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에는 덜 익은 대추가 시장에 나왔다. 기후 변화로 자주 내린 빗 속에 그나마 잘 성장한 듯한, 크기에 있어서는 그랬지만 한 입 배어 물면 비릿한 맛이 단 맛과 거의 같은 양으로 전해져온다.
재래시장을 몇 차례 오가면서 나는 유독 덜 익어 풋내나는 퍼런 대추에 눈길이 머물렀다. 대추가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잊지 않았겠지? 괴산의 어느 산골짝 마을에서 대추나무를 올려다 보며 부모님을 기다리던 일을"
그 마을의 대추나무는 그냥 한 그루 두 그루가 아니었다. 얕으막한 산등성이에 마을을 울타리처럼 삥 둘러 감싸듯 우거져 있었다. 대추나무 숲이었다. 대추를 거진 다 털어 낸 터라 십여년 이상은 조히 되었음직한 큰 대추나무들은 하릴없는 이파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거나 가끔은 먹기에 탐스러운 대추 몇 알을 매달고 있는 것도 보였다.
부모님은 어디를 가신 것인지 왜 우리 곁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내 위의 오빠들이나 언니는 알 것이지만 나는 집안의 무거운 공기를 감안하여 아무에게도 묻지 않았다. 전쟁이 종료되었다고는 하나 지리산 일대에는 빨치산이 창궐하여 그 소탕작전에 군경을 투입하였다는 라디오 보도였고, 마을 어르신들은 그런저런 시국에 관해서는 입을 무겁게 닫았다.
아이들은 날마다 대추나무 숲으로 나와 어쩌다 툭! 하고 떨어지는 대추의 행운이나 기대할까 노상 배가 고파 특별한 즐거움을 말할 처지가 아니었다. 가끔은 대추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릴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럴 때는 그 마을 토박이 아이들과 타지에서 흘러들어온 조무라기들이 우우 탄성을 터뜨리며 서로 먼저 대추를 주으려고 달려가곤 하였다.
대추나무에 붙어 하늘거리던 이파리들이 풀풀 지상으로 낙하하고 겨울눈이 어지럽게 흩날릴 무렵에야 간신히 이산가족 상봉의 날을 맞게 되었다. 대추나무 숲에서는 윙윙 찬 바람이 술렁거렸으나 부모님을 만나게 된 것만으로도 우리는 추위와 배고픔을 잊을 수가 있었다. 대추맛은 그렇게 내 추억이 되었고 해마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대추 한보시기를 사들고 온다.
지금은 눈부시게 사통팔달 새 도로가 개설되어 마을의 형태를 완전히 변화시켰을 것이다. 단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그곳이 우리집에서 늘 장작을 패고 이종오빠의 트럭 조수격이었던 수복이란 총각의 본집이었을 거라는 추측뿐이다. 또한 오빠들이 주어다 준 대추맛이 포근하도록 달았고 나 스스로 주운 대추맛은 그보다 더 달콤한 맛이었을 것. 포만감 만족감이 더했을 거라는 느낌은 여전하다.
아파트 화단에는 여기저기 여러 그루의 대추나무가 있다. 작년에 그랬던 것처럼 대추나무에 대추가 익으면 아파트 주민들이 몰려가 대추나무를 마구 흔들어댈 것이다. 그게 언제인지 모르지만 나는 기다리고 있을 일이다. 슬며시 다가가 잘 익은 대추 몇 개 주어올 요량으로. 그러나 그 맛에 대해서는 함구해야겠지. 깊은 산꼴짜기 그 울울한 대추나무 숲에서 유성처럼 떨어져 내리던 대추맛과 어찌 감히 비교하랴!
바야흐로 대추가 익어가는 계절이다. 전쟁의 와중에서 악질 반동이란 명목으로,군경가족으로 남달리 곤욕을 치루었던 부모님과 함께 괴산 골짜기의 대추나무 숲과 감질나게 한 알 두알 떨어지는 대추를 우우 달려들어 주어 먹던 일들이 눈에 잡힐 듯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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