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을 거절한 그분
엄상익 변호사
유년 시절 동네 부자집이 있었다.
그 집 손자와 친구라 수시로 그 집에서 놀았다.
열평 대의 집 장사가 지은 짓눌린듯한 지붕의 서민 한옥과 판자집들이 모인 동네 가운데에서 그 집은 왕궁 같았다.
고색창연한 전각같은 본채와 별채가 있었다.
집 안에 연못이 있었고 고급 정원수가 심겨져 있었다.
나는 그 집에서 더러 밥을 얻어먹다가 냉장고에서 나온 깍두기가 그렇게 맛있는 건지 처음 알았다.
집에서 나는 하얗게 곰팡이가 핀 걸 수돗가에 가서 씻어 먹은 적도 있다.
그 집 외에는 냉장고가 있는 집이 없었다.
그 집에는 파란 타일을 붙인 욕조가 있었다.
서민들은 명절에만 동네 공동목욕탕을 가던 시절이었다.
그 집은 여러명의 식모와 일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친구가 된 부자집 아이는 마음이 넉넉했다.
그 친구 덕분에 부자집에서 소유하는 극장을 나는 항상 자유로 통과할 수 있었다.
그 영화관에서 나는 채플린의 무성영화부터 시작해서
극장에 올리는 한국영화와 외국영화를 거의 다 보는 행운을 얻었었다.
나도 나중에 부자가 되어 그런 집에서 살고 싶은 소원이 생겼었다.
그 집 아이한테서 들은 특이한 말이 지금도 뇌리에 남아있다.
벽장 안에 뱀을 기르면서 이따금씩 뱀점을 친다는 것이다.
운수대통하는 고사도 자주 지낸다는 것이다.
그래야 부자가 되는 것 같았다.
사람마다 다양하게 소원을 비는 것 같았다.
내 나이 스물네 살 무렵 눈이 부슬부슬 내리던 한겨울이었다.
나는 우연히 알게 된 한 친구와 둘이서 깊은 산속의 어떤 제실 뒷 방에서 고시공부를 하고 있었다.
여러명의 조상을 모신다는 제실은 귀신이 득실거리는 듯한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어느날 밤 한시경 그 친구는
혼자 제실의 귀신들에게 자신의 고시합격을 부탁하는 제사를 드리겠다고 했다.
그는 제실 마루에 상을 차려놓고 촛불을 켰다.
그리고 한지에 자신의 소원을 붓으로 써서 올려놓고 절을 했다.
그리고는 그 소원을 쓴 종이를 불에 태워 재를 마당에 날렸다.
순간 그 친구의 얼굴에 스치는 그림자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그 얼마 후 내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다.
토할 정도로 그곳에 있는 게 싫어졌다.
여태까지 해 왔던 생활에 염증이 났다.
짐을 싸들고 그 제실을 도망치듯 나오면서 나는 고시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해 군에 입대했다.
귀신에게 제사를 드렸던 그 친구는 그해 고시에 합격하고 판사가 됐다.
세월의 강물을 따라 흐르다 보니 어느새 내 나이 쉰 세 살이 됐다.
판사가 됐던 친구는 우울증으로 어느 날 자살을 했다.
더러 만날 때 보면 그는 어쩐지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
뭔가 다른 존재가 그를 죽음으로 끌고 간 것 같기도 했다.
어느날 유년의 추억이 묻어있는 동네를 걷고 있었다.
어린시절 놀던 그 부자집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정원과 연못 나무들 그리고 웅장한 전각 같은 기와집이 안개같이 사라지고 그 자리는 텅 빈 주차장이 되어 있었다.
내가 놀던 그 집 별채의 구석방 위치에 김밥과 순대를 놓고 파는 포장마차가 한 대 서 있었다.
순대를 일인분 주문하면서 나는 혼잣말 같이 중얼거렸다.
“이 터에 예전에 내가 부러워 하던 부자집이 있었는데"
내 말에 포장마차 주인 남자가 바로 응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여기를 지나가던 한 분이 혀를 차면서 아까와 하시더라구요.
이 자리에 있던 한옥이 문화재급으로 보존 해야 하는 데 없어졌다고 말이죠.”
재산을 물려받은 아들이 사업에 실패했다고 한다.
포장마차 주인이 나를 보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귀를 보니까 이런 포장마차에 올 분이 아니고 늙을수록 더 부자가 될 상인데요?”
“아저씨도 포장마차를 할 분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되받았다.
안경 뒤로 보이는 맑은 눈빛이 그렇게 알리고 있었다.
오십대 쯤의 영리해 보이는 남자였다.
“사업을 한답시고 설치다 아이엠에프때 다 들어먹었습니다.
포장마차도 길거리에 차리지 못하고 이렇게 후미진 구석에 차렸죠.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여기서 승부를 걸어보려고 해요.
그래도 제가 일본에 가서 초밥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김밥에는 자신이 있어요.
또 순대도 공급받지 않고 제가 특별히 만들었습니다.
근처에 전화국여직원도 천명이나 되고 교회도 있는데 한번 사가면 반드시 다시 주문하게 만들거예요.
길거리 포장마차로 뜨내기 손님에게 엉터리 음식을 팔지 않을 겁니다.
제 형제들이 강남 아이파크 넓은 평수 아파트에 살고 돈도 많아요.
그렇지만 저는 형이나 동생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민 적이 없어요.”
그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나는 살아오면서 여러 가지 소원을 빌었다.
그러나 그분은 내게 재물을 주고 권력을 주어 사람들 앞에서 부요하고 강대한 사람이 되게 하는 분이 아니었다.
그분은 오히려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게 했다.
나 자신이 별 볼 일 없는 존재임을 알고 받아들이게 했다.
그런 속에서도 우울증이 아니라 희망을 일으켜 나의 생애를 기쁨과 감사의 연속이 되게 했다.
소원 이상을 들어주는 분인 것 같다.
[출처] 내 소원을 거절한 그분|작성자 엄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