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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쉰들러 리스트>의 주제곡
* <쉰들러 리스트>에서
[이 시대 최고의 감독,스티븐 스필버그]
1946년 미국 신시내티에서 태어난 스티븐 스필버그는 13세 때 이미 <도피할 수 없는 탈출>이라는 제목의 40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영화제작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영화과를 졸업한 그는 단편영화 <앰블린>을 애틀랜타 영화제에 출품한 것을 계기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입사하게 됩니다.
* <링컨>에서
입사 이후, TV 영화 <격돌>과 영화 <슈가랜드 특급>으로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발돋움하게 되고 <죠스>, <미지와의 조우>를 잇달아 발표해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그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는 <E.T.>,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와 <쥬라기 공원>시리즈,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A.I>, <캐치 미 이프 유 캔>, <마이너리티 리포트>, <뮌헨>,<터미널>,<링컨> 등의 대작을 계속해서 연출하며 흥행감독이라는 명성에 걸맞는 활동을 펼쳐 나갔습니다.
* <인디아나 존스 1편>에서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사상 최고 흥행작 20위에 포함되는 8편의 작품을 제작, 감독했고 영화 예술과학 아카데미의 어빙 G. 탤버그상과 미국 영화협회의 평생공로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2000년도 가을엔 영국 영화 TV 예술 아카데미로부터 스탠리 큐브릭 브리타니아 상의 첫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또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쉰들러 리스트>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는 등 관객과 평단 모두에게서 인정받는 명실상부한 20세기 최고의 감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쥬라기 공원>에서
모든 영화 장르를 망라하는 천부적인 감각으로 관객을 사로잡으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시각을 통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민감한 소재의 작품들을 따뜻하고 인간적으로 녹여내는 재능을 가진 그는 할리우드의 모든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기를 원하는 최고의 감독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대표작 소개 ]
[ 쉰들러 리스트 ]
독일의 나치정권 치하에서 한때 나치에 동조했던 독일인 오스카 쉰들러가 폴란드의 자기 공장에 유태인들을 취직시켜 1천2백 명을 아우슈비츠의 대학살로부터 구해낸 실화를 그린 흑백 대작입니다.
“전쟁과 기아, 인종차별과 학살의 독가스를 뛰어넘어 피어나는 휴머니즘이 감동의 파도를 몰아친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이 진행되고 있던 암흑의 시절, 폴란드 크라코프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우슈비츠로 끌려가지 않고 독일인 공장경영주 오스카 쉰들러에 의해 그의 공장에 팔려오면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는 폴란드 출신 유태인은 1200명.
82년 저널리스트인 토마스 케넬리가 나치 시대 생존자 중 한명인 레오폴드 페이지의 진술을 토대로 '쉰들러의 리스트'란 소설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영화 <ET>를 완성한 뒤 다소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스필버그는 유니버설의 모기업인 MCA사의 시드니 샤인버그로부터 이 책을 건네 받았습니다.
원작을 읽고 난 뒤 관심을 갖게 된 스필버그는 생존자 레오폴드 페이지씨를 만나 “10년 내에 영화로 제작하겠다”고 단번에 약속했습니다.
드디어 10년이 지난 1993년, 우여곡절 끝에 <쉰들러 리스트>는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하게 됩니다. 주인공 쉰들러 역에 아일랜드 출신의 배우 리암 니슨을, 쉰들러가 경영하는 공장에서 일하는 유태인 이츠하크 스턴역에 영화 <간디>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벤 킹슬리를 각각 캐스팅했습니다.
또 ‘악의 상징’인 나치 사령관 아몬 고스역에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랄프 피네스를, 쉰들러와 고스 두 사람으로부터 유혹을 받는 유태인 여인 헬렌 허치역에 남아프리카 출신의 여배우 엠베스 데이비츠를 각각 발탁했습니다.
랄프 파인즈는 맥주를 마셔 13kg의 살을 찌웠다고 하는데, 스필버그는 그의 사악한 느낌에 캐스팅 이유를 두었다고 합니다. 93년 2월. 영하 15도를 맴도는 강추위에 아우슈비츠 현지로케가 시작되었습니다.
300명의 여자 엑스트라들이 나체로 출연해 가스실에서 아이를 안고 몸서리치는 아우슈비츠의 생생한 ‘지옥 장면’의 재현을 필두로 촬영이 시작되었습니다. 크라코브 게토의 유태인 제거 작업 씬은 단지 한 페이지 분량의 대본으로 쓰여졌었는데, 스필버그가 실제 살아 남은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20페이지로 늘려 쓰게 하고 20분 가량 늘여잡았습니다.
또 스필버그는 아우슈비츠내의 촬영을 허락 받지 못했다. 그래서 죽음의 캠프 장면은 실제 장소의 반대편에 마련된, 그대로 본뜬 세트에서 촬영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쉰들러의 리스트> 촬영은 스필버그 특유의 탄탄한 준비력 덕분에 촬영 일수 총 71일만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촬영 도중에는 레오폴드 페이지, 누이사 호로비츠 등 <쉰들러의 리스트>에 올라있는 실제 생존자들이 동행하며 당시 분위기를 화면에 담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또 마지막 장면에는 ‘쉰들러주덴(Schindlerjuden)’이라고 불리는 실제 128명의 생존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쉰들러의 무덤’에 돌을 놓는 모습을 담아 리얼리즘을 부각시켰습니다.
