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만보행하다가 비가 뿌려대서 서둘러 돌아오면서 야외활동이 참 좋지만 날씨에 영향을 받는 한계가 있으니 문득 고정적인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괜찮겠다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불어서 세 녀석의 양육과 야외활동까지 혼자 전담하니 얼마 전까지 그럭저럭 잘 해오던 것들에 스트레스가 더해져가는 즈음이라 특별한 해결책이 필요한 싯점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낸 서귀포해오름주간센터. 연락처 주소만 있을 뿐 온라인상에 별다른 정보가 없어 일단 통화를 시도해 보았는데 의외로 친절하게 잘 상담해 줍니다. 비록 준이입학만 상담했지만 태균이도 염두에 둔 상태로 어제 일찍 방문을 했습니다.
태균이가 다녀보았던 주간보호센터는 2군데. 분당의 말아톤복지재단에서 운영하던 주간보호센터와 대구의 작은 기관. 분당 말아톤복지재단은 2년 정도 다닌 것 같은데 규모가 자꾸 축소되고 제가 발달학교를 분당에서도 외곽에 속하는 동원동 쪽으로 옮겨가면서 그만두게 되었고, 대구에서 다녔던 이유는 당시 발달장애 지사사업을 하면서 대구지사를 직접 운영했었기 때문입니다.
대구지사 운영는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었는데 그 때 대구에서 만났던 몇몇 부모님들은 아직까지도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님들이 대구를 떠나 분당 발달학교에까지 몇 년을 다녔기에 그들 가정터전이 바뀌게 된 변화의 동기이기도 해서 만나면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합니다. 작년에 제주도에서 단체로 만난 부모님그룹도 대구부모님들이 대부분입니다.
분당과 대구에서의 주간보호센터 경험을 토대로 보자면 사실 별 기대는 없었습니다. 시설도 그렇고, 프로그램도 그렇고, 마치 특수학교가 그렇듯 일정한 시간에 아이들 잘 수용했다가 보호자에게 무사히 인도하는 과정의 반복? 열심히 해준다고는 하지만 그 좁은 곳에서 20-30명의 발달장애 청년과 성년들이 뭔가를 해소하는 것은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습니다.
어제 방문한 해오름주관센터는 외관부터가 단독건물 전용이라 일단 작은 복지관같은 깔끔함이 느껴졌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서귀포 표선에 있다보니 한적함과 깨끗한 공기, 풍경은 생활의 일상! 다행이다 싶습니다.
차를 주차하면서 태균이를 먼저 내리게 했는데 내리고보니 태균이는 간 곳이 묘연합니다. 상담시간은 다 되었는데 아무래도 주간보호센터 바로 맞은 편 청소년문화센터 건물로 들어가 화장실로 간 듯한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고. 준이상담도 가야하고 태균이도 찾아야 하고 우스운 상황 속에 도저히 안되겠다싶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니 글쎄, 태균이는 화장실이 아니라 노래연습실 방에 들어가 겉옷도 벗고 어떤 청년과 놀고 있습니다.
그 청년이 같이 놀겠다고 해서 서둘러 준이상담실로 갔더니 이미 준이를 다 살펴본 센터장님이 흡족한 얼굴로 맞이해 줍니다. 준이가 인물이 얼마나 좋습니까. 인물도 몸매도 훤하고 발달장애 특유의 표시가 별로 나질 않으니 센터장님도 이런 점은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한글도 잘 읽고하니 자리가 바로 있다고 합니다.
센터장님이 연세가 있는 여성분인데 제가 마음에 드는 모양입니다. 저는 순수하게 준이엄마 행세를 하고, 제 일에 대해서 조금의 운도 떼지않았는데 느껴지는 좋은 감이 있는 듯 합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언급한 것과 막상 입학시켜보면 너무 다르더라 라는 입장에서 다소 사무적으로 대하고 국장과 팀장이라는 젊은 선생님과는 대해주는 태도가 다릅니다.
