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라지기행
지난 저녁 숙취를 걷어내려고 내민 손 끝에 닿은 자리끼는
이미 밤을 지나온 온기로 덥혀 있었다.
한 입을 우그짝우그짝 행궈 내고는 꿀꺽 삼켜 버렸다.
창을 열고 시원하고도 청량한 기운을 마시고 싶었다.
창 밖 건너 어슴프레한 능선을 더듬다보니 나는 이미 동서울을 떠나고 있었다.
습기찬 차창 밖에선 산과 들과 간혹 집들이 고속도로의 곁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차창에 서툴게 원을 그리고 그밑에 조그마하게 현재진행형 正在라고 썼다.
그 원과 글들은 이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는 것이 맞으리라
이렇게 나는 "청량" 을 소유하고 마시기 위해 강원도 영월로 향하는 것이다.
터오르는 햇살이 눈부신 새벽 나는 "나의 청령포기행"을 시작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하진부로 가는 곁길로 접어 들면서 생각한다.
여기 어디쯤 산골다리를 지나 안개 가득 한 송어횟집의 습기 찬 골방에서 마시던 소주 병들을
그리고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하는 들병이의 분내를
철교를 지나 급 커브를 돌면 이내 창백하게 말라붙은 강바닥이 보인다.
내처 간이 역이 보이자 .. 민물고기 열차식당이 쓰윽 나서고...건널목을 건너자
돈 벌러 뗏목을 타고 대처로 떠난 서방님을 기다리는 아오라지 처자가
그윽하게 대처로 눈길을 보내며 있었다
동백나무열매야 다담북열어라
이웃집 처녀다리고 열매따러갈게
아주까리농사를 힘쓰고보니
열두명식구가 저녁을굼네
술은 술술 잘넘어가고
밥은 중지가 맥혀서 못먹겟네
물동우(水甕)여다노코 물그럼자보니
촌색시노릇하기 제안이원통한가
울타리밋헤다 님세워노코
호박입이 넘죽넌죽하야 님못뵈네
호박입이 넌줌넌줌 님못거던
洞內樵軍더러다 호박줄것네
동백나무 열매는 가매감실
아니나던 정든님 생각이 간절하네
물명주 단속곳은 허리유통에다만 걸고
장부의 일천간장을 다 녹여내네
인삼녹용 패독산도 나는 실허이
후원별당 잠든아기를 깨워나주게
삼사월 긴긴헤에 점심을 굶어살면살엇지
동지섯달긴긴밤에는나는혼자못자겟네
타따봉접아 네자랑마라
꽃도늙어낙화하면 접불레라
정자아래 우두커니 서방을 기다리는 아오라지 여인의 품세가 여엉 마득하여
막걸리 한통을 사고 점방 아낙이 건내는 약간의 고추장에 멸치 몇개로
정자의 2층에서 불어오는 강바람과 교감하며
"오래된 정선아리랑과 아라리"에 젖어보게 된다
물론 노래는 그날 그곳에서 만난 올해82세의 곱게 늙으신 누님이 했지만
흥취만큼은 개똥같은 고등어도 만만치 않았다
보답이라야 잡수시고 싶다는 산채비빔밥과 과일 몇가지였었지만
헤어질때 갈퀴 손가락같은 설음이 몰려와 눈가가 촉촉해졌다
어쩻거나 배부른 노래 배부른 점심으로 허기와 끼니를 때우고
내가 목메어 보고잡던 청령포를 목전에두고
"음주와 포만으로" 잘차려진 모텔앞 길바닥에서 스르르 잠이들었다
오호 통재라 애재라 술이 웬수이더라
바람은 그렇게 그렇게 차창 밖으로 흘러 갔다
말릴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아까운 2시간이 흘러갔다
풋잠에서 깨어나자, 시원하게 숲 속에서 방뇨를 한다.
풀숲에서 기다리던 도깨비 풀들도 바지가랑이에 매어달려 사정을 한다
"나도 가고시퍼 델고가줘 달랑달랑
이렇게 도착한 청령포
단종을 죽여야했던 관가의 쑥맥들이 요사이 새로지은 청량포엔
이름으로만 도배한 세월의 흔적들이
여름 무더운 바람이 유령처럼 주인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단아한 담장 사이사이로 강도 보이고 숲도 보이고 산도 보이는 청령포 자락으로
이곳으로 새벽부터 미명을 헤치며 달려 온 이유는
이곳에서 세상의 모든 것들을 조망할 수 있으라라는 기대이기도 했었으리라
망향대에 올라 단종이 바라보며 바람처럼 지나치던 서울 쪽을 망연스레 바라보고는
내가 이곳에 온 이유가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분 냄세 풍기는 이성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였다
외연(外延)과 내연(內延)을 넘다들며 그렇게 무시하고 무시 당했던
개똥같은 외로움이었다.
石隅齋에서 고등어
첫댓글
역사의 비극이지요
삼촌에 의해 탄핵 되었기에.....
정치의 칼 날은 예리하고 무섭지요
대단위 그룹의 정치사도 대단하지만
소단위 그룹의 정치도 만만찮아요
동네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알잖아요
무슨 관변 단체가 저렇게나 많고 한 사람이 몇 개의 감투를 쓰고
이 단체 저 단체 물 다 흐리게 하고 휴 .....
울 동네 저가 한번 봤 싸더니 정화 많이 되었어요 ㅋㅋ
임금 천하 시대부터 내려오는 유전자가 있다고 저는 판단 합니다
그리하여 둘 만 모이면 정치 이야기 ^^
어찌 글 솜씨가 아오라지 물길처럼 청정하다가 어느 순간 권력의 희생양 되신 단종의 피맺힌 울음내려 앉은 청령포 강가에 다다르셨군요
님이 돌아 보신 두 군데 모두
짙은 그리움과 목메이는 설움 서린 곳이라 읽는 내내 감정에 휩싸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