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다 그런 대요 / 문광섭
절기로 우수(雨水)가 지나선지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오르내리며 오늘은 봄비라도 오려는지 아침나절부터 흐렸다. 한낮이 되니까 가랑비가 간간이 뿌렸다. 손가락 마디와 왼쪽 무릎, 발목에 통증이 일어나고, 협심 증세까지 곁들이며 날 괴롭혔다. 오래전 관상동맥을 수술한 탓에 협심증과 면역성 관절염을 앓고 있기에 처음 겪는 일도 아니고, 날씨가 흐리거나 기압이 낮으면 으레 겪는 일이다. 하지만, 가슴을 치는 사연이 고개를 들며 마디마디 통증보다도 심하게 아려오는 아픔에 목이 메었다. 어머니께서 칠순에 들던 무렵, ‘늙으면 다 그런 대요’라고 불쑥 내질렀던 불효를 이제 내가 겪으면서야 깨닫고, 회한(悔恨)이 들어서다.
어머니가 환갑을 넘기면서부터 무릎 통증을 호소하셨다. 하여, 소문난 병원과 의사를 찾아다녔으나 별 효험을 보지 못했다. 그렇게 칠팔 년이 경과하고서 잘 아는 W정형외과에 갔을 때, “할머니, 늙으면 다 그래요.”라고 했었다.
약으론 완전히 낳게 할 순 없으니 통증을 조금 견뎌내시라는 뜻으로 이해했다. 2, 3년이 지난 어느 날, 약주 한잔하고서 귀가하니 어머니께서 신세타령하시기에
“늙으면 다 그런대요.”라고 했더니
“너도 당해봐야 내 속을 알 것이여”라고 하셨다.
나는 축구 테니스 등산을 즐겨 했다. 40대 초반 도지사 배 직장대항 축구 시합 준결승서다. 왼쪽 무릎 인대가 늘어나는 부상으로 4주간 석고붕대를 하는 바람에 무겁고 가려워서 혼 좀 났었다. 그러곤 축구와는 생이별해야 했다. 3년 뒤 테니스 경기 중, 왼쪽 발이 미처 옮기지 않은 상태서 상체만 돌아가다 보니 무릎이 꽈배기 되면서 12주 석고붕대를 또다시 하게 되었다. 4주에 한 번씩 해체하고 X-Ray 촬영과 검사를 반복했는데, 첫째 출퇴근과 잠자리가 불편해 큰 고생을 했었다. 그래도 40대 한참 젊었을 때라 지금처럼 힘들지 않았고, 견딜 수 있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 무릎이 아프시다 해도 짐작조차 못 했다. 불민한 탓이기도 했다.
축구와 테니스는 접었어도 50대에 들어서며 다시 등산을 시작해 지리산 한라산 등 전국 명산을 오르내리며 10년 가까이 산과 자연을 즐겼다. 무릎이 예전만은 못해도 조심조심 쓰다 보니 크게 불편한 줄 몰랐다. 직장을 나오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 이때부터 몸이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육십 중반에 전주 근교에 자리한 오봉산을 올랐다가 심근경색(心筋哽塞)을 겪어 서울 H병원에서 관상동맥 우회 수술을 받았다. 자연 등산과도 또다시 멀어졌다. 이때 생긴 병이 협심증이요, 면역성 관절염이다. 축구와 테니스 경기하다가 다친 무릎에 통증이 나타나면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을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어쩌면 그렇게도 어머니가 힘들게 고생하시던 나이와 비슷하니 나 역시 무릎과 손가락 마디 통증을 겪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관절염약이나 진통제를 복용하면 그때뿐이고, 식욕마저 떨어져 밥을 못 먹는 이중고를 겪는다. 하여, 약을 삼가고 일과 운동을 통해 잊거나 견디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운동도 조금 과하면 통증이 오고, 날씨가 흐리면 몸 전체가 사달이 나기에 드러눕는 게 일상이 되고 있다. 그때마다 어머니 형편이나 심정을 헤아리지 못했던 어리석음과 우둔했던 처사를 한탄하지만, 30여 년의 세월만 무상할 뿐이다. 왜 내가 당하고 겪고서야 깨닫게 되는지 억장이 무너지고 소리 내 울고 싶은 심정이다.
오후 4시를 넘기면서부터 가랑비가 부슬부슬 끊임없이 내렸다. 외려, 비가 내리면 통증이 조금 가시는데 기압의 영향이지 싶다, 통증을 잊고 심신을 진정시키고자 TV를 켰다. KBS 한국방송의 ‘청산에 살리라’라는 프로에 ‘어머니의 봄날에는’가 방영되고 있었다. 50대 후반의 남자가 가마솥에 닭을 삶으며 ‘파킨슨병’으로 고생하시는 노모에게 보양을 해드리고자 한다고 했다. 그러자 약간의 치매 증상도 보이는 어머니가 나오시더니
“알 낳으면 먹으려던 참인데, 왜 닭을 잡고 난리여?”
“어머니가 너무 허약하셔서 보양을 좀 해드리려고요.”
“그려! 아이고. 우리 아들 최고여!”
순간, 목이 잠기고 눈시울이 젖어왔다. 닭잡기보다 훨씬 쉬운 말 한마디 ‘어머니, 오늘도 고생 많으셨죠? 제가 좀 주물러 드릴까요?’라고 한 번쯤 왜 못했을까. 나이 사십 줄이면 세상 물정도 알 나이련만, 어찌 아무 생각 없이 ‘늙으면 다 그런 대요.’라고 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이제 나 역시 어머니가 세상 뜨셨던 나이 팔십 문턱에 이르고, 그 말씀에 따라 고통을 겪고 있다. 이제야 조금 알듯 한 게 부끄럽기 짝이 없고, 얼굴 들기도 민망스럽다. 이래서야 어떻게 손자들의 버릇없음을 탓할까! 앞으론 말도 삼갈 것을 다짐해 본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양, 아직도 창밖엔 가랑비가 속절없이 내리고 있다.
[문광섭] 수필가. 2014년 《대한문학》등단. 꽃밭정이수필문학 회장.
전주문협, 행촌수필, 전북수필,꽃밪정이 수필문학회
자식을 낳고 키워봐야 부모마음 알듯, 나이 들어 아파봐야 부모님 노환의 고통을 깨닫게 되죠.
우리는 언제나 늦게 깨닫고 그제야 후회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