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저녁 7시 서울 강남구 지하철 2호선 역삼역 구내. 바이올리니스트 장유진(20·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씨가 갑자기 뛰쳐나와 파가니니의 무반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곁에 있던 같은 학교 선후배 바이올리니스트 45명이 호흡을 맞추자, 음악은 금세 빠르고 흥겨운 '칼의 춤'(하차투리안 작곡)으로 이어졌다.
퇴근길로 바쁜 도심의 지하철 역사에 바이올린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지자, 영문을 모르고 지나치던 시민들도 바쁜 걸음을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남윤 교수를 사사하는 10~20대 차세대 바이올린 연주자 45명이 지하철역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펼친 것이다. 조선일보가 올해 클래식 음악을 우리 일상에 심기 위해 펼치고 있는 '우리 동네 콘서트'의 하나였다.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 같은 화려한 무대나 빛나는 조명은 없었고, 미리 녹음한 피아노 반주가 한구석의 스피커에서 울려 나올 뿐이었다. 하지만 이들 젊은 바이올리니스트의 연주가 서정적인 멘델스존의 '노래의 날개 위에'로 넘어가자, 시민들은 하나 둘 멈춰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 들고 연주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회사원 김용석(51·경기도 수원)씨는 "딸 같은 아이들이 연주하니 내 자식처럼 뿌듯하다"고 말했다.
역삼역은 하루 승하차 인원이 15만명이고, 출퇴근 때는 시간당 2만명에 이르러 서울 시내에서 두 번째로 바쁜 지하철역이 된다. 이날 공연은 현장에 걸린 플래카드 한 장 외에는 사전 홍보나 안내 없이 펼쳐졌지만, 한 곡 한 곡이 끝나면서 한겨울의 지하철 역사는 어느덧 근사한 연주회장으로 바뀌었다. 연주가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과 비발디의 '사계' 가운데 '겨울'로 이어지자 시민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터뜨렸다. 피부관리사 신현주(50·서울 상계동)씨는 "고단한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삭막한 줄만 알았던 지하철역에서 울리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니 피로가 싹 풀린다"고 했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지하철 게릴라 콘서트'는 매우 낯선 실험이었다. 고교 2학년에서 한국예술종합학교로 조기진학하는 옥유아(17)양은 "실내무대에서만 연주하다가 실외로 나오니 걱정도 많이 했지만, 반응을 즉시 느낄 수 있어 새롭고도 신난다"고 말했다. 마지막 곡으로 영화 '스팅'의 경쾌한 '엔터테이너'를 들려주자 시민들의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고, 다시 한 번 같은 곡을 들려주며 1시간 남짓의 지하철 콘서트가 끝났다. 인터넷 웹프로그래머 김은미(32·경기도 성남)씨는 "연주자들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보니 내가 연주하는 것만 같았다"고 했다.
지하철역과 학교, 병원과 도서관 등 생활 현장을 찾아가는 '우리 동네 콘서트'는 조선일보와 서울시향 주최, 서울문화재단·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한국메세나협의회 후원으로 열리며, 현대자동차와 삼성생명이 협찬한다.문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