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 옥녀봉 단군전 입구에 있는 단군상과 홍살문(사진=윤한주 기자)
“가야산 둘레 열 개 고을을 총칭하여 내포라 한다. 토지는 기름지고 평탄하며 넓다. 물고기와 소금이 넉넉하여 부자가 많고, 대를 이어 사는 사대부도 많다. 서울 남쪽에 있어서 서울의 세력 있는 집안치고 여기에 농토와 집을 두고 근거지로 삼지 않은 사람이 없다.”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학자인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리지'에서 서산을 비롯한 내포(內浦) 지역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렇게 살기 좋은 서산의 주산(主山)이 있으니 부춘산(富春山, 187m)이다.
'서산시지'는 부춘산 줄기인 옥녀봉에서 아침 햇살이 송림 사이로 비춰들 때의 아름다움을 서산 8경 중에 하나로 꼽았다. 이곳에 단군전(읍내동 산2-2)이 있다.
가는 방법은 쉽다. 서산시청에서 40m 거리에 있고 서산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면 걸어서 10분이다. 하루 1,000명 이상 등산하는 ‘부춘산 테마공원’에 있다고 하니 모르는 사람도 없다.
▲ 서산 옥녀봉 단군전 경관(사진=윤한주 기자)
단군전 입구는 통일기원국조단군상이 지키고 있다. 지난 1998년에 홍익문화운동연합에서 제작해서 건립한 것이다.
홍살문 계단을 올랐다. 이어 숲길을 걸었다. 마치 정원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햇빛이 나무 사이로 비췄다. 벤치가 있어 앉았다. 눈을 감았다. 산들거리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호흡을 했다. 머리가 맑아졌다. 숲 명상이 따로 없었다.
이제 단군전으로 가보자. 와우리단군전도 홍살문과 본당이 멀었는데, 옥녀봉은 2배 거리는 되는 것 같았다. 외삼문(外三門)과 내삼문(內三門)을 지나 본전으로 들어갔다. 영정은 최근에 그려진 것인데, 젊고 힘이 있어 보였다.
안내판을 살펴보니 “뜻있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 1954년 10월에 본전각을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 매년 어천제와 개천제를 지낸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연대부터 틀렸다.
문훈모 단군봉안회 사무국장(69)은 “1964년에 건립했다. 1954년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표기”라며 “1950년에 전쟁이 났다. 전쟁 끝나고 건물을 세우지 못했다. 1957년에 사단법인 단군봉안회 인가가 났고 단군전을 건립하자고 해서 만들어진 것”라고 말했다.
▲ 단군전의 초를 밝히고 있는 문훈모 단군봉안회 사무국장(사진=윤한주 기자)
디지털서산문화대전에 따르면 “1964년 김동윤(金東潤)이 거액을 희사하여 단군전의 본관이 완성되었고, 뒤이어 최호(崔豪) 등의 희사로 재실과 수복실을 건립했다”라고 밝혔다. 김동윤 추모비는 입구 왼쪽에 있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 양식을 하고 있다. 행사는 1년에 2번이다. 와우리단군전과 달리 양력으로 개천제와 어천제를 지낸다.
이 자리는 일제의 신사(神祀)가 있던 곳이다. 1922년에 세워진 신사는 1960년대 초반까지 그 원형이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해방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신사를 허무는 것이다. 이어 민족정기를 회복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이 단군전을 건립한 곳이 많았다. 옥녀봉 단군전도 이러한 영향을 받지 않았나 생각된다.
문 국장은 단군전을 관리한 지 올해로 28년이다.
“40대에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가정 형편상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에 왔다. 당시 회장이 도와달라고 해서 몸 담은지 빠져나가지 못하고 완전히 이 곳 사람이 되었다.(웃음)”
그는 단군전을 행사를 위한 공간만이 아니라 ‘시민공간’으로 개방하고 있다고 밝혔다.
▲ 단군전 건립에 거액을 희사한 김동윤(金東潤) 선생 추모비(사진=윤한주 기자)
“우리는 종교적 색채를 거의 갖지 않는다. 유불선을 막론한다. 학교에서 견학을 오기도 하고 음악회도 열었다. 어느 단체든 행사를 하겠다면 흔쾌히 (공간을) 개방한다.”
그러나 50주년을 맞는 단군전은 사라질 위기다. 이곳이 ‘국유림’이기 때문이다. 문 처장의 말에 따르면 당시 지역 유지들이 성금으로 짓는 단군전에 대해 국유림이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동안 묵인했던 산림청이 2000년 이후 불법 점거에 대한 과태료를 청구하고 있다. 시민단체인 단군전봉안회가 수천만 원에 달하는 과태료를 갚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동재와 서재, 담장 일부는 철거된 상태다.
▲ 서산 옥녀봉 단군전 경관(사진=윤한주 기자)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옥녀봉은 옥녀탄금형(玉女彈琴形)이다. 산봉우리가 마치 옥녀(혹은 선녀仙女)가 거문고를 타는 것 같이 보인다고 해서 생겨난 이름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옥녀봉에 자리한 단군전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서산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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