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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주가 앉은 곳이 밝은 편이다.
은주: 정숙이니? 으응……. 아냐……. 시끄러운 것도 싫고……. 어……. 난 전화 올 데가 있어서. 그래 재미있게 놀아. 응, 메리 크리스마스!
전화를 끊자, 콜라가 쪼르르 달려와 은주의 무릎에 앉는다.
콜라를 쓰다듬으며 음악을 트는 은주. 음악이 잔잔히 흐르기 시작한다.
시간경과
잠옷을 입고 침대에 앉아 있는 은주.
책상 위의 노란 스탠드 불빛만이 밝혀져 있다.
손에 들고 있는 우유 잔을 요리 기우뚱 조리 기우뚱.
책상 위에 놓인 지훈의 사진을 멍하니 바라본다.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한숨 푸~. 가만히 침대에 눕는다.
잠이 안 오는지 말똥말똥한 표정의 은주. 그만 자야지,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는다.
스탠드에 손을 뻗어 불을 끄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후다닥 일어나 전화를 받는 은주.
옆에서 누워 있던 콜라가 놀라서, 침대 바닥으로 퉁~ 떨어진다.
은주: 여보세요? (실망한 듯이) 으응……. 주연이니……. 아니……. 그냥……. 피곤해서……. 음 그래. 너두.
전화를 끊는다. 잠시 멍청히 앉아 있던 은주를 쳐다보던 콜라가 길게 하품을 한다.
은주, 침대에서 일어나 집안의 전등을 환하게 다 켜기 시작한다.
TV도 켜고, 라디오도 켜고……. 쫄랑쫄랑 은주의 뒤를 따라다니는 콜라.
은주, 가스레인지의 불을 켜서 물을 올려놓는다.
의자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TV를 보는 은주. 마감 뉴스를 하고 있다.
TV에서 곧 방송마감을 알리는 화면이 나오자 멍청히 일어나, 다시 TV와 라디오와 가스레인지의 불을 꺼버리는 은주. 콜라는 잠을 자고 있다.
음음……. 하고 목소리를 다듬더니 결심한 듯 전화기를 드는 은주.
전화의 1번 메모리 버튼을 누르자 띠띠띠 하며 긴 번호가 한 번에 눌려진다.
"Hi, I'm unavailable to answer the phone right now. So please leave your messages. Thank you."
삐--------
축 쳐지는 은주. 전화를 그대로 내려놓는다.
책상 위의 지훈 사진을 덮어 버린다.
침대에 벌렁 누워버리는 은주. 스탠드의 불마저 끈다. 사방이 어둡고 조용하다.
창밖으로 하얀 눈송이들이 여전히 내리고 있다.
씬 12. EXT. 복덕방 앞 - 1998년 - DAY
늦은 오후. 흐린 날씨.
어두운 복덕방 실내에서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는 복덕방 아저씨.(60대)
작은 키에 낑낑대며 셔터에 손을 뻗어 셔터를 내리려고 하고 있다.
성현, 지나가다가 복덕방 아저씨를 발견하고 다가온다.
성현: 저어…….
씬 13. EXT. 포엠 앞 - 1998년 - DAY
흐리고 침침한 날씨.
성현, 터벅터벅 포엠으로 걸어 들어간다.
대문 앞에 다다르자 어디서인지 모르게 까만 강아지 한 마리가 쫄랑쫄랑 쫓아온다.
추운 듯 오들오들 떠는 강아지의 불쌍한 눈빛. 가만히 앉아 강아지와 눈을 맞춰 보는 성현.
성현: 넌 왜 이러고 있니…….
성현을 말똥말똥 바라보며 쪼그리고 앉는 강아지.
성현, 대문을 조금 열어 주자 강아지가 조르르 들어간다.
강아지가 지나가는 길을 따라 무심히 현관 앞 블록들을 한 번 보는 성현.
강아지발자국 같은 것은 없는 깨끗한 모습이다.
씬 14. INT. 책 대여점 - 2000년 - DAY(2시경)
통유리 창을 통해 가득 쏟아지는 햇살.
정숙, 책을 빌려 가는 여자아이의 이름을 적고 있다.
갑자기 문이 홱~ 열리며, 후닥닥 뛰어 들어오는 은주.
정숙과 여자아이의 시선이 은주에게 집중된다.
은주: '우리 집으로 오세요.' 나왔어?
정숙: (은주를 빤히 보다가 여자아이를 보면서) 너두니? 똑같다 똑같아. (돈을 받고 책을 봉지에 넣어주면서) 아직 안 나왔어.
은주: (아쉬워하며) 왜? 오늘까진 나온다고 그랬잖아.
여자아이 나간다.
정숙: (여자아이 방향으로) 잘 가라~ (은주를 보며) 나와야 나오는 거지. 날짜 지켜 나오는 거 봤니?
그래도 아쉬운 표정의 은주. 카운터에 놓인 만화책들을 괜히 들척여 본다.
정숙: (계속) 지훈씨한테선 연락 없지. (은주를 힐끔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너……. 제발 정신 좀 차려. 응?
은주 표정이 약간 어두워지지만 금세 카운터의 전화기를 든다.
