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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고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아르박삿의 아들은 셀라고 셀라의 아들은 아벨이었으며 아벨의 두 아들이 있었으니 벨렉과 그 아우 욕단이라. 벨렉에서 이스라엘이 나오고 욕단에서 대한민국이 나왔다는 말을 한국의 초기 기독교 신앙의 어르신들은 말은 하곤 하셨다. 과연 한국인과 유대인은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묵상해 본다.
천지창조와 말씀, 히브리 성경 창세기 1장 1절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베레시트 바라 엘로힘 엣 하샤마임 베엣 하아레츠)은 28자로 구성되었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4자를 포함하면 28자다. 두 민족 모두 '28'이라는 숫자를 우주의 이치나 완전함과 연결 지어 생각했던 공통적 정서가 보인다.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유대인들은 세상의 중심을 말씀으로 보았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한글을 만들때 모든 소리에는 그 소리만이 갖는 고유의 문자이 있다고 믿었다. 모음의 천지인은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요약한 철학이 들어 있고 자음은 입과 혀등 발음기관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문자를 만들었으니 심지어 문을 두두리거나 개가 짖는 소리 비가 오는 소리도 다 글로 담아 낼수 있다는 창의 적인 생각은 한민족이 모든 것의 중심을 말씀이라는 유대인들과 닮아 있다.
사각서체(Square Script)의 신성함. 히브리어를 흔히 '크타브 아슈리(Ktav Ashuri)'라고 부르는데, 이는 '사각형 글자'라는 뜻이다. 형태적 특징을 보면 모든 글자가 일정한 정사각형 틀 안에 꽉 차도록 설계되었다. 글자 윗부분의 수평선이 강조되어 시각적으로 매우 안정적이다. 철학적의미로 유대 전통에서 사각형은 '땅의 사방(동서남북)'과 '견고한 진리'를 상징한다. 소페르(필사자)들이 한 글자도 틀리지 않게 적기 위해 이 규격화된 사각형 틀은 완벽한 가이드라인이 되었다. 한글도 모아쓰기를 통한 사각형의 완성으로 글자를 형성한다. 한글은 개별 자모(ㄱ, ㅏ, ㄴ) 는 직선과 곡선이지만, 이를 합치면 반드시 하나의 정사각형(네모꼴) 안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형태적 특징은 초성, 중성, 종성이 결합하여 하나의 글자 마디를 이룰 때 비로소 사각형이 완성된다. 그 속에도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는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뜻한다. 하늘(ㆍ), 땅(ㅡ), 사람(ㅣ)이 어우러져 하나의 온전한 세상(사각형)을 이룬다는 동양적 우주관이 담겨 있다. 히브리어와 한글에는 질서와 조화가 원과 직선, 사각형이라는 기학학적 요소를 사용하여 현대적이고 디자인적으로도 완성도가 높다.
히브리어의 '점(니쿠드)'과 한글의 점(ㆍ) 두 민족의 문자 체계에서 '점'이 차지하는 비중과 그 역할은 소름 돋을 정도로 닮아 있다. 히브리어의 니쿠드(Niqqud)와 한글의 하늘(ㆍ, 아래아)은 모두 '생명(소리)을 불어넣는 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히브리어 (니쿠드): 히브리어 자음(예: ב)은 원래 소리가 없다. 그 아래나 옆에 점(.)이나 작은 선들을 찍어야 비로소 '바, 베, 비, 보, 부'라는 소리가 완성된다. 이 점들을 '니쿠드'라고 하며, '점을 찍다'라는 뜻이다. 한글 (아래아 ㆍ)도 세종대왕이 만든 28자 중 가장 기본이 되는 모음인데 이것이 바로 점(ㆍ)입니다. 이 점이 자음(ㄱ, ㄴ)과 결합하거나 다른 모음(ㅡ, ㅣ)과 합쳐져서 '가, 나, 오, 우' 같은 모든 소리의 뿌리가 된다. 점=하늘=창조의 근원이란 세계관 일치 한글의 'ㆍ':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이 점을 '하늘(天)'이라고 명시했다. 둥근 하늘의 모양을 본뜬 것이며, 모든 모음의 시초다. 히브리어의 점도 유대 신비주의(카발라)에서 점 하나는 '요드(י)'라는 글자의 기원이자, 하나님의 무한한 빛이 하나의 점으로 응축된 '창조의 시작점'을 상징한다. 현대 이스라엘인들은 책이나 신문을 읽을 때 니쿠드(점)를 거의 찍지 않지만 자음만 보고도 문맥으로 소리를 알아맞힌다. 그들에게 점은 '보이지 않으나 존재하는 소리의 영혼'과 같다.현대 국어에서는 '아래아(ㆍ)'가 공식적으로 사라졌지만 'ㅏ'나 'ㅓ' 속에 그 흔적이 여전히 남아 소리를 지탱하고 있다. 히브리어의 니쿠드가 자음이라는 '육체'에 모음이라는 '영혼(숨결)'을 불어넣는 장치라면, 한글의 아래아(ㆍ)는 천지인 중 '하늘'의 기운을 글자에 담아 '소리의 씨앗'을 심는 도구였다. 히브리어의 알레프(א)를 보면 위를 향한 '요드(י, 하늘)', 아래를 향한 '요드(י, 땅)', 그리고 그 둘을 잇는 대각선 '바브(ו, 인간/연결)'로 구성되어 있다고 히브리안들은 해석한다. 이는 곧 하늘과 땅을 잇는 매개자로 글자가 하늘의 뜻을 땅에 전하고, 땅의 간구를 하늘에 올리는 '인간'의 형상을 담고 있다고 믿는다. 한글의 천지인에서 인도 하늘과 땅사이에 인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오뚝하게 서서 우주의 기운을 중재하는 인간을 상징한다.
