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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숭사리 개혁포럼 Soongsari 원문보기 글쓴이: 부르지저
지상의 마지막성전
이곳 숭사리에 등록된 후 처음으로 인사(신고식^^) 겸 글을 올리오니 많이 부족한 점 양해와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이글은 말세에 있을 물질적 성전에 대하여 글을 올리오나, 이 글은 어디까지나 원초적 글이므로 이 글을 읽은 후 이곳 자유게시판 5764란의 글들을 다시 한 번 더 읽으시면 그 자료들이 더더욱 효과가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본문에 들기에 앞서 양해의 말씀은,
제 글에 객관성과 편리성을 위해 평어 체를 사용함에 있어 이해를 부탁드리며, 특히 저의 글(복음)이 생소하시거나 기호에 맞지가 않더라도 성서를 근거하여 올리오니 많은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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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후2;1~4>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聖殿)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
분문말씀은 사도바울이 세상종말에 있을 사건을 기록한 말씀이시다.
말세지말에 놓인 우리들은 자칫 잘못된 종말론에 휘말리면 믿음이 動心됨으로 영 육간에 크게 타격을 입게 된다. 그런 가운데 미흡하나마 필자는 상기 본문말씀을 보다 일찍 깨닫게 되어 다행히 부동적 말세관을 소유 할 수 있음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옛날에 본문말씀을 나름대로 격에 맞게 선전할 기회가 있었었다.
이는 다름이 아닌 다미선교 휴거론 때의 일이었다. 나는 그때 지방에서 살고 있는 터라, 우리지방 다미선교인들이 종말론에 떨고 있을 무렵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과감하게 내 직장을 밝혀가면서까지 상기 본문을 근거로 “종말은 아직 멀었으니 이 모임을 해산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평온한 신앙을 하라”고 태연하게 일러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그곳담임목사에게 나가라는 소라만 들었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휴거가 있다거나 전쟁이 터진다 해도 다시는 우리의 신앙이 움직여 흔들리지 말아야 할 그것이다. 이에 대한 그 근거는 상기 본문 말씀이시다.
본문에 사도바울이 지로한 [성전](聖殿)은 어디를 가르치는 것일까??
사도 바울이 말하는 이[성전](聖殿)을 오늘날 바로 찾아낼 수만 있다면 종말론의 해답은 간단히 풀려서 다시는 우매한 짓거리에 휘둘리지 않고 올곧은 신앙을 유지할 수 있으련만....
그러면 이제부터 미흡하나마 서서히 말씀들을 더듬어 나가보자.
바울이 이 서신을 기록한 시점은,
아직 예루살렘 옛 성전이 무너지기 전이었기에 상기 본문에 기록된 [성전](聖殿)이라는 말씀은 그 당시 옛 솔로몬의 성전을 가리키는 말씀이 되겠다.
그런데 지금은 유감스럽게도 그곳은 남들의 사원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때의 성전은 한 조각 통곡의 벽만이 겨우 남아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다행히 지금은 다시 이스라엘 나라가 독립을 선언하고 그곳 옛 솔로몬의 성터에다가 성전을 회복하리라고 한다. 이에 그 것을 굳게 믿는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그 곳이라야 만이 사도 바울이 종말에 있을 성전으로 간주를 할 수가 있겠다.
그 이유는 왜 그곳이래야만이 될까?
성경이나 하나님, 또 그리고 온 우주만민들로부터 [성전](聖殿) 이라는 용어를 얻어내려면 오직 그곳 옛 솔로몬의 성전 터 밖에 그 외는 어떤 곳도 [성전](聖殿)으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천지 증거장막 사람 이 만희가 아무리 돈을 쳐드려 건물을 짓고 그것을 [성전](聖殿)이라고 떠들어 본들, 또 조 용기가 자기네 예배당을 [성전](聖殿)이라고 간판을 붙여도, 그리고 천주교회에서 아무리 자기네 건물에다 [성전](聖殿)이라는 간판을 걸어 보았댔자 자기네 추종자들 안에서만 일 것이다.
