혈병은 이겼지만, 나머지 희귀병은…"
기사입력 2011-06-24 오후 3:12:53
- 최초였다. 반도체 공장 노동자가 국내에서 최초로 백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았다. 상대는 삼성이었다. 주변의 만류와 "삼성을 이기려고 하느냐, 돈으로 합의하자"는 삼성 관계자의 회유도 뿌리치고 지난 4년 간 매달려 얻어낸 결과였다.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했다가 2008년 악성림프종에 걸려 투병했던 송창호 씨는 "주위 사람들은 삼성을 상대로 일부 승소한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들 한다"고 했다.
"백혈병 외에도 다른 희귀병 걸린 삼성 노동자 많아"
그러나 삼성 노동자와 유족 측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백혈병' 외에도 조명받지 못한 암이나 희귀병에 걸린 삼성 노동자가 많다는 것이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이종란 노무사는 "산재보험법에서 '백혈병은 벤젠에 노출되는 경우 산재로 인정한다'고 명시돼 있다"면서도 "그런데 뇌종양, 다발성경화증 등 나머지 질병은 관련 규정이 없어 산재로 인정받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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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5년 19살에 삼성전자 LCD 기흥 공장에 입사했다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한혜경 씨. 2005년 수술을 받을 당시 의사는 "종양 크기로 보니 7, 8년쯤 됐다"고 했다. 수술 받던 당시로부터 7년 전은 한 씨가 삼성전자에 근무하던 때였다. ⓒ프레시안(김봉규) |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씨는 납에 노출됐었는데, 납 노출로 이 병에 걸렸는지 의학적인 논란이 많아요.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했다가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질환에 걸린 피해자도 소송 중인데, 이런 건 아예 원인 불명이에요. 문제는 이런 식으로 병에 걸린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겁니다.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했던 유명화 씨, 이은정 씨도 각각 재생불량성 빈혈과 뇌종양에 걸렸어요. 올해 4월 7일 소송을 제기했죠."
이 노무사는 "첨단 전자산업에서 어떤 물질을 쓰는지는 몇 년이 멀다 하고 새롭게 바뀐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휴대전화기도 기종이 빨리 바뀌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자산업은 특히 생산 방식이 빨리 변한다. 작업 공정과 쓰이는 화학물질도 계속 바뀐다. 그런데 암은 아무리 못해도 수년 뒤에 걸린다. 이 노무사는 "빠르게 변하는 작업 공정을 현대 의학이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의학적 한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암에 걸리면 법원에서는 과거에 작업한 증거를 가져오라는데, 과거의 증거는 이미 사라져서 못 가지고 온다"며 "하지만 전자산업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은 다양한 암에 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노무사는 "산재 제도의 취지는 아파서 치료 때문에 생계가 거덜난 노동자에게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것"이라며 "그러려면 산재를 쉽게 지원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기준이 엄격하다"고 비판했다.
삼성 공장에서 일했다가 희귀병에 걸려 반올림에 접수된 사례는 지금까지 130여 건에 달한다. 그 중 산재를 신청한 사람은 18명이다. 나머지는 지난한 소송과정을 포기하거나, 합의금을 받고 문제 제기를 포기했다. 18건 중 계류 중인 사건 2건을 제외하고 16건은 모두 산재 불승인 처분을 받았다.
이 노무사는 "그밖에 유산, 불임, 기형아 출산과 같은 사례도 많다"며 "이는 모두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생식독성 물질 때문에 일어난 피해이지만, (다른 사례가 너무 심각해서) 유산은 아예 산재 신청 축에도 못 낀다고들 여긴다"고 말했다. 그는 "반올림에 문의하지 않은 피해 노동자는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앞으로 피해자들 갈 길 험난할 것"
지난 23일. 서울행정법원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이종란 노무사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소송을 제기한 5명 중 산재 신청을 불승인 받은 나머지 3명이 눈에 밟혀서였다.
"삼성이라는 곳. 삼성과 관련된 소송에서 약자가 이겨본 적이 없는 것을 따져봤을 때 일부라도 뒤집힌 점은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반도체 산업에서 처음으로 혈액암이 산재로 인정된 전례를 만들었으니까요. 이겼다는 게 대다수의 판단인데, 이번 소송은 증거가 많은 편이었는데도 5명 중 2명만 인정받았어요. 앞으로 피해자 갈 길이 험난하다고 생각하니…(눈물이 났다)."
삼성 반도체 온양공장에서 일했다가 2008년 악성림프종에 걸렸지만 패소한 송창호 씨는 "재직 중에 발병되면 삼성에서 손을 쓴다. 삼성 반도체에서 일했던 故 박지연 씨 같은 경우 재직 중에 삼성이 보상해서 합의 봤다"며 "나는 퇴사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명했지만, 일할 당시 도금공정에서 화학약품을 많이 다뤘다"고 말했다. 그는 상대가 '삼성'이어서 특히 힘들었다고 했다.
"그런 일(희귀병에 걸린 노동자)가 나온 건 어쩔 수 없는데, 삼성은 대응하고 관리하는 방법이 80, 90년대 옛날식 그대로 같아요. 사고가 났으면 인정할 건 해야 하는데 무조건 처음부터 아니라고 하니까. 그 당시에는 환경과 시대가 그랬으니 내가 병 걸린 건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지금 와서 당시 작업 환경을 재연할 수 없다고 해서 안전했다고 잡아뗄 게 아닙니다. 퇴사한 사람들은 그 당시 작업 환경을 다 압니다. 삼성이 당시엔 작업환경이 좀 안 좋았다고 인정해주면 되는데 아니라고만 하니까요."
"'삼성 백혈병'의 원인은 바로 무노조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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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일인 시위를 하는 정애정 씨. ⓒ프레시안(김윤나영) |
2006년 백혈병으로 남편 황민웅 씨를 떠나보냈지만, 이번 재판에서 패소한 정애정 씨는 이러한 삼성의 태도 때문에 올해 4월부터 삼성일반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 씨는 "노조가 없음으로써 현장 노동자에게 와 닿는 폐해는 너무 많다"며 "산재 싸움과 노조 만드는 싸움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노조가 없어서 이 많은 직업병 피해자가 나타났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 말고도 피해자는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더 생기기 전에 위험하다는 경각심을 노동자에게 일깨워주고, 시스템을 안전하게 관리해주는 노조가 있었으면 이렇게 많이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래서 노조와 연결이 필요하다고 절실히 느꼈어요."
삼성반도체 기흥공장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정 씨는 "왜 삼성 노동자들은 바보같이 당하나. 삼성이 개인지병으로 우기면 왜 그런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줄 아느냐"며 "삼성에서 노동자 의견을 대변할 조직인 노동조합이 없어서"라고 재차 강조했다.
정 씨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자신의 이익만을 보고 그 많은 노동자를 죽여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 '삼성'이라는 이미지에 맞는 기업가로서의 사명감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 국민이 바라보는 삼성의 이미지가 있는데, 당신의 나이의 반도 못산 젊은 노동자들을 유해물질에 노출시켜 죽여서는 안 되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첫댓글 국민들은 삼성 하면 전자제품을 먼저 떠올릴 것이 아니라 그것 때문에 스러져간 노동자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