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ink - Family Portrait
돈의 노예가 되어 폭력에 익숙해진 채 살아가면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평화로운 어떤 상태와 그것을 나눌 상대를 꿈꾼다.
혈연과 이해 관계와 도덕과 존재 이유 따위를 다 떠나
다만 곁에서 말없이 지켜주고 사랑해줄 그 어떤 대상
환란의 땅에서 생존 경쟁에 지쳐 돌아왔을 때..
부드럽고 따뜻한 눈빛만으로
'걱정 마, 난 널 무조건 좋아해' 라고 말해줄 그 누구..
그 이름을 '가족' 이라고 낮고 조그만 목소리로 불러보면 어떨까...
"나를 꼭 닮은 낯선 타인들" / 김별아
이런 글을 써도 되는 것일 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꼬박 꼬박 잘 읽고 이해를 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러는 아에 읽으려 들지도 않거나..
잘 읽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대놓고 비난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다.
따라서 가끔은 썼다가도 공개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는 일도 있었지만
그럴려면 왜 굳이 글을 써야 할까..??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결국은 글을 쓰는 일에서 마저도 마음 속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못하고
읽는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꾸미거나 가식(假飾)을 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그럴바엔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더 나을런지도 모른다.
어차피 진실되지 못하고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 억지로 다듬는 글이라면...
이젠 어느듯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주 5일근무가 일상화 되어버린 지금
사실상의 주말인 금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어제부터 그칠 듯 말 듯 하면서 질척거리고 내리는 비 때문인지
오늘도 왼종일 마트엔 눈에 띄게 손님이 적은 날이었다.
얼핏 생각하기엔 장사가 되 건 말 건..
우리같은 별 볼일없는(장사가 잘된다고 해서 상여금이나 성과급 같은 혜택도 전혀 없는)
사람들은 그저 맡은 일이나 묵묵히 잘하고 있으면 될 것 같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거의 형식적으로 매년 초 이루어지는 향후 일 년간의 도급 계약이지만
지난 한 해동안 관리상의 문제점이 여기저기 불거지고 말썽이라도 생기면
관리하는 점포를 빼앗길 수도 있으며(우리 회사가 시범 케이스로 올해 초 세 군데를 짤렸었다)
꼭 그런 일이 아니더라도 매출이 떨어지는만큼 우선 먼저 지출을 줄이다보니
매월 사용하는 자재비를 삭감한다든지 심한 경우 인원(직원 수)을 감소시키라는
지침이 내려오는 일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현장 대리인이자 관리자인 소장의 입장에서 보면
실로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마련일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과연 누구를 남기고 누구를 내보낸단 말인가..??'
썩그리 좋은 직장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나이 먹고 능력 없어서 좀더 나은 직장..
월급도 많고, 현재가 안정되며, 미래가 보장되는 직업을 구하지 못해서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먹기'로 남들 기피하는 더럽고, 힘들고, 궂은 일이라도 해서
근근히 목구멍에 풀칠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나마 이런 직장이라도 그만두라고 하는 것은 목줄을 짜르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가 사장도 아니고..
서울 본사 역시 스스로 결정지을 수 있는 일도 아니어서
무리한 요구라도 수용하고 재'계약을 하게 되어 그런 내용의 지침이
각 점포마다 공문으로 내려지면 달리 방법이 없을 터였다.
그러니 연(年) 말이 될 때 마다 내심 그런 일에 대한 걱정 근심으로
나는 혼자서 남몰래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다.
아무튼 장사가 안되니 매장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느낌이 들기 마련이고
더더구나 입점 업체 이곳 저곳에서 흘러나오는 한숨소리에 땅이 꺼질 지경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트에 들어와 장사하는 조건으로 매출에 대한 일정 수수료를 주기로 했건
아니면 매출과는 관계없이 매달 일정한 금액의 임대료를 내기로 했건 간에
장사가 안되면 자칫 인건비와 함께 임대료까지 덤태기로 그야말로 '쌩(생)돈'을
내놓아야 할 판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보니 그런 점포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마음도 편할 리 없다.
정식 직원도 별다를 건 없겠지만 누구보다도 그 때 그 때 필요할 때 마다
일정기간 홍보와 판촉을 겸한 일종의 고객들에게 판매를 권유하는 행사직원들이
마치 바늘방석에 앉은 듯 좌불안석이 되고 만다.