팔짱을 끼고 은주의 행동을 쳐다보는 정숙.
은주: (점잖은 목소리로) 아 여보세요. 예. 여기 ++(책대여점)인데요. 오늘 '우리 집으로 오세요' 안나왔나요? (실망한 목소리……. ) 아아 예에……. (전화를 끊으려다가) 근데 그거 어떻게 되요? 네? (밝게) 둘이 결국 만났죠?
기가막히다는 표정의 정숙.
씬 15. INT. POEM 마당 - 1998년 - DAY(오후 2시경)
파란 하늘에 따스한 겨울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POEM 마당.
한쪽에서 들리는 뚝딱뚝딱 소리.
성현이 열심히 개집을 만들고 있다. 강아지가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
휘파람을 불며 녹색의 지붕 아래에 빨간 우편함과 똑같은 색깔로 개집 몸통을 칠하는 성현.
한쪽 면을 칠하고 다른 면을 칠하려고 개집을 옮기다가 페인트 통을 잘못 치면서 페인트가 쏟아진다.
바닥에 퍼지는 빨간 페인트.
성현이 급하게 일어나 페인트를 닦을 만한 것을 찾으려고 허둥대는 사이 강아지가 페인트를 밟고 지나가, 성현의 뒤를 따라 현관 앞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성현은 강아지를 잡으려 하지만 이미 현관 앞까지 뚜렷하게 찍혀져 있는 개발자국.
심난한 얼굴의 성현. 하지만 곧이어 뭔가가 떠오르는 표정이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발자국을 들여다보는 성현.
씬 16. INT. 포엠 침실 - 1998년 - DAY(2시경)
창문을 통해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침실.
컴퓨터를 또깍 켜는 성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씬 17. INT. 책 대여점 - 2000년 - DAY (오전 11시경)
한가한 책 대여점의 실내.
카운터에 앉아 있는 은주와 정숙. 은주, 손에 편지를 들고 있다.
꼬마가 다가오자 정숙은 꼬마를 쳐다보며 입모양으로 뭐? 하고 묻는다.
만화책 두 권을 내미는 꼬마.
은주: (편지를 다시 한 번 보며) 장난이겠지? 응?
정숙: (만화책을 봉투에 담으며) 그래~ 말이 되니? (꼬마에게) 600원이다.
은주: 98년도……. 답장 한번 써볼까?
정숙: (꼬마에게 1,000원을 받으며) 미쳤니? 이상한 사람이면 어쩔라구?
은주: 정말이면 좋겠는데…….
정숙: (금고를 열며) 응?
은주: 아……. 니.
정숙, 멍청한 표정으로 있는 은주를 한 번 쳐다보며,
정숙: (동전을 세어보며) 은주야, 새핸데, (거스름돈을 주고 나서 은주 쪽으로 돌아앉아) 제주도나 다녀와. 부모님도 만나고……. 바람도 쐬고…….
은주: 응? ……. 그럴까 …….
은주, 정숙을 보며 씩 웃는다.
손에 들고 있는 편지를 한 번 무안한 듯 들어 흔들어 보는 은주.
씬 18. EXT. POEM 우편함 - 2000년 - DAY(오후 1시경)
우편함이 열린다. 안을 들여다보는 은주.
비어있는 우편함의 시점에서 본 은주의 맑은 눈빛. 이상한 일이야~하는 은주의 표정.
성현의 목소리로 편지내용이 흐른다.
성현 소리>: "기다리는 편지가 있는 것 같아서 알려드립니다. 제가 이 집의 첫 번째 주인인데, 편지를 잘못 보내신 것 같습니다. 꼭 받아야 할 우편물이 있다고 하시니 한번 확인해 보고 다시 편지를 쓰시는 게 좋을 듯 하군요.
1998년 1월 2일
한 성현
추신: 그런데 이 집 이름이 POEM인걸 어떻게 아셨죠?"
POEM을 기웃거리는 은주. 혹시나 하고 POEM 앞 주위를 둘러본다.
<POEM>이라 쓰여진 현판이 클로즈업.
씬 19. INT. 복덕방 - 2000년 - DAY(오후 1시경)
햇살이 들어오는 실내는 밝고, 햇살이 닿지 않는 곳은 침침한 느낌의 복덕방 실내.
아저씨는 화투장을 쭉 펼쳐 놓고 뭔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지 간간이 작은 탄식을 한다.
그 옆에서 아줌마가 두 살짜리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있다.
문을 벌컥 열고,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 은주.
은주: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주머니!
아저씨: 여~ 성우 아가씨. 오랜만이네.
애를 추스르느라 그냥 건성으로 인사를 받는 아줌마.
은주: (아기를 보며) 야~ 얘도 그새 많이 컸네.
아저씨: (히죽 웃으며) 그지?
아저씨, 아기의 머리를 벅벅 쓰다듬는다.
은주, 아저씨가 펼쳐 놓은 화투장을 바라보며,
은주: 또, 화투점 치시는 거예요?
아저씨: (은주를 돌아보며 반갑게) 한 번, 봐줄까?
은주: (웃으며) 아니요~ (귀엽게) 이거 근데 정말 맞는 거예요? 새해가 오기 전에 사랑이 나타날 거라구 하셨잖아요! 근데……. (혼잣말처럼) 전화 연락도 한 번 안 오던데요, 뭐…….
