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주 기행](15)맑은 산성물로 빚은 남한산성 소주
|
남한산성 소주는 산성이 축성된 조선조 선조(1568~1608년)때 만들어져 임금께 진상됐던 술로 전해지고 있다. 산성에서 흘러 내려오는 좋은 물로 만든 이 술은 여유있는 사대부 집안에서 만들어 먹던 것으로 귀한 손님 대접이나 선물로 쓰이면서 그 맛과 향취가 각지로 소문나 전국에 이름을 떨쳤다고 한다.
#독특한 향과 맛
‘누룩이 좋으면 맛있는 술은 저절로 따라붙게 된다.’
남한산성 소주는 누룩과 술을 빚을 때에 재래식 엿을 사용한다. 전통 술을 빚을 때 당화력(糖化力)을 강화하기 위해 엿기름을 넣는 경우는 있지만 누룩을 빚을 때부터 곧바로 엿을 넣는 경우는 드물다.
남한산성 소주의 맛과 향이 독특한 것도 이 누룩 때문이다. 한모금 마시면 엷은 전류가 흐르는 듯하고, 혀끝이 알싸해지면서 입안 가득히 환하게 퍼진다. 그러면서 여인의 향기와도 같은 알듯 모를 듯한 그윽한 향기가 배어나오는데 그 향과 맛을 음미할 만하다.
처음 거른 술은 알코올 도수가 85도 이상이다. 나중에 점차 주정도가 낮아지므로 이를 섞어 40도가 되도록 한다. 용기에 담은 후 밀봉만 잘해두면 오래 저장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술맛이 무르익어 소주의 맛은 더욱 좋아진다.
죽엽색의 아름다운 빛깔을 간직한 산성소주는 다른 약재가 들어가지 않는 ‘맑은 술’이다. 높은 알코올 함량에도 불구하고 맛은 아주 부드럽다. 특히 아무리 많이 마셔도 숙취가 없어 애주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여러가지 유기질과 각종 향미 성분이 다양하게 함유돼 있어 적당히 마시면 식욕 증진, 혈액순환 촉진,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
#유래
흔히 산성에서 만든 술하면 성벽을 쌓던 노역자나 성벽을 지키던 무인들이 힘겨운 노동을 위로하기 위해 마시던 ‘막술’쯤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남한산성 소주는 이러한 산성 술과 차원이 다르다.
남한산성은 작은 서울이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숙종때 이미 1,000호가 모여 살던 번성했던 곳이다. 서울에 근접해 부자가 많았던 이곳은 수준높은 문화생활을 누렸다고 한다. 남한산성 소주의 족보는 희미하지만 그 안에서 배태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여유있는 생활을 하던 이들이 궁중식을 본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건강주로 산성소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유래돼 조선말기까지 널리 애용됐다고 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에 대대로 살면서 술을 빚었던 이종숙씨(1960년대 작고)가 서울 송파구로 이사를 해 양조장을 경영하면서 한때 술 이름도 ‘백제소주’로 바뀌기도 했다. 지금도 송파에 살고 있는 나이든 사람들은 이 백제소주를 기억한다. 이종숙씨가 술도가를 그만둔 뒤로 그 술도가에서 술을 빚었던 강신만씨(1971년 작고)가 둘째 아들인 강석필씨(70)에게 술 빚는 법을 전수했다. 강석필씨는 아버지에게 배운 술을 재현하여 1994년에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 남한산성 소주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지금은 아들 용구씨가 그 뒤를 이어가고 있어 3대가 남한산성 소주 기능 보유자가 됐다.
#붕어찜과 생선회 등 안주가 별미
산성소주는 알코올 도수가 높은 만큼 안주로는 육류가 무난하다. 하지만 남한산성 소주의 진수를 맛보려면 쏘가리회 등 생선회가 좋다고 애주가들은 평한다. 입안을 개운하게 하면서 소주의 독특한 향취를 더 음미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기에 물좋은 팔당호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참붕어로 만든 매콤하고 담백한 ‘붕어찜’ 요리는 최고의 안주로 꼽히고 있다.
남한산성 소주는 200·400·700㎖ 짜리 세종류가 있는데 수작업으로 만드는 관계로 생산량이 그리 많지 않아 면세점 또는 우체국 쇼핑 등을 통하면 구입할 수 있다.
〈광주|최인진기자 ijxhoi@kyunghyang.com〉 |
[전통주 기행]젊은세대 입맛 맞는 탁주도 개발
|
강석필씨가 남한산성 소주 전승에 팔을 걷고 나선 때는 1994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13호로 지정되면서부터다. 7년 뒤인 2001년 술이 출시되기까지 그는 숱한 시행착오와 어려움을 겪었다.
