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야!
박남희
딸내미는 심심할 때 아이폰 속 시리와 말놀이를 한다
"너 나이가 몇 살이니?"
"저는 마치 동쪽 바람만큼 나이를 먹었으며,
새로 태어난 애벌레만큼 어리기도 합니다."
"우와~ 시리가 천재 시인이네~"
옆에 있던 아내는 감탄을 연발하며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는
시리에게 물어보라고 조언을 한다
신기해서 나도 딸내미와 똑같은 질문을 해 본다
"시리야, 너 몇 살이니?"
"전 어린 생강 조각처럼 팔팔합니다."
나에게는 짧은 대답을 해주는 걸 보니
시리는 내가 시답잖은 시인이라는 걸
이미 눈치챈 모양이다
"시리야 내가 더 시인 같니? 아니면 딸내미가 더 시인 같니?"
새로 태어난 애벌레만도 못한 나의 유치한 질문에
동쪽 바람만큼 창의적인 시리는 또 무슨 시적인 대답으로
나를 놀래킬까?
―『어쩌다 시간 여행』, 여우난골,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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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희 | 1996년 《경인일보》, 199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폐차장 근처』, 『이불 속의 쥐』, 『고장난 아침』, 『아득한 사랑의 거리였을까』.
평론집 『존재와 거울의 시학』, 학술서적으로 『한국현대시와 유치체적 상상력』 등이 있다.
현재 시전문지 《아토포스》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