이 영화에는 주조연급 연기자 126명과 3만 명의 엑스트라가 등장하며 <쥬라기 공원>(6500만 달러)의 3분의 1인 23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됐습니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찍으며 연출료를 한 푼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피로 물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마침내 4시간 분량의 필름을 감동과 전율의 3시간 14분 분량으로 커팅해 편집, 이윽고 완성을 보았습니다.
미국 평론가들은 이 영화를 극찬했습니다. 제임스 베랄디넬리즈 릴뷰의 제임스 베랄디넬리는 “이 영화는 너무나도 감동적이어서, 그 카타르시스는 영화사상 아주 극소수의 다른 장면들만이 대등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지녔다.”라고 박수를 보냈고, 시카고 선타임즈의 로저 에버트는 “스필버그는 이 영화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자제력과 열정은 모든 장면에 존재한다.”라고 역시 찬사를 보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리타 켐플리는 “<쉰들러 리스트>는 독일 전쟁 폭리자의 구세주적 출현에 대한 냉혹하면서도 비감상주의적인 초상이며, 그것은 슬픔이나 동정을 자극하지 않고, 일종의 감정적인 마비를 불러 일으킨다.”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으며, BBC의 카멜 갤러거는 “다큐멘터리 스타일은 스필버그로 하여금 설교를 통하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라며 영화의 의도적인 기법이 적절했음을 인정했습니다.
영화의 성과는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이어졌습니다. 1993년 아카데미 작품을 비롯, 감독, 편집, 촬영, 음악, 각색, 미술상을 석권하였는데, 특히 오스카상과 인연이 없었던 스필버그 감독은 드디어 감독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습니다.
* 실제 이야기
오스카 쉰들러는 독일인 사업가로, 1939년 9월 나치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나치스에 협력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이때 번 전 재산으로 이른바 '쉰들러 리스트'를 작성하여 1,200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을 나치스로부터 구해냈습니다.
부인 에밀리와는 1928년에 결혼했습니다. 종전 후 1949년 두 사람은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으나, 1958년 홀로 독일로 돌아와 정착하다가 1974년 사망하였습니다. 영화에도 직접 출연한 에밀리는 2001년 7월까지 계속 아르헨티나에 거주하다가 독일에서 일생을 마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독일로 귀국했으나, 그해 10월 5일 뇌졸중으로 숨졌습니다.
한편, 1999년 오스카 쉰들러 자신이 목숨을 구해준 유대인 1,200명의 명단 원본이 포함된 문서가 독일 북부 힐데스하임의 한 가옥에서 발견되었는데, 현재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우슈비츠 부근 푸아쇼프 집단수용소의 소장이자 나치 친위대 소령 아몬 고스는 실제로도 매일 아침 수용소가 내려다보이는 저택 발코니에 나와 유대인을 향해 사냥용 소총을 난사했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이런 식으로 직접 죽인 유대인만 500명이 넘는다고 하네요. 인근 크라쿠프 지역의 유대인을 수용했던 이곳에서 한 때 2만명 이상의 유대인이 수용돼 있었지만 45년 1월 ‘해방군’ 소련군이 왔을 때는 600명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아몬고스는 46년 전범재판에서 “성서 속의 사탄이 현대에 육화(肉化)했다”는 판결을 받고 처형됐습니다. 세상을 등지고 살던 그의 아내는 83년 영국의 한 TV 방송과 처음이자 마지막 회견을 하고 자살했습니다.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1998년도 만들어진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은 그 해 많은 비평가들과 영화 팬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안겨 주었습니다. 아카데미상에서 5개 부문을 수상했고 골든 글로브에서는 최우수 감독상과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때까지 만들어진 전쟁영화 중에 이렇게 리얼하게 전쟁장면을 그린 영화가 있었을까 하는 것이 당시 비평가들이나 영화애호가들의 찬탄이었습니다.
관객들은 늙은 라이언이 오마하 해변가의 묘지를 방문하는 장면이 끝나자마자 노르망디의 오바마 해변에서의 잊을 수 없는 유혈의 이미지를 여과없이 그대로 대하고 맙니다.
총알에 의해 절단된 육체, 찢어져 나간 사지, 터져서 흘러나온 창자, 죽은 물고기와 함께 다양한 시신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들... 촬영을 담당하였던 재누즈 카민스크(쉰들러 리스트)는 모든 것을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정신없이 전장을 누빕니다.
