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거룩하고 복된 주의 날에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랑하는 성도님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말씀의 제목은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려면”입니다.
악기는 연주하기 전에 조율을 합니다. 연주하기 전에 조율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한 번 조율하면 1~2년도 가는 악기도 있지만 기타는 칠 때마다 조율해야 합니다. 조율이 안 되어 있으면 연주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악기라도, 아무리 좋은 연주자라도 조율이 안 된 악기로는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악기는 어디서, 어떻게 쓰이든 조율이 되어 있어야 제대로 쓸 수 있습니다.
테니스 대회에서 세계 4대 메이저 대회중 하나인 영국의 윔블던 테니스대회가 보통 6월 말에 개최되는데 한 번의 대회를 위해 1년 동안 테니스장을 관리합니다. 한 해 동안 잘 보존해서 한 번 대회를 치릅니다. 아주 특별히 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 입성할 때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어린 나귀를 끌고 와 타셨습니다. 주님을 태우고 간 어린 나귀도 귀하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이왕 하나님께 이렇게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악기도, 동물도 다 주인의 뜻대로 쓰임 받거늘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우리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쓰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각 종류의 그릇과 같다고 했습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 은 그릇 뿐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종류대로 쓰임 받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리 금 그릇, 은 그릇이라 해도 깨끗해야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은 쓰고 싶어도 쓸 수 없고 다시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비우고 깨끗이 씻어야 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놓인 다양한 그릇입니다. 토기장이이신 주님이 뜻한 바대로 우리를 빗어놓았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쓰임받기 위해 준비된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왜 나를 금이나 은이 아닌 질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왜 나를 이렇게 작은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혹은 너무 큰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에 발이 말하길 왜 나를 손으로 만들지 않고 발이 되게 했느냐고 할 수 없습니다. 코가 왜 나를 귀로 만들지 않고 코가 되게 했느냐고 하면 콧대가 높은 것입니다. 고전12:17입니다.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각각 필요한 대로 재능을 주시고 능력을 부여하셨습니다. 문제는 아무리 아름답고 빼어난 그릇이라도 깨끗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많이 배우고 지식이 많은 자를 반드시 들어 쓰지 않습니다. 신학대학교에서 설교에 대한 책이 가장 많이 소개되고 팔리고 있는 것이 영국의 찰스 스펄전 목사의 책들입니다. 이분의 별명이 ‘설교의 황태자’입니다. 이분은 16살에 농업학교를 나온 것이 학력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부르셔서 당시 런던에서 가장 귀한 설교자로 세워주셨습니다. 그에게 학력도, 재력도, 명예도, 권세도 없었지만 하나님이 그를 들어 쓰실 때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이 된 것입니다. 존 버니언은 학교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지만 그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 그의 설교를 들으려고 대학교 총장도 찾아올 정도였습니다. 그가 쓴 ‘천로역정’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세계 4대 문학의 한 권이 되었습니다. 영어책이 최초로 한글로 번역된 대단한 책입니다. 읽어보셨습니까?
미국의 D.L.무디 목사님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 수선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은혜 받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전도하자 수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디 목사님의 전도를 받고 구원받은 사람이 족히 백 만 명은 된다고 합니다. 박사학위 서너 개 가지고 있는 목사들도 못하는 일을 무디 목사님이 하신 것입니다. 미국 기독교 역사에서 아직까지 무디와 같은 인물이 나오질 못했다고 합니다.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중에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인 전투를 앞두고 기도실로 들어가자 참모가 부탁합니다. “각하,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이때 링컨 대통령은 대답합니다. “아니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게 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네.” 링컨 대통량은 하나님이 내 편 되어 달라는 기도를 드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링컨 대통령은 미국 역사에만 아니라 세계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꼽힙니다. 링컨 대통령을 연구하여 쓴 책만 오천 권이 넘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으로 백악관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입니다. 그런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2년 중퇴가 전부입니다.
고전1:26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무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지혜로운 자라고 하나님께 다 쓰임 받는 것이 아니고 강한 자라고, 재력 있는 자라고 쓰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천하고 약하고 멸시 받는 자들을 택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비록 지혜와 지식이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각각 필요에 따라 쓰시기를 원하는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러운 대로 쓰시는 것이 아니라 본문의 말씀처럼 먼저 자기를 깨끗이 해야 쓰는 것입니다. 어떤 악기든지 조율이 되어 있어야 연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깨끗이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1.‘깨끗하다’는 것은 먼저 ‘더럽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깨끗하다’는 원어 ‘엑카다레’는 ‘불결한 것을 제거하여 청결하게 하다’입니다. 씻고 닦아서 깔끔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러움에서 분리되는 것이 청결입니다. 청결, 깨끗함을 세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외적인 청결과 내적인 청결, 그리고 청결한 삶입니다. 집이 깨끗한 것은 정리정돈을 잘 하고 청소를 잘 하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하여 수시로 쓸고 닦고 씻어서 반짝반짝 빛이 나고 옷도 깔끔하여 지저분하지 않는 것은 외적인 청결입니다.
내적인 청결은 마음이 청결한 것입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한 마음을 갖고 사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이중적이지 않는 것입니다. 때 묻지 않고 변질되지 않은 영롱한 아침 이슬 같은 마음입니다. 이런 분이 계십니까. 청결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청결한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람입니다. 청결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집만 깨끗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며 정직한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남을 속여 부정한 이익을 취하지 않고 진실하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청결한 마음과 청결한 삶이 분리되지 않습니다. 분리되면 외식하는 것이고 분리 안 되면 좋은 모델이 됩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은 깨끗한 사람입니다.
청결한 자, 깨끗한 자에게 하나님은 약속합니다. 욥 8:6에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그냥 창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청결하고 정직하라고 말씀합니다. 청결하고 정직한 자에게 주신 약속입니다. 마 5:8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외적인 청결도 당연하지만 무엇보다 내적 마음이 청결하고 생활이 청결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2.‘깨끗하다’의 더 깊은 의미는 ‘거룩하다’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단지 깔끔함이 아니라 ‘죄와 분리되다’, ‘죄악과 단절하다’라는 말입니다. 즉 성결함입니다. 성결한 삶이란 죄악을 품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속에 살아도 세상과 연합하지 않는 것이 성결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 관점, 유행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고 동행하여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깨끗함이란 정직하고 진실함을 뜻합니다. 양심에 거슬리지 않는 바른 삶을 산다면, 윤리도덕에 어긋나지 않는 삶이면 깨끗한 삶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깨끗함이란 우상을 섬기지 않고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는 이것이 깨끗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일 안 지킨다고 깨끗하지 않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에는 거룩함을 깨어버리는 것으로 깨끗하지 못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상에게 절한 음식을 더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에는 아무리 진수성찬 같아 보여도 하나님은 이를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재물을 사랑하고 쾌락을 즐기고 풍류를 쫓아가는 것을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거나 마음 두는 것을 바르지 않다고 합니다. 깨끗하지 않다고 합니다. 한 남자가 두 여인을 사랑할 수 없듯이 우리가 두 마음을 품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추하고 악하고 더러운 것에 생각을 빼앗기지 말고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잠4:23입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하나님의 쓰심에 합당하려면 거룩함, 깨끗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거룩함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구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가 거룩함을 유지하고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이 쓰시기에 합당한 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늘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주님의 선한 일에 쓰임 받는 자녀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