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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agaser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 (딤전 2:1-4)
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시간에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기도의 폭은 넓을 수록 좋습니다. 우리 기도의 폭이 왜 넓혀져야 할까요? 그래야 남도 살고 나도 살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가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시대를 소위 글로벌시대라고 합니다. 세계화 시대, 국제화 시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마치 큼직한 야구의 글로브 장갑처럼 한 통속이 되어 있는 시대를 가리킵니다.
즉 통신과 교통의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개별적이고 폐쇄적인 문화형태가 광범위하게 개방적이고 유기적인 세계화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땅에서 한 사건이 개인이나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와 연관이 되어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그 예로 미국의 금융시장이 흔들리므로 우리나라를 비롯 여러 나라에 IMF라는 외환위기가 다가온 것과 같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사람들이 밀림을 마구 베어 내어 3분의 1이 사라졌는데 그 땅이 기름진 농토가 될 줄 알았는데 대부분 사막이 되고 말았고, 그 피해는 지구 전체에까지 파급되어 산소 부족은 물론 엘니뇨현상과 같은 기상이변까지 불러오고 있습니다.
한 연못에 사는 두 마리의 물고기 중 한 마리가 죽자 나머지 한 마리도 그 썩은 시체의 오염으로 죽고만 이야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역시 그 폭을 넓혀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히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다스리게 되고 그들의 평안이 곧 우리의 평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 “도고”라는 말이 나오는데 도고는 남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성경에 도고(禱告)는 빌 '도'(禱)와 고할 '고'(告)의 합성어로서 단순히 '기도로 고하다'는 뜻이지만 원문으로 보면 헬라어 ‘엔튜크시스’, 영어로는 intercession(인터세션)으로 접근, 인터뷰, 사회적 접근 등의 의미일 뿐 아니라, 이 용어가 성경 여러 곳에서 이웃을 위한 기도에 사용되었다는(사52:12, 롬8:26, 딤전2:1-2, 4:5) 점에서 흔히 이웃을 위한 기도로 해석되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모든 사람을 위한 기도란 결코 도고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이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기에 나오는 네 가지 기도 모두가 “모든 사람,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라는 부사구의 수식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의역한다면 “모든 사람과 위정자를 위하여 간구하고, 기도하고, 도고하고, 감사하라.” 즉 4가지 기도를 모두 하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1절에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그랬는데 이것은 시간적인 우선순위라기보다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말합니다. 섬김의 기도를 가장 귀한 기도로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의 대사회적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사회와 국가와 국제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다 무너지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임금들과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를 가장 중히 여기라고 말씀합니다.
그럼 위정자들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1. 국가의 문제를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첫째로 “간구하라.” 여기 “간구”는 헬라어 ‘데에세이스’ 즉 긴박한 상황에 놓인 개인이나 회중이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특별한 경우를 위한 애원입니다. 마치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학대로 말미암아 부르짖었던 기도가 간구입니다.
혹은 파사의 유다인들이 원수 하만이 죽이려고 할 때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부르짖었던 그 기도도 역시 간구입니다. 혹은 사사기에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기다가 진노를 받아 이방의 침략으로 온갖 고통을 당할 때 여호와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는데 그것이 바로 간구입니다.
국가의 위기나 중요한 사항을 보면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무임승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평화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기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100% 무임승차입니다. 종교를 빙자하여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사람들만 무임승차가 아닙니다. 사회와 나라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것도 무임승차입니다. 위정자들을 위해서 국가의 안보와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그리고 북한의 자유와 복음화를 위해서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못사는 나라만 아니라 잘사는 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미국의 트럼프가 모처럼 이슬람화되어 가는 미국을 개혁하고자 일어났지만 그에게 약점과 아울러 너무나 많은 정적들이 국내외에 있습니다. 유세기간에 보여준 대로 미국의 방송언론부터 거의 100%가 트럼프의 적들이었습니다. 미국이 잘되어야 우리도 잘 됩니다.
우리나라도 정치상황이 비슷하거나 더 심각하기 때문에 함부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방송 내용으로 기도하지 말고 성령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우리 생각과는 달리 성령께서는 다급한 상황으로 우리를 이끄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할 때 나라의 상황을 바로 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잘해야 나라가 평안합니다.
