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을 각각 대표하는 과일을 든다면 서양은 사과, 동양은 복숭아라고 할 수 있다. 사과는 발칸반도가 원산지다. 서양의 신화나 생활의 상징과일로 사과가 자주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희랍신화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발칸반도는 지리적으로 그리스에 인접해 있는 곳이다. 지금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 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많은 국가가 이 반도 주변에 걸쳐 있다.
이에 비해 복숭아는 중국이 원산지로서 베트남 북부에 있는 중국 곤명시 일원이 복숭아의 원산지라고 한다. 중국에는 그 외에도 복숭아 과수원이 흔하다고 한다. 베이징 일원에도 많은 복숭아 나무가 있다고 한다. 동서양의 이들 지역이 고대 문화를 주도하는 지역이었고 그들이 주변에 흔한 과일을 상징으로 활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고대 서양문화는 지금의 발칸반도와 그리스 로마 일대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당연히 그 지역에서 흔한 과일인 사과를 모티브로 한 많은 교훈과 신화가 탄생했고 이는 그 지역 후세 사람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으로 아담과 이브의 사과, 트로이 전쟁의 서막을 연 '파리스'의 사과, 윌리엄텔의 사과, 백설공주, 뉴턴의 만유인력, 스피노자의 사과 등을 들 수 있다. 영어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 무엇을' 두고 'Apple of one's eye' 라고 하고, 부전자전(父傳子傳)의 의미로 'The apple does not fall far from the tree' 라는 표현도 그 일환이다.
동양에서는 유비, 관우, 장비가 맺은 도원결의, 무릉도원, 여도지죄(전국시대 미자하와 위령공), 손오공, 동방삭, 예(羿)의 제자 봉몽, 몽유도원도, 동요 '고향의봄' 등에서 복숭아가 등장한다. 특히 제사상에는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 풍습이 있다. 그 이유는 예의 제자 봉몽에서 유래 했다는 설이 있다. 예(羿)는 고대 중국신화에 천하제일의 활쏘기 달인인 궁신(弓神)이었다. '봉몽' 이라는 자는 예(羿)에게서 활쏘기를 배운 수제자인데 자신이 활쏘기 1인자가 되고 싶어서 스승인 예(羿)를 죽이는데, 이 때 복숭아 나무로 만든 몽둥이로 스승을 때려 죽였기 때문이다.
예(羿)는 본래 천신(天神)이었기 때문에 신(神)도 죽이는 복숭아 나무니까 제사상에 올리면 안되는 것이다. 지금도 무당이 귀신을 쫒을 때 복숭아 나뭇가지를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주자가례'에 보면 복숭아를 제사상에 올리지 말라는 말이 없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지역에 따라 부분적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이 분명하다.
명리학적으로는 도화살(桃花煞)이라는 것이 있고, 함지살(咸池煞)이라는 것이 있다. 도화살은 널리 알려져 있고 함지살은 사실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른다. 도화살이라는 것은 복사꽃살(煞)이라는 뜻이다. 복사꽃은 봄에 피고, 꽃이 잎보다 먼저 나온다. 복사꽃은 아름다우며 그 열매인 복숭아의 모양과 분홍빛 색깔에서 이성문제, 유흥, 사치낭비를 대표하는 과일로 자리 잡았다.
요즘 명리를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도화살과 함지살을 동일시 한다. 그러나, 도화살과 함지살은 엄연히 다르다. 보통 도화살이 있다고 하면, 끼가 많은 사람, 주색잡기에 능한 사람, 미모가 있는 사람, 바람둥이 등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고 함지살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 둘을 엄밀히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도화살이 대중으로 부터 인기가 많거나 미모나 치장하기를 좋아하고 주색을 즐기며 다정다감하고 바람둥이 기질을 보인다면 함지살도 풍류를 즐기고 미모가 있으며 음란 하고 낭비하는 습성이 있으며 여자는 애교가 남 다르다. 따라서 도화살이나 함지살이나 외견적으로 드러나는 성정이나 행태에서는 구별하기 어렵다. 사주 구조에 따라서는 예능적 소질을 보이는 경우가 흔한데 이 부분도 도화살이나 함지살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도화살과 함지살은 그 성정이나 행동양식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지만, 그 작용력이나 구성 조건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함지살이 도화살보다 한 층 강한 도화적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도화적 성향인 미모, 끼, 다정다감, 풍류, 주색잡기, 기타 사치낭비하는 성향, 성적 개방성 등의 면에서 함지살이 더욱 강렬한 면모를 보인다.