아저씨: (답답하다는 듯이 조금 흥분하며) 아, 괜히 딴 생각 하지 말고 기다려~ 글쎄, 간절히 바라면, 나타난다니까…….
은주, 장난스럽게 웃는다.
아저씨: (괜히 무안한지, 흥분을 가라앉히며) 근데, 웬일이야?
은주: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아, 참, 맞아, 저기요, 아저씨, 혹시 POEM 나갔어요?
아저씨: 아직. 요즘 집 잘 안 나가잖아.
은주: 저……. 거기 잠깐 가봐도 돼요?
아저씨: 거기? (긁적긁적) 그래……. 그렇게 해……. 그럼. (열쇠를 찾기 시작)
은주: 저……. 아저씨, 예전에 POEM에 어떤 사람이 살았었어요?
아저씨, 갑자기 열쇠를 찾던 손을 멈추며, 문득 은주를 유심히 본다.
은주: (당황하며) 아, 아니예요…….
아저씨,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열쇠를 꺼내 은주에게 내민다.
뭘 잘못 물어봤나? 하고 의아해하며 뻘쭘하게 열쇠를 받는 은주.
씬 20. INT. POEM 침실 - 2000년 - DAY(오후 1시~2시경)
창문을 통해 스며 들어오는 햇빛만으로 밝혀진 포엠 실내.
햇빛이 비침에 따라 빈 집 안에 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이 보인다.
주관적 시점으로 보여지는 포엠 내부.
휑하니 비어있는 방안. 내부가 아주 조용하다.
이삿짐 박스와 노끈들이 군데군데 바닥에 남아있다.
정이 한껏 묻어있는 행동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는 은주.
벽에 아직도 붙어있는 접착 옷걸이를 당겨보기도 하고, 물이 끊긴 수도 밸브를 풀었다 조였다 풀었다 조였다 해보는 은주.
액자가 걸려있던 자국을 스~윽 만지며 걸어가 창문 앞에 선 은주.
커튼을 쭈욱 젖히고, 창문을 연다.
순간 바깥 소음이 들리며, 함께 찬바람이 불어온다. 은주의 앞머리가 가볍게 날린다.
은주, 천천히 돌아서서 창문에 몸을 기대어 방을 다시 한 번 훑어본다.
한 쪽 벽면에 미로처럼 보이는 에셔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아래의 바닥에 떨어진 낡은 종이 위에 눈길이 멈추는 은주.
천천히 다가가 종이를 펼쳐 보면 스케치와 유사한 그림이 담겨있다.
INSERT
바닷가에 있는 집 한 채.
아직 완성되기 전 단계의 스케치로 보이지만 집의 모양은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스케치의 하단에 쓰여져 있는 글씨. -- 98. 3. 時越愛 --
종이를 들어서 유심히 보는 은주.
은주의 얼굴에서, 앞쪽으로 카메라 Round Tracking 서서히 이동하면, 종이의 뒷면의 하얀 지면이 카메라를 가리고…….
씬 21. 포엠 우편함 앞 - 1998년 - MORNING (오전 8시경)
종이 뒷면 하얀 지면에서 카메라 빠져 나오면 편지(씬 22에서 우편함에 넣어지는)를 읽고 있는 성현의 모습.
우편함 앞에서 막 편지를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출근하러 나가는 길인지 간단한 가방을 하나 들고, 은주 편지를 손에 들고 갸우뚱하고 있는 성현. 역광으로 비추어 지는 아침 햇살이 따뜻하다.
(씬 23의 앞부분을 선행시켜 보여주는)
씬 22. EXT. POEM 우편함 - 2000년 - DAY(오후 2시경)
우편함 앞에 선 은주. 정성스럽게 편지를 집어넣는다.
천천히 돌아서서 걷는 은주.
화면을 가리면
은주 소리>: "어떻게 제 편지가 당신에게 가게 된 건진 모르겠지만,"
씬 23. EXT. 포엠 우편함 앞 - 1998년 - MORNING (아침 8시경)
화면을 가렸던 몸을 치우며 우편함 쪽으로 걸어가는 성현.(위의 은주와 반대방향)
한 손에 편지를 들고 우편함을 이리저리 찬찬히 바라본다.
은주 소리>: 혹시 장난하신 거라면 POEM에 도착하는 편지들을 그냥 놔둬주시겠어요? 부탁드립니다.
2000년 1월 5일(눈에 띄게)
김은주: 설마 정말 98년도에서 편지를 보내시는 건 아니겠죠……. "
성현: (기억을 더듬어 본다) 김……. 은……. 주…….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편지를 손에 들고 자동차의 키를 돌려 자동차를 타는 성현.
붕~ 하고 출발하는 성현의 차.
씬 24. EXT. 제주도, 은주의 집 앞 - 2000년 - DAY(오후 3시경)
돌로 된 나지막한 담장 사이를 걷고 있는 은주. 예쁘게 지어진 아담한 이층집 앞에 멈춰 선다. 마당 안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은주.
마당에는 7살짜리 꼬마여자아이(혜기)가 세발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다.