내 천성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힘없고 나약한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더 마음을 쓰게 되곤 했다.
(물론 게 중에는 본인이 필요해 의해 보수가 적어도 일부러 파트타임을 원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래서 가끔 스쳐지나는 길에 얼핏 눈에 띄는 것이라도 있으면
오늘처럼 무척 장사가 안되는 날은 하나쯤 팔아줄 때도 있었는데..
그런 내 마음을 잘 아는 일부 직원들이 꼭 팔아달라서가 아니라(평소에도 인사를 잘 하니까)
푸념 삼아 한마디 툭!하니 던질 때도 종종 있었다.
(허긴 뭐 팔아주고 싶어도 막상 내 형편이 자라가고 또 꼭 필요해야만 살 수가 있는 것이지
마음만 가지고 물건값을 지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괜스레 마음만 짠~할 때도 있기는 하다)
퇴근 무렵 1층 매장에서 3층에 있는 사무실로 올라오기 위해 2층 매장을 돌아오는데
무빙워커 올라오는 끝부분에서 일산(日産) '쉬크'면도기 행사를 하는 젊은 여직원이
어깨가 축쳐진 모습으로 힘없이 인사를 건낸다.
'왜 그렇게 힘이 없어.. 또 장사가 안되서 그런거야..??'
아직 갓난애기가 있어 오래 근무를 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금요일부터 토'일요일까지
주말 사흘을 오후 1시부터 밤 11시까지만 일을 한다는 그녀는 억지로 웃어보이는 듯한 표정으로..
'네.. 오늘은 장사가 안돼도 너무 안되네요.
아직도 제 밥값도 못했어요."
행사직원 같은 경우는 그런 일이 자주 발생되거나 지속되면
점주(店主)가 즉시 사람을 바꾸곤 하기 때문에..
자칫하면 그나마 그런 임시직 아르바이트 일자리라도 잃을 수가 있었다.
"그래.. 어쩌지.. 큰일났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뭐 도울 힘도 없고... 쩝!"
열심히 살아가는 젊은네들을 보면 난 항상 내 아이들이 생각나서
왠지 마음이 편치 않곤 했다.
저녁 7시 조금 넘어서 옷을 갈아 입고 퇴근하는 길에..
평소처럼 이젠 3층부터 거꾸로 매장을 한바퀴 점검차 돌아보면서 내려갈 때였다.
의류 매장의 TSL(넥타이와 셔츠 전문 브랜드)에서 가격 인하 행사를 하던
여직원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녀 역시 정직원은 아니어서 눈에 띄다 말다 하는 편인데..
나를 볼 때마다 곧잘 인사도 했지만 얼마 전에는(마트 부근이 집인 것 같았다)
쇼핑을 나온 어머니를 마침 곁을 지나치던 내게 인사를 시켜준 적이 있었다.
그 뒤 그녀의 어머니는 마트에 나올 때 마다 마치 일부러 나를 찾은 사람처럼
민망스러울정도로 공손하게 인사를 하곤 했었다.
얼핏 봐서도 나보다는 연세가 한참 더 많아보이시는 분이신데 말이다.
그런데 그녀 역시도 오후에 교대를 받았는데(그런 경우 밤 12까지 근무한다)
아직 개시도 못했다고 울상을 짓는다.
그쯤되면 나는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한다.
아니.. 뭐 복잡할 것도 없을만큼 내가 하는 행동은 이미 '뻔 할 뻔자'가 되고 만다.
결국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예정에도 없는 셔츠 한 장을 샀다.
유명메이커도 아니고(예전 같으면 거들떠도 안봤을) 그래서 아주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그 것도 다 지난 얘기지 지금의 내게는 언감생심 우습게 볼 금액은 아니었다.
마침내 그렇게 일은 또 저질러지고 말았다.
옷을 사들고 2층으로 내려오던 길 조금 전 지나친 면도기 행사직원과 다시 마주 쳤다.
어디 피하거나 돌아 갈 길도 없고(어차피 그럴 마음도 없었을 것이었다)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말을 건네고 말았다.
"저녁 식사는 했어..??"
"네.. 조금 전에 먹었어요.
마음이 안편해선지 밥도 잘 안넘어가든걸요..."
'젠장~'(속으로)
처음엔 그냥 한 세트만 팔아 줄 심산이었는데..
