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초였습니다.
여기 우리 동네 치과의사가 뜸하기에,
뭐 하느라 연락도 없으십니까? 봄이 올 것 같네요.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마라톤 대회 참가하고, '할아버지 놀이'하고, 딸 생일 축하해주고, 바둑 공부하며 지냈습니다. 하는 답이 오기에,
보람찬 인생이군요. 하는 답을 보냈는데,
(그 양반, 요즘 손자 때문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살거든요.)
그래도 오후 4시경부터는 추워와요. 그런데 매화가 서울 근교는 언제쯤 피나요? 하고 생뚱맞은 질문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3월 중순이면 필 걸요? 하고 답했더니, 이번에는,
매화가 군락으로 피는 걸 보고 싶네요. 향기도 있나요? 하고 물어와,
이 양반이 왜 이런다지? 하면서도, 저는 그 양반이 '매화'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신기하기도 해서,
친절하게 매화에 관한 얘기를 문자 몇 통으로 안내를 했는데,
(매화는 화려하지는 않은데 향기는 품격이 있고, 그 향기가 봄의 전령사라는 둥...)
올해는 '매화놀이' 한 번 할까요? 하는 답이 오잖았겠습니까? 물론 그 말도 저를 놀라게 했답니다. 그렇지만,
그럴까요? 하고, 그렇잖아도 겨우내 어디 나간 적도 없던 저는 그 말이 솔깃해서 호응해주었고,
그러기로 하지요. 해서,
우리는 암묵적으로 언제(조만간) '매화 나들이'를 한 번 떠나기로 했답니다.
뭐, 하루나 이틀... 길어봤자, 이틀이나 사흘? 모처럼 봄기운이라도 한 번 쐬보려 했던 건데요,
엊그저께 여기서 '고문관 클럽' 모임이 있잖았습니까?
그 자리서 이 양반 그러는 겁니다. 갑자기,
나, 아르바이트하게 됐어요. 하기에,
무슨 아르바이트요?
얼마 전, 딸네 집에 있다가... 시내 00보건소에서, '치과 상담' 아르바이트 연락이 와서 신청을 했더니,
어저께 연락이 와서, 앞으로 1주일에 두 번 보건소에 나가, 치료는 아닌 상담만 하는 일을 하게 됐답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19일에는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지(그 대회 때까지는 어딜 가지도 못한다 하고), 집에선 틈틈이 바둑 공부도 한다지, 이제는 1주일에 두 번 아르바이트도 한다니, 그래서 제가,
그럼, 매화 나들이는 언제 가고요? 했더니,
글쎄요...... 하고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내심 그 생각을 하면서, 조만간(정말) 그 양반하고, '섬진강' 쪽이든 '지리산' 둘레로 훌쩍 떠날 생각까지 해두었었거든요?
그러니, 어쩌면 '닭 쫓던 개' 꼴로,
다, 글렀구나! 하고 말았는데요,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우유가 떨어져서 대형마트로 우유를 사러 가는데(자전거 타고),
뭔가 익숙한 듯한(?) 냄새가 언뜻 스치기에 보니,
어?
거기 언덕받이에 어느새 매화가 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거기는 산책로라 자전거를 끌고 들어가기가 애매해서,
저는 곧바로 다른 곳으로 자전거를 몰았답니다.
제가 해마다 가는 곳이 따로 있거든요. 매화 피는 곳요......
물론, 이 시기입니다. 매화철이.
그걸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요즘 맨날 아파트에 처박혀 지내다 보니,
'매화'는 그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던 '허상'이었을 뿐,
이렇게 벌써 꽃까지 펴있는 것까지는('현실'이 돼 있었던 건) 모르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그렇게 '신내천'의 한 모퉁이로 달려갔더니,
그랬습니다.
거기도 어김없이 매화가 벌써 피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단 그 향기를 맡으며, 사진 몇 컷을 찍고는......
어쩐지 허무한 마음에,
아, 이렇게 매화는 피는데...... 하는 쓸쓸한 생각을 하면서 다시 자전거에 올랐습니다.
우유도 사야 하고, 동사무소도 들러야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