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구속(拘束)
이배근
햇살 고운 늦가을의 저녁 무렵에 나는 편지 한 통을 받아들었다.
나란히 적힌 두사람의 이름자를 바라보며 잠시동안 머뭇거리다 이내 반가움에
개봉을 서두루는 나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지난 여름 수마가 휩쓸고 간 감고을 영동엔 복구의 땀방울로 눈코뜰 새가 없
었다 그 와중에도 필로폰 사범으로 적발된 정씨와 그 관련자들을 추적하느라 우
리 형사대는 대구의 구석구석을 헤메고 다녔었다. 지리적 미숙과 수사진의 숫적
부족으로 잦은 실수도 있었지만 형사들의 근성과 사명감으로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시대적 상황으로 실직을 이어가던 정씨는 몇 번의 실패가 가
져다준 자책감으로 유흥업소 출입이 잦았고 급기야는 마약의 검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순간순간 후회하고 되돌아오려고 애써봤지만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그의
무덤의 깊이는 더욱 깊어만 갔다.
결국 정씨는 우리 형사대에 검거되어 구속되었고 애인 김양의 불행도 서서히
그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구속기간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대구에서 영동을 오가며 면회를 했고 면회
실에서 나오는 그녀의 눈가엔 언제나 눈물이 그칠 줄을 몰랐다.
싸늘한 면회실 유리창에 얼굴을 부비며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부활을 기도하던
그녀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심한 금단 증세로 인하여 급기야는 그녀를 알
아보지 못했다.
나에게 달려와 “어쩌면 좋아요, 제발 그이를 살려주세요”라며 눈물로 호소하던
그녀의 애원때문에 나도 며칠동안 마음이 아파 괴로워했었다.
확정판결이 있던 날. 실낱같은 희망을 걸던 그녀도 1년의 실형을 선고받는 순간
정씨와 함께 고개를 떨구었고, 이내 그녀는 법정을 도망치듯 달려나와 흐느껴 울
었다.
어느 흰눈 내리던 겨울 아침.
대전교도소로 향하는 호송차 안에서 정씨는 하얀 덧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
고 마음의 평정을 찾은 그녀도 “괜찮아 건강해야돼”라며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
다 호송차가 사라질때까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흔드는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사무실로 들어와 따뜻한 커피를 한 잔 건내며 위로를 했고 대구행 차표와 함께
그녀를 배웅했다.
그후 나는 정씨와 몇 번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나날이 변화하는 그이를 느낄 수
있었으며 그는 늘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얼마간의 세월이 흘러 나는 부서를 옮기며 잠시 그들을 기억에서 잊고 지냈는
데 어느덧 가정을 꾸린다며 꼭 참석해 달라는 편지와 함께 이렇게 오늘 청첩장을
보내온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내가 결혼을 하는 것처럼 가슴이 설레이고 기쁘다.
하느님! 이 두 사람에게 꼭 축복을 내려주소서!
대한민국 경찰로 10년을 넘기면서 슬픔과 괴로움의 다반사인 삶이지만 그래도
흰수염 갈대풀처럼 유유히 저녁 햇살에 빛날 수 있는 것은 아직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지금 대구행 기차에 오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장롱속의 넥타이를 아
내몰라 만지작 거려본다.
2006/23집 겨울 특강
첫댓글 대한민국 경찰로 10년을 넘기면서 슬픔과 괴로움의 다반사인 삶이지만 그래도
흰수염 갈대풀처럼 유유히 저녁 햇살에 빛날 수 있는 것은 아직 세상은 따뜻하고
살만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나는 지금 대구행 기차에 오를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장롱속의 넥타이를 아
내몰라 만지작 거려본다.
문학적으로 판단할 부분과 현실적으로 판단되는 부분이 따로 작용하다보니 제목을 몇번 다시 쳐다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