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의 시 같은 여행
토스카나의 봄
토스카나의 봄은 풍경이 아니라 분위기였다
시간마저 게으르게 흐르는 언덕 너머로
노란 겨자꽃이 들판을 가득 메우고
올리브 나무는 묵직한 침묵으로 계절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시에나 외곽의 작은 농가에서 눈을 떴다
창밖에는 포도밭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먼 언덕 위로 햇살이 한 겹씩 내려오고 있었다
기상 알람보다 먼저 나를 깨운 것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였다
아침 식탁에는 갓 구운 치아바타와
고소한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오일
이탈리아의 햇살처럼 노란 달걀로 만든 음식이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하루를 시작하는 일조차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오전에는 포플러 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길을 걸었다
한 걸음씩 천천히 걸을 때마다
발아래 자갈이 바스락거렸다
말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시간조차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 순간 한 줄의 시가 내 안에서 피어났다
올리브 잎을 흔드는 바람처럼
나도 가만히 흔들렸다
그 문장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아마도 토스카나의 공기와 빛
천천히 흐르는 시간 속에서
마음으로 스며든 것이었을 것이다
피엔차의 작은 골목에서는
젤라또를 들고 천천히 걸었다
작은 발코니에 앉은 누군가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고
그 소리는 바람을 타고 언덕 아래까지 흘러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눈앞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아두듯
그 순간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
저녁에는 언덕 위 와이너리에서
진한 키안티 와인 한 잔을 마셨다
붉은 석양이 잔 속에 노을처럼 번졌고
와인의 맛은 토스카나의 봄날을 닮아 있었다
조금씩 천천히 깊어지는 시간이었다
여행이 끝날 무렵
내 손에는 특별한 기념품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단단하고 조용한 한 문장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한 줄의 시 같은 여행
남프랑스의 봄
남프랑스의 봄은 빛으로 찾아온다
꽃보다 먼저 도착한 햇살이
오래된 담벼락을 물들이고
잠들어 있던 골목을 천천히 깨운다
그 빛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은 곳까지 봄이 들어온다
루시옹과 고르드와 생레미
이름마저 한 편의 시처럼 부드러운 마을들이다
나는 붉은 황토빛 벽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돌길 위에는 따뜻한 바람이 내려앉고
작은 창가에서는 라벤더 향기가 은은하게 흘러나왔다
여행은 목적지가 아니라 속도로 남았다
빠르게 지나가는 것보다
천천히 바라볼수록 아름다워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매일 아침 작은 광장으로 나가
갓 구운 바게트를 사고
카페 테라스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는 누구도 서두르지 않았다
옆자리의 노인은 신문을 천천히 넘기고
골목 끝에서는 고양이 한 마리가
햇살 아래 길게 몸을 늘이며 봄을 맞고 있었다
그때 한 줄의 시가 마음에 내려앉았다
햇살에 물든 벽 사이로
봄이 조용히 말을 건다
그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햇살과 바람을 향해 가만히 웃었다
카페 크렘을 다 마시고 다시 길을 걸으며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가장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는 것을
여행은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다시 채우는 시간이었다
생레미 드 프로방스의 들판에서는
고흐의 붓놀림이 아직 남아 있을 것 같은
언덕 위에 한참 서 있었다
바람은 지나갔지만
그날의 기억은 오래 그 자리에 머물렀다
돌아오는 길
가방 안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한 줄의 시가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남프랑스의 봄은 풍경이 아니라
느린 시간 속에서 다시 발견한
내 안의 따뜻함이었다
한 줄의 시 같은 여행
알프스의 봄
알프스의 봄은 말수가 적다
찬란함을 자랑하지도 않고
요란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고요하게 그 자리를 지키며
찾아온 사람의 마음을 천천히 열어준다
그날 아침 나는 라우터브룬넨 골짜기에서
산으로 오르는 하얀 기차에 몸을 실었다
설산의 차가운 기운이 아직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
차창 너머로 초록빛 목초지와
눈 덮인 봉우리들이 천천히 지나갔다
그 모습은 오래된 수채화처럼
맑고 고요했다
기차는 숨을 고르듯 천천히 고도를 높여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프스는 침묵으로 말을 거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융프라우와 아이거와 묀히
세 개의 거대한 봉우리는
봄이 찾아와도 흔들림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웅장한 침묵 앞에서
내 마음에도 한 줄의 시가 떠올랐다
눈 녹은 침묵 위로
봄이 천천히 흘러간다
산 아래 마을은
긴 겨울잠에서 막 깨어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작은 샬레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골목 어딘가에서는 따뜻한 커피 향기가 흘러나왔다
길가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이 피어 있었다
그 꽃 곁을 지날 때마다
나의 발걸음도 자연 앞에서 조심스러워졌다
그곳에서 나는 하루를 보냈다
책 한 권을 읽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끔 고개를 들어 산을 바라보았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서는 아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고요의 음악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나만의 풍경과 시간이 있었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씩 위로받았고
천천히 본래의 나에게 돌아왔다
사람들은 여행에서 무엇을 얻었느냐고 묻는다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샀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조용히 미소 지으며 대답한다
나는 한 줄의 시를 데려왔다
내 안의 언어가 잠잠해지고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는 곳
그곳이 바로 알프스였다
봄은 높은 산의 어깨 위에서 말없이 피어나고 있었고
그 풍경은 내 마음에도 새로운 계절을 열어주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가벼운 여행 가방을 닫았다
가방 안에는 기념품이 없었지만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문장이 담겨 있었다
진짜 여행은 결국
마음이 움직인 한순간의 떨림으로 남는다
첫댓글 내가 웃어야 내 행운도 미소짓고,
나의 표정이 곧 행운의 얼굴이다.
여유를 찾는 행복한 시간 만드시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오늘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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