사실 국장이라는 분 입장도 백번 이해합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야 숱하니까요. 저도 사실 부모님이 평가하는 아이에 대한 상황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으니까요. 사실 이런 부분은 우리 아이들 뿐 아니라 일반아이들에 있어서는 훨씬 더 심합니다.
제가 교육일을 오래 해봐서 너무 잘 압니다. 그건 마치 객관적으로는 문제가 많아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면 평가가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원리 바로 그것입니다. 더우기 자식을 대하는 우리 마음이야 완전 짝사랑 격이니 때로 지나친 주관적 평가야 어찌하겠습니까? 저는 학교를 오래 운영했지만 또한 태균이 엄마이니 양자의 입장을 충분히 다 압니다.
그렇게 준이 입학허락을 받고 태균이 이야기도 하니까 얼른 보자고 합니다. 간만에 이런 기관에 오니 신이 나서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태균이를 잡아다가 상담자리에 앉히니 바로 입학을 허락해줍니다. 인상이 너무 좋다고 ㅎㅎ. 센터장님은 내일부터라도 바로 와도 된다고 하지만 제출되는 서류도 필요하고 통학버스 배정도 필요하니 다음주 월요일부터 하자고 국장은 잘라 말합니다.
태균이를 보더니 먹는 걸 제한해도 되냐고 하길래 그런건 결코 걱정 안해도 된다, 조금 먹는다 그랬더니 영 안 믿는 표정 ㅎㅎ. 부모님 말은 실제와는 대부분 달라! 하는 제스츄어인데 단체급식에서는 정말 몇 숟가락 안먹는 게 태균이인지라 제가 발달학교에서 수 년을 봐았고 지난 주간센터에서도 그래 왔는데 제 말을 영 믿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래서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암튼 두 녀석 모두 입학하기로 하고, 준이는 제가 오래 길러온 외부자식이라는 것만 밝혔습니다. 그렇게 마무리하고 가려는데 센터장님이 마침 점심시간이라고 먹고가라고 붙잡습니다. 덕분에 원생들 얼굴도 보고 담임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쌤들도 만나 인사도 하고...
성년대상 주간활동센터이다보니 나이든 원생들도 꽤 있고, 젊고 밝은 여자원생들도 있고, 귀여운 두 명의 처자가 우리한테 밝게 인사하면서 관심을 보입니다. 말을 너무 잘해 깜놀! 아마 문제행동이 심한 자폐쪽은 안 받는지 휠체어를 탄 원생은 있어도 행동문제 있어보이는 원생은 보이지는 않습니다.
비용도 너무 저렴해서 점심과 통학까지 18만원이라니 이럴 수가! 벌써 10여년 전인데도 말아톤과 대구에서는 거의 50만원 정도를 냈던 것 같은데, 시간차를 고려해도 거의 무료에 가깝습니다. 제주도 동쪽으로는 유일한 주간활동 기관이라하니 암튼 잘 된 듯 합니다.
여기 입학을 위한 서류 중에 하나가 건강검진. 표선에 한 의원을 소개받았으나 마침 점심시간이라 2-3시간 동안 만보걷기 실행. 차 안에서 오래 기다려준 완이에게 듬뿍 보상할 시간. 요즘 기다려주는 일은 완이에게 문제가 안 될 정도로 이 점은 훌륭해졌습니다. 트렁크 뒤지기도 이제 하질 않습니다. 마침 햇살도 너무 좋아 걷기 딱 좋은 날입니다.
표선 민속해안로 해비치리조트 앞쪽 바닷가길은 정말 근사합니다. 올레길 생각으로 제주도를 찾는다면 강추해야 할 코스!
태균이가 엄마사진도 열심히 찍어주고, 1월 한겨울임에도 여기저기 그대로 있는 야생화 풍경이 신기해서 사진에 담아봅니다.
