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이의 햇순이 돋아났네.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분을 동정녀가 낳으셨네. 하느님은 가장 낮은 것과 가장 높은 것을 당신 안에서 화해시켜 평화를 이루셨네.”(입당송)
순교자들의 보여주신 신앙과 삶을 기억하며 순교 성인들을 기억하는 순교자 성월인 9월 첫 토요일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이 미사 안에서 듣게 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 말씀의 시작이 오늘 독서의 이사야서의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아하즈 임금을 찾아가 하느님이 임금에게 내리는 말씀을 전하는데, 그 말씀이란 다름 아닌 임금을 위한 표징을 청하라는 하느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당신이 선택한 이스라엘 임금 아하즈에게 표징을 통해 구원의 선물을 내릴 것이니 그에 합당한 표징을 청하라고 예언자가 말을 전하자 놀랍게도 아하즈 임금은 그 청을 거절합니다. 아하즈는 이렇게 말합니다.
“저는 청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시험하지 않으렵니다.”(이사 7,12ㄴ)
언뜻 감히 주님을 시험할 수 없다는 겸손과 겸양의 표현처럼 들리는 아하즈 임금의 이 말은 사실 하느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거부하는 임금의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의 표현입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던 하느님이 예언자를 보내 그에게 다시 한 번의 기회를 주지만 결국 임금은 이 대답으로 하느님을 분노하게 만들고 예언자는 그 같은 하느님의 분노를 전하며 그에게 주어질 표징을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이사 7,18;8,10)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사야 예언자의 이 예언을 전하는 오늘 제 1 독서의 말씀은 복음의 말씀으로 그대로 이어지며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한 그대로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낳은 아들 예수와 그 어머니의 마지막 함께 하는 장면을 오늘 복음은 전합니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이 전하는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는 예수님의 최후의 모습으로 오늘 복음 말씀 속의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마지막 대화의 모습은 요한복음사가만이 전하는 예수님의 최후의 모습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통 중에 죽음의 순간을 맞게 되는 순간,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 요한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씀은 남기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
십자가 위에서 극한의 고통 중에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예수님이 최후의 순간 사랑하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를 부르시고 그 둘을 서로 모자의 관계로 이어주시는 복음의 이 모습은 사실 다른 공관복음이 전하는 않는 요한복음사가만이 전하는 예수님의 최후의 모습으로서 실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일 실제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면 다른 공관복음의 복음사가들도 그 순간을 자신의 복음서 안에 반드시 기록해 놓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요한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최후의 순간, 요한복음을 기록한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 요한 자신의 특별한 위치와 성모님과의 각별한 관계성을 드러내고자 이 부분을 복음서 안에서 삽입해 넣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다른 공관복음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 대목을 자신의 복음서 안에 집어넣으면서까지 드러내고자 했던 예수님의 메시지, 예수님의 모습은 과연 무엇일까?
오늘 복음환호송이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줍니다. 오늘 복음환호송은 이렇게 말합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복음환호송)
복음환호송의 이 말씀처럼 성모님은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죄인의 모습으로 참혹하게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신 분이십니다. 자식의 죽음을 견뎌내어야 하는 부모의 고통을 가리켜 참척의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장기가 끊어지는 고통, 단장지애의 고통이라고 표현되는 사랑하는 자식의 죽음을 견뎌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 그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으며 감히 공감한다고 말할 수도 없을 정도의 극한의 그 고통을 성모님은 아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들과 함께 그 죽음의 고통을 감내하고 견뎌내며 아들의 죽음의 순간을 함께 맞이하십니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아야 했던 아들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가 견뎌내며 또 앞으로 견디어야 할 고통의 무게가 마음 아프고 시려 자신의 죽음의 순간,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눈에 밟혀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맡기고 최후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의 이 모습은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어머니를 잊지 않고 그 어머니를 걱정하며 어머니를 위해 자신이 해야 할 바를 충실히 수행하는 아들의 어머니를 향한 극진한 사랑의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요한은 바로 예수님의 이 모습,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하여 어머니를 위한 사랑을 완성하는 아들의 모습을 나타내고자 자신의 복음서에 이 마지막 장면을 넣어두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한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나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서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몸소 보여주시고자 한 생을 다하고 마지막 순간 십자가 위에서마저도 그 사랑의 완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바를 다하시는 모습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은 이와 같이 우리를 사랑해주시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그 사랑은 예수님의 어머니 성모님을 통해 모든 교회에 전달되어지며, 성모님은 지금 이 순간도 천상의 나라에서 우리 모두를 위해 어머니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기도하고 간구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월 첫 토요일 성모신심미사를 봉헌하며 사랑하는 어머니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그분의 간구를 통해 우리 삶의 매 순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가득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자신의 목숨을 바치며 신앙을 증거한 순교자 성월, 성모님을 기억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오늘, 특별히 순교자의 믿음을 본받아 십자가 아래에서 죽음 없이 순교한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 사랑 가득한 나날 보내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동정 성모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당신은 주님의 십자가 아래서 죽음 없이 순교의 월계관을 받으셨나이다.”(복음환호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