은주: 혜기야.
혜기: 고~~ 모~~~~~~
은주가 집으로 들어서는데, 혜기가 맹렬히 달려와 은주의 목에 매달린다.
은주 어머니와 새언니, 부엌에서 손을 닦으며 나온다.
짐을 내려놓으며
은주: 엄마, 저 왔어요.
은주 어머니, 은주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씬 25. EXT. 제주도, 바닷가 - 2000년 - DAY→해질 녘 (오후 5시경~6시경)
바닷가에 자전거를 끌고 걷고 있는 혜기와 은주. 쉴 새 없이 떠드는 혜기의 목소리가 들린다.
(혜기의 보물 이야기 어린아이가 갖고 있는 환상에 대한……. )
재미있게 혜기의 이야기를 듣는 은주. 발밑에 무언가 채이고, 자전거를 세운다.
가만히 앉아보면 예쁜 소라껍질. 은주가 기분 좋게 미소를 지으며 소라껍질에 묻은 모래들을 털어 내는데……. 혜기도 은주 옆에 쪼그려 앉는다. 은주 귀에 대고 무언가 속삭이는 혜기.
주의 깊게 듣던 은주
은주: (깔깔 웃으며) 여기에 천사가 산다고?
혜기: 응.
혜기, 소라껍질을 들어 귀에 갖다 대 본다.
혜기: 거봐. 들려. 들리잖아, 고모. 고모도 들어봐.
혜기가 건네는 소라껍질을 귀에 대는 은주.
혜기: (손짓까지 해가며) 들리지?
은주: (가만히 듣는다) 응. 들려. 이게 천사야?
혜기: 응. 천사가 잠자는 소리야.
은주가 눈을 감고는 가만히 소라껍질 안의 소리를 듣다가…….
은주: 어~~ 무슨 소리가 들려. 혜기야. 뭐라고 하는데?
혜기: 정말? 줘 봐 고모. 줘 봐…….
은주: (혜기의 등 뒤로 돌아가 자리를 잡으며 소라고둥을 귀에 대준다) 눈 감아봐, 혜기야.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눈을 꼭 감는 혜기의 얼굴 클로즈업되면서.
은주소리: (성우 목소리) 혜기니?
혜기: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뜨다가 다시 감으며) 네!
은주소리: 아우~ 졸려. 날 벌써 깨우면 어떻게 해? 난 니가 스무 살 되는 날 깨어나기로 되어 있단 말야. 그 때까지 착하게 살면 혜기의 소원을 들어줄게. 그럼 그 때 만나자. 안녕~
혜기: 안녕~~
그래도 가만히 듣고 있는 혜기. 이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지 은주를 돌아본다.
흥분된 표정의 혜기.
혜기: 고모. 고모. 천사가…….
은주: 쉿!
혜기, 말똥말똥 은주를 쳐다본다.
은주: (나즈막이) 다른 사람한테 이야기해 버리면 소원이 안 이루어지는 거야.
혜기: 응. 알았어. 이야기 안 해.
혜기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은주. 혜기는 역시 들뜬 표정으로 소라에 다시 한 번 귀를 댄다.
소라껍질의 모래를 조심스럽게 털어 내는 은주. 은주도 가만히 귀에 대본다.
두 사람의 모습 뒤로 이제 해가 지려는지 붉게 물들어 가는 바다가 조용히 움직인다.
해가 지는 풍경의 바닷가 태양의 모습에서 포엠의 해지는 모습으로 연결되며…….
씬 26. EXT. 포엠 앞 - 1998년 - EVENING (6시경→7시경)
석양의 모습에서 카메라 빠지면, 포엠 앞의 깜박이는 전등.
포엠 앞에 달려있는 전등 하나의 불이 깜박이고 있다.
한 남자(한 교수, 50대 후반)가 포엠 앞에 서서 그 전등을 바라보고 있다.
깜박이는 가로등에 다가가서 만져보는 한 교수. 곧 불빛이 환하게 쏟아진다.
뒤로 물러서 포엠 전체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 한 교수.
해가 이미 저물어 어두워진 하늘. 천천히 포엠의 주변을 걸어 다니던 한교수, 차에 올라탄다.
한교수의 차가 지나가고 나면 길의 한 귀퉁이에서 포엠 쪽을 주시하고 있던 성현의 차가 보인다.
성현, 표정이 어둡다.
씬 27. INT. 책 대여점 - 2000년 - DAY (3시경)
성현의 어두운 표정과는 달리 약간 멍청한 은주의 얼굴.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목이 막히는지 꼭꼭 씹으며 벌떡 일어난다.
한 손에는 샌드위치를, 한 손에는 편지를 들고, 정숙에게로 가며 감정을 넣어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은주: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넘기며, 약간 과장된 목소리로)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편지가 계속 제 우편함으로 들어오고 있군요. 기다리는 편지를 받으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1998년 1월12일. 한 성현.
추신: 그리고 설마가 아니라 당연히 지금은 98년도입니다.
편지를 읽으며 좁은 책과 책 사이를 지나 정숙을 졸졸 따라다니는 은주.
만화책을 한 아름 안고 제자리에 책을 꽂고 있는 정숙.