'소페르(Sofer)'와 '사관(史官)' 소페르는 유대인중에서 성경을 필사하는 직책을 맡은 자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 자신의 주관이나 해석을 단 한 글자도 넣을 수 없었습니다. 오직 전수된 그대로를 옮겨야 했으며, 이를 어기는 것은 신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영적인 죽음과 다름없다고 믿었기에 한자라도 잘못쓰면 다 폐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쓴다고 한다. 반면, 한국에는 조선왕조 5백년 역사를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한 사관이 있었다. 사관의 임무는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것으로 그들이 기록한 것은 왕이라 할지라도 사초(史草)를 함부로 볼 수 없었다. 태종이 말에서 떨어진 기록을 적지 말라고 했음에도 사관은 "왕이 적지 말라 하셨다"는 내용까지 적었을 정도로 권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신'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역사와 글에 대한 태도는 유대인과 한국인이 두 다른 문명권에 속하면서도 "기록의 신성함"과 "절대적 객관성"을 수호했다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평행이론을 보여준다.
말의 중요성 유대인의 라숀 하라(Lashon Hara) 즉, 히브리어로 '악한 혀'를 뜻하는데 유대 율법에서는 악한 혀를 살인, 간음, 우상숭배와 맞먹는 중죄로 다룬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기에, 인간의 말에도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창조와 파괴의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는 진실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말이 정당화 되지 않음을 나타내며 침묵에 대한 중요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인도 유사하다. '말이 씨가 된다'고 우리 조상들 역시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땅에 심겨 열매를 맺는 씨앗과 같다고 믿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는 속담도 말의 실질적인 영향력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두 민족이 '언어(말)'를 단순한 소통 수단을 넘어 존재의 근원이자 영적인 힘으로 믿어왔다는 점이 더욱 명확하다. 유대인의 관점에서는 모든 말은 하나님이 듣고 계시며, 기록하는 천사가 있다고 믿기에정직하고 선한 말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민족의 관점에서도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은 단순히 조심하라는 뜻을 넘어, 내가 하는 말을 온 우주가 지켜보고 있다는 편재성(Ubiquity)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것 또한 말의 생명력을 인정한 것이다. 두 민족은 물질이 아닌 언어를 중요시 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나라를 잃었을 때 가장 먼저 언어를 지키는 데 목숨을 걸었다. 언어가 사라지면 민족의 혼도 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유대인 (2,000년의 디아스포라)들은 나라 없이 전 세계를 떠돌면서도 회당(시나고그)에서 히브리어 성경을 읽고 가르치며 언어를 보존했다. 한민족 (일제강점기)은 "말은 마음의 자태요, 글은 민족의 정신이다"라는 신념 아래 조선어학회 사건 등 수많은 희생을 치르며 우리말과 글을 지켰다.
언어를 통한 운명 공동체, 언어는 그 조직을 하나로 묶는 가장 강력한 끈이다. 히브리어와 '아레부트(Arevut)': 유대인들에게는 "모든 유대인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아레부트' 정신이 있다. 전 세계 어디에 있든 히브리어로 "샬롬"이라 인사하고 "쉐마"를 외치며 자신들이 하나의 영적 공동체임을 확인한다. 한국어와 '우리' 정신, 한국어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나'보다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는 점입니다. "우리 엄마", "우리 집", "우리 나라"라는 표현은 언어 자체가 공동체 의식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역할을 합니다. 히브리어의 실천 철학, 히브리어로 '듣다'는 뜻의 '쉐마(Shema)'는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행함'까지 포함하는 단어다. 말과 행동이 하나라는 철학이다. 이에 반해 한국어에는 '정(情)', '한(恨)', '흥(興)'과 같이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힘든 고유의 감정 단어들이 많다. 이는 수천 년간 고난을 함께 이겨낸 민족만이 공유하는 '정서적 주파수'입니다. 두 민족은 히브리어와 한글이라는 언어를 통해 강력한 강력한 유대감을 갖는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다.
