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중심 문화
임병식
남의 자동차를 얻어 타고 가다가 새삼스러운 일을 겪었다.
얻어 타는 입장에서는 조수석에 앉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다. 그런데 운전자는 뒷좌석을 권했다.
"앞에는 목발이 있으니 뒤가 더 편합니다."
권유를 마다할 수 없어 뒷좌석에 앉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차 안에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삐― 삐―.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거나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을 때 나는 소리였다. 어디가 문제인가 둘러보는데 운전자가 웃으며 말했다.
"조수석에 짐을 올려놨더니 그러네요."
짐꾸러기를 바닥으로 내려놓자 경고음은 곧바로 멈췄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스쳤다.
안전벨트 센서는 사람의 모습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무게를 감지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예전에는 거의 모든 것이 무게로 평가되었다.
농산물은 저울에 달아 값을 매겼고, 가마니를 팔 때조차 무게를 따졌다. 그래서 시장에 내다 팔 가마니에는 입에 물을 머금어 골고루 뿜어 적시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였다.
사는 사람은 짜임새보다 저울의 눈금을 먼저 믿었다.
무게가 늘어나면 그만큼 내용물을 덜 담아도 되었으니, 무게는 곧 경제적 가치였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자동차는 여전히 무게를 기준으로 사람의 존재를 판단한다.
물론 그것은 가장 합리적인 기술적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인간의 사고 역시 오래도록 무게를 신뢰해 왔음을 떠올렸다.
문화는 제도가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는다. 오래된 사고방식은 새로운 기술 속에서도 뜻밖의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자동차의 경고음 하나가 내게 들려준 것은 기계의 원리가 아니라, 여전히 무게를 믿고 판단하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2026)
첫댓글 일상에서 마주친 작은 소란(자동차 경고음)을 놓치지 않고, 이를 인간의 오랜 인식 체계와 문화적 관습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이끌어 내었으니 대단하십니다.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조수석 짐 때문에 울리는 경고음'이라는 흔한 사건을 글감으로 삼으셨습니다. 조수석의 무게 센서에서 시작된 생각이 과거 농경사회 시장통의 풍경(가마니에 물을 뿜어 무게를 늘리던 일)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흐름이 경이롭습니다.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자동차가 '무게'로 인간을 판단하듯, 우리 인간의 내면에도 여전히 눈에 보이는 수치나 무게감을 신뢰하는 오랜 습관이 남아있음을 짚어내셨습니다. 소박한 일상의 에피소드로 겉모습은 바뀌어도 본질은 쉽게 변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 명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가다 느낀 것을 써봤습니다.
일관되게 <사물시간압축사유수필>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짚가마니를 쓰던 시절에 쌀 한 가마는 87키로 즉145근이었지요 7키로가 빈 가마니 무게였는데 사람들은 쌀의 양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더 무거운 가마니를 찾았지요 자동차 좌석 안전띠가 무게에 반응하는 데 착안하신 사유의 깊이에 감동합니다
이선생님을 통하여 옛날 가마니가 7키로 나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줌의 쌀이라도 절약하기 위해서 가마니 무게에 메달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