2. 문제가 없어도 기도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라.” 했는데 여기 그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간구에 이어 기도하라. 간구는 문제가 있을 때, 기도는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넓게 보면 여기 4가지 기도 모두가 동의어요, 간구는 기도에 소속될 수 있지만 기도가 모두 간구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 “기도”란 ‘프로슈케’로서 성도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통하며 기원하는 모든 행위를 총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간구 다음에 기도를 말한 것은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평온한 나라에 사탄이 틈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피터 와그너의 기도시리즈 책 중에 ‘지역사회에서 마귀의 진을 헐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는 가정과 지역과 사회 속에 견고한 마귀의 진을 기도로 파할 때 지역복음화의 계절이 오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말대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 잭 헤이포드 목사가 쳐치온더웨이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헤이포드 목사님이 혼자 예배당에 있을 때면 가끔 “작고 거무스름하고 구름같이 생긴 물체”인데 나타났다가 사라지곤 했습니다. 헤이포드는 하나님께서 교회 부흥을 방해하는 사단의 세력을 보여주심을 깨닫고 날마다 소리 높여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을 선포하며 교인들과 1년 이상 전투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동안 교회를 억누르던 악령은 떠나가고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기 시작하여 매주 만 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오 할레비스는 기도를 가르켜 “하늘의 능력이 땅에 부어질 수 있는 통로”라고 말하면서 “기도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구원의 능력을 이 세상에 부어 주실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있든지 없든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3. 나라의 방패라는 사명감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도고하라.” 여기 도고가 의미하는 것이 대신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가 모두를 위한 기도일 수 있지만 특히 도고는 남을 위한 기도로 중보기도로 해석되기도 했던 낱말입니다. 오늘날 ‘중보기도’란 용어 사용 여부에 대해 사람들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예수님만이 사람과 하나님 사이의 유일하신 중보이시므로 신자들이 하는 기도에 이런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예수님만이 유일한 중보이신 것은 맞지만 신자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 앞에 드리는 것이므로 중보기도란 용어를 사용해도 무방하다고 주장합니다.
우리 총회에서는 혼란을 피하기 위해 중보기도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하고 "이웃을 위한 기도"나 “도고”라는 용어로 사용하기로 하자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도운동을 일으키기에 탄탄한 키워드가 되었던 중요한 낱말이 사라지고 대안이 되는 충분한 명칭이 제시되지 못한 점에서 기도운동에 상당한 위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용어가 중요하느냐 할지 모르지만 기도사역을 이끄는 사역자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안으로 주어진 명칭이 기도운동을 충분히 담지 못하거나 기도자들을 어떤 의미 아래 결속시키기에 충분한 의미를 던져주지 못한다면 여기서 오는 사역의 한계와 혼란과 답답한 상황이 다가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즉 중보기도를 대신할 충분하거나 더 좋은 다른 명칭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명칭이 어떻든 어떤 이유에서든지 대신하여 기도하는 도고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나라를 위한 기도에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삼하21:17에 다윗을 "이스라엘의 등불"이라 했습니다. 다윗이 죽으면 안 됩니다. 왕하13:14에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병거와 마병"이라고 했습니다. 엘리사가 나라를 위해 기도하니 아람나라가 침범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 기도의 제목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나던 그 날 새벽 꿈에 북한군의 활동을 보았는데 너무나 현실 같아서 무슨 일이 일어나려 하나보다 하고 기도했는데 낮에 속보가 떴는데 북한의 대대적인 포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엄청난 포격 속에서 주민들은 거의 다치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로 모두 부두가에 나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남을 위한 도고가 그토록 필요한 이유는 결국 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때 그것이 내 영혼에 넘치는 은혜가 되고 복이 됩니다. 그래서 눅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이 장성하려면 반드시 순종해야 할 필수적인 관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도고자를 통해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겔 22장에는 한 사람의 도고자를 찾을 수 없어서 도시가 멸망하게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겔22:30절에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멸망시킨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저서를 쓴 이엠 바운즈는 “교회는 더 좋은 방법과 계획을 추구하지만 하나님은 더 좋은 사람을 찾으신다. 성령의 역사는 어떤 방법이 아니라 기도의 사람을 통해 이루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와 지역과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위하여 눈물로 도고하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4. 믿음에 서서 더 아름다운 것을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감사하라.” 했는데 “감사”는 ‘유카리스티아’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하며 드리는 기도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감사는 보다 강력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 때 감사의 기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빌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되 우리의 소망하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역사해 주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소망하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가 바로 감사입니다. 현실의 문제에 너무 절망하지 말고 하루 세 번씩 드렸던 다니엘의 감사와 같이 역사와 우주와 인간을 주장하사 선하게 이끌어주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피와 땀이 흐르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간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기도는 영적인 엔진과 같아 기도 없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기도하되 우리 기도에 더욱 나라와 위정자들을 위해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함으로,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과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놀라운 은혜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