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왜 굳이 장애아들 10년간의 이야기를 세상밖에 얘기하려 해? 라고 묻는다면, 나는 1년간 칼럼 쓰기를 결심하면서 내가 세상에서 만난 이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꼭 장애 부모들과 치료사들 그리고 나와 같이 고민하면서 사는 세상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라 말하련다.
나는 결코 자랑을 나열하려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내 이야기를 통해 희망을 노래하련다.
그렇다. 난 장애도라는 섬에서 탈출한 발달장애 청소년 양예준이 엄마다. 한때는 방송일도 하고 전직 편집기자였지. 그러나 이제는 색연필 화가 아들의 매니저이자 1인 기획자라 당당히 말한다.
아들을 미술 회화 부분 분야로 68개 상을 받게 했고, 대학 부설 영재원에 입학시켰으며, 서울시 창의 과학예술 분야 시민상도 서울 시장님께 받게 했고, 전국 발달장애 미술작가들 커뮤니티의 대표 맘으로 활약하게 된 계기를 말이다.
그래, 바로 내 자랑스러운 아들 예준이 덕분이지! 라고.
예준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픽사베이
10년 전이다. 나 역시 여느 부모들처럼 내가 낳은 아들은 똑똑하고 명석하리라 의심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도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나 역시 기자 일을 한바 우리 부부는 공부만큼은 자부심이 조금 있었다. 그러나 예준이가 태어나면서부터 현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금 늦된 거겠지? 설마? 그럴 리가.
16개월 무렵부터 아들의 늦된 행동을 의심하며 나는 얼마나 자폐성 장애가 아니라는 소리가 듣고 싶었던 걸까? 정신과 의사를 14명이나 바꿔가며 비슷한 진단명을 들었다. 어느 날 친정엄마가 내게 묻는다.
'얘, 네가 봐도 예준이가 평범해? “그 의사들이, 만일 장애라 진단 안 하면, 아니 한다면 그때부터 뭐가 달라져? 그땐, 네 자식이 아닌 거야?”
그때였다. 결국, 모든 질문의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사들의 진단으로 예준이는 장애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분명 내 소중한 아들이라는 것을.
그 이후 나는 더는 진단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그렇게 7세 무렵 서울대 병원에서 최종장애 판정을 받고 복지 카드를 받던 날,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서 두루마리 휴지를 통째로 입에 물고 소리도 밖으로 내지 못한 채 차디찬 욕실 바닥에 누워 한참을 울고 있었다. 내가 한없이 예준이에게 죄인이 된 것 같아 온몸으로 울며 미안했다. 그 후로는 더는 울지 않았다.
처음에 예준이 '때문에' 내가 직업도 포기하는구나! 라는 생각에 회사에 아들의 장애 얘기를 꺼내지 못하고 사표를 던지던 날. 자식이 때론 원수 같아 보였고, 원망 섞인 말이 혀에 매달렸다. 어린이집, 유치원 어느 곳에서도 ‘장애아이라 대소변도 못 가려요?’ 하며 문전 박대했다.
‘아들 때문에 내 평생은 이리 살게 되는구나!’, ‘나까지 장애인 취급 받는구나! 누군가에게 한 번도 놀림 받아본 적, 연민의 눈길 받아본 적 없던 내가 왜 내가 아들 때문에 이 대접을 받아야 하지’, 하며 아들을 원망했지만, 철저히 나도 아들을 닮아가며 장애도라는 섬으로 숨어들 때 남편도 함께였다.
나는 어느 날, 성당에 발달장애인 미사라는 곳을 인터넷에서 찾아 남편과 아들을 데리고 참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 성당의 자매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아이 이름이 예준이요? 여기 왜 오셨어요?” 나는 그녀에게 아이 장애를 조심스레 얘기했다.
“예준이 때문이라 말하지 마세요. 예준이 덕분에~라고 하셔야죠?”
“자매님, 예준이 덕분에 앞으로 많은 세상의 참된 기쁨을 알게 될 거예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저 사람, 무슨 소리래.'
정말 많은 발달장애인을 처음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리고 천방지축으로 예의라곤 없는 사람들…. 그러나 누구도 그들을 제재하지 않았다. 그 자유로움 속이 마치 피터 팬? 그리고 돌쟁이 아이들 같았다.
이제 겨우 만 6살 내 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내 아들이 저들처럼 커서도 행동할 거란 생각에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얼마나 한참을 기도했을까? 한 달간 내 새벽 기도 주제는 한결같았다. '장애가 아니게 해주세요. 제발, 제가 목숨도 기꺼이 바치겠나이다. 아멘.'
그러나 하늘은 들어주시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던가? 마지막으로 내 기도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 뜻대로 하소서. 제 것이 아니나이다. 잘못했나이다. 당신께서 잠시 제게 맡겨두신 당신의 아들인 것을 마치 제 아들이라 착각한 저를 용서하소서~ 아멘'이라고.
그때였다. 내 기도는 비로소 하늘에 닿았다. 그날 이후부터 나는 기적을 경험했다. 내 아들이 내게 온 천사라는 것을. 나는 아들 때문이 아닌 덕분에 삶에 제2의 삶을 만났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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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장윤경 black-ch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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