정숙: 너 또 썼니?
은주: (멋쩍어하며) 으……. 응……. 근데 정숙아…….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니?
정숙: 뭐가?
은주: 정말……. 98년 일 지도 몰라.
정숙: (황당하고 기막혀서) 너 지금 장난하니?
은주: (편지를 흔들며) 보라니깐. 딱 두 줄. 딱딱하고, 건조하게. 이런 장난이 어디 있니?
정숙: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너 저기 포스터나 문 앞에 좀 붙여.
은주, 입을 삐죽 내밀고 걸어가 카운터 앞의 말려진 포스터 몇 장을 펼친다.
은주: (그 중 한 포스터를 보고) 어, Secret Garden 오네?
정숙: 참, 너 그~ 전에 가려다 못 갔었지. 갑자기 콘서트 취소되는 바람에…….
은주: 갔었지 왜. 넌 시간 없대지, 지훈 씨는 콘서트 같은 거 취미 없지……. 그래서 불쌍하게 혼자 갔다가……. 그 날 정말 추웠다. 그게 벌써 언제니?
갑자기 눈빛이 반짝하는 은주.
씬 28. INT. POEM 침실 - 1998년 - NIGHT (밤 10시경)
책상 위에 놓여진 스케치북을 펼치는 성현. 하얀 종이가 보인다.
스케치북과 연필을 들고 침대로 가는 성현.
그 옆에 놓여있던 기사(신문의 일부를 카피 한 듯)가 은주의 편지와 함께 나란히 눈에 들어온다.
<1월 25일자. "Secret Garden 콘서트 취소" 기사>: 피식 웃는 성현. 그 옆으로 시크릿 가든 공연 티켓이 한 장 놓여 있다.
성현 소리>: "기다리는 편지가 있다고 해서 답장을 보냈던 것뿐입니다. 이제 더 이상 편지를 넣지 말아 주십시요."
침대에 누워 스케치북을 펼치고 무얼 그릴까 생각하는 듯 한 성현.
잠시 후, 침대 아래쪽에 누워 자고 있는 콜라의 모습을 그리기 시작한다.
씬 29. EXT. 예술의 전당 입구 - 1998년 - NIGHT (7시경)
형광등으로 밝혀진 어두운 지하도를 급하게 걸어가고 있는 구두소리가 들린다.
지하도를 통과해서 나타나는 성현의 모습. 시계를 보며 급하게 걷는다.
지하도에서 나오면 밝게 밝혀져 있는 예술의 전당 앞이다.
성현, 갑자기 멈춰 서서 주변을 돌아보는 데 아무도 없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다시 걷는데,
옆으로 후다닥 뛰어가는 긴 머리의 여자(98년도의 은주).
씬 30. INT. 예술의 전당 내 - 1998년 - NIGHT (8시경)
콘서트홀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서있는 성현.
카메라에 잡힌 콘서트 홀. 외부 조명만 밝혀져 있을 뿐, 내부는 컴컴하고 아무도 없는 듯 조용하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는 성현.
콘서트 홀 입구에서는 어떤 여자와 대화하는 수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자소리(o. s.): 취소요? 왜요?
수위소리(o. s.): 몰랐어요? 방송이며 신문이며 다 나갔을 텐데…….
걸음을 멈추는 성현. 가만히 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아 멍하니…….
낭패 어린 얼굴로 시크릿 가든 공연 표와 팸플릿을 들고 내려오는 여자.
성현의 옆으로 또깍 구두 소리를 내며 성현을 지나쳐 간다.(긴 머리의 은주).
씬 31. EXT. 예술의 전당 음악당 앞 - 1998년 - NIGHT (8시경)
성현, 음악당의 문을 열고 나오려 하는데 98년의 은주 (아마도 화장실에 갔다가)
역시 막 나오려는 참이었는지, 성현이 원형 문을 밀고 나오는데 뒤쪽의 원형문 한 칸에 쏙 들어온다.
성현, 얼핏 은주의 얼굴을 돌아보고, 우연히 서로 눈길이 마주치는 두 사람.
은주는 성현을 한 번 보고 어색하게 고개를 돌려버린다.
원형문을 나오자 종종 걸음으로 걸어 나가 목도리를 칭칭 두르는 은주.
은주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주머니를 뒤적이는 성현.
담뱃갑이 나온다. 뒤져보지만 빈 갑이다. 담뱃갑을 구기면서 긴 한숨을 내 쉬는 성현.
또각또각 은주의 구둣발은 멀어져 간다.
성현 소리>: "2000년이라고 하셨습니까?"
씬 32. INT. 은주집 - 2000년 - NIGHT (10시경)
읽던 편지에서 눈을 떼는 은주. 멍한 표정.
바닥에 양반 다리로 앉아 부동자세로 창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무의식중에 한 손에 들고 있던 콜라 캔을 떨어뜨린다. 쪼르르 굴러가는 콜라 캔.
정숙(o. s): 야!!!! 다 탔잖아.
정숙, 화장실에서 손에 만화책 한 권을 들고 나오며 가스불을 급하게 끈다.
정숙: 야! 너 왜 그래?
은주: 엉? (편지를 들고 망설이다가 서랍에 넣어버린다) 아냐.
