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C(김광모 토요 칼럼 2026.9.26) 여천 여수 석유화학 단지 건설 제3 이야기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여천/여수 석유화학 단지건설
제3 Story
1. <광양 제철과 충남 비인(대산) 석유화학 건설>
여천/여수 석유화학 단지의 대안에 있는 광양은 80년대 초 당시 한국에
숨어 있는 최고의 중화학 단지였다.
중화학단지를 관리하고 있던 청와대 경제2는 비밀리에 장래의 석유화학과 일반 화학공업을 위한 단지로 유보해 뒀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중화학 1호공장인 연산 103백만 톤의 종합제철 공장은 대일청구권 자금을 사용하여 국영기업체인 포항제철 POSCO( Pohang Steel Corp)를 설립하여 건설한 것이다.
포철은 73년 7월 3일에 1단계 사업인 연산 103만톤의 조강공장 준공식을 박정희 대통령 참석하에 거행한 이래 한국의 경이적 경제성장을 선도하는 역할을 다했다.
포철의 1백만톤 공장은 확장에 확장에 확장을 거듭하여 79년 2월 제4기 확장 시에는 8백50만 톤을 목표로 하여 6년 만에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도하는 비약적인 발전을 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73년 1월 2일 중화학 선언에서 피력하신 단일공장으로 연간 1천만톤 생산의 철강단지 건설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중화학 건설 야전 사령관인 청와대 오원철 경제2 수석 비서관은 78년 초 신규로 1천만 톤 철강단지 지정을 포철과 상공부 실무진과 토의하여 상공부 장관관이 서명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로 하였다.
제2제철 입지 조사 팀은 후보지로 비인과 가로림만 그리고 낙동강 하구언등 4개 후보지중 비인을 후보지로 한다는 결정을 하였다.
청와대는 이안을 상공부 장관 결재후 국무총리의 승인을 받고 최종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받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미니차트로 총리 서명 까지 받아 대통령 재가를 받기 위하여 청와대 경제 2로 보내왔다.
오수석이 박정희 대통령께 재가를 받기 위하여 브리핑 드렸더니 다시 검토하라고 하셔서 보류되었다 (자료 담당 비서관, 보관 열람 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시자 포철은 석유화학단지로 유보해 두었던 광양을 잘됐구나! 하고 포철의 제2제철 부지로 결정하여 공장읕 건설하였다
제2제철의 후보지였던 충남의 서천 비인은 석유유화학 석유화학단지가 되어 삼성 대산 석유화학 (현 한화 오션) 이 들어서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석유화학과 종합화학 공장단지 후보지였던 광양은 제2 제철 단지가 되고 제철 후보지였던 충남 서해 비인(대산 현 한화 오션)은 석유화학 단지가 되었다.
2. 여천단지에 대한 정부지원 공사
여천 중화학단지를 건설함에 있어서 정부지원 사업으로 제일 중요한 것이 항만시설에서의 부두건설과 공업용수로 설치 공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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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천 반도는 한면이 바다로 되어 있는 무풍지대로서 공장지대와 배후도시를 합쳐서 여천 석유화학 건설지역으로 지정해야 했다.
필자는 오원철 수석으로 부터 지시를 받고 현장에 내려가서 도면상에 창원 기계단지의 두 배인 3천만 평을 여천 석 유회학 단지로 지정하는 초안을 만들었다.
해안선이 있는 지적도에 자를 대고 동쪽 1천만평을 공업단지로 하고
2천만 평은 배후 주택단지와 기타로 하는 선을 그어 단지를 확정하였다( 필자의 작업광경을 목격한 분이 김대기 호정 공장장이었다).
울산은 전쳬단지에 여유가 없어 석화단지가 10만 평 밖에 안되는데 반하여 여수는 공장단지 100만 평에 주거단지를 합하여 3천만 평으로 한국의 최대의 단지가 된 것이다.
(현재 배후 단지는 여수시의 주거지가 되었고 여천단지는 여수 국가산단이 되어 있음)
여천 석유화학 단지에 일본의 두재벌 기업이 투자하고 여천단지의 인프라가 좋지 않아 여천단지 건설이 난관에 부탁 쳐 건설한 것이 여천단지 선발공장 대지였다
3. 제7 비료공장 남해 화학
선발공업 단지에는 한국의 종합화학과 미국의 Agrico사간의 국영기업체가 건설한 공장이 세계최대의 종합 복비 비료와 무기산을 생산하는 국영 기업체 남해화학이 건설되었다.
요소를 생산하는 원료로서 나프타의 수입은 대소 산유국과는 경쟁할 수 없어 문을 닫은 것이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한번 다시 생각해 보면 한국의 오랜 기간의 농본지 국가에서 필요 불가결한 것이 비료였다.
최후까지 살아 있던 것이 세게 최대의 질소비료와 복비를 생환한 제7 비료 공장이었다
선진국을 유지하려면 최소한의 농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여태껏 수입할 것을 국내생산 했는데 생산공장 모두가 문을 닫은 셈이다.
요소수 파동이 있을 때 미다 여천단지 선발사업으로 건설한 제7비료 남해화학이 생각난다.
4. 여천 석화단지 인프라
건설
여천단지에는 대소 하천도 하나 없고 댐도 없어 일일 필요한 25만 톤 용수 공급관을 섬진강류의 다압댐에서 문제의 연약지반을 통과하여 60km 거리에 달하는 송수관을 설치하여야 했다.
한국 최장의 대형 송수관 공사를 하는 것은 건설부의 수로관 공사로서는 최악의 난관 공사를 하는 것이었다.
일본 학자들의 한국의 중화학 성공요인은 정부의 공명정대한 입지 지정과 8 사전에 정부가 인프라를 건설한 것이고 또 하나는 혁명적인 기술인력 양성이라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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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26 김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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