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탈무드에 “지혜로운 사람은 본 것을 이야기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들은 것을 이야기한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이 들은 것이 아닌 남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만 듣고 마치 그것이 사실인냥 나불거리다가는 큰 코 다친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늘 자기 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고, 자기 생각으로 말을 지어내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람의 말은 양자의 이야기를 다 듣기 전에는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양자대면을 해도 서로 다른 주장을 하는 판인데 서로의 주장을 들어보지도 않고 한 사람 말만 듣고 사안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우리 속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한편 말만 듣고 송사 못 한다”는 말이다. 한 쪽의 주장만으로는 절대 재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안방에서는 시어머니 말이 맞고 부엌에서는 며느리 말이 맞다.’는 말도 있다. 한쪽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되면, 결국 불공평하여 나쁜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되고 그 폐단의 정도는 점점 심화되게 마련이다. 즉, 한쪽 말만 들어 간사한 자들에게 득세할 기회를 주어 독단과 전횡을 일삼게 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공정함과 균형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중지(衆智)를 모아 판단하기가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偏(치우칠 편), 聽(들을 청), 生(날 생), 姦(간사할 간), 편청생간이라고 했다. 한쪽으로 치우쳐 들으면 간사함이 낳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 시대가 딱 그런 시대가 아닌가 싶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거나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이다. 지혜와 어리석음이 무색하게 보고도 못본척 하고 듣고도 못들은 척하니 어찌 이 사회가 장상적으로 돌아가겠는가?
지혜로운 왕이라는 다윗도 사울 가문의 종이었던 시바가 자기의 주인 므비보셋을 모함하고 주인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속셈으로 거짓말를 지어서 한 이야기만 듣고 어리석은 결정을 한 적이 있다.
(삼하 16:2)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뜻으로 이것을 가져왔느냐 하니 시바가 이르되 나귀는 왕의 가족들이 타게 하고 떡과 과일은 청년들이 먹게 하고 포도주는 들에서 피곤한 자들에게 마시게 하려 함이니이다 (삼하 16:3) 왕이 이르되 네 주인의 아들이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 하는지라 (삼하 16:4) 왕이 시바에게 이르되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니라 하니라 시바가 이르되 내가 절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내가 왕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 하니라
하지만 시바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므비보셋은 다리에 장애가 있어서 다윗을 따라가지 못했을뿐 압살롬의 반역을 몹시 가슴아파하면서 다윗이 예루살렘을 떠난 것을 수염도 깍지 않고 슬퍼했었다. 그러나 다윗은 자신이 보지도 않은 것, 특히 한 사람의 말만 듣고 아주 잘못된 결정을 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종종 다윗처럼 어리석은 판단을 하곤 한다. 팩트를 확인하지도 않은채 보지도 않은 것을 일방적인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남을 판단하고 평가함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구약성경 잠언에서도 이 부분을 바르게 지적합니다.
(잠 18:17) 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