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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그리고 새로운 시작(3월 16일 주일 오후 예배)
성 경 : 사도행전 15:36-16:5(신약 215)
이방인 선교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율법 준수와 할례 문제를 예루살렘 총회가 해결해 줌으로 이방인 선교가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총회는 이방인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성도들에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 는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이전까지 이방인들이 지키기 어려웠던 율법과 할례 문제가 해결됨으로 바울을 비롯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은 활발하게 선교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최초의 선교팀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고 결국에는 두 사람이 크게 다투고 갈라서서 각기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다른 선교지로 떠나게 됩니다.
바나바는 바울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이었고 바울과 함께 팀을 이루어서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을 했고 1차 선교 여행도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안디옥가 질의한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 상정해서 좋은 결과를 얻어서 바울과 함께 사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선교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면서 갈등이 생겨서 서로 갈라지게 되고 서로 다른 지역으로 선교를 가게 됩니다. 오랜 세월을 함께 사역을 했던 바울과 바나바는 서로 다른 견해로 인해서 갈라섰지만 하나님은 서로 다른 의견으로 갈등하고 갈라선 두 사람의 사역을 통해서 또 다른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새로운 선교팀을 만들어서 2차 선교 여행을 하면서 많은 교회들을 굳게 세웠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됨으로 믿는 사람들의 숫자가 날마다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데 첫 번째로는 바나바과 바울이 갈등이 생겨서 다투고 갈라섰다는 것과 16장은 바울이 디모데라는 새로운 동역자를 만나서 함께 사역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두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갈등 그리고 새로운 시작” 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1. 갈등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를 비롯해서 이방인 교회들을 힘들게 했던 율법을 지키는 것과 할례를 행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받고 안디옥 교회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사역을 하면서 교회가 성장하고 안정이 되니까 바울이 바나바에게 선교지를 돌아보러 가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36절을 보면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울은 1차 선교 여행 기간 동안 복음을 전한 지역을 다시 방문해서 그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자고 제안한 것입니다. 제2차 선교여행에 대해 바울이 바나바에게 제안하고 있는 점이 독특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1차 여행 당시는 성령의 지시에 따라 안디옥 교회가 안수하여 파송한 것이지만(13:1-3) 여기서는 바울 자신이 직접 계획하고 제안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과 안디옥 교회의 빠른 성장에 고무되어 새로운 전도 여행의 사명을 느끼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안디옥 교회가 겪었던 혼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이전에 전도했던 지역을 찾아가 예루살렘 총회의 의결 사항을 전달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들이 선교한 지역의 교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을 하고 싶었을 것이고, 예루살렘 총회의 결정에 대해서 알려주면서 그들의 믿음을 더 굳건하게 세워주고 싶었고, 또한 아직 가보지 못한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이 선교 여행을 가자고 하자 바나바와 바울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37-28절을 보면
15:37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15: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우리식의 표현으로 하면 단짝이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었다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고 나서 회심하고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을 때 바울을 여전히 핍박자로 생각하고 만나기를 두려워하던 교회 지도자들과 달리 바나바는 바울의 회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였고 바울을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바나바는 바울은 불러서 안디옥의 지도자로 세워주었고 함께 선교 여행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교회의 지도자로 설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바나바는 은인 같은 존재였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견해 차이가 발생했고 서로 다투고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갈라서는 모습을 통해서 교회 안에서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갈 때 교회는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사람을 사용하실 때는 사람의 인격과 성품을 완전히 바꾸어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잃어보면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다양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혈질인 사람도 있고 온화한 성품의 사람도 있고 깊이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우리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때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사용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착각하고 오해하기 쉬운 일 가운데 하나가 믿음으로 살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저절로 거룩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개조시키고 완전하게 변화시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성격과 성품이 그대로 인 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자신이 자신의 성품과 성격을 성령 안에서 변화되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갈등의 원이 된 마가 요한은 사도행전에서 중요한 인물 중에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시작은 마가의 어머니 집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 이후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던 곳이 바로 마가의 다락방이었습니다. 마가와 그의 어머니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고 그곳이 바로 최초의 교회가 탄생 된 장소이기도 합니다.
또한 마가는 안디옥 교회가 최초의 선교사를 파송할 때 바울 일행의 수행원으로 선교 여행에 참여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가는 선교 여행이 시작 된지 얼마 안 되어 선교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바울은 마가 요한이 예루살렘 교회 탄생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밤빌리아 버가에서 선교를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바나바에게 말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를 주님을 위해서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의 관점으로 마가 요한을 볼 때 한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선교 여행을 오래 한 것도 아니고 구브로에서 밤빌리아로 가는 짧은 여정이었는데 그것이 힘들다고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마가에 대한 바울은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언제나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있었고 언제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열정적인 사람입니다. 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수없이 많은 죽음의 위기를 경험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복음을 전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우선순위는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열정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바나바의 우선순위는 사람을 세우는 것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나바는 ‘위로하는 사람’ 입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의 뜻이 위로의 아들이란 뜻입니다. 바나바는 그의 이름처럼 언제나 힘들어 하는 사람들과 낙심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일으켜 세워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신 분입니다.
바울이 바울이 될 수 있고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고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 바울의 회심을 의심할 때 바울의 회심을 믿어주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에게 소개한 사람도 바나바이고 다소에 머물고 있던 바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안디옥에서 사역을 할 수 있게 도와준 분도 바나바입니다.
오늘 바울과 바나바의 의견 충돌의 내용은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갈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바나바는 마가 요한에게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마가 요한을 데리고 가자고 바울에게 말한 것입니다.