흰옷을 즐겨 입는 문화(백의민족), 히브리인들은 성경 기록이나 고대 풍습을 보면 제사장들이나 일반인들이 정결함을 상징하는 흰 세마포 옷을 즐겨 입었다. 한국인의 조상인 동이족은 예로부터 스스로를 '백의민족'이라 부르며 흰 옷을 숭상했다. 이는 두 민족 모두 '결백'과 '광명'을 소중히 여겼음을 보여준다.
베옷(사크, Sackcloth)을 입고 애곡(Wailing)하는 문화 고대 이스라엘인들과 현대의 정통파 유대인들은 장례 시 베옷을 입고 곡을 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 민족의 전통 장례 문화와 매우 흡사하다. 성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극도의 슬픔이나 참회를 표현할 때 거친 염소 털로 짠 '사크(שַׂק)'라는 베옷을 입었다. 이 옷은 까칠까칠하여 몸에 불편함을 주는데, 이를 통해 육체적 고통을 느끼며 고인에 대한 슬픔과 자신의 겸비함을 드러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도 우리처럼 장례 때 크게 소리 내어 우는 것이 예의였다. 슬픔을 극대화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곡을 하는 여인들'을 고용하기도 했다. 7일간의 애도 (시바, Shiva), 장례 후 가족들이 집에서 7일 동안 외부 활동을 중단하고 애도에 집중하는데, 이는 우리 조상들의 초칠일(初七日) 관습과 기간이 일치한다.
고난의 역사와 '한(恨)'의 정서를 견뎌낸 동갑내기 국가.
히브리인들은 주변 강대국(이집트, 바빌론, 로마 등) 사이에서 수차례 침략과 유랑(디아스포라)을 겪으면서도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냈고 이스라엘이란 나라를 건국했다. 동이족은 반도라는 지형적 특성상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 속에서도 고유의 문화를 보존해 온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오늘날 자유대한민국이란 나라를 건국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 14일에 건국했고 대한민국도 같은해 8월 15일 건국했다. 동갑내기 국가다. 이스라엘은 다비드 벤구리온에 의해 대한민국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 의해 정부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했다.
천손의식, 홍익인간과 티쿤올람 히브리인과 한국인은 우리는 하늘의 자손이라는 천손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 의식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티쿤 올람(Tikkun Olam, תיקון עולם)으로 표현된다. 즉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우리 홍익인간 정신과, 부서진 세상을 수선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유대인의 '티쿤 올람' 정신은 그 지향점이 같다고 볼수 있다. 홍익인간은 인간은 나 혼자 잘 사는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이롭고 온전하게 만들 책임이 있는 고귀한 존재로 보았고 히브리인도 유대 신비주의(카발라)에 따르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할 때 신의 거룩한 빛을 담았던 그릇들이 깨져버렸고, 그 빛의 파편들이 세상 곳곳에 흩어졌다고 보며 인간의 사명은 바로 그 흩어진 빛의 파편들을 찾아 세상을 원래의 온전한 상태로 되돌리는 것(수선)이다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두 민족의 정신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교육과 혁신을 통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기술을 혁신하도록 만든다.
유대민족에게는 체다카 (Tzedakah)라는 단어가 있다. 히브리어 어근 '체데크(Tzedek)'는 '정의(Justice)'를 뜻한다. 즉, 유대인들에게 나눔은 불쌍해서 돕는 '자선'이 아니라, 마땅히 돌려주어야 할 '사회적 정의'다.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를 돕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이다. 유대인들은 가정마다 작은 저금통을 두고 매일 조금씩 돈을 모아 공동체의 어려운 이를 위해 쓴다. 이는 개인의 자산 일부를 항상 공공의 목적을 위해 떼어놓는 습관입니다. 한국인들은 두레와 품앗이: 농번기에 마을 전체가 돌아가며 서로의 일을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공동의 노동력으로 해결하는 '상부상조'를 실천하고 십시일반 (十匙一飯)이라 하여 열 숟가락이 모여 한 그릇의 밥이 된다는 뜻으로, '공동체의 연대'를 통해 이웃을 섬긴다. 체다카가 '정의의 실현'이라면, 십시일반, 상부상조 정신은 내 밥 한 숟가락을 덜어 이웃의 배를 채워주는 '따뜻한 정(情)과 배려'가 중심입니다. 그러한 면에서 정과 정의는 일맥상통한다.