그런데 요즘 왠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성터를 관광하고 돌아와서는, 한 결 같이 하나처럼 성지순례[聖地巡禮]라는 용어를 스스럼없이 토해낸다.
그곳이 이스라엘이 聖地라고 불리면, 예루살렘 옛 성터에다 유대인들이 건축물을 세운다면 이는 여측 없이 [성전](聖殿)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며 이에 누구하나 토를 달지 못 한 체 묵시적 만장일치 속에서 [성전](聖殿)이라고 가결될 것이다.
그렇다! 그 곳에 성전이 건축되어 예배가 시작되면 이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곳에다 건축물 세우기를 사력을 다해 마지않을 것이다.
그 첫째는, 이스라엘 유대나라 정부차원에서 정부청사가 시급한 사안일 것이다. 즉 우리나라 청와대가 그렇고, 미국은 백악관이 그렇듯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정부를 상징할 건축물이 불가불 필요할 것이다.
다음으로 보다 큰 사유는,
그들에겐 종교성이 강한 국민으로써 예루살렘성전을 잃어버린 것은 하나님 앞에 득죄로 여겨 이를 더욱 회복에 대한 부담이 크게 있으리라고 사료된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들 유대인들은 이미 벌써[성전](聖殿)건축 재료와 제물까지 이미 확보 완료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우리는 그들에게 종교성과 경제성(력)이 갖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허면, 세계가 인정하는 성전에서 예배를 집도하게 되는 그자의 존재가치는 어떠할 것인가!!
아마 그때야말로 전 기독교라 하는 무리들이 자연스레 하나가되어 그 앞에 부복 할 것이며,
그러므로 그는 자동적으로 종교의 대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종교의 대왕은 천주교 교황처럼 화려하지는 않을 것이나 천주교를 밑에서 조종 할 것이며 그러므로 천주교는 유대인들의 꼭두각시노릇을 하지 않을까,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7;1~5>
<계17;1~5>본문에서 음녀라고 하는 음녀는 곧 천주교를 가르치는 말씀일 것이며 이 여자가 탄 붉은 짐승은 곧 이스라엘나라 유대민족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이스라엘나라 유대민족은 곧 붉은 짐승이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아이들이 그의 태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가로되 이 같으면 내가 어찌 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동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 <창25;21~25>
여기서 두 국민 두 민족이라는 것은, 첫째는 본방의 혈통적 이스라엘 유대민족을 가르치는 말이며, 나머지는 이방민족 중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것으로써 이는 이면적 유대인을 이르는 말이 된다.
여기서 장자 에서는 붉은 털사람 으로써 이는 이스라엘나라는 붉은 짐승의 나라로 예표된 것으로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이 나라는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밖아 죽인 붉은 용 같은 짐승의 나라요 말세에 또 다시 한 번 큰 사고를 칠 나라이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출4;22,23>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롬2;28,29>
이제 말씀을 일차 정리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다가 자기들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세우게 되면, 이를 사도바울이 <살후2;1~4>에다가 기술한 [성전](聖殿)으로 간주된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성전](聖殿)이라는 그 건물 안에 앉은 자는 자기를 보여 내가 하나님이라고 할 것이다. 이에 세계 모든 구교와 신교의 무리들은 절로 복종을 자처 할 것이며, 심지어 우리(숭사리회원) 중에도 미혹되어 그리로 신앙을 이적 할 자들이 있으리라.
다시 부활된 이스라엘 나라는 참으로 이적이 많은 나라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약 2000여년을 나라를 비운 자들이 1948년에 독립된 자체가 그렇고,
또 그 후 지금까지의 경제력이 그렇다. 특히 현세의 전쟁은 순전한 돈을 천문학적으로 쏟아 붓는 것이 전쟁이거늘 그 작은 나라가 왜 그리도 돈이 많은지가 그렇고, 또 숫자가 작은 나라가 그 큰 나라를 상대하는 그것이 이적이 아니라 할 수 없다.
이런 시점에서 그곳 [성전](聖殿)에 앉은 사람은 이루 말 할 수없이 자만에 빠져서 자기를 하나님으로 일커를 것이다.
