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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 1: 20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 2 )
4] 재난과 회개 ( 요엘 1:13-20 ) / 유경재 목사
이번 태풍 때문에 우리나라는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중앙재해대책본부 9월 8일 오전 6시 집계에 의하면, 인명피해 184명(사망 123명, 실종 61명)이고, 이재민은 27,259세대 76,883명입니다.
침수 피해는 건물 17,046동, 농작물 피해 143,261ha로 재산피해만 5조 3,867억원입니다. 피해 내용을 보면, 도로 1,627개소, 교량 209개소, 하천·소하천 5,892개소, 수리시설 4,858개소, 방조제 123개소, 선박 1,040척 등입니다.
태풍이 지나가는 2, 3일 사이에 당한 피해로는 너무나 큰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피해말고도 정신적인 피해는 말할 수 없이 클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 그리고 수확을 앞둔 과수나 농산물을 다 잃어버린 농부들이나 기르던 가축들을 모두 앗긴 축산농가들의 절망감은 깊은 상처로 남게 될 것입니다.
이런 큰 재난을 당할 때 우리는 당황하게 되면서 그 재난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하지 못한 채 지나가곤 합니다. 특히 이런 재난이 자연재해이기 때문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기에, 하늘만 바라보면서 탄식한 채 또 다시 그럭저럭 삶을 이어가게 마련입니다.
또 이런 자연재해는 거의 매년 겪기 때문에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재난으로 받아드리면서 거기서 별 교훈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교회도 연례행사처럼 수재민 돕기 헌금을 하여 보내고는 별다른 생각 없이 넘어가곤 합니다. 그러나 과연 재난은 아무런 의미 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며, 아무런 교훈도 없이 지나쳐도 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에 없이 많은 재난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은 분명 무엇인가 우리가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임에도 강대국들은 돌이킴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속도를 늦추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는 과거처럼 무심히 이 큰 재난을 탄식하면서 약간의 도움을 주는 선에서 지나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이 재난을 통해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하겠습니다.
재난은 하느님의 심판
성경에서 보면, 큰 재난은 언제나 하느님의 심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에 가장 먼저 나오는 노아 홍수 이야기는 바로 인간의 타락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급기에 나오는 열 가지 재앙 대부분이 자연 재해입니다. 그것은 자연 재해를 하느님의 심판으로 생각하는 역사가 고대 사회에서 널리 퍼져 있음을 말해 줍니다.
히브리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있던 이집트의 바로 왕에게 모세가 나타나 그 백성을 광야로 이끌고 나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겠다고 하였을 때 바로 왕은 이를 거부하였고, 그 때부터 열 가지 재앙이 이집트인과 그 땅에 퍼부어졌습니다.
이 재앙 때문에 이집트는 많은 인명 손실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보았습니다. 히브리인들의 출애급에 따른 열 가지 재앙은 인간 문명의 극치를 이룬 바로와 그 이집트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할 뿐 아니라 그 생명을 풀처럼 우습게 여긴 거대 권력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통치하던 때에 3년 반 동안이나 가뭄이 계속되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을 떠나 바알 우상에 치우친 아합 정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가 미리 아합 왕의 죄를 지적하면서 가뭄을 예고하였음에도 그 왕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정치인들은 언제나 자연재해를 자기들의 잘못과 연계시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예언자가 가뭄이란 재해가 하느님의 심판임을 알려 주었음에도 사람들은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바알 우상에 몰두하여 하느님을 떠났던 것입니다.
오늘 읽어 드린 요엘서에 보면, 큰 메뚜기 떼가 몰려와 모든 곡식과 나무를 먹어치우는 큰 재난이 유다 땅에 왔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팥중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떨어지며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욜 1:4,10,12)
이런 재난을 예언자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보고, 제사장들을 향하여 베옷을 입고 슬피 울라고 하면서"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주민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슬프다, 그 날이여! 주께서 심판하실 날이 다가왔다. 전능하신 분께서 보내신 바로 그 파멸의 날이 다가왔다.
