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삼봉, 멀리는 오대산 연봉, 응복산 오르는 중에서
도시의 ‘떠들썩한 세상’의 차량들 한가운데서 마음이 헛헛해지거나 수심에 잠기게 될 때, 우
리 역시 자연을 여행할 때 만났던 이미지들, 냇가의 나무들이나 호숫가에 펼쳐진 수선화들에
의지하며, 그 덕분에 ‘노여움과 천박한 욕망’의 힘들을 약간은 무디게 할 수 있다.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여행의 기술』
▶ 산행일시 : 2013년 8월 3일(토), 맑음
▶ 산행인원 : 9명(드류, 대간거사, 한계령, 가자산, 메아리, 선바위, 상고대, 사계, 승연)
▶ 산행시간 : 5시간 32분
▶ 산행거리 : 도상 9.3㎞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시간별 구간
06 : 32 - 동서울 출발
10 : 23 - 홍천군 내면 광원리 큰쇠골 입구, 산행시작
11 : 41 - 983m봉
12 : 18 ~ 12 : 37 - 954m봉, 점심
13 : 10 - 암릉
13 : 32 - 응복산(鷹伏山, 1,177m)
14 : 23 - 1,098m봉 지난 ├자 능선 분기봉
15 : 15 - 1,101m봉 지난 ├자 능선 분기봉
15 : 55 - 큰쇠골 베이스캠프, 산행종료
1. 어수리(?)
▶ 응복산(鷹伏山, 1,177m)
드디어 장마가 끝난다고 하기가 무섭게 바캉스 시즌이다. 88올림픽대로 암사동 근처를 지날
때부터 길게 늘어서기 시작하는 차량행렬이 아무래도 수상하여 춘천고속도로로 가려던 당초
계획을 바꿔 6번 국도로 가려고 미사리로 방향을 틀었다. 쌩쌩 달려 우리의 판단이 지극히 적
실하고 현명했음을 기꺼워한 것은 수백 미터 잠깐이었다.
팔당대교 건너기가 어렵다. 근 한 시간이 걸렸다. 오늘 아침가리(조경동)로 놀러간다는 스틸
영 님을 생각해내고 어떻게 가는지 전화 걸었다. 춘천고속도로는 서종IC를 지나고부터 정상
소통이라고 한다. 우리는 방금 서종IC를 지나쳤다. 6번, 44번 국도도 그런대로 정상소통이다.
홍천이 가까웠지만 잦은 신호대기를 더 못 참아 중앙고속도로로 들어 한풀이로 달려본다.
목적지인 광원리 큰쇠골이 56번 국도로 서석을 경유하는 편이 빠르다. 아니다, 철정에서
451번 지방도로 가는 편이 더 빠르다. 말씨름하는 사이에 우리 차는 동홍천IC를 빠져나온다.
이제는 외길. 철정에서 451번 지방도로로 든다. 내촌천 구불구불 돌다가 아홉사리재 넘어 상
남천, 방태천, 내린천, 계방천을 차례로 휘돈다. 물가 곳곳에는 야영텐트가 진을 쳤다.
광원보건진료소를 지나고 광원교 건너기 직전 왼쪽 좁은 길로 들어 계방천을 허름한 다리를
건넌다. 여기도 피서 행락객은 만원이다. 산자락 임도 돌아 큰쇠골 입구. 여기까지 오는 차안
에서 지쳤다. 큰쇠골 크게 도는 산릉을 우선 나 혼자만 오르고, 다른 일행들은 먹고 마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임도 따라 큰쇠골 막다른 골(1.5㎞)까지 간다.
나는 산기슭 덤불숲 헤쳐 생사면에 붙는다. 잡석 부슬거리는 가파른 사면이다. 게거품 물고
한 피치 올려치니 능선 마루다. 그러면 그렇지. 잘 다듬은 소로가 앞서간다. 소로는 무덤 지나
고 나서 그 자세가 약간 흐트러진다. 등로 주변의 즐비한 아름드리 적송을 우쭐우쭐 사열하며
오른다. 살랑살랑 부는 솔바람이 더할 나위 없이 시원하다.
이따금은 타네다 산토카(種田山頭)를 생각한다. 이런 때.
무엇을 찾아
바람 속을
가는가
환청인가? 일행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바람결에 들려오는 듯하다. 어느 능선을 오르고 있을
까? 잰걸음 하다 멈추고 가만 귀 기우려보면 들리는 건 매미 울음소리뿐.
지능선 모아 등로가 나아지기는커녕 풀숲과 잡목이 점점 우거져 사납다. 983m봉 넘고 입석
위의 돌탑을 본다. 옛적 유적 같다. 우리 일행이 지나갔을까? 발자국 찬찬히 살핀다. 등로에
실한 더덕이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서 지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뚝 떨어졌다가 길고 완만하게 오른다. 일행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갑다. 954m봉.
둘러앉아 점심 먹고 있다. 막다른 큰쇠골에서 가파른 지능선 잡아 954m봉을 올랐단다. 상고
대 님과 사계 님은 산행 뒤풀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큰쇠골에 남았다. 이렇듯 호젓한 산은
혼자 걸어도 좋고, 여러 악우들과 함께 걸어도 좋다. 걸음걸음이 정겹다.