그러나 이런類는 한쪽(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입장에서만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반면에서 전 세계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하는 자들이 이를 받쳐 주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무리들의 신앙의 주소가 어떠한지를 재점검을 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다.
오늘날 신앙계에는 자칭 목자라 하는 목사들이 주 예수께서 받지 말라는 삯을 받기위해 주님의 이름을 앞세워 자기들의 이름을 두텁게 선전하여 모든 이들이 사람을 우상화 하는 일들에 익숙해 길들여져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목사들의 부정적 측면은 각설하고....
그러므로 이제 본방과 이방사람들이 하나같이 사람을 하나님으로 섬김에는 일에는 별 이의나 애로가 없을 지경에 맞아 떨어진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굳세게 잡고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해야 할 것은 무엇이며 이에 더 나아가 우리가 생명을 허비하여야 할 대상은 무엇이며 반면 우리가 배격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가 급선무일 것이다.
먼저 부정적인 측면들은,
천주교는 사람인 교황이, 통일교는 문 선명이가, 하나님의 교회는 안 상홍이와 장 길자가, 신천지 증거장막은 이 만희가, 순복음교는 조 용기가, 김 기동 등 등 등... 그리고 놀랍도록 지방교의 이 상수(윗트니스리) 까지도 하나님의 이름의 자리에 그들의 이름이 상당한 무게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아니라면 그에 속한 신자들에게 물어본다. 조 용기는 무엇이고 김 기동은 무엇이며 윗트니스리는 무엇이냐고 외칠 수 있는가를.....
그러나 성경은
+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고전3;5>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요즘 삯꾼목자들보다도 신령하나 그러나 자기가 우상화 될 가하여 주님 앞에 사람을 박살냈거늘 요즘의 신자들은 하나님의 이름보다 그 조직의 리더들의 이름을 드높이 치켜드는 놀음에 광분적이다. 이제 그런 것들은 그쳐야할 사안들이다.
이런 조직들은 하나님 목전에 바벨탑이라 할 수 있겠다.
왜 우리는 태초나 말세나 하나님의 이름보다도 사람의 이름을 더 드높일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의 참을 수없는 진노의 도화선들이다.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창11;4>
바벨론이 무너진 이유는, 천연적이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조직을 이루고 그 역사의 노고를 자화자찬하며 우리의 이름으로 모이고 우리의 이름을 높여 우상화 했기 때문이다. 이로 보면 너무나 조직이나 숫자 증가에 치중 할 것은 못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말세에 사람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은 666이요 짐승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고 무엇을 고수 하여야 하나를 성경으로 비춰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에 대하여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리고 이름을 굳게 잡아야하며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 이름을 배반치 말아야 할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말세에는 짐승의 이름 때문에 주의 이름을 배반 할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허비할 곳이 십계명도 침례도 안식일도 십일조도 아니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이렇게 주의 이름을 위하여 사력을 다한 자들은 주님으로부터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여기서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아 조심할 바가 크다.
그러면 주의 이름을 믿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는 곧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믿는 것이요,
믿는 것은 곧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것이다.
스데반과 십자가의 강도는 이를 실행에 옮기어 주님의 품으로 들어갔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십자가의 강도의 이 짧은 한마디를 보라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렇다! 우리도 사도 요한처럼 이어야 한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으리라
(((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이렇게 각처에서 주의 이름의 부르짖음이 실행될 때 주님의 역사를 이룰 수 있으나
이를 떠나 사람의 이름으로 사람이 손으로 만든 건물에서 물질적 금전을 쌓아놓고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금송아치 제사요 666의 처소이다.
이런 것들은 주님의 날에 입 기운으로 없어질 것들이요. 그러므로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전도 지상에서 마지막으로 없어질 물질적 성전이다. 이것이 도출되면 많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형제들이 순교가 일어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주의 이름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라는 이름은 곧 하나님아버지의 이름임을 명심하여 이 이름을 계명으로 알고 말이나 모든 일을 그의 이름으로 하고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자.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아멘 주, 예수여! 오늘도 그 이름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
추신;
행여 주의 이름이 귀에 거슬리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자기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할 것입니다.
장문도 불구하고 읽어주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로써 제가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를 이에 신고식으로 가름하며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