‘밑술빚기’와 ‘덧술빚기’ 등 두번 빚는 남한산성 소주는 제조법도 특이하다.
누룩은 통밀을 빻아서 조청을 푼 물로 반죽한다. 이렇게 만든 누룩은 다른 누룩보다 더 단단하게 뭉쳐진다. 술을 빚을 때에 누룩과 멥쌀을 1대 3의 비율로 섞는데 이때 엿을 물에 풀어서 사용한다. 딱딱하게 다진 누룩을 15일간 발효시키는데 이 과정이 끝나면 술을 빚을 수 있는 좋은 누룩이 나온다.
이어 차게 식힌 고두밥에 누룩과 조청·물을 차례대로 넣고 버무려 술독에 담아 앉힌 후 밀봉해 3~5일간 발효시키는 밑술빚기를 마치면 기포가 터져 오른다.
다음은 덧술빚기. 밑술 때와 같은 방법으로 재료를 혼합한 뒤 밑술과 골고루 섞어 밀봉한 뒤 10일 정도 발효시켜 소주고리에 담근 술을 넣고 소주를 내린다. 좋은 소주를 얻기 위해서는 가열한 솥의 불의 세기를 일정하게 잘 조절하는 것이 비결이다.
저도주의 바람이 거센 요즘 40도 소주가 시장에 진입하는 일은 쉽지 않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살아남을 특별한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남한산성 소주는 다른 전통주들의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는 일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주류산업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해 젊은 세대의 입맛에 맞게 만든 ‘남한산성 탁주’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특히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차례 일반인을 대상으로 전통주 만들기 체험 교실을 운영하며 서울 인근에 뿌리를 두고 있는 유일한 문화재급 술인 남한산성 소주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강씨는 “옛날에는 그 집안의 장맛과 더불어 술맛을 손님에게 자랑삼아 내보였고 좋은 술맛을 본 손님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술은 우리 민족의 삶에 깊숙이 자리잡았다”며 “그러나 일제시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명주들이 사라진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
[전통주 기행]백자 술잔에 가득부어 마시면 일품
|
최고의 명품 도자기를 생산하던 광주지역에 또 하나의 명품으로 꼽히는 남한산성 소주는 광주의 좋은 물과 남한산성의 비경, 그리고 정기(精氣)로 빚어진 명주다. 광주의 조선왕실 백자와 남한산성 소주는 역사적으로 깊은 연관이 있다. 광주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여러가지 궁중음식을 본떠 만든 독특한 음식 문화가 있었다. 이는 사옹원 분원도자기 번조장을 관리하는 궁중의 고급 관리들이 광주에 거주하며 그들의 궁중식 식생활 문화가 전래돼 당시의 음식문화가 형성됐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음식에 걸맞은 광주의 명주가 탄생된 것으로 생각된다.
예부터 남한산성의 동문 밖에 들어서면 마을에서 풍겨나오는 산성 소주의 술익는 향취가 골짜기를 타고 산성 전체로 퍼져 그윽하였다고 한다. 또 그 술향이 퍼져나가면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밀어내고 복스러운 기운이 남아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어 집집마다 남한산성 소주를 항상 보유하였다고 한다. 남한산성 소주는 여느 전통주와는 달리 오래 남아있는 술의 향기가 일품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쏘는 듯한 향취, 한잔의 술을 부어 입속의 잔향을 음미하며, 코끝으로 내뿜는 은은함은 애주가의 침을 마르게 하는 술이 아닌가 싶다.
그러한 명주를 광주에서 제작된 최고의 왕실도자기에 담아 임금께 진상하였을 것이다. 최고의 명품도자기에 최고의 명주라는 상품가치는 무척 가슴설레게 한다.
명품 도자기가 오랜 시간동안 흙을 숙성하여 수많은 인내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돼 수천도의 불속에서 탄생되듯이 남한산성 소주 또한 오랜 숙성과 수많은 정성으로 빚어지는 귀하디 귀한 땀방울의 결실이다.
나는 오늘 붉은 화염속에 유약이 녹아드는 가마 창살 틈으로 마지막 한 개비 장작을 던지고 앉아 오래전 구워낸 하얀 백자술잔에 가득히 산성소주를 부어 술향기 음미하며 검뎅이로 얼룩진 얼굴을 쓱 닦는다.
〈조민호| 경기 광주왕실도예사업조합 이사장〉 |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