예언자는 이 큰 재난을 심판의 날, 파멸의 날로 인식하면서 속히 회개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본문에서 마지막 때에 일어날 재난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날 것이며, 큰 지진이 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이 생기고, 하늘로부터 무서운 일과 큰 징조가 나타날 것이다."
이런 재난이 바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이르렀음을 알려주는 전조(前兆)가 됨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경에서만 아니라 옛날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은 가뭄 같은 큰 재난이 오면 자기들의 부덕함을 뉘우치면서 겸손하게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큰 재난에는 하느님의 심판의 뜻이 분명히 담겨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애써 그런 생각을 떨쳐버리고 그저 어쩔 수 없는 자연의 재해로만 받아 드립니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책임질 만한 지도자들 중 누구도 빈말로라도 자기들의 부덕함 때문에 이런 재난이 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것은 재난이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우리의 삶의 잘못 때문이며 정치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난이 하느님의 심판이라는 종교적 관점은 갖지 못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그것이 결코 우리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인식 정도는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지구환경의 변화를 자신들의 삶과는 무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재난을 당하고도 겸손하지 못하며, 여전히 그 자연을 파괴하는 일에만 열중하게 됩니다. 우리가 계속 재난을 당하면서도 회개하지 아니하면 자연의 재해는 더욱 커지고 그 피해는 우리를 심각하게 위협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재난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식하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경제 발전을 자랑하면서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거기에다 화려한 고층 건물들을 보란 듯이 올리지만, 하루 사이에 그 모든 것이 다 무너질 수 있다는 경험을 이번에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교만에 대한 심판이며, 하느님이 지으신 피조세계를 알지 못한 우리의 무지에 대한 심판입니다.
재난의 세계화
옛날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대신 바알 우상을 섬겼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저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인들도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 물질문명에 빠져 하느님을 떠났고, 그가 지으신 피조세계를 마구 짓밟아 왔습니다.
하느님과 그가 지으신 모든 피조물이 다 하나의 공동체이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기 살을 깎듯이 피조세계를 마구 파괴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마구 파헤치고 개발하여 얻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은 우리의 경제 발전과 개발을 재고하라는 하느님의 강력한 권고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회개한다는 것은, 정치인들이 정쟁을 중단하고 근본적으로 잘못된 신자본주의 경제이론을 재검토하고, 난개발과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조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가 좀 나아졌다고 마구 낭비하고 사치하는 생활 자세를 고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절약하면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환경운동연합 에너지 대안센터 간사인 추소연씨가 쓴 글에 기상이변에 따른 문제들을 밝히면서 속히 대처해야 할 것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의 기상이변 현상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2000년의 폭설, 2001년 극심한 가뭄, 2002년 사상 초유의 폭우와 태풍 등 최근 몇 년 사이 기상이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한 이번 수해와 같은 재해는 계속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기상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구상 곳곳에 극심한 가뭄과 폭설, 폭우가 찾아오는 기상이변이 계속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에 따라 건조한 지역은 더욱 건조해지고 상습적인 수해지역은 물난리가 더욱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당장 화석연료의 이용을 적극적으로 줄이지 않는다면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산업문명을 통해 이룩하려 했던 부와 삶의 질이 오히려 한참 퇴보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기후변화는 기상이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경작 환경의 변화로 인한 식량난, 물부족, 전염병, 식생변화, 생물종 다양성의 침해, 해안 지역 문명의 파괴 등 지구 생태계를 뒤흔드는 광범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이미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이 세계 9위에 이르는 지구온난화 오염국이고, 이런 저런 종합대책에도 불구하고 2010년이 되면 온실가스 배출량 면에서 세계 7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기상이변이 이변(異變)이 아닌 일상적인 일이 되고 가뭄과 홍수가 매년 끊이지 않고 일어날 것임을 뜻합니다.