마치 관객들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병사들의 하나가 된 것처럼 카메라를 들고 전장터의 처절한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영어 교사였던 밀러 대위를 연기했던 톰 행크스도 훌륭한 선택이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피로, 체념, 그리고 임무에의 헌신이 완벽하게 혼합되어 있습니다. 또한 조연급의 레이번(에드워드 번즈 분)의 연기도 탁월합니다. 자신의 임무의 타당성에 대한 불확실성(한명의 사병을 구하기 위하여 여덟명의 병사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가에 대한)을 숨기기 위하여 냉소와 빈정거림을 사용합니다.
이 밖에 밀러의 충실한 친구이자 하사관으로써 생생한 연기를 펼친 톰 사이즈모오, 일급 저격수로 나온 베리 페퍼, 전쟁의 공포에 질려 동료가 2층에서 죽어가는 데에도 계단에서 총을 껴안고 와들와들 떠는 통역병 역의 업햄 등 모두가 이 스필버그 영화의 완성을 위하여 매력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습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사라져 가는 시대와 잊혀져 가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20세기 마지막 진혼곡입니다.
비록 지금은 구식이고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아직은 숭고한 이념(자유,민주주의 혹은 휴머니즘 같은 것)이 살아 있었고 그 신념을 위해 젊은이들이 값진 목숨을 바쳤던 시절-‘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스필버그는 다시 과거의 그 때로 돌아가 20세기와 작별하기 전에 우리가 구해야 할 (saving) 것이 과연 무엇이며 21세기에도 여전히 간직해야 할 (saving) 것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성찰합니다.
그래서 밀러 대위(톰 행크스 분)가 이끄는 분대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찾아내고 구해내는 ‘라이언’은 단순히 한 인간이나 하찮은 일등병이 아니라 우리가 부단히 그 존재를 탐색하고 보호해야 하는 소중하고 값진 어떤 것의 상징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오늘날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비교하여 구식 학문 취급을 받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급속도로 사라져 가는 ‘문학이나 혹은 인문학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이 영화의 처음과 끝은 이제는 늙은 라이언과 그의 자녀들이 노르망디에 있는 묘지를 찾아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밀러 대위와 그가 지휘했던 구조대원들을 기리는 장면으로 처리됩니다.
그들 덕택으로 라이언은 아직 살아있고 그의 가계 역시 세기가 바뀌어도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우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벌어지는 초반부의 너무나 리얼하고 끔찍한 전투장면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스필버그는 헐리우드 전쟁영화사상 가장 긴박하고 리얼리티 넘치는 전투장면을 현장감 있는 디지털 서라운드 사운드를 동원하여 보여 줌으로써 관객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상륙정의 문이 열리자마자 날아드는 기관총탄에 부서져 없어지는 병사들의 머리와 얼굴, 흘러나오는 내장, 떨어져 나간 자기 팔을 잡고 아연실색하는 병사, 그리고 산산조각으로 찢겨 나가는 부상병 등, 전례 없이 강렬한 오프닝 씬을 통해 스필버그는 2차대전이 결코 리얼리티가 없는 환상 속의 전쟁이 아니었음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스필버그는 컴퓨터 게임과 그래픽으로 처리되는 소위 디지털 전쟁에 익숙한 21세기의 젊은이들에게 2차대전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전쟁은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게임과 같은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감추어진 스필버그의 보다 더 궁극적인 주제는 밀러 대위와 그의 부하들이 대부분 전사하면서까지 구해 내려 했던 ‘라이언 일병’은 과연 무엇의 상징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스필버그에 의하면 2차대전의 목적은 바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즉 ‘휴머니즘 구하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2차 대전은 결국 나치 독일의 광기와 학살로부터 인간과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전쟁이었는데 이는 곧 라이언 일병을 구해 어머니의 품에 되돌려 보내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죠.
밀러 대위의 구조대가 마치 연합군처럼 다양한 인종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바로 밀러 대위와 그 구조대의 희생덕택에 ‘라이언’으로 상징되는 인류의 휴머니즘이 살아 남았음을 강조합니다. 이제 그 휴머니즘은 늙은 라이언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노쇠한 라이언은 자손들과 함께 자기를 구하고 죽은 2차대전 참전용사들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21세기를 사는 새로운 세대들은 이제 더 이상 전쟁의 숭고한 목적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전쟁은 다만 정치가들의 지배문화의 음모이자 이데올로기이며 담론일 뿐이죠. 또 그들에게 전쟁은 현실이라기보다는 컴퓨터 화면의 그래픽이자 또 하나의 최첨단 전자게임일 뿐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휴머니즘은 다만 기성세대의 낡은 가치관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들의 아버지 세대는 바로 그 휴머니즘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새로운 시대와 새로운 세대를 지탱해 주는 것도 사실은 바로 그들이 흘린 피, 그리고 그들이 목숨을 바쳐 구해 낸 바로 그 ‘휴머니즘’이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고 또 잊혀져 가는 ‘휴머니즘’에 대한 스필버그식 일깨우기인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와 살고 있는 우리에게 20세기가 남긴 유산 중 우리는 과연 무엇을 구하고 (save) 무엇을 아껴야 (save) 할 것인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한 답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댓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필버그 감독의 모든것을 일게 되어 가슴이 뭉클하는 감동을 느꼇읍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