두 사람은 심히 다투고 갈라섰습니다. 39절을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 선교를 위한 좋은 결정을 해 주어서 이제는 이방인 선교의 장애물이 사라졌다고 생각하고 선교를 가자고 했는데 서로 갈등을 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기 생각하는 우선순위가 달랐기 때문에 서로 심하게 다투고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인 두 사람이지만 인간적인 갈등을 피할 수 없었고 오랜 세월 함께 동역을 했던 두 사람은 마가의 문제로 인해서 갈등하고 다투고 갈라서게 되었습니다.
2. 새로운 시작
바울과 바나바는 갈등으로 인해서 서로 다투고 갈라섰습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하게 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갈등하고, 다투고 서로 갈라서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바나바와 바울 두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두 사람이 각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사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습니다. 39절을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나바의 행적은 구브로를 떠난 이후로 사도행전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구브로는 바나바의 고향이었고 1차 선교여행 때에 바울과 함께 갔던 곳이고 바울이 2차 선교를 시작하면서 처음 방문한 선교지들을 돌아보자는 제안대로 구브로로 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이후에 사도행전에 등장하지 않지만 신약 신학자인 F.F. Bruce는 “이 때 서로 갈라선 것은 슬픈 일임에는 틀림없다. 마가가 바나바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을 것이고 바울이 후에 마가를 인정하였고(골 4:10, 몬 1:24, 딤후 4:11) 하나님은 이 두 사람의 충돌을 선으로 바꾸시어 하나의 전도단을 2개의 전도단으로 만드시어 전도하게 하였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다툼 : 네이버 블로그
바울은 실라를 선택해서 떠났습니다. 40절을 보면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바나바가 떠나자 바울은 실라를 동역자로 맞아드리고 선교여행을 준비하게 됩니다.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바울과 함께 선교에 참여하게 되는데 바울은 실라와 함께 새로운 선교팀을 구성해서 2차 선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2차 선교 여행 동안 실라는 바울의 동역자로 사역을 하게 되는데 바울의 3차 선교 여행 때에는 함께 동행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2차 선교 여행 후에는 바울 선교팀에 참여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후 실라의 행적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며 사역을 감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일부 학자들은 실라가 후에 베드로와도 함께 사역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베드로 전서를 기록한 사람이 실라라고 베드로가 소개했습니다.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실라는 실루아노라고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실라"(Σίλας, Silas)는 헬라어식 이름이고 "실루아노"(Σιλουανός, Silvanus)는 라틴어식 이름입니다.
실라는 유대인으로서 헬라어 문화권에서 활동할 때 "실라"로 불렸고 "실루아노"는 라틴어식 표현으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들이나 로마 문화권에서 더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교회들을 견고하게 했습니다. 41절을 보면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의 행선지는 육로를 통해 북상하여 자신의 고향인 다소를 향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향을 1차적으로 향했다는 점에서 바나바와 흡사한 점이 있지만 바울이 처음 여행을 제안했을 때 첫 방문지를 재방문하자고 하였던(36절) 계획이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의 2차 전도 여행은 바나바에게 처음 제안했던 것과 같이(36절) 1차 여행지의 재방문이 아니라 기독교를 확장하기 위한 새로운 모험과 도전을 시작하는 대장정의 출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나바와 갈라짐으로 인해서 바울의 선교 목표가 수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면서 이미 개척된 교회들을 굳건하게 하는 사역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회들도 견고하게 세움을 받는 것이 필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을 통해서 교회들이 세워지고, 전도를 통해서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겪었지만 지금은 세워진 교회들이 견고하게 세워지도록 해야 할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워진 교회들이 견고하게 되고 다시 부흥의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3.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
바울과 실라는 수리아와 길리기아를 다니면서 교회들을 견고하고 했고 그리고 본격적으로 선교사역을 하게 되는데 본격적인 선교에 앞서 새로운 동역자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디모데를 만났습니다. 16:1절을 보면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요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더베와 루스드라는 바울의 첫 선교 여행 때에 방문했던 곳입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선교를 하면서 더베와 루스드라를 다시 찾았는데 이곳에서 디모데를 만났습니다. 디모데라 하는 제자라고 표현한 것은 디모데가 이미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1차 선교여행당시에 이곳에 와서 복음을 전해서 믿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의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인이었고,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 이었습니다.
딤후 1:5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의 외할머니는 로이스이고 어머니는 유니게 입니다. 외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믿음을 이어받았다고 바울이 말한 것으로 보아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유대주의 신앙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디모데는 이런 신앙의 가정에서 살았습니다.
디모데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2절을 보면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아버지는 헬라인 어머니는 유대인이라는 것은 유대 사회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을 이어받음으로 인해서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창찬을 받는 모범적인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믿음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바울과 함께 선교에 참여하게 될 디모데는 교회 공동체에서 칭찬을 받는 사람으로 리더가 될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3-6절까지를 보면
16:3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새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으로 말미암아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인 줄 다 앎이러라”
16:4 “여러 성으로 다녀 갈 때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이 작정한 규례를 그들에게 주어 지키게 하니”
16:5 “이에 여러 교회가 믿음이 더 굳건해지고 수가 날마다 늘어가니라”
바울은 디모데를 선교팀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 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을 의식해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이라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가 있었지만 유대인들이 비난하지 못하도록 할례를 행한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동역자인 디모데를 데리고 함께 선교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교회가 더 굳건해 지고 성도의 수는 날마다 늘어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갈등을 겪고 크게 다투고 갈라서서 다른 동역자들과 함께 서로 다른 곳으로 선교를 위해서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갈라섬으로 두 개의 선교팀을 구성하게 하셨고, 서로 떨어져서 새로운 선교팀을 구성해서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교회가 견고하게 세워져가고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성도의 수가 날마다 늘어갔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이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한 기회가 되고, 하늘의 복을 누리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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