문제는 난 일상용품을 한 개씩 필요할 때 마다 낱개로 사는 성격이 아니어서
아직도 집에는 한참동안 더 쓸 수 있는 면도기가 남아 있었고
오래 전부터 다른 메이커인 질레트(미국산)중 한 종류를 사용해서
쉬크는 써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가 언뜻 서울서 직장을 다니느라 혼자서 생활하는 준식이 생각이 났다.
그렇잖아도 어제 막내 준혁이에게 필요할 이런 저런 것들을 한보따리 사서 소포로 부치며
마음 한 켠에 큰 아이 준식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었다.
지난 시절엔 오히려 막내가 제 형(兄) 뒷전에 가려서 제대로 챙겨받지를 못했었는데..
내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사정이 뒤바뀌는 바람에 이젠 막내 때문에 뒷전으로 나앉아
아무 것도 챙겨주지 못해던 아이였다.
마음 잡고 다시금 공부해 자격증을 따고 어렵사리 취직을 했다지만
객지 그 것도 서울에서 홀로 소문에 듣기로는 얼마되지도 않은 봉급 받아서
당장 앞가림하고 살기에도 힘이 들겠지만 못난 애비가 되서 아무런 힘도 되어주지 못하니
그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하던 터였다.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고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가오는 19일 할아버지(내겐 아버지) 제삿날 올 수 있느냐고 먼저 물었더니
당연히 내려올 거라고 대답을 한다.
벌써 4년 여 일부러 나를 피하던 아이였다.
예비군 훈련 때문에 대구집에 내려와 있다가도 내가 내려가면..
집을 나가서 밖에서 자곤 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했었는데
저번 처조카(준식이에겐 이종사촌 누나) 결혼식날 만나고 난 뒤부터
내가 간간히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해왔었다.
(그 이야기는 얼마 전 '가슴으로 키운 자식'에 자세히 나와있다)
마침 새로 개봉한 영화 '아바타'의 50% 할인권이 사은품으로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두 명이 가면 한 명은 무료라는 말이다)
큰 아이는 유난히 영화를 좋아한다는 것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한 세트를 사들고 내려오다가 마음이 변해서 다시 올라가
한세트를 더 사고 말았다.(참고로 한 세트당 가격은 21,500원이다)
여자친구가 있으니 둘이 함께 공짜(엄격히 따지면 공짜는 아니겠지만)로 영화를 볼려면
두 세트를 사야만 했고 이왕 팔아주는 거 조금이라도 더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지도 않았던 돈 10만 원을 후딱 날리고 난 뒤..
어슥한 아파트 담장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다.
며칠 전에도 농산 청과 파트의 실장이 장사가 안된다고 밀감 반짝 할인 행사를 하면서
조금 팔아달라길래 무려 열 박스나 사서 우리 직원들 4박스 갈라 먹이고(주'야 2박스씩)
나머지는 우리같은 협력업체랑 식당 아주머니들 나누어 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 때도 나는 10상자에 얼마라기 보다는 그냥 한 상자에 3천원이라는 생각만 했었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렇게 돈에 대한 개념이 분명치 않을 때가 많았다.
내 딴에는 나름대로 철저(?)하게 알뜰살뜰하게 산답시고..
입 맛 없어도 국밥 한그릇 사먹는 돈도 아끼며 정말 마음 안내키는 직원 식당에서
대충 몇 숟갈 떠서 저녁 식사를 해결하고 뭐만 사면 나는 온통 증정품으로 생활하고..
정작 본 상품은 대구집이나 막내에게 보내기 바쁜게 현실이었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누가 조금만 어렵고 힘없어 보이면 그냥 못 본채 지나치지 못하고
덜렁 대책도 없는 짓을 저지르는 바람에 다음 월급날까지..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서 속으로 끙끙 앓기가 다반사였다.
'에구.. 이 달엔 큰 모임 2개에 결혼식 2건 아버지 제사까지 있는데...'
'도대체 언제나 돼야 철이 제대로 들어서 돈에 대한 개념이 생길까..??' 싶었다.
마땅히 입을만한 옷이 없던 차에 셔츠 한 장 사고..
큰아이 준식이에게 꼭 필요할 면도기를 샀으니 헛 된 돈 썼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가끔 그렇게 즉흥적이 되어버리거나 몇 천 또는 몇 만 단위에 대한
확실한 감각을 까맣게 잊어버리곤 한다는 게 예삿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안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