간만에 햇빛과 갯바람 싫컷 맞으며 막간을 이용해 대략 6천보 성공했으나 만보를 채우지 못한 것은 준이때문에... 완이때문에 잠설치기 일쑤인 준이가 어제도 제대로 못잤는지 거의 좀비상태입니다. 머리통을 계속 만지고 괴로워하는 것도 오르필이 안 맞는 것인지... 또 걱정하게 만듭니다.
병원에 검진가서도 계속 머리통을 쥐어잡고 주간활동센터에서도 사실 비슷한 자세가 계속 되긴 했습니다. 완이가 따로 마련된 잠자리에도 계속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니 태균이가 이층으로 가버린 후 준이가 그 시달림을 고스란히 받고 있습니다. 자는 내내 지켜볼 수도 없고 저도 한밤에는 이층가있는 경우가 많아 (준이 혼자 떠들어대는 반복소리도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라서) 완이가 잠든 후에 옮기는데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와보면 이부자리는 늘 엉망입니다.
여러가지로 완이가 함께 살아가기에 손댈 곳이 너무 많습니다. 펴놓은 이부자리 엉망으로 흐트러놓기, 남의 이부자리 마구 침범하기, 거기다 소변까지 자면서 그대로 싸놓으니 아직은 24시간 감시가 필요한데 저도 좀 살아야겠으니 잠시 떼놓으면 이런 상황입니다. 일단 완이가 집으로 돌아가야 해결될 문제이고 준이가 방을 옮기는데 완강히 거부하니 쉽지가 않습니다.
제출해야 하는 건강검진기록을 위해 방문한 병원은 정말 시골에서 의사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으로 병원은 운영하는지 여실히 드러나있습니다. 이렇게 최악의 병원환경은 환자에 대한 모독으로까지 여겨집니다. 그 좁은 공간에 환자의 물리치료가 다 휜히 드러나보이는 치료실하며 처치실... 거기에다 바로 붙어있는 열려있는 화장실. 태균이 소변채집하는데도 어찌나 민망한지...
환자대기실은 좁고 방문환자들은 넘쳐나고, 그 좁은 대기실에 앉을 자리도 없는데 호흡기치료 기계가 걸려있고 자전거돌리기 기계와 반욕조기계가 대기실 한쪽을 크게 차지하고 있으니 이게 왠 아수라장인가 싶습니다. 거기에다 의사는 환자에게 눈길 한번 안주는 무뚝뚝, 무관심, 무매너... 그의 병원철학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병원환경을 보니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단 하나 환자응대사무장 겸 간호사업무를 도맡아 하는 파커차림의 남자직원은 그야말로 억수로 세세하게 친절하고 노련해서 정체가 아리송하지만 그나마 용서가 됩니다. 피뽑기, 소변받아 제출하기, X레이찍기로 진행된 건강검진에서 이 정도야 태균이에게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준이에게는 큰 도전! 결국 소변받기는 시도도 못했고 피뽑기는 노련한 그 직원덕에 그래도 수월하게 끝났고... 결국 집에 도착해 준이 소변누기를 기다렸다가 살짝 접근해서 겨우 채집 완료! 그거 제출하러 그 병원에 또 가야합니다.
치열했던 오늘 일정, 수고했다는 의미로 간만에 외식! 준이가 짬뽕먹겠다 하니 중국집으로 낙찰, 신나게 저녁을 먹는 것으로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 성산읍내 유성반점 탕수육 화이팅! 싸고 푸짐하고 그리고 바싹하니 맛있고! 준이 먹을 때는 그나마 좀비에서 생생한 청년으로 돌아오니 이것 또한 덤이네요!
첫댓글 아고~~벅찬 하루 였네요.
쎈터가 즐거운 곳이길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완이가 1년 사이 훌쩍 큰 것 같습니다. 알게 모르게 많이 발전했죠. 한 달 남짓 후에는 새 일을 계획 하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