역시 멍한 표정으로 콜라를 주워 따는 은주.
한껏 흔들렸던 콜라가 터지면서 온통 난장판이 된다.
정숙: 야!!!
은주, 놀라서 두루마리 휴지를 휘휘 빼서 콜라를 마구 닦고 있는 모습.
정숙이 구박하는 듯 한 행동, 콜라는 신나게 달려와서 바닥의 콜라를 마구 핥아먹고…….
이런 FS의 화면 위에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며…….
씬 33. 몽타주 - 1998년/2000년
2000년
포엠 앞, DAY
파란 하늘…….아물거리는 수평선을 뒤로하고 조용히 서 있는 빨간 우편함.
느낄 듯 말 듯 카메라가 서서히 Dolly In.
우체통 앞으로 다가서는 은주 Frame In. 우편함을 열어본다. 비어있다.
신기한 듯 미소. 잠시 머뭇거리다가 생각이 난 듯 머리띠를 빼내 우편함에 넣어본다.
잠시 손을 뒤로한 채 기다려보는 은주.
머리띠를 벗은 은주의 머리가 바람에 하늘거린다.
우체통을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은주의 손. 아무것도 없다. 헤~ 벌어지는 은주의 입.
갑자기 가방에 팔을 넣어 휘저으며 뒤적이기 시작한다.
은주 소리>: (흥분한 목소리) 맞군요. 2년 전으로 편지가 간 거 맞군요!!
1998년
포엠 앞, DAY
우체통 문이 열리면, 온갖 물건 (은주의 머리띠, 콤팩트, 립스틱, 휴지 등등)들이 성현의 발
밑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피식 웃는 성현의 표정위로 흐르는 은주 편지.
은주 소리>: 혹시 만화 영화 보세요? 그 때면 내가 뭘 했더라?
2000년
은주집, NIGHT.
98년도 수첩을 꺼내드는 은주의 손.
수첩이 펼쳐지고 1월 달 스케줄이 보여지고, '달려라 하니'라고 여러 칸에 쓰여 있다.
꽂혀져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쭉 보다가 <달려라 하니>를 찾아내는 은주의 손.
<달려라 하니> 화면을 틀어 놓고, 내가 저랬구나! 하면서 똑같이 따라해 보는 은주.
화면 속의 시골아줌마, 운동장에서 하니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
은주더빙소리(시골아줌마 역)>: 이겨라~~~
1998년
포엠, NIGHT
<달려라 하니> 가 TV화면으로 보이고,
은주더빙소리>: 아~~~~ 하니야~~~~~~
만화를 보면서 깔깔 웃는 성현.
성현 소리>: 괜히 봤어요. 은주 씨를 생각하면 그 아줌마가 떠오릅니다. 정말 비슷합니까?
2000년
은주집 욕실, NIGHT
이빨을 닦으려고 치약 묻은 칫솔을 물다가, 거울을 보는 은주.
칫솔을 문 상태에서 그 아줌마 같은 표정을 지어본다.
1998년
포엠, 오후 5시경
해질 녘의 부드러운 햇살이 쓸쓸하게 포엠에 드리워져 있다.
성현, 긴 소파에 누워 팔을 위로 들고 편지를 읽고 있다.
은주 소리>: 혼자가 쓸쓸해요. POEM에서는 친구와 같이 살았는데……. 너무 익숙해졌나봐요.
조용히 웃는 성현.
2000년
은주집, 오후 5시경
위와 비슷하게 쓸쓸한 분위기의 은주집 실내.
은주, 침대에 엎드려서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지지들이 지저분하게 바닥에 떨어져 있다.
성현 소리>: 함께 라고 해서 꼭 외롭지 않은 것은 아니죠.
1998년
포엠 앞, 포엠 (DAY→NIGHT)
은주 소리>: 아아 그러고 보니 성현 씨가 콜라 주인이었구나. 사람처럼 자는 강아지 맞죠?
- (DAY) 포엠 앞에 붙여져 있는 "주인을 찾습니다."라고 쓰인 전단을 떼어내는 성현.
- (해질 녘) 포엠 거실에서 콜라는 사람처럼 등을 바닥에 대고 잠들어 있다.
성현: 니가 "콜라" 였니?
자고 있는 콜라의 얼굴위로 성현의 얼굴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다가오자, 갑자기 눈을 뜨고 성현의 코를 핥는 콜라.
눈을 찔끔거리지만 싫지 않은 듯, 마루에 엎드려 콜라와 장난을 치는 성현.
성현 소리>: 뭐 하나 물어 봐도 될까요? 기다리던 편지에 대해서…….
- (NIGHT) 콜라는 놀다 지친 듯 새근새근 자고 있다.
따스하게 웃으며 편지를 써 내려가는 성현.
스탠드 불빛만이 밝혀진 실내에 고요한 성현의 모습에서 음악 사라지며…….
씬 34. INT. 은주집 우편함 - 2000년 - DAY(오후 3시경)
엉덩이로 문을 주욱 밀고 들어서는 은주.
한 손에는 저녁거리가 잔뜩 든 비닐봉투를 들고, 다른 손에는 먹던 아이스크림콘을 쥐고…….