도화살과 함지살의 의미가 비슷한데, 유흥이나 미모, 풍류, 이성관계의 복잡성 등과 관련된 신살에 왜 도화살이라고 이름을 붙였는지는 정확한 근거가 없다. 다만, 도화(桃花)는 복숭아 꽃이라는 의미가 있고 잘 익은 복숭아는 어린 여자의 엉덩이와 닮았다는 점에서 주색이나 풍류, 끼, 음란성 등으로 연결하는 듯하다.
함지살이라는 것은 전한(前漢, BC1세기 경)시대의 회남자(淮南子) 라는 백과사전에 그 내용이 나온다. 태양신(神)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서산 뒤로 지면 서산 너머에 전설상의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의 이름이 함지(咸池)다. 태양신이 이 연못 주변에서 선녀들과 목욕을 하면서 음주 가무를 즐긴다고 하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 유흥이나 주색잡기는 강이나 호수 근처에서 많이 일어난다. 지금도 유명 유원지는 반드시 주변에 호수나 연못이 있는 경우가 많다.
도화살의 구성 방식을 보면, 사주의 년지 삼합(三合)구조에서 생지(生地)의 다음 글자가 도화살이 된다. 범띠, 말띠, 개띠생이면 卯목이 사주에 있으면 도화가 된다. 뱀띠, 닭띠, 소띠라면 사주에 午화가 있으면 도화살이 되고, 돼지띠, 토끼띠, 양띠생은 사주에 子수가 있으면 도화가 되고, 원숭이띠, 쥐뛰, 용띠생은 사주에 酉금이 있으면 도화살에 해당된다. 일주를 기준으로 도화살을 살피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 일지를 기준으로 위의 글자들이 있는지 살피면 도화살의 존부를 알 수 있다.
함지살의 구성방식은 도화살과 다르다. 함지살은 사주의 년지(年支)가 돼지띠, 토끼띠, 양띠면 사주에 壬子가 있을 때 함지살이 성립한다. 년지가 인오술(寅午戌)중의 하나라면 사주에 丁卯가 월주, 일주, 시주에 있으면 함지살이 된다. 년지가 사유축(巳酉丑) 중의 하나라면 甲午가 월일시주에 있으면 성립하고, 년지가 신자진(申子辰) 중의 하나라면 사주에 乙酉가 있으면 함지살이 성립한다. 이렇게 보면 도화살 보다 함지살이 훨씬 성립 조건이 까다롭고 범위도 좁다.
함지살은 기본적으로 년지가 木국의 일원이면 욕지에 해당하면서 납음오행이 木에 해당해야 성립한다. 예를 들면, 년지가 해묘미(亥卯未) 중의 하나라면 子수가 도화살에 해당한다. 지지에 60갑자 중에서 子수가 있으면서 납음오행으로 木에 해당하는 것은 壬子(상자목) 뿐이다. 이런식으로 따지면 년지가 인오술(寅午戌)중의 하나라면 욕지가 卯목이 되고 인오술은 火의 삼합이므로 지지에 卯가 있으면 납음오행이 火에 해당화는 간지는 丁卯(노중화)가 함지살이 된다. 년지가 사유축(巳酉丑) 중의 하나면 午화가 욕지가 되고 사유축은 金국이므로 납음오행으로 金에 해당하고 지지에 午가 있는 간지는 甲午(사중금)가 함지가 되고, 년지가 신자진(申子辰) 중의 하나면 酉금이 욕지에 해당하고 신자진은 水국이므로 지지에 酉금이 있으면서 납음오행으로 水에 해당하는 것은 乙酉(천중수)가 함지살이 된다.
이렇게 함지살은 도화살이면서 동시에 납음오행까지 년지 삼합과 일치해야 하므로 그 성립 조건이 까다롭고 범위도 좁다. 그 대신에 함지살이 있게 되면 도화성이 강력하게 드러날 수 있다. 즉, 주색잡기, 바람둥이 기질, 실패, 낭비, 사치, 음란성 등이 강렬하게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함지살을 고서에서는 패신(敗神)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 볼 때, 사실 과일로서는 복숭아가 그리 친숙한 과일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마 '감(Persimon)'이 가장 친숙한 과일이 아닐까 싶다. 늦 가을에 시골을 가면 대부분 감나무 꼭대기에 감 몇개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까치밥'이라는 것이다. 동물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가장 한국적인 문화의 단면이다. 그리고 사과나 복숭아 나무는 집집마다 있지 않지만 감나무는 집집마다 있다. 복숭아 보다 훨씬 친숙한 과일이 '감'인데 왜 복숭아가 자주 등장할까. 아마도 봄에 피는 감꽃은 너무나 불품 없지만 복숭아 꽃은 봄 나들이 시절에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하기 때문이 아닐까. 또 한편으로 사대부들이 받아들인 중국 문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