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탄생한 한국교회 첫 연합 찬송가인 ‘찬숑가’ 표지 모습(왼쪽). 악보판 찬숑가 보급에 힘쓴 피득(피터스·왼쪽) 선교사
가족으로 부인 에바 필드(아래 가운데) 선교사, 장남 르우벤 피터스(위 가운데), 차남 리처드 피터스(오른쪽). 한국찬송가공회 제공
1890년대 한국교회 성도들은 세 종류의 찬송가를 사용하고 있었다. ‘찬미가’는 1892년 감리교 선교사들이 발간한 가사 위주의 찬송가로 1902년에는 207곡까지 증보됐다. ‘찬양가’는 1894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117곡의 악보를 포함해 편집·출판한 찬양집이었다. ‘찬셩시’는 1895년 장로교 선교사들이 54곡을 엮어 출판했고 주로 서북 지역에서 사용되다가 1902년 장로교공의회에서 공식 찬송가집으로 채택한 후 1905년 137곡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분산된 찬송가들을 하나로 통일할 필요성이 제기됐고 그 결과 1908년 ‘찬숑가’가 탄생했다.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던 다양한 교파의 외국 선교사들은 교파 및 선교부 간 연합과 협력을 위해 협의체 조직이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장로교·감리교 연합 기관이 ‘개신교복음주의 선교연합공의회’(The General Council of Protestant Evangelical Missions in Korea)였다. 1905년 선교연합공의회는 첫 사업으로 연합 찬송가 제작을 결의하고 ‘찬숑가’ 편찬에 착수했다.
편집위원에는 감리교 벙커 선교사, 장로교 안애리(Annie Laurie Baird) 민로아(F. S. Miller) 선교사가 선정됐다. 1906년 제2차 연합공의회에서는 기존 찬송가를 토대로 개정하되 존경어를 사용하고 구조는 명확하며 교리에 부합하는 내용을 수록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그렇게 해서 1908년, 한국교회 최초 연합 찬송가인 ‘찬숑가’가 가사판(262곡)으로 발행됐고 이듬해에는 악보판도 출간됐다.
‘찬숑가’ 서문에는 교회 연합에 대한 소회를 다음과 같이 밝혀두었다. “노래는 사람의 마음에 기쁨이 넘쳐 저절로 소리로 표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할 때 마음을 같이하며 기운을 화평하게 하고, 한 곡조로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그동안 감리회에서는 ‘찬미가’를, 장로회에서는 ‘찬셩시’와 ‘찬양가’를 불러왔기에, 양 교회 신자들이 함께 예배볼 때 서로 다른 찬송가로 인해 온전한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기회를 주셔서 두 교단의 노래를 합하여 ‘찬숑가’라는 한 책을 만들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 마음을 기쁘게 하는 참 아름다운 찬송집이다.”
악보판 ‘찬숑가’ 제작비는 피득(Alexander A. Pieters·1871~1958) 선교사 개인 돈으로 전액 충당됐다. 피득 선교사는 미국성서공회 파송 선교사로 1895년 내한해 1898년 시편을 번역한 ‘시편촬요’를 출간했다. 시편촬요는 시편 전체 150편 중 62편을 골라 우리말로 번역해 출판한 것으로서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한글 구약성경 번역이었다.
‘시편촬요’를 시작으로 1938년 ‘구약개역성서’를 완간하기까지 피득 선교사가 한국 선교 역사에 구약성경 번역을 위해 헌신한 업적은 대단하다. 피득 선교사의 주된 사역은 성경 번역이었으나 찬송가를 특히 사랑했기에 ‘찬숑가’ 제작에도 큰 힘을 보탰다.
피득 선교사의 헌신으로 ‘곡됴찬숑가’는 4판까지 총 9만권을 출판했다. 4판 뒷면 저작권 표지에 보면 ‘지은이: 조선 평안북도 선천군 피득 목사, 발행인: 영국인 서울 종로 반우거(G W Bonwick)’로 인쇄했다. 이는 당시 일본의 영향 아래에 있던 조선 상황을 고려해 출판 금지를 미리 방지하고자 저작권 표기를 선교사 명의로 했던 것이다. ‘찬숑가’는 판을 거듭하며 최종적으로 1942년 판에는 317장으로 증보됐고, 감리교의 ‘신정찬송가’(1931)와 장로교의 ‘신편찬송가’(1935)가 나오기까지 20년간 두 교단이 함께 사용했다.
장로교와 감리교가 하나의 찬송가를 제작한 이 시도는 한국교회 전 교단이 ‘통일찬송가’(1983)라는 한 권의 찬송가를 사용하게 된 밑거름이 됐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찬숑가’에 수록된 곡들은 가사가 거의 바뀌지 않은 채 ‘통일찬송가’와 ‘21세기 새찬송가’에 다수 포함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이처럼 ‘찬숑가’는 한국 찬송가 발전에 있어 장로교·감리교 선교사들의 연합이 맺은 성공적인 결실이자 후대에 교회 연합의 열매로 찬송가집이 탄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