우편함을 슬쩍 들여다본다. 삐죽이 나와 있는 항공우편이 하나 눈에 띈다.
너무나 기뻐하며 손에 들었던 물건을 철퍼덕 내려놓아 버리고, 아이스크림을 든 손으로 봉투를 꺼낸다. 툭 떨어져 버리는 아이스크림 콘 덩어리.
겉봉을 보는 은주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 Jihoon Park
4343 N. Clarendon 씬 2108
CHICAGO IL 60613 U.S.A >
<주소 불명!!>
씬 35. INT. 녹음실 - 2000년 - DAY(2시경)
만화 영화를 녹음하고 있는 성우들. 멍하니 있던 은주. 대사를 놓치고 만다.
PD: 은주씨. (약간 신경질 적으로) 오늘 자꾸 놓치잖아.
은주: (정신을 차리며) 죄송합니다. (옆에 있는 성우들에게도) 죄송합니다.
다시 녹음 간다. 깔깔 웃으며 만화 대사를 치는 은주의 눈에 눈물이 살짝 비친다.
시간 경과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드는 은주.
은주: 수고하셨어요.
모두들: 수고했어요.
성우들 몇 명, 문을 열고 나가고 은주가 가려고 나가는데, 저쪽에서 걸어오던 PD.
PD: 은주씨, 수고했어. 근데, 오늘 은주씨 이상하네?
은주: 죄송해요.
PD: 미리 미리 시사 좀 많이 해.
은주: 네.
애써 웃으며 꾸벅 인사를 하는 은주.
씬 36. EXT. 건널목 - 2000년 - DAY (5시경)
비가 올 듯 흐린 하늘.
건널목에 선 은주. 옆으로 공중전화 박스가 보인다. 전화를 걸까 말까 망설이는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다. 고개를 휙 돌려 정면을 바라보는 은주. 눈을 꼭 감는다.
갑자기 이전 씬 에서 실수했던 대사를 중얼중얼 연습하는 은주. 옆 사람이 놀라면서 은주를 쳐다본다. 그 사람을 보며 씨~익 웃어주는 은주.
파란 불로 바뀌고, 길을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들의 활발한 발걸음 뒤로 은주만 남겨진다.
씬 37. EXT. 공중전화 박스 안 - 2000년 - DAY (5시경)
벌컥 문을 열고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서는 은주.
잠시 망설이다가 버튼을 꾹꾹 누른다.
002-1-773-871-7972
또르르~ 또르르~
긴장된 표정의 은주.
수화기(o. s.): (여자의 목소리) hello. hello~~ 여보세요?
놀라 전화를 뚝 끊고, 휙 돌아서 나가는 은주.
공중전화 박스의 문이 열린 채, 흔들거리고 있다.
은주소리>: 기다리던 편지는……. 전화하지 않는……. 사람의 편지입니다.
씬 38. INT. 포엠 부엌 / 은주집 주방 - 1998년/2000년 - NIGHT
1998년
성현소리>: 스파게티가 잘 익었는지 알아보려면…….
- 스파게티 국수가 보글보글 끓고 있다. 모든 재료가 완벽하게 준비된 성현의 주방.
2000년
성현소리>: 힘껏 던져요.
- 벽에 힘껏 국수 한 가닥을 던지는 은주. 벽에 퍽 맞고, 주욱 미끄러지는 국수.
1998년
성현소리>: 잘 붙으면 훌륭하게 익은 거예요.
- 잘 차려진 성현의 식탁. 음식을 맛있게 먹는 성현. 음악이 잔잔히 흐르고 있다.
근사한 성현의 정찬.
2000년
- 미소를 지으며 식탁에 앉는 은주. 식탁 옆 벽이 국수 자국으로 엉망이다.
성현소리>: 이젠……. 외롭지 않죠. 기다림은 결국 상처가 됩니다. 기다리지 마세요…….
은주, 국수를 한 가닥
아요…….
은주집, 오후4시경
밥을 먹고 있는 콜라. 턱을 양손으로 괴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은주 모습.
은주소리>: 정말 미안해요……. 성현씨…….
책대여점, 오후4시경
만화책을 비닐 봉투에 넣어 꼬마에게 건네는 은주. 알사탕 한 개를 꼬마의 손에 쥐어주자 꼬마, 고개를 꾸벅하고는 신나서 달려 나간다.
은주소리>: 사랑은……. 때로는 감춰져 있지만 언젠가는 모습을 드러내요……. 아버지는 성현씨를 사랑했어요…….
은주집, 해질 녘
콜라는 새근새근 자고 있다.
창가를 내다보며 김이 나는 커피를 들고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고 있는 은주의 모습.
씬 67. EXT. 한 교수 무덤가 - 1998년 - 해질 녘
잘 정돈된 공원묘지.
일렬로 늘어서 있는 비석들이 보이고, 성현이 앉아 있는 모습이 롱슛으로 보여진다.
스케치를 하고 있는 성현의 모습.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무덤가에 놓여지는 한교수의 얼굴을 담은 스케치.
씬 68. INT. 포엠 작업실 - 1998년 - NIGHT
구석진 방에 쌓여있던, 박스와 제도대.