음악, 정(情), 한(恨) 한국인의 영혼 구성하는 세 가지 기둥인데, 유대인들에게도 이와 완벽하게 대응하는 문화적 요소들이 존재한다. 먼저 한국인에게 음악은 생존의 도구다. 기쁨도 슬픔도 노래로 승화시키는 민족이다. 유대인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흥(興)': 우리는 노동요, 판소리, 그리고 현대의 K-POP까지 음악을 통해 공동체의 에너지를 분출한다. 유대인의 '클레즈머(Klezmer)' 또한 유대인의 전통 기악 음악인데 바이올린과 클라리넷의 애절한 선율이 특징이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듯한 독특한 음색이 우리 국악의 계면조와 매우 흡사하다. 두 민족 모두 음악을 단순한 유흥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을 견디게 하는 영적인 힘"으로 사용해 왔다. 둘째 한국인에게 정이 있다면 유대인에게는 헤세드가 있다. 한국의 '정(情)'은 이유 없이 퍼주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버리는 가족 같은 끈끈함이 특징이다. 유대인의 '헤세드(Chesed)'도 비슷하다. 히브리어로 '자애', '변함없는 사랑'을 뜻하는데 이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상대방이 어려울 때 끝까지 곁을 지켜주는 의리 있는 사랑을 말한다. 낯선 이방인에게도 음식을 대접하는 '손님 대접(Hachnasat Orchim)' 문화는 유대인과 한국인이 세계에서 으뜸이다. "밥 먹었니?"라는 우리의 안부 인사는 유대인들의 환대 문화와 결이 같다. 셋째, 한(恨) vs 쇼아(Shoah: 대재앙,파멸, 홀로코스트를 지칭하는 공식명)와 '쯔라(Tzarah: 고난,역경, 환난)': "뿌리 깊은 고난의 역사" 한국인들이 수천년동안 수많은 침략을 당하면서 한국인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이 있다면, 유대인에게는 수천 년의 유랑과 학살(홀로코스트)로 인한 깊은 슬픔이 있다. 한국의 '한(恨)'은 억울함과 슬픔이 쌓여 삭여진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포기하지 않고 '흥'으로 풀어내는 힘이 있다. 유대인의 '쇼아(Shoah)'와 슬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난을 '쯔라(Tzarah, 고통)'라고 부르며, 이를 잊지 않기 위해 통곡의 벽에서 울고 절기마다 고난의 역사를 되새긴다. 두 민족 모두 '슬픔의 기억'을 민족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결속력으로 승화시켰다. 한과 슬픔이 단순히 파괴적인 감정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생명력"이 되었다는 점이 놀랍도록 공통점이 있다.
3이란 신성한 숫자, 유대민족은 그 조상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3족장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한국민족은 환인, 환웅, 단군에게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유사한 구도를 형성한다. 유대인은 세 겹줄의 법칙: 성경(전도서)에는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씀이 있듯이 '3'이 모여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최소한의 완성 단위가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경건한 유대인은 하루에 3번(아침, 오후, 저녁) 씩 기도한다. 이는 시간의 흐름 속에 신성함을 채우는 완결된 주기를 뜻한다. 한국인은 천지인은 기본이고 삼신(三神) 할머니가 생명을 점지했다 믿었고 삼족오(三足烏) 즉, 태양 속에 사는 세 발 달린 까마귀로, 하늘과 땅과 인간을 연결하는 고구려의 상징이자 천손 의식의 표현으로 삼았다. 생활속에서도 '3'을 많이 사용했는데 '내기나 결판도 삼세판', '삼칠일(21일) 정성' 등 우리 민족은 3이 되어야 비로소 운이 완성되고 정성이 통한다고 믿었다. 유대인과 한국인에게 3이 갖는 철학적 공통점은 균형과 중용, 즉, '1'은 고립되고 '2'는 대립하기 쉽지만, '3'은 조화와 중재를 뜻하기에 두 민족 모두 극단을 피하고 전체적인 조화를 중시하는 지혜를 이 숫자에 담고 있으며 가정의 완성: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자녀라는 '3인 가족'을 통해 생명이 연속된다는 믿음이 강하다. (유대인의 가정 중심 문화와 한국의 효 사상이 만나는 지점이다.) 또한 우주적 질서 즉, 하늘, 땅, 사람(천지인)이라는 동양의 철학과, 하나님, 이웃, 나라는 관계의 삼각형을 중시하는 유대인의 가치관이 일맥상통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묵상은 두 민족이 무언가 닮은 점이 있다고 억지로 주장하기 보다는 그런 면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해 벨렉의 후손을 사용하셨다면 주님의 재림을 위해서 베렉의 아우인 숨겨진 민족, 욕단의 후손인 아리랑 민족, 자유대한민국을 사용하실 것이라 믿음의 선진들이 생각하셨던 것은 충분히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 같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