사실상 기상 이변에 의한 가뭄과 홍수는 하느님의 심판임과 동시에 하느님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고통 때문에 신음하고 계신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간의 오만과 방자함이 하느님의 몸인 피조세계를 계속 오염시키고 파괴하므로 하느님께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아픔 때문에 몸부림하고 계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 달 8월 26일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서 개막하여 9월 4일(현지시간) 폐막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의'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 이후 10년 만에 열린 지구촌 최대의 환경정상회의였습니다.
이 회의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면서 후세에 하나뿐인 지구를 깨끗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물려 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발전 방안을 모색, 모든 국가들이 이를 실천해 나가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모였습니다.
6개 분야 152개항에 걸친 다양한 목표와 이행계획들이 합의 채택됐지만, 많은 계획들은 구체적 일정이나 세부 실행계획을 수반하지 못해 결실 없는 '부끄러운' 회의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가장 많은 관심을 모았던 빈곤퇴치와 기후 문제에서 세계 지도자들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고 구체성 없는 말 잔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뉴스는 전하고 있습니다.
지구가 현재 당면한 고통과 재앙은 범지구적 이성의 결집 없이는 절대로 극복할 수 없음에도, 미국이 이에 협력하지 않음으로 별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재난은 어느 한 나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그야말로 범지구적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경제가 세계화되면서 그와 비례해서 재난도 세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과 지도자들이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면서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 가야 할텐데, 정쟁(政爭)에 바쁘다 보니 먼 미래를 내다본 정책을 입안할 꿈도 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매년 재난은 반복되고 그 재난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하느라 절절 매는 수준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회개는 단순하게 기도하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행한 잘못된 행동을 바꾸어 올바른 방향을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이번에 당한 큰 재난은 우리의 우둔함을 일깨우기에 충분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정치인들과 지도자들과 교회와 국민들이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만약 이번에 강릉이 아닌 서울에 900mm의 비가 하루 동안 퍼부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언제 어느 때 그런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의 심판의 채찍을 아프게 받으면서 회개하고 돌이켜 올바른 삶을 이룩해 가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재난은 결코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며, 진노의 표적이며, 그분이 고통을 당하고 계시다는 신음소리입니다. 자연재해는 금년에 요행히 피하였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언제 어느 때 우리에게 닥칠지 알 수 없는 계속되는 심판이며, 경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일어나 정신 없이 벌려 놓은 살림을 간추리며, 간소하고 절약하는 가난한 삶으로 돌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도 자기 교회 하나 성장시키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범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재난의 경고를 읽으면서, 환경보전 운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겠습니다.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을 세우도록 압력을 넣으며, 재난에 대비하여 보다 항구적인 대책을 강구해 가도록 촉구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을 비롯한 강대국들이 전쟁을 위한 무기를 만들어 내는 돈으로 이제는 빈곤 퇴치와 지구온난화를 해결하는데 사용할 수 있도록 세계적 운동에 우리도 연대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재난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식하면서 회개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제 21세기 교회는 범지구적 재난으로부터 지구를 구원하시는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면서 겸손한 삶, 절제된 삶, 영생을 추구하는 삶을 이루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항상 깨어 정신을 차리고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헤아려 그 뜻을 따라 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이룩해 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인간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누렸던 풍요와 평안, 일용할 양식, 그리고 종교적 의식의 제물까지도 다 하나님께서 주셨던 복이다.
그가 거두시면 언제든지 기근과 기갈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주장하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둘째, 사람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대재앙을 만날 때가 다가옴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하며 금식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해야 한다.
14절,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이 세상에 주신 재앙에 대한 해결책은 우리가 오직 하나님 앞에서 통회 자복하며 그의 긍휼과 자비를 구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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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 27:1).
💖행복은 남에게 나눠 줌으로써 비워지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나눔으로써
채워지는 신비로운 것입니다. 베푸는 만큼 행복의 양도 그만큼 많아 집니다.
오늘 하루도 주위 사람들에게 베푸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