암릉이 나온다. 빗물에 젖은 날등이 미끄럽다. 달달 긴다. 능선은 잠시 느슨했다가 곧추 선다.
모처럼 오늘 원족산행에 얼굴을 내민 선바위 님이 선등. 예전의 실력 그대로다. 세상 일 다 참
견하면서도 고른 숨으로 대번에 올려친다. 나는 겔겔 대는데.
응복산. 건너편의 가칠봉(柯七峰, 1,240.4m), 사삼봉(私參峰, 1,107m)과 더불어 삼봉이다. 다
른 두 봉과는 달리 사방 나무숲으로 가려 아무 조망 없다.
2. 큰쇠골 입구 주변
3. 등로 돌탑
4. 응복산
5. 가칠봉
6. 단풍취(丹楓-, Ainsliaea acerifolia),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
7. 등로
▶ 큰쇠골
드넓은 초원을 누빈다. 산상화원이다. 참나물꽃, 참취꽃, 도라지모싯대, 단풍취꽃, 동자꽃 등
등이 한창이다. 1,098m봉을 사뿐히 넘고 1,154m봉 가기 전 ┫자 능선 분기봉에서 왼쪽(남쪽)
으로 꺾는다. 가도 가도 산행표지기 한 장 보이지 않는 오지다. 키가 작아 멀리서는 풀밭으로
보이는 산죽지대를 지난다.
잡목 무성한 바윗길인 1,101m봉을 넘고 쭉쭉 내리다가 주춤한 Y자 능선 분기봉. 왼쪽 지능선
은 큰쇠골 우리의 베이스캠프로 곧장 내리고 오른쪽은 큰쇠골을 도는 산릉이다. 시간이 빠듯
하거니와 나와 함께 오른쪽으로 길게 능선을 타려는 이가 없다. 아쉽지만 다수 쫓아 베이스캠
프로 내린다. 원시림 속 줄곧 내리막길이다.
뇌성은 먹구름 동원하고 한동안 으르렁대며 겁을 주었지만 우리가 미동도 않고 모른 채하자
그만 물러난다. 큰쇠골이다. 옥수인 계류가 괄괄 흐른다. 서둘러 계류에 뛰어든다. 차디차다.
불과 수초를 버티기 못하고 뛰쳐나왔다가 이 앙다물고 다시 든다. 무엇보다 발이 시리다. 하
여 물속에 눕되 발을 쳐들어 물 밖으로 내 놓아야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상고대 님과 사계 님이 언쟁하여 지킨 베이스캠프다. 인근 농가에서 부부가 올라와 장뇌삼 재
배지가 가까워서 입산금지인데 어떻게 들어왔느냐며 취사는 물론 세면탁족도 할 수 없으니
나가줄 것을 강요하더란다. 여기가 어떻게 귀하의 땅이며 어디에다 입산금지라 광고하였느
냐고 따지는 한편 우리처럼 뒤처리가 깨끗한 이는 세상에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장담하고, 우
리가 물러간 뒤에 와서 살피시라 라면발 한 올이나 이쑤시개 하나라도 보이면 연락하시라 얼
른 와서 치우겠다고 하였더니 물러가더란다.
족발 안주하여 탁주로 목 추기고, 오리와 삼겹살 구어 생더덕주 음미한다. 소주가 겨우 2홉들
이 4병으로 적으니 더욱 맛나다. 도란도란한 담소 또한 산그늘이 지도록 다정하다. ‘쇼걸’ 아
닌 ‘쇼맨’ 사계 님. 노미 말론(Nomi Malone, 엘리자베스 버클리 분)이 무색하다. 관련 사진은
모두 '19금'이라 올리지 못함을 양해하시라. 하도 웃어 가뜩이나 눈가 주름이 또 늘었다.
<추기> 서울 가는 길도 교통체증이 극심했다. 국도가 처음에는 원활하더니만 양평에서부터
기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동서울 강변역까지 가다가는 전철이 끊길 것이 뻔하여 여러 일행
이 신원역에서 전철로 갈아 탄 것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8. 동자꽃(童子-, Lychnis cognata),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
동자꽃의 전설. 옛날 깊은 산속 작은 암자에 스님과 동자승이 함께 살고 있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겨울나기를 위해 스님은 동자승을 암자에 남겨두고 마을로 잠시 시주를 나
가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폭설이 내려 스님은 도저히 암자로 돌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되
었고 눈이 녹기만을 기다리던 스님은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암자에 돌아갈 수 있었다.
어린 동자승은 스님을 기다리다 바위에 앉은 채로 얼어 죽고 말았다. 스님은 동자승을 바위
아래 양지바른 곳에 묻어 주었고, 그해 여름 동자승이 묻힌 무덤가에 동자승의 발그스레한 얼
굴을 닮은 꽃들이 피어났는데, 사람들이 이 꽃을 ‘동자꽃’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꽃말은
‘기다림’
9. 등로
10. 등로, 한계령 님은 작업중, 대간거사 님과 선바위 님(오른쪽)
11. 큰쇠골과 전경
12. 어수리(?)
13. 구글어스로 내려다본 산행로와 그 주변
첫댓글 아주 시원하고 쾌적한 하루였습니다...역시 휴가산행은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