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66]
김철훈(金哲勳, 1905~1948)②
김철훈은 설교 중 신사참배를 반대한 일로 체포되어 9개월간 감옥생활 후 평양신학교 재학시절 조직된 농우회(農友會) 활동을 졸업 후에도 유지해오다 그 단체가 독립운동 위장 단체라고 지목되어 2개월간 또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만주로 가서 활동하려고 송산리교회를 사임했지만, 1939년 삼성리교회 장로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그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2년 3월에 <성서조선>이라는 잡지에 실린 내용을 문제 삼은 일제에 의해 김철훈은 또 8개월간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일본 경찰이 그 잡지를 폐간한 이유는 ‘조와(弔蛙)’라는 제목의 짤막한 글 때문이었는데, 개구리에게 조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혹독한 겨울을 이겨낸 개구리로 비유된 독립운동가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한 글이었습니다. 일제는 이 글에 관련된 인사들을 투옥했던 것입니다. “<조와> 지난 늦가을 이래로 새로운 기도 터가 생겼다. 층암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가느다란 폭포 밑에 작은 담을 형성한 곳에 평탄한 반석 하나가 솟아나서, 한 사람이 꿇어앉아 기도하기에는 하늘이 마련해 준 성전 같았다.”라는 글로 시작된 수필이었습니다. 몇 년 후 해방이 되었고, 그는 1945년 9월에 평남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인 고당 조만식 옛 스승을 보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운형 선생에게 공문을 전달하는 중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다음 달 10월에는 800여 명 규모의 동평양교회에 부임했습니다. 당시 이북에서는 김일성 정권을 선전하기 위한 기독교연맹이 결성되었는데, 김철훈은 가입에 반대했고, 1948년 2월 산정현교회에 부임해서 목회에만 전념하다가 그해 6월 공산당에게 체포되어 끌려갔다가 행방불명이 되고 말았습니다.
<참고문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순교자기념선교회 홈페이지
https://pck-pcmma.com/132/?bmode=view&idx=1703640
이승하. “한국교회 순교자들(4) 김철훈 목사”(한국장로신문,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