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산 골프장 문제는 양날의 칼이었습니다.”
골프장 반대 운동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문득 제게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양날의 칼” 이제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단순히 교회 밖에 대고 외치는 소리만은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미산 골프장 반대운동이 생명과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사회정의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어 가고 있을 때, 그 운동은 교회 안팎에 대고 동시에 외치는 소리로 바뀌어야 하고 그 메아리는 점점 더 커질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원교구는 미산 골프장 반대운동을 하면서 스스로도 깨어나고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이 기뻤습니다.
주위의 몇몇 분들은 “교회 안에 정의를 먼저 바로 세우고 그런 일을 해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의 정의를 세우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 신앙생활과 사회 복음화를 위한 사도적 소명이 언제나 함께 가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와 밖에서 정의를 세우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그 사람의 몫이 있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본당사목에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청소년 사목에 자신의 특별한 성소를 인식하듯이 교회 안의 정의롭지 못한 모습에 더 아파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더 노력하고, 또 세상의 성사로서의 교회라는 부분에 부족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일에 더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로를 비난할 일도 아니고, 어느 것이 먼저 가야 한다고 주장을 내세울 필요도 없이 함께 서로의 필요성을 존중하며 함께 가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경기도와 수원시의 이러저러한 관계가 혹시나 틀어져서 불이익을 당하거나 좋은 뜻으로 하는 일들이 어려움을 겪거나 하면 어찌될까 노심초사하며 골프장 반대운동에 염려의 시선을 보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정말 좋은 뜻으로 하는 일들이 그런 경우에 닥쳐서 틀어지거나 이번 일로 인해 천주교회에 대한 적개심이 생긴 공무원에 의해 난관에 부딪치게 되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골프장 반대운동이 양날의 칼이었다는 생각은 여기에도 포함됩니다. 성지개발과 성전 건립 등 수원교구가 이제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해나갈 많은 일들에 대해서 한층 더 투명하고 적법하게 해나가야 하는 무거운 의무를 지게 된 것입니다.
경기도가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미산 골프장의 조건부 승인을 취소하고 그 심의 건에 대해 부결한다는 소식을 들은 날 공교롭게도 몇몇 뜻있는 신부들과 함께 경인운하 예정지를 탐방하고 교육을 받기로 한 날로 이미 한 달 전부터 정해진 날이었습니다. 경인운하를 위해 폭을 더 넓히고 더 깊이 파놓은 굴포천 방수로 위의 교각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서해와 한강의 역사적 만남” 함께 갔던 신부와 농담으로 그 문구를 바꾸어 보았다. “탐욕과 무지의 비극적 만남” 돈과 공권력이 결합하면 불가능한 일이 없어 보이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미산 골프장 부결 소식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교회 내적으로도 복음정신으로 스스로를 통찰하고 사회복음화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