성현이 들어와 제도대를 덮고 있던 커버를 풀고 벗겨낸다.
박스에 담겨있는 도구들을 세팅하는 성현.
자리에 앉아 로트링 펜으로 살짝 그어 보지만,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잉크가 잘나오지 않는다.
펜으로 빈종이 위를 톡톡 쳐본다. 얕은 한숨을 짓는 성현.
씬 69. EXT. 지하철 벤치 - 1998년 - NIGHT
열차가 강한 소음과 함께 지하철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은주가 녹음기를 놓고 간 그 벤치……. 달리는 열차 뒤로 슬쩍 슬쩍 보이고…….
열차가 빠져나가자 그 벤치에 멍하게 앉아 있는 성현.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 두 발을 쭉 뻗은 채, 고개를 숙이고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또깍 또깍……. 발걸음. 누군가가 성현의 옆에 앉는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는 성현. 은주다!
눈이 커지는 성현의 얼굴. 초긴장 된다.
목도리에 고개를 파묻으며 추운 듯 발박자를 구르는 은주.
성현, 은주를 차마 돌아보지는 못하면서 천천히 주머니 속에 잡히는 물건, 귀마개를 꺼내 본다.
귀마개를 만지작거리는 성현. 불안함과 떨림.
은주, 자리에서 일어나 플랫폼 한켠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장갑을 파는 상인에게로 간다.
장갑들을 구경하는 은주. 그 중 하나의 장갑을 골라 들고 망설이는 듯하다.
성현, 바라보고 있다가 일어나서 은주: 곁으로 다가간다.
은주 근처에 서서 곁눈질하는 성현, 조심스럽게 귀마개를 한 번 써본다.
귀마개를 쓴 성현의 모습이 귀엽다.
성현, 귀마개를 쓴 채로 은주의 옆모습을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힐끔 본다.
은주의 아무것도 모르는 무심한 얼굴.
주변이 모두 고요해지면서……. 성현에게는 은주의 존재만이 각인되어 있다.
은주에게 집중되어 있는 성현. 시간이 멈춘 듯이…….
이 때 갑자기 정적을 깨는 듯이 들려오는 소리.
지하철 안내방송>: 띠르르~ 지금 열차가 도착하오니…….
은주 장갑을 들고 더욱 갈등한다. 살까 말까…….
다급해지는 성현의 얼굴, 망설이며 뭔가 말을 걸려는 듯…….
빠앙~ 열차가 들어오는 불빛.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오고, 열차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린다.
장갑을 그냥 내려놓고 재빨리 열차로 달려가는 은주.
은주의 뒤쪽으로 다가가는 성현.
갑자기 고개를 돌린 은주와 눈이 마주친다.
눈을 맞추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얼굴이 붉어지는 성현. 어색하게 딴 곳을 바라본다.
슬그머니 다시 은주를 쳐다보자 자신을 보고 쿡 하며 웃고 있는 은주. 이미 열차에 타 있다.
더욱 당황하는 성현.
'아차' 하고 열차에 타려는 순간. 문이 닫혀버리는 열차. 천천히 출발을 하고…….
안타까운 표정의 성현.
열차가 강한 소음과 함께 지하철역을 빠져나가고 있다. 성현, 망연히 서 있다.
상인(o. s): 그 아가씨도 참, 싸게 준다는데…….
은주가 사려던 장갑을 들고 투덜거리고 있는 상인의 모습이 보인다.
성현, 상인이 들고 있는 장갑을 가만히 바라본다.
뭔가 생각하는 성현.
성현 소리>: 오늘 전철역에서 은주 씨를 봤어요.
씬 70. INT. 전철안 - 2000년 - DAY
덜커덩, 덜커덩~
어두운 지하를 달리고 있는 전철.
손잡이를 잡고 서서 까만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가만히 응시하는 은주.
쓸쓸함이 얼굴에 배어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다.
성현 소리>: 그래요……. 아버지의 죽음을 미리 알게 되서 찾아갔다 해도 저는 진실로 아버지와 만나지는 못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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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5 |추천 0 |2015.10.12. 17:01 http://cafe.daum.net/mahanter/kGUP/174
時 越 愛 2
씬 71. EXT. 포엠 앞 - 2000년 - DAY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우편함을 열어보는 은주.
편지가 있다. 은주, 기대에 차서 편지를 꺼내 본다.
성현 소리>: 은주 씨가 보내준 아버지의 유작 집을 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고독을 알게 해준 그 후에 사랑을 알게 해준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 사랑을 알게 해준 은주씨께도…….
두려움을 느끼는 일은 인간이 갖는 가장 선한 일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은주 씨는 착한 사람이에요……. 오히려 제가 미안해요.
편지와 함께 포장을 열면 97년도 은주가 사려고 망설이던 그 장갑이 함께 들어 있다.
은주, 표정이 밝아진다.
장갑을 꺼내 손에 끼어 보고 요리조리 살펴본다.
장갑으로 얼굴을 감싸보는 은주. 입김이 하얗게 나오는 은주의 얼굴.
밝은 미소.
은주 소리>: 우린 둘 다 너무 쓸쓸하게 지내온 것 같아요……. 성현